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방송 두 달째(9)
-라바
-ㄹㅂ
-ㅂㅂ
결과부터 말하자면 방송은 무사히 끝났다.
애초에 꺼졌을 방송이 무엇 때문인지, 켜져 있던 것에 불과했었으니까.
굳이 길게 끌고 갈 방송은 아니었다.
“으으... 일단 문의는 남겨놔야겠지?”
방송을 끝내고 식은 땀을 닦으며 몇 번이고 모니터를 확인했다.
제대로 꺼진 건지, 혹시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캠이 켜질 이유가 없었다.
단순히 키를 잘못 눌렀다기엔 이상하지 않잖아.
설마 내가 방송을 종료하는 것도 헷갈렸을까.
"진짜 무섭네..."
만약 내가 방송이 꺼져있다 믿고 옷을 벗거나, 했다면 그대로 방송생활은 끝났겠지.
상상만 해도 불쾌하고 무섭다.
내가 아무리 남에게 따지는 것을 못한다 한들, 이런 것 까지 참고 넘어 갈만큼 호구는 아니었다.
이것은 잘잘못을 따질 필요 없이 명백히 플랫폼을 잘못이었고, 나는 피해자의 입장이었으니까.
"에휴..."
나는 옆에서 식빵을 굽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자 골골-거리는 고양이.
심신이 안정되는 듯한 소리에 나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보다, 내가 하고 싶은 거라...”
사실 방송에 큰 뜻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내 장점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하다못해 내가 뭘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보며 그게 뭐냐며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모르겠다.
정확히는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후으으...”
기지개를 피며 그대로 뒤로 누웠다.
고양이가 자연스럽게 내 배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꾹꾹이.
"아무리 그래도 츄르 안줄꺼야 반성해..."
츄르박스로 손을 가져가려다 멈칫, 역시 고양이는 요물이 틀림 없었다.
큼큼.
어쨋든 방송을 시작한 이유라......
딱히 별건 없었다.
부모님의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겪었다.
아무도 부모님을 기억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못한 부모님과는 다르게.
'나라는 사람을 누군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방송이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나라는 사람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내 선택은 옳았다.
요즘 가슴이 간질거린다.
나를 좋아해주는 시청자들.
나와 친하게 지내는 방송인들.
내가 죽으면 나를 위해 슬퍼해주거나, 기억해줄 사람들이 생겨났다.
"..."
본래라면 내 방송은 여기서 끝나야했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죽는 것.
하여, 나를 위해 슬퍼해주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
함으로 나는 부모님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슬퍼해줄 사람이 있다고.
울어줄 사람이 있다고.
"병신"
스스로에게 욕설을 내뱉고는 눈가를 꾹 눌렀다.
방송인의 수명은 짧은 편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아직 잊혀지지 않았을 때.
죽고 싶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다가오니 살고 싶어졌다.
추한 걸까.
조금 더,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조금 더, 나를 아껴줬으면 좋겠다.
따뜻함은 낯설었지만 중독성이 있었다.
이런 것을 두고 죽어버리기엔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후으으...”
눈가에서 솔을 때고는 베개를 손가락 끝으로 집어와 얼굴을 묻었다.
푹신했다.
이미 원하던 목표는 이뤘다.
이젠 멈춰야하는데, 관심을 바라는 갈증은 점차 심해진다.
요즘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더 욕심내면 안 되는데 욕심을 내고 있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똑똑똑-!
"으응?"
내 상념을 깨는 노크소리.
나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봤다.
밤 11시.
늦은 시간, 최소한 누군가 문을 두드릴 시간은 아니었다.
똑똑-!!
조금 더 큰 노크소리.
내 집에 누군가 찾아올 일이 있던가?
친구? 없다.
친척? 사망보험금을 먹고 나랑 연을 끊었다.
올 사람이 없었다.
누구지?
배달이라도 잘못 온걸까?
가끔 있는 일이긴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갔고, 문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구멍너머로, 바라본 상대는 몇 번 마주친 이웃.
아예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가며 인사정도는 나눴으니까.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문에 걸린 3중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덩치가 크다.
게다가 나와 머리 두 개는 차이가 나는 키.
얼굴을 마주봤다.
대략 190cm정도?
이웃은 근육질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좋은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죄송해요...”
일단 사과부터 하고 시작하자.
나 같은 것은 가볍게 으깰 것 같은 근육과 덩치.
거기서 나오는 위압감은 감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나를 노려보는 이웃.
'아, 이거 쉽게 끝날 일은 아니구나 '
생각이 들자마자 눈을 질끔 감고 애처롭게 떨리는 이를 꽉 깨물었다.
