〈 16화 〉방송 두 달째(6)
-저러다 트롤짓 하면 어쩌게?
“깔끔하게 한번 죽고 오프라인으로 바꾸는거죠 뭐!”
히히, 방해 할테면 해보라지.
진즉에 이렇게 할 것을 그랬다.
내가 괴롭힘 당한 횟수가 몇 번이라고 생각하느냐!
괴롭힘에서 빠져나오는 것, 적응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내가 자신하는 몇 안되는 것 중 하나였다.
“헤헹”
-뭔가 기분나빠
기분 나쁘다니...!
“그으...”
이런 말을 해도 될까?
괜히 미움 받는 게 아닐까?
미움 받는 것은 익숙하니 그렇다 치겠지만, 말로서 내뱉으려 하니 상상이상으로 부끄러웠다.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중얼거리듯, 채팅창의 눈치를 보며 툭 말을 내던졌다.
“저를 아껴주세요...!”
-우리가 존나 쓰레기가 된거같아
-쓰레기가 맞긴해 ㄹㅇㅋㅋ
-리에라는 응애야 아껴줘야해
내가 부끄러운 말을 내뱉고는 오그라든 손을 잼잼- 거리고 있자 아오오니가 내 캐릭터를 중심으로 빙빙 돌던 행위가 멈췄다.
뭘 하는거지?
“뭐지...?”
가만히 멈춰선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참았다.
저 괴물이라면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피할 테니까.
그렇다면 새로운 능욕방법일까?
불안한 눈빛으로 째려보자 주섬주섬.
무언가를 바닥에 툭-
“저게 뭐죠?”
검붉은 보석따위.
다가가보자 보석이 아니었다.
아이템인가?
줍는 순간 나를 죽일 셈인가?
끝도 없이 샘솟는 의심에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끝내줬으면 좋겠네.
나는 다가가 아이템을 주워 먹었고,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저주가 깃든 손톱 +9]
-엌ㅋㅋㅋㅋㅋㅋ
-트롤이 아니라 나데나데하러 침입한 망령이었네ㅋㅋㅋㅋ
“혹시 방송보고계세요...?”
내가 아껴 달라 하자마자 무심하게 툭 떨군 엄청나 보이는 아이템.
이 행동에, 이 타이밍은 빼도 박도 못한다.
내 질문에 아오오니는 제스처를 취했다.
손을 뻗어 흔드는, ‘안녕’을 뜻하는 제스처!
그럼 아까는 왜 못들은 척 했던 거에요?!
그보다!
“아, 아니 그러면 어째서...?!”
왜 저를 괴롭힌 건가요?!
어째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내 절규에 대답을 하는 것은 아오오니가 아닌 시청자들이었다.
-괴롭히면 귀여움
-딱밤 맞고 울고 있으면 한 대 더 때리고 싶음ㅇㅇ
“변태들...”
나답지 않게 목소리를 내리깔고는 경멸을 담았다.
내 시청자들이었지만 무언가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역했다.
네모미님 방에 비해서는 순하긴 했지만 무언가 결이 다른 변태들!
으윽...
-포상ㅗㅜㅑ
-ㅗㅜㅑ
-헤으응...
-븜븜븜...
이 이상한 반응들을 봐라!
차라리 화를 내던가 저게 도대체 무슨 반응인가!
진짜 변태들이야...
"어째서...?"
나는 종합게임 스트리머를 추구했는데 어째서 시청자들은 변태들만 모인 걸까?
과거 어느 소설에서 보았던 구절이 떠올랐다.
‘모든 것에는 인과율이라는 것이 있었다.’였던가?
이런 시청자들이 모인 결과가 존재한다면, 이렇게 된 원인 또한 있을 터인데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시청자들도 결국 내가 좋아서, 나를 보러와주는 시청자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볼을 긁적거리며 말을 내뱉어주었다.
“여러분들... 그래도 저는 여러분을 사랑해요...”
