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방송 두 달째(7)
사실 방송사고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사고.
만약 이 상태로 무언가 일이 터진다면 감히 수습할 수도 없으리라.
“흐으으...”
리에라는 아직 방송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고양이 뱃살에 얼굴을 한껏 비비며 칭얼거렸고, 고양이는 그런 리에라를 뚱- 한 표정으로 내려 봤다.
-귀엽네
-근데 시발 이거 좆된거 아니냐고
-누가 후원좀 해봐
[dd님이 1,000원 후원]
-방송켜져있어요!
후원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ㅋㅋㅋㅋ소리 꺼놨네
-무슨 일 터지기 전에 지금 신고해서 방송내려버리는게 낫지 않음?
-굳이?
-굳이는 씹새끼야
날선 반응이 오가는 사이 누군가 벌써 소식을 전한건지 60명이었던 시청자가 불어나 100명을 돌파해 버렸다.
-방송사고로 좆된 스트리머 한두명 보냐고
-그걸 우리가 왜 신경써줌?
-관리 안 한 스트리머 탓이지
130명 돌파.
어디선가 지속적으로 시청자들이 유입된다.
커뮤니티에 게시글이라도 하나 올라간 모양.
뭘 기대하는 건지.
뭘 원하는 것이지.
몰려오는 시청자들과 기존 리에라의 시청자들이 언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쟁이 격화되서 싸움이 나기 시작한 채팅창은 투기장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리에라에게 그 싸움은 닿지 않았다.
“하으... 다리 저려...”
누운채로 손을 올려 허벅지와 종아리를 주물주물.
피가 안 통해 찌릿거리는 통증에 리에라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오래앉아 있어서 그렇다고 하기엔 무언가 이상한 모습.
-쟤 왜저럼
-꾀병뭔데ㅋㅋㅋ
-누가봐도 방송 키고 약한척해서 동정표 받으려는거 잖어ㅋㅋㅋ
-ㅈㄹㄴ
"끄아앙..."
괴상한 비명.
그리곤 고양이를 눕혀 고양이 배에 코를 박았다.
고양이의 배털을 흡입하기라도 하는 걸까
쓰읍-쓰읍- 거리는 소리.
-내가 고양이였으면 줘팼다 진짜
-ㄹㅇㅋㅋㅋㅋ 저걸 참네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상황.
대부분의 시청자가 우려하고 일부 시청자가 바란 사고는 없었다.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의 모습.
아니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조금 이상한 여자아이의 모습.
괜스레 보고 있으면 우스운, 그런 행동들.
“배고파!”
고양이의 배털을 한껏 흡입하고는 갑작스레 벌떡 일어나서 ‘배고파‘를 외친 리에라.
리에라는 코를 문지르며 싱크대 칸에서 설탕을 꺼냈다.
많이 먹은 듯, 설탕 봉지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빵이라도 만들려는걸까?
갑자기 설탕이라니, 어디다 쓸려고?
-설탕?
-?
-베이킹?
-ㅇ?
리에라는 수돗물을 밥그릇에 채우고는 숟가락으로 설탕을 넉넉하게 밥그릇에 퍼 넣고는 휘-휘- 저었다.
설탕물.
-아니 시발
-방송 일부러 안껐지? 이런거 보여줄려고?
-에이 저대로 마시진 않겠지ㅋㅋㅋ
“잘먹겠습니다!”
-저걸 마시네
-이 아이가 배부르다는 느낌을 알까요?
-허어...
이번 달은 배달음식을 너무 많이 시켜먹었어... 라며 홀짝.
-진짜 마셨어ㅅㅂ
-방종끄고 치킨시켜먹것지
-아니 이게 뭐야
-진짜 저것만 먹는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다 가슴이 시큰거리는 모습.
-일부러인가?
-불쌍해보일려고?
리에라를 모르고, 그저 방송사고가 났다고 해서 찾아온 시청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방송을 함께 했던 이들은 알고 있었다.
연기 따위가 아니라고.
리에라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런 모습을 고의적으로 보여줄 사람은 아니었다.
-분탕새끼들 쳐내!!
-매니저 없잖아
-하꼬방에 매니저가 어딧누
-ㄹㅇㅋㅋ
결국 한번 더 점화되는 싸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에라는 설탕물을 다 마시고는 ‘잘먹었습니다!’라고 씩씩하게 외쳐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리고는 고양이들이 환장한다는 츄르를 들고와 고양이에게 짜먹여준다.
헤실거리는 미소가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운 것은 왜일까.
그야말로 소녀가장의 모습.
-아니, 사람이 설탕물을 쳐 마시는데 고양이는 사료도 먹는 주제에 간식까지 꼬박꼬박챙겨먹네
-저 고양이 어디서 많이 본거 같은데
캠의 화질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깡마른 리에라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옷 또한 한 눈에 봐도 늘어나고 헐어있어 보기가 다 안쓰러운 정도.
