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방송 두 달째(12)
밤에 보는 것은 보는 것이고,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애써 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지금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단 영상문제, 허락도 없이 내 개인페이지도 아니고 자신의 계정에 내 방송사고영상을 올렸다.
물론 홍보가 됐다고는 하지만 무단으로 내 영상을 올린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일반적 동영상이 아니라 방송사고 동영상이였으니까.
영상을 내려달라고 해야 하나?
“으으... 어쩌지?”
-뭘?
-???
-얘 가끔 헛소리 할 때 있음
-우리애가 좀 모질라지만 참 귀여워요
-ㄹㅇㅋㅋ
시청자들은 딱히 잘못된 것을 못 느끼는 듯 했다.
하긴, 이런 동영상이 퍼지는 것이 어디 나뿐일까.
그저 팬심으로 혹은 재밌어서 올리는 것에 불과하겠지.
무엇보다 수익이 창출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흠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문득 내가 놓치고 있는 점을 깨달았다.
“...이거 편집본이죠?”
-ㅇㅇ
-2시간짜리 동영상이 20분이 됐는데 편집이 아니면 뭔데ㅋㅋㅋㅋ
-ㄹㅇㅋㅋ
나는 움찔 떨면서도 마우스를 올려 동영상을 재생했다.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빛의 속도로 소리를 줄이고는 다시 한번 영상을 쭉 살펴보자 아까는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깔끔한 편집, 그리고 아기자기한 자막.
분명이 내가 이상한 짓을 하는 장면만 모아 연결시켰음에도 영상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이분의 채널은 어떨까.
슬그머니 시선을 내려 구독자 수를 바라보고는 놀랐다.
“...엑?”
구독자 수 15,239명.
오류인가 싶어 새로고침을 눌러보니 오히려 구독자 수가 늘어났다!
15,241명!
“나보다 많아!”
뭐하는 분이셔 이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널구경ㄱㄱ
-예전에 허락했었음ㄱㄱ
-아ㅋㅋㅋㅋㅋ
-유명한 사람임ㄹㅇㅋㅋ
유명한 사람이구나...
스트리머분이라면 굳이 내 영상을 편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뭐하는 분일까.
유명하다는데 왜 나는 모르지...?
아니, 그 이전에.
“그런 사람이 왜 내 영상을...?!”
-채널확인ㄱ
계속 묻지만 말고 채널을 확인하라는 시청자들의 지시.
나는 얼떨떨한 상황에서 채널을 클릭해보았고, 이내 질릴 수 밖에 없었다.
리에라 설탕물 마시는 영상 후원용
리에라 드래곤 합방
리에라 방송사고
리에라 곰세마리 영상 후원용
리에라 오팬무 영상 모음
리에라 짖음
리에라
리에라
리에라
“으엑...”
후원용과 일반 영상을 나눠 올린 것은 물론이고, 두 페이지 가 통째로 나로 뒤덮혀 있었다.
그 너머는 소소하게 편집 교육영상1, 2, 3. 그외엔 평범한 일상 영상들.
이게 같은 사람이라고?
도대체 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짐작조차 안된다.
“와아......“
혹여나 해서 눌러본 내 영상들은, 하나같이 편집되어있었는데.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재밌다.
내가 직접 짜깁기 한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퀄리티.
이런 실력이면 굳이 내 영상을 편집하지 않고, 대기업이라 불리는 스트리머들의 편집자로 소속 될 만도 하건만, 이분은 도대체 뭔데 이렇게 까지 내 영상을 올리는 걸까.
솔직히 너무 고맙고, 또한 감동적이면서도 소름이 끼친다.
-공포
-난 여기가 공식 유튜브인줄 알았음
-ㄹㅇ 진짜 리에라 채널은 너무 ㅈ노잼이라 팬 채널인줄 알았음
-말넘심
“...”
방송시청자는 꾸준히 상승세를 탔는데 유튜브 구독자 수는 항상 제 자리 걸음이던 이유가 이거구나.
하긴, 내가 봐도 내 채널보다 이 채널이 훨씬 퀄리티 좋고, 공식 같았으니까 별 수 없으려나...
... 조금 분하다, 나름 열심히 했는데!
그보다.
“......호옥시 방송보고 계세요?”
이정도 정성, 이정도 퀄리티, 이정도 애정이라면 방송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없다면 이메일을 남겨놔야지, 라며 생각하고 있을 때, 후원이 터졌다.
[에라사랑해님이 10,000원 후원]
-저 부름?
거액의 후원금!
그리고 '저'라는 단어!
“그으... 본인이세요?”