"흡!"
한대 맞더라도 치아는 보호해야하지 않겠는가.
내 말과 행동에 헛웃음을 치며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꾹- 누르는 이웃.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으르렁 거리듯 위협적인 저음.
솜털이 곤두섰다.
“그으...”
나는 손가락의 힘에 뒤로 밀리면서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와 머리를 굴렸다.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았다.
“그으... 너무 시끄러웠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밖에 모르겠다.
요즘 늦은 시간까지 방송하는 일이 잦았다.
방송을 하면 리액션과 말이 필수였다.
방음부스가 들어오기엔 내 집이 너무 작았고, 옆집과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여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시끄러우셨나보다.
이건 명백히 내 잘못이 맞았다.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이웃의 눈치를 보자 비웃듯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나를 내려다보는 이웃.
“알면서 그래? 나 내일 새벽 5시에 출근해야 하는데 밤 늦게까지 꽥꽥 존나 시끄러워 미친년아”
욱-
여기서 ‘당신도 새벽까지 야동 보잖아요!’ 라고 말하면 내 목이 뽑혀나가겠지?
힐끔바라본 이웃의 팔에는 화려한 문신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는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굳이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는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이웃은 화가 잔뜩난듯 주먹을 말아줬고 나는 그 모습에 몸을 움찔 떨었다.
저 주먹에 맞으면 아플 것 같다.
“아, 시발, 진짜 좆같네 잘 좀 합시다 네? 애미애비없는 티내나..."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누르듯, 잡아쥐고는 쭉- 밀어 나를 넘어트린 이웃은 씩씩거리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모욕적이긴 했지만 참았다.
익숙한 일 아니던가.
맞은 것도 아니고.
뭐, 맞는 것도 익숙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는 나는 꿍얼거리며 문을 닫았다.
“아니, 그렇게 방음이 안 되는 걸 잘 아시면 야동음량도 낮춰주던가요...”
새벽마다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낯간지러운 적이 한 두 번이던가?
에휴-
깊은 한숨.
어쩌겠는가, 맞기 싫으면 조용히 해야지.
이젠 아무래도 늦은 시간의 방송은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방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방음부스를 살돈도 없고, 이사 갈 돈도 당연히 없고, 양해를 구할 용기도 없다.
"으..."
이웃이 움켜잡았던 머리가 지끈거린다.
머리가 부서질 뻔했다고 느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아픈 것도 아픈 것인데 숨이 턱 막힐 것 처럼 답답함.
이 답답한 마음을 위로 받고 싶다.
시청자들이랑 이야기 하고 싶다.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는 시청자들의 장난을 받고 싶다.
“에이, 궁상맞게 이게 뭐야?”
혼잣말을 중얼중얼.
요즘 이상하리만큼 혼잣말이 많아진 것 같았다.
혹시 문제 있는 거 아닐까?
“정신과라도 다시 찾아가야하나?”
‘저번 주는 어떠셨어요, 약 복용량 좀 늘릴게요, 다음 주에 봐요, 다음분."
얼굴에 귀찮음을 대놓고 나타내는 의사와 40초도 안 걸리는 상담시간을 떠올렸고 고개를 저었다.
물론 거기서 받아오는 약은 분명 효과가 좋았다.
한참 자살충동이 들었을 때, 그것을 억제 시켜줬으니까.
다만, 그 돈이면 몇끼를 먹을 수 있는데!
“응, 굳이 갈 필요는 없을 거 같아”
내 뒤에 졸졸 따라온 고양이를 품에 안아들고는 둥가둥가를 하며 침대에 누웠다.
“빨리 자자!”
애-옹
알았다는 건지, 아니면 뭐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지.
고양이 번역기 같은 건 안나올려나?
얘는 진짜 뭔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은거 같네
실없는 생각.
“내일은 방송일찍 킬 거야, 얼른 자야해!”
빨리 방송이 하고 싶어졌다.
빨리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졌다.
“시청자 참여 컨텐츠로 하자, 응.”
몇 명이나 신청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예상대로라면 가능할 것이다.
시청자들의 장난에 절대 화내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들의 짓궂은 말에 제대로 호응 해줄 것이다!
조금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자!
이웃의 모습을 애써 지우고 행복한 방송을 상상했다.
두려움에 두근거리던 심장이 기대감에 두근거린다.
헤실- 맥없이 웃어보였다.
이렇게 말하면 이렇게 말해서 웃겨줘야지...
저렇게 말하면 그렇게 말해서...
그렇게 말하면 이렇게 행동해서...!
즐거운 상상.
분명 내일 방송은 재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