-구와아아아악
-구에에에엑
-붸에에
왜 싫어하는건데!
내 시청자들인데 내가 파악이 안된다.
나는 시선을 옮겨 아오오니를 쳐다보았다.
어째서 일까, 아오오니가 상대적으로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가죠!”
내 시청자라는 것이 확실해진 상황.
생각해보면 한 번 도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템도 준 것을 보면 분명 나를 도와주려 들어오신 분!
커스터마이징이 기괴했지만 아군이 되자 그 모습조차 든든하게 느껴졌다.
나는 배를 쭉 내밀며 앞으로 손가락질 했다.
SSS급 동료는 존재만으로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아오오니님! 돌격!”
적들이 뭉쳐 모습을 보였고, 나는 아오오니에게 돌격을 명했다.
본래라면 빙 돌아 우회해야 하는 통로!
하지만 나에게는 아오오니가 있었다!
내 말에 거침없이 달려들어 적들을 학살하는 아오오니.
마치 포켓몬스터!
주인보다 강한 펫!
이거 혹시?
오늘 켠왕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아오오니에게 공략을 맡기면 프리패스 같았다.
“후헤헤헤...”
-와 기분나빠
“실례에요...”
그러면서도 나는 표정관리를 시작했다.
방금 전의 웃음소리는 내가 봐도 너무 기분나빴으니까.
찰싹 소리나게 뺨을 때려 정신을 차리고는 물을 한모금.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려고 미약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아으..."
의자를 뒤로 살짝 빼서 다리 위를 바라보았다.
다리가 너무 저리다.
고롱- 고롱- 거리며 잠을 청하는 고양이는 귀여웠지만 슬슬 다리에 감각이사라지고 있었다.
번쩍! 고양이를 들었다.
치-즈 같이 쭉- 늘어나는 고양이.
가벼웠다.
너무 가벼웠다.
내가 사료를 너무 적게 주는 걸까?
고양이를 침대에 옮겨주고는 다시 자리에 돌아오자 적들은 전부 사라지고 아오오니만 남아 내 캐릭터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칭찬을 바라는 걸까?
"참 잘했어요!"
아기들을 칭찬하듯 최대한 상냥하고 나긋나긋하게 건네주자 Y자 제스처를 보이는 아오오니.
채팅창이 날뛰었지만 딱히 읽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아무것도 안해도 게임이 클리어되고 있다니...
마치 방치형 모바일게임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
내 방송이었고, 내 방송의 주인공은 나여야만 했다.
나는 아오오니가 줬던 아이템을 의심없이 장착했다.
눈으로 보이는 수치가 3배씩 올랐다.
그야말로 치트아이템.
잃어버렸던 자심감이 샘솟았다.
“응...?”
방금 이상한 걸 본거 같은데?
나는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어...?”
[저주가 깃든 손톱 +9]
모든 스탯 3배.
-저주받은 아이템입니다!
-당신에게 저주가 깃듭니다!
네...?
-장비가 당신에게 귀속됩니다!
-장비를 해제할 수 없습니다!
네...?!
-부활의 축복이 사라졌습니다!
-당신은 부활할 수 없습니다!
“......야!!”
뭘 준 거야!
이런 식으로 뒷통수를 치다니?!
애초에 내 팬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악질적인 아이템을 줄 수는 없으니까!
“우그그긋...”
부활의 축복이 사라졌다는 소리는 캐릭터가 다시 부활하지 않는 다는 소리.
이 것을 제거하려면 게임을 삭제 후 다시 받아야만 했다.
이 불합리한 상황에 시청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솔직히 안 봐도 예상되긴 했다.
좋아하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대로 플레이 ㄱㄱ
...
내가 초심을 잃은 걸까?
시청자들이 사랑스럽기는커녕 얄밉다.
'시청자 0명일 때를 생각해라 리에라!'라며 스스로에게 되새기며 하고픈 말을 꾹- 참고는 아오오니에게 손톱을 휘둘렀다.