리에라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저 모습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분탕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리고 후원 폭탄들이 하나 둘 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백고님이 1,000원 후원
은관님이 10,000원 후원
ㅇㅇ님이 3,000원 후원
...5,000원 후원
...1,000원 후원
후원금이 쌓여갔지만 리액션은 없었다.
리에라가 방송을 확인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러함에도 화를 내는 시청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맛있는거 사먹어...
-리에라 애껴야해... 근데 부먹하는 애라서 안아껴도돼...
-설탕물은 상상도 못했다 진짜
-왜이러고 사는건데
“아! 맞다!”
-?
-???
드디어 방송을 확인했나?
시청자들은 헛된 희망을 품어봤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리에라는 목을 풀면서 아아- 발성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뭔데?
“시청자들도 있으니까, 이제 노래방 컨텐츠 한번 해야지..!”
평균 30명의 시청자.
하꼬 치고는 엄청난 수!
충분히 노래방 컨텐츠를 진행 할 수가 있었다.
노래를 잘한다면 잘하는대로 좋고 못한다면 재밌으니까 다들 좋아 해줄 것이다.
리에라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여고생 방송 보러오는 개백수들한테 뭘시킨다는거지?
-ㄹㅇㅋㅋ
-우리중 노래부를 수 있는 사람있긴함?
어이없음과 당찬 포부에 대한 아빠미소.
그래 해볼테면 해보라지.
근데 신청하는 시청자가 몇이나 될까.
괜히 상처나 안받았으면 좋겠네 라며 모든 시청자들의 생각이 통일될 때 즈음.
리에라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
무슨 노래일까.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보아 외국어인 팝송은 절대 아니겠지.
그러면 트로트나 랩?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발라드 또한 마찬가지.
혹시 아이돌 노래일까?
아니면 잘 나가는 가수의 노래?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뭐가 있더라.
시청자들은 소리를 키웠고, 이내 인상을 기괴하게 찡그릴 수 밖에 없었다.
“곰 세 마리가...♬”
동요!
-나이 17살에 동요...
-심지어 못불러...
-구와아아악 귀 썩는다
-6살짜리 친척 동생이 저것보단 잘부름
음치.
박치.
심지어는 나름대로 추는 율동마저 못춘다.
하여 몸치까지.
그야말로 삼위일체!
분명 귀엽다면 귀여운 모습이 틀림없었지만 어째서 부끄러움은 시청자들의 몫일까.
심지어는 리에라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던 고양이까지 구석진 곳으로 몸을 피해버렸다.
“아앗...! 들어줘!”
도망치는 고양이를 끌어안고 파멸적인 노래실력을 뽐내는 리에라에게 고양이는 처음으로 하악질을 했다.
배에 부비적거려도 얌전했던 고양이인 만큼, 하악질엔 진심이 느껴졌다.
“미, 미안...!”
털을 세우며 진짜 빡쳤다는 듯 구는 고양이에게 야옹- 야옹-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리에라.
조금만 더 나가면 배라도 까 뒤집을 것 같은 모습.
이래서야 누가 주인인건지.
결국 츄르를 하나 더 주는 것으로 고양이와의 싸움은 끝이 났다.
열심히 츄르를 핥아먹는 고양이.
그런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군침을 삼키는 리에라.
"쓰읍..."
-지금 뭘보고 침을 삼킨겨?
-츄르값만 아껴도 사람먹을 식비 나오것다
시청자들은 그런 리에라를 바라보며 자신이 다 창피해졌다.
-고양이에게 지는 스트리머가 있네
-ㄹㅇㅋㅋ
-흑역사를 실시간으로 몇개나 만들고 있는거지
리에라가 너무 하찮았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하찮긴 한데.
그래봐야 하찮은 것은 하찮은 것아닌가.
-저는 이런 스트리머 몰라요
-나도 몰라
-언제벗음?
-개좆같은씹새끼나가뒤져라느그어매가미성년자벗는거기다리라고가르치디?
-열 내지 말고 차단해
분명 지금상황을 누군가 녹화하고 있을 텐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는 걸까.
괜스레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쪽팔려서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려나.
물론 그때가 되면 시청자들도 합세하여 놀리는데 동참하겠지만, 그건 그 때 이야기고.
지금은 그저 미래의 리에라가 불쌍할 뿐이었다.
-그래도 막 이중적이진 않네
-ㄹㅇ 이정도면 선녀지
부끄럽고 창피한 것과는 별개로 시청자들은 안도했다.
시청자들이 끔찍한 방송사고 다음으로 걱정했던 것이 있다면, 이중적인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방송을 꺼놓고 시청자들을 욕하는 스트리머들, 많지 않던가.
리에라는 안 그러겠지 하면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이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뒷통수를 맞은게 한 두번이었어야지.
하지만 이젠 모두 해결된 문제.
리에라는 리에라 그 자체였다.
이중적이지 않았다.
애가 조금 많이 모잘라 보이긴 했지만 그런 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방송의 모습보다 조금 더 멍청하고 조금 더 귀여운, 그런 리에라였다.
시청자의 수가 200이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