-찐이네ㅋㅋㅋ
-아ㅋㅋㅋㅋ
저 부담스러운 닉네임, 익숙하다.
드래곤님과 합방이후, 방송에서 자주 보이던 사람이기고 했고, 저 낯간지러운 닉네임하며 꾸준한 후원까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 분이 이런 영상들을 만든다고?
의심이 들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 거짓말도 아닌 것 같아 나는 귓속말로 디코의 아이디를 보내줬다.
“저, 전화통화 가능하세요?”
-디코 아이디부터 주고 묻네 이게 바로 ‘인기스트리머’?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걍 먼저 보내버리네ㅋㅋㅋㅋ
-ㄹㅇㅋㅋ
"그, 그런 건 아니에요! 거절하셔도 돼요!“
띠링-
거절해도 된다 하자마자 오는 친구신청.
그것을 받자 바로 통화가 걸려왔다.
마른 침을 꿀꺽.
도대체 어떤 분이실까.
오실 때마다 후원을 하며 오팬무! 를 외치는 것을 보면 변태 같으면서도 이런 영상들을 보고나니 능력 있는 변태 같아졌다.
이 사람에게 편집자를 권유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선택일까?
변태라서 껄끄러운 것 이전에 내 문제였다.
이 사람이 아무리 편집실력이 좋다고 한들, 나는 이 사람을 케어해줄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내 욕심으로 곤란하게 하는 건 아닐까?
통화요청을 받자마자 들려오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
“아.. 안녕하세요오...?”
먼저 인사를 건네 봤지만 역시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
"저, 저기요...?"
-뭐임?
-????
-말을 해!
-좋아죽었네 저거
-ㄹㅇㅋㅋ
긴장감으로 입술을 질겅거리며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 하며 답을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이내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산뜻한 미성.
이런 분이 오팬무를 외친다고...?
-왜여자임
-파오후씹덕변태 어디감
-왜???
-뭔데?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전혀 달라 잠시 뇌정지가 왔지만 이내 스트리머의 기지로 위험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 혹시 채널 주인 맞아요?”
일단은 확인부터 하자는 마음에 건넨 질문이었지만 시청자는 웃으며 내 말에 대답을 건네줬다.
보다 확실한 인증방법으로.
“지금 유튜브 방송 켰어요”
“네, 네?”
나는 혀가 꼬일 것 같은 상황을 최대한 모면하면서도 새로고침을 한번 눌러보자 정말로 채널은 방송중이라는 표지가 떠올랐다.
방송제목은 리에라님사랑해요.
부끄럽다...
어쨌든 인증이 끝났으니 본래 하려던 질문을 건네야 맞는거겠지.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제 편집...자가...되어주...실래요...?“
“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안들렸나보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크게 외쳤다.
아직 이웃이 퇴근하지 않았으니, 이정도 외침은 가능한 선이리라.
“제 편집자가 되어주세요!”
“네!”
“네?”
이렇게 간단히?
내가 말하긴 했지만 엄청 갑작스러웠는데?
잘못들었나 싶어 내 귀를 의심하자 시청자가 말에 쐐기를 박아넣었다.
“제가 리에라님의 편집자가 되어드릴게요!”
진짜?
조건도 안들어보고?
혹시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걸까?
난 월급도 제대로 못준다.
그렇지만 편집실력이 욕심이 났기에 권유나 해보자는 식이었다.
만약 허락한다면 양심이 아파오더라도 '영상수익의 퍼센트 분배'라는 꼼수를 이용하려 했거늘.
조건도 안 들어보고 바로 수락이라니.
순수한걸까?
아니면 무지한걸까.
그도 아니면 내가 그렇게 좋은걸까 아니, 이건 아니겠지.
어쨌든,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 분은 진짜 큰일 날 사람이다!
“그, 계약을 할 때는 조심하셔야 해요...!”
계약은 언제나 신중히!
이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배운 것 가장 중요한 것 이었다!
내가 지금 잔고가 이 모양이 것도 그 때문 아닌가!
-계약은ㅋㅋㅋㅋ신중힠ㅋㅋㅋ
-아ㅋㅋㅋ합방 덥썩 잡았다가 멍멍 거린 건 누구지ㅋㅋㅋㅋㅋ
“그, 그건...”
나는 입을 우물우물 거리다가, 모르는 척 넘겼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나는 디코에 집중했다.
“편집자 진짜 하실꺼에요...?”
“네!”
해맑은 목소리, 왜 이렇게 대책이 없는 걸까.
나는 허리에 손을 올리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편집자가 급해도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순수한 사람을 등쳐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누군가와는 달랐다.
달라야만 했다.