예상했다는 듯이 스무스하게 피하는 망령.
그 모습에 나는 잠시 뒷목을 잡았다.
“왜에...”
어째서?
굳이?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순식간에 수십 가지의 단어가 떠올라서 일까.
입만 뻥끗 거릴 뿐 제대로 된 말 한마디 없이 한숨을 푹- 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 하자 해!
“어차피 한번 죽으면 끝이잖아요?”
나는 이를 악물고 W를 눌렀다.
앞으로 전진하는 캐릭터.
그 앞에는 적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이렇게 고의적으로 죽는 것을 시청자들이 싫어할 것임을 알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내 전진에 당황한 듯 쉼없이 움직이던 아오오니가 멈췄고, 내 캐릭터를 앞질러 적들을 때려 잡기 시작했다.
나에게 어그로가 끌리기 전에 끝내려는 것인지, 아오오니 답지 않게 두 번 정도의 피격을 허용했다.
아오오니의 HP가 1/4정도가 닳았다.
-????
-아ㅋㅋㅋㅋ
“제가 허무하게 죽는 건 서로 재미없죠?”
알아서 막아 봐요!
뒷말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아들었음을 의심치 않았다.
이내 나는 캐릭터가 걷는 방향을 틀면서 모니터를 노려보며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고통 받는 것을 원했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걸 역으로 당하네 아ㅋㅋㅋㅋ
-자업자득이지ㅋㅋㅋㅋㅋ
-ㄹㅇ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에 안도했다.
일부러 싱겁게 죽어서 끝난다면 필히 재미없다며 한 소리 들었겠지.
하지만 내가 재미없게 죽는 것은 아오오니도 원치 않는 일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방금 전 아오오니는 내가 자살하려는 것을 막음으로서 나에게 확신을 건네주고 말았다.
재미없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거지?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잘해봐요 아오오니님!”
기분이 좋아 애교를 담아 콧소리도 내줬다.
내가 주도권을 잡는 것이 얼마만인건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희열, 그리고 야릇한 쾌감.
몸이 한껏 달아올라 숨소리가 거칠어 졌다.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겉이 아니라 속이.
긁을 수 없는 미묘한 간지러움.
“하으으...”
-야해
-ㅗㅜㅑ
...
“변태들은 벽보고 반성하세요...”
숨소리를 가다듬고는 찾아낸 길로 들어섰다.
수많은 좀비들이 뭉쳐있는 곳.
그리고 이 너머에 존재하는 첫 번째 보스.
아무래도 첫 번째 보스다 보니 도달하기 까지의 길이 짧았다.
"더 괴롭힐 수 있었는데..."
아쉽다.
아오오니는 어느순간부턴가 내 주변을 빙빙도는 것을 그만뒀다.
내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꼬시다.
"자, 또 가요!"
나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고, 아오오니는 역시나 기겁하면 나를 추월해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딱 보기에도 수십 마리가 넘어 보이는 좀비들을 전부 맨주먹으로 상대하기엔 벅찬 것인지, 성문 같은 양손 방패를 착용하는 아오오니.
그러더니 차징을 하고는 절벽을 향해 좀비들을 밀쳐내고는 본인 또한 뛰어내렸다.
"아?!"
...
“저기...요...?”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면 저는 어쩌죠?
전부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기보단 나에게 놀아날 바에야 죽음을 택하겠다 와 같은 모습.
음성도, 채팅도, 몸짓도 없이 아오오니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나가 버렸다.
-니가 죽였어
-사탄인가
아오오니가 사라졌다.
저주아이템을 남기고는.
“아흐으으... 미안해 돌아와 진심이 아니었어 사랑해...!”
너 없으면 보스는 어떻게 잡으라고!
고의적으로 아오오니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게임에 적응을 못했다.
보스까지 가기 전, 적들을 상대하며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야 했는데.
나는 지금 튜토리얼을 끝내자마자 첫 번째 보스방 앞에 직행해 온 것이다.
