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방송 두 달째(8)
“확실히 노래는 아닌거 같아”
고양이가 기겁할 정도라니.
나름 잘부르지 않았나?
나름 유튜브 영상 보고 노력한건데!
고양이의 하악질을 듣자마자 자존감이 팍 떨어져버렸다.
“으에에...”
그나저나 설탕물, 다른 건 다 좋은데 마실 때 마다 입안이 찐득거리는 느낌이 든다.
이게 다, 귀찮다며 배달음식만 시켜먹어서 그렇다.
수입은 없는데 지출이 많으니 버틸 수가 없었다.
'다음 달에는 배달음식 절대 안 시켜먹어!' 라며 지킬 수 없는 약속과 함께 찐득거리는 입안을 물로 헹궜다.
“브웨에에에...”
혓바닥을 손가락으로 몇 번 쓸어내리고는 고양이를 눕히고 발바닥 냄새를 쓰읍-맡았다.
꼬순내!
“힐링된다앙..”
묘하게 꼬인 발음.
하지만 어떤가 방송중도 아닌걸!
“그치이?”
고양이에게 애교부리듯 부비적거리며 ‘냥냥‘소리를 내자 고양이가 손을 턱- 내 머리위에 올렸다.
뚱한 표정.
그만 하라는 듯한 무언의 저항이었지만 고양이가 뚱한 표정을 지어봤자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냥! 냥냥냥냥!”
...
급격히 몰려오는 자괴감.
“으윽...이건 아닌거 같아..."
너무 텐션을 올린 걸까
답지 않게 자괴감이 찾아와버렸다.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나름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것보단...”
앞으로의 방송방향성에 대해서 고민하는게 더 영양가 있는 일 아닐까?
“일단 게임방송은... 진짜가끔씩만 하자...”
내가 못하는 탓일까.
시청자분들의 이탈이 잦다.
“응, 게임방송은 일단 보류...!”
종합게임스트리머라는 칭호가 탐나긴 하지만, 그랬다가는 시청자가 한명도 남지 않을 것이다.
가끔가다 한번 씩 하는걸로 하자.
그러면 뭐가 남을까?
“끄응...”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게......
“아...”
나는 빤히 가슴을 내려봤다.
메이드복...?
양손으로 가슴을 모아봤지만 이내 고개를 떨어트렸다.
내가 그런 방송을 한다하더라도 봐줄 사람이 있긴 할까?
작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방송을 하기엔 부족하지 않나?
네모미님 같이 폭발적인...... 그런 것이 아니라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노가리 방송...?”
내가 하는 컨텐츠중 가장 반응이 좋긴 한데.
이젠 슬슬 말할거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말도 잘 못하는데 이게 가장 반응 좋다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었다.
'끄응...'
내 장점... 내 장점...
내 장점을 활용한 방송거리가 필요했다.
주 컨텐츠...!
물론 다른 것을 아예 안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여러 가지를 한번에 할만한 실력이 되지 못한다.
그 것을 인정해했다.
어설프게 욕심 부린다면 독이 될게 분명하지 않는가!
"욕심, 줄이자...!"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것.
그리고 동시에 내 장점인 것.
그런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것의 부재가 지금의 내 상황이었다.
“대기업 합방을 하고, 친분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음에도 구독자 수가 몇 천밖에 안되는 것은 순전히 내가 못 해서야...”
이래서야 도와준 사람들에게 면목없었다.
뭐 때문에 도와준 것인지, 뭐 때문에 아껴주시는 건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도와준다면 잘 배우기라도 해야할 것 아닌가.
“흐으으...”
한숨을 푹-
고양이를 끌어안았다.
나를 위로해주려는 것인지 내 볼을 삭-삭- 핥아주는 고양이.
“따가워...!”
내 볼에 사포질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양이를 번쩍 들고 눈을 쳐다봤다.
깜빡-깜빡-
눈인사를 건네오는 고양이.
이래서야 혼낼수도 없잖아...
“뭔가 계속 너한테 지고 있는 느낌이야...”
불평을 내뱉으면서도 츄르를 하나 더 꺼냈다.
“너, 살찌면 간식통제 들어갈꺼니까 말이야 지금 실컷 먹어둬!”
츄르를 꺼내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이족보행으로 걸어오는 고양이의 모슴에 움찔 거렸지만 얌전히 츄르를 짜줬다.
“많이 먹어...”
얘는 이거 먹게 두고 하던 생각이나 마저 끝내자.
게임방송에 머릿속으로 X자를 쭉쭉 그었다.
노가리에는 △표시를...
야한 방송에도 X자를...
캠방...?
나는 손거울을 들어 얼굴을 비춰보았다.
“못생겼어...!”
아람님도 네모미님도 그렇게나 이쁜데 나는 못생겼다.
빛을 하도 안 봐서 창백한 피부.