기사를 상대하며 얻은 자신감?
그게 무슨 소용인가!
사람은 어려운 것보단 쉬운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나는 아오오니가 줬던 쉬움에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네가 없으면 살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어...!”
돌아와!
내 외침은 닿지 않았다.
하염없이 기다려도 암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평생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끄으으...”
나는 시청자들의 눈치를 보았다.
시청자들은 재밌는 것을 선호한다.
허무하고 재미없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보스방에 들어가면 분명히 2분도 못버티고 허무하게 으깨질 미래가 보였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확률이 어림잡아 50%가 넘어가면 그때부턴 쓸모없는 걱정이 아니지 않을까?
나는 두려움에 떠는 오징어채처럼 부들거리다가 이내 마른 침을 삼켰다.
“그.. 들어 갈게요?”
-5초 컷 예상함
-아오오니 버스 사라짐ㅅㄱ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래도... 그 정도 까진 아니겠죠...?”
분명 그 정도 까진 아니라 말하려 했는데 확신이 점차 사라졌다.
저주를 댓가로 3배 증폭된 스탯은 그저 숫자일 뿐.
나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주진 않았다.
-ㄱㄱㄱㄱㄱㄱㄱ
-ㄱㄱ
-가자!!
더 이상 끌었다간 좋은 반응을 못 얻는다.
아무리 방송 초보라 한들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래, 매도 빨리 맞는 것이 낫다고 빠르게 끝내버리자...
끼이익-
문을 열었다.
안개가 휩싸인 곳에 등장하는 거대한 나무.
“으엑...”
나무가 아니었다.
사람의 시체 따위가 얼기설기 엮인 시체 뭉터기.
나는 시체 뭉텅이.
정식명칭, 비틀린 비명나무를 바라보았다.
"끄으응..."
일단 패턴을 보자.
스탯이 오르면서 더욱 빨라진 웨어울프의 속도!
재빠른 의 특성으로 얻은 0.1초의 추가 무적시간!
강해진 데미지!
냉정하게 보면 이기지 못할 것은 없었다.
후, 하. 후, 하.
심호흡.
다시, 튜토리얼 기사를 떠올리자!
잘 피했잖아!
잘 했었잖아!
할 수 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비틀린 비명나무가 비명을 질렀다.
소름끼치는 소리, 고양이가 잠에서 깨어난 듯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비명나무가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무슨 패턴이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도중 위에서 부터 갑작스레 내려 꽂히는 비명나무
쾅-!!
그대로 즉사.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해 침묵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몇초 컷 난거?
-9초쯤?
-아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게 왜...! 모르면 맞으라는 패턴이잖아요! 불합리해!!"
내 항의에도 화면이 검게 변했다.
(You Die)가 뜨는 대신 처참하게 죽어버린 내 캐릭터만 비춘다.
부활을 할 수가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개노잼방송이 되버렸다.
-ㅂㅂ
-라바!
...
“에휴...”
뭔가 좀 잘되나 싶었는데...
나는 방송을 종료했다.
-
-? 뭐냐 이거?
-왜 갑자기 캠방임?
리에라 방송은 종료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째서인지 캠이 켜져 버렸다.
뭘 잘못누른걸까?
침대에서 흐느적거리는 작은 소녀을 비췄다.
-방송사고아님?
-누가 알려줘봐 이거;;;
-뭘 어떻게 알려줌?
-이거 어쩌냐?
-방송꺼방송꺼방송꺼방송꺼방송꺼방송꺼!
“흐어어엉... 잘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에...!”
고양이를 안고 세상 서럽게 흐느끼는 소녀, 아니. 리에라.
-...안꺼도 될꺼 같지 않아?
누군가가 남긴 말.
시청자들은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
솔직히 귀여웠다.
만약 방송사고가 날 낌새가 보인다면 신고폭탄으로 방송을 강제적으로 꺼버리면 되겠지.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리에라를 지켜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