푸석거리는 머리카락.
퀭한 눈까지.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피부감촉은 괜찮나?
손가락으로 볼을 꾹- 눌러보자 탄력이 느껴진다.
“응 이건 괜찮네...”
우으으...
소리없이 울어버렸다.
아까도 그렇고 뭔가 자괴감드는 짓만 하는거 같은데...
아무도 안보니까 괜찮아!
“너만 조용히 하면 돼”
중얼거리며 고양이를 바라보자 뭘 알아듣기는 하는지, 고개를 끄덕거린다.
신기하네... 너 고양이 아니지?
실없는 소리를 하고는 나는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다.
고양이 유튜브를 잠깐, 아주 잠깐 생각해봤으나 고개를 맹렬히 저었다.
고양이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지 않던가.
내가 그런 짓을 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영역이었다.
상처받은 고양이를 팔아먹는다니.
악질아닌가?
“진짜 어쩌지?”
유니크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내 장점과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것이 결합되있으면 된다.
다만 그것이 생각이 안난다.
아니, 그 이전에 기본적으로 나에게 장점이 있긴 한가...?
"나 장점없어...!"
고민이 깊어질수록 팍팍떨어지는 자존감.
이러다간 평생답이 안나올 것 같았다.
“... 시청자 투표...?”
나는 순간 떠오른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고는, 헤실헤실- 미소지었다.
그래, 시청자들이 뭘 보고 싶어하는지, 시청자들에게 물어보면 되는 문제아닌가!
게다가 나를 지켜본 시청자들이라면 내 장점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없다면 별 수 없는거고...
어쨋든 쓸데 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네발로 컴퓨터 앞으로 기어갔고,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쉼없이 올라가는 채팅창.
그리고 내가 비치는 화면.
“......”
-드디어 봤네
-ㄹㅇㅋㅋ
-사고치기전에 봐서 다행이네
-ㄹㅇ루
헤실거리는 미소를 한 채로 굳어버렸다.
딱딱하게 시청자 수를 확인했다.
349... 351... 352...
역대 최고 시청자.
“저... 뭔가 사고 같은거 안쳤죠...?”
총 360명의 시청자.
나는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상황이지 이게?
“왜...방송이... 왜...? 에? 어으...? 응?”
왜 방송이 안 꺼진 거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막 세상에 태어난 듯 한 아기의 옹알이.
방송 사고다.
내가 뭔가 실수 한 것이 있던가?
몸이 덜덜 떨려온다.
벗거나, 욕한 것은 없었다.
최소한 방송정지의 위험이나 민심이 나락 갈 일은 없었다.
그저... 우려 되는 것이 단 하나 존재했을 뿐.
나는 그것을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혹시... 다 들렸어요?“
-뭐가요?
“아...”
모르는 듯한 반응.
다행히 소리는 안 들린 걸까?
에이, 그럼 별거아니잖아.
나는 마비된 몸을 풀고는 다시 미소를 지으려다 올라오는 채팅창에 다시 한번 몸이 굳어버렸다.
만약 지금 누군가 내 몸을 툭! 건든다면 파스스- 무너지고 말 것이다.
-님 노래한거?
-고양이한테 애교부린거?
-가슴만지작거린거?
“갸아아악!”
다 들린거야?!
진짜로?!
나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키보드에 쾅! 소리 나게 고개를 쳐박았다.
이건 악몽이다.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날 악몽.
눈가에 습기가 촉촉이 차올랐다.
“흐어어...”
내 울음소리때문일까.
고양이가 폴짝 뛰어 내등을 밟고 올라와 내 머리위에 앞발을 올리고는 톡톡- 두드려줬다.
“내려와아...!”
고양이한테 쓰다듬 당해봤자 전혀 안 기뻐...!
아니, 저런 행동을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건지.
괘씸하다.
“고양아, 내가 주인이고 니가 동물이야 알았어?!”
나름 날선 목소리를 낸 것인데, 고양이는 무슨 생각인지.
내 어깨를 타고올라와 머리위에 모든 발을 올리고는 식빵을 굽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나를 개무시하는 모습!
그러나 내가 움직이면 고양이가 떨어질 것 같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말랑한 젤리, 폭신한 배털.
아무래도 좋았다.
지그시 눌러오는 무게에 목이 꺾일꺼 같았다.
이건 졌다...
졌어...
고양이한테 져버렸어...
“...무거워...미안해...비켜줘...”
-고양이에게 패배하는 스트리머
-와! 고양이 캠방!
“고양아 진짜 미안해...”
목이 아프다.
아무리 고양이가 가볍다 한들, 모든 무게다 머리에 쏠려있으면 그건 꽤나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것은 굳이 알고 싶지 않았어...!”
내가 울먹거려서 일까.
아니면 나를 다 놀려먹어서 일까.
그도 아니면 서열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고양이가 폴짝- 바닥으로 뛰어 내려갔다.
사뿐, 착지한 고양이.
그리고는 '애옹애옹' 유유히 화장실로 들어가 모레를 어지럽히는 모습이 마치 승리 세레모니같았다.
도발인가...?
그 행동에 나는 울먹거리며 속으로 다짐했다.
고양이에게 일주일간 츄르를 압수하겠다고!
인간을 우습게 보지말라 이거야...!
-냥바
-ㄴㅂ
캠밖으로 떠난 고양이에게 답장해주는 시청자들.
나는 그런 채팅창을 아니꼽게 바라보다 불평을 혼잣말 처럼 중얼거렸다.
“여러분.. 그 이런말 하게 돼서 죄송한데 이 방송 주인은 저에요? 고양이보다 저를 더 아껴주세요?"
...
“왜 말이 없어요!"
시청자수도 360명이나 되는데!
이럴 때만 말이 없어!
...
잠깐만, 나 지금 너무 막나간거 아닌가?
뒤늦게 잘못을 깨달았다.
“호, 혹시 너무 주제넘었나요?”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순간적으로 내 처지를 까먹고 있었다.
그래봐야 대기업합방으로 반짝 뜬 하꼬스트리머이거늘.
시청자를 하늘같이 모셔야하는데 윽박을 지르다니.
이 무슨 무례인가!
“그, 그랜절 박을게요!”
마침 캠도 켜져 있다.
그랜절을 박는다면 분명 유쾌하게 넘어가 줄 것이다.
그랜절이란 사태 초기에 박으면 앵간해선 넘어가지는 치트키 아니던가!
-감정기복보소...
-화난 사람있음?
-얘 자존감 왜이리 낮음?
-뭔데????
나는 채팅창을 확인 하지 못했고 침대로 올라가 물구나무를 섰고, 이내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쾅-!
"끄아악...!"
아파...!
스프링이 고장 난 침대는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꼬리뼈가 아파 눈물이 찔끔 흘렀다.
[테이퍼님이 10,000원 후원]
-미친짓 그만하고 이것들이나 읽으쇼
소리는 안 들렸지만 모니터에 후원창이 떠올랐기에 재빨리 네발로 기어와 확인하자, 내가 미처 읽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다.
‘밥좀 잘 챙겨먹어라’라며 수 없이 보내온 후원들.
네모미님과 첫 만남 이후, 가장 많은 후원이었다.
혹시 오류인가 싶어 몇번이고 새로고침해봐도 그대로인 후원 목록.
“...고,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요!”
목소리가 떨렸다.
감동!
누군가 나를 위해준다니, 꽤나 낯선 기분.
무언가 뭉클, 목구멍에 치솟았으나 꾹 참았다.
방송하면서 매번 좋은 일만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으... 늦었지만 테이퍼님, 은관님, ㅇㅇ님, 모스크바의여명님, 그리고...... 님, 다들 정말 고마워요!”
애써 헤실거리는 미소를 짓고는 만원 이상을 후원해준 사람들을 추려냈다.
“그리고, 혹시 잘못후원하신 분들은 인증과 함께 쪽지 남겨주세요!”
환불해드릴게요!
예전에도 그랬고, 요즘도 그렇지만 만원은 거금이었다.
나는 다른 스트리머처럼 완숙하지 않았는데 그런 거금을 받는다니,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마의 세겨진 붉은 키보드 자국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끄덕.
돌려달라면 돌려주는 것이 맞았다.
“아.”
생각해보니, 물어볼려는 게 있었지.
“여러분들은 보고 싶은 컨텐츠가 있나요?”
내 장점, 그리고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것.
-노래방
-노래방 컨텐츠 어떰 잘부르더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
-7살치고 저정도면 잘부르는거지 ㄹㅇㅋㅋ
“...우긋...”
갑작스레 명치를 때리면 아프다.
나도 부끄럽게 생각하도 있으니 패스!
-님 고양이가 골때리는데 걔데리고 고양이유튜버나 하는거 어떰?
“안돼요!”
-?
그건 안될 말이다!
옆에 어슬렁 거리고 있던 고양이를 누군가 강제로 데려갈까, 소중히 끌어안았다.
불편한 듯 애옹- 거리는 고양이.
참아!
지켜주려는거니까!
-그냥 님 하고 싶은거 해요
-남이 컨텐츠 정해준다 하더라도 본인이 하고 싶지 않으면 괴로울텐데
-ㄹㅇㅋㅋ
“그으런가요...?”
꽤나 그럴 듯한 말인데 내 시청자가 말하니까 설득력이 떨어진다.
도대체 내 시청자들은 어쩌다 이런 이미지를 지니게 된건까?
어쨌든, 그것을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보다 내가 하고싶은거라...
“그럼 스컬소울 튜토리얼보스 켠왕컨텐...”
-개새끼야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