“솔직히 말할게요, 저 월급줄 능력 없어요... 그래서 계약을 하게 된다면 유튜브 수입의 퍼센트를 지급한다는 식으로 계약해야 하는데...”
-와 리에라가 퍼센트라는 말도 알아
-리에라또또케
-너 누구야!
-리에라 아님 내가 봤음
“저, 저를 얼마나 바보로 아시는 건가요...?”
채팅창에 말이 잠시 헛나갔지만 할 말은 끝마쳤다.
이런 식의 계약을 과연 누가 할까.
내가 말했지만 알고는 있었다. 이런 조건은 아무도 안할 계약이라는 것을.
구독자가 10만이상일 경우에나 먹히려나?
그즈음 되면 수입이 꽤 나올 테니까.
시청자는 답이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
조금은 시무룩.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만날까요?”
“어...네...?”
“계약은 만나서 해야죠?”
-이걸 받아들인다고?
-???
-집에 돈이 많나?
-이걸?
목소리에 웃음기가 느껴졌다.
헛웃음, 비웃음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웃음!
틀림 없이 긍정의 표시였다!
아니, 그런데 왜?!
“그... 혹시, 무례한 말일 수도 있는데요...”
“네?”
“집에 돈이 많으세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계약을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시청자의 프로필을 바라봤고, 시청자는 소리내어 웃어보였다.
“제가 100만은 안되더라도 10만은 확실히 찍어드릴게요.”
그러면 저에게도 이득이니까요!
"저, 제법 능력있어요"
자신감에 찬 말.
그것이 어찌나 당당한지, 살짝 부러워졌다.
-눈나ㅏ
-자신감보소
-그... 혹시 10만이 ㅈ으로 보이시는지...?
-개씹노잼 리에라 유튜브를 구원하소서...
시청자의 발언에 혼란스러워진 채팅창.
...
아니, 원래 혼란했던 채팅창이 조금 더 혼란스러워 졌다,
이젠 이 채팅방이 조금은 익숙해졌다면 이상할까.
애써 채팅창에서 시선을 때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 그러면 제가 찾아갈게요! 장소는 쪽지로 따로 보내주세요!”
내가 오라가라할 처지가 아니었다.
“네, 바로 보낼 게요.”
방송홈페이지를 새로 고침을 하니, 쪽지 표지에 1이 떠올랐다.
닉네임을 확인하자 ‘에라사랑해’ 그분이 맞았다.
의외로 가까운 곳, 버스를 두 번만 갈아타면 될 것 같았다.
“언제만날까요?”
아, 이건 방송을 끄고 물어봤어야 했나?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는 입술을 물어뜯었다.
방송을 한지, 벌써 두 달째인데 이런 실수라니.
나는 여전히 어리숙했다.
“오늘은 어떠세요?”
자책을 하며 웅얼거리고 있자, 시청자가 먼저 제안을 꺼냈다.
지금?
시계를 바라봤다. 오전 11시 30분이 다 되가는 시간.
오늘이 지기까진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고민도 안해 보고 바로 만나자고?
솔직히 이야기 하면 며칠 고민하다 거절할 줄 알았다.
그만큼 생계의 벽은 높은 것이었으니까.
“그으... 진짜 오늘이요?”
“네! 혹시 바쁘신가요?”
"악...!"
하루종일 집에 있는 사람에게 바쁘냐니, 무언가 푹 찔리는 느낌.
내가 무심코 내뱉은 출근안하냐는 말이 시청자들이 화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흘낏, 채팅창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미안해요...”
-알면 됐음
-ㄹㅇㅋㅋ
시청자가 무슨 소리냐는 듯 의문을 표했다.
“네?”
“아니에요, 오늘 바쁜 건 없으니까, 그럼 오늘 만나실래요?”
“좋아요!”
뭐가 좋다는걸까...
노예계약이나 다름 없는 길을 걷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뜯어 말려야 할까...?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나?
이미 알려줬잖아.
내면의 악마가 속삭였다.
아니, 그래도 양심이 너무 아프다.
다시한번 차분히 이야기해보자.
나 좋자고 한사람을 등쳐먹을 순 없지 않는가.
내면의 천사가 속삭였다.
악마와 천사가 뒤섞인다.
그야말로 완전 루시퍼...
아니, 뭔 생각이야.
“으윽 두통이...”
머리를 감싸 쥐고는 잠시 가만히.
-???
-조용해졌네
-갔냐?
“아직 안갔어요...”
두통이 조금 가셨다.
일단 만나자, 만나서 이야기하자.
“일단 방종 할게요!”
-방종하는건 좋은데 제발 유튜브를 살려줘
-리바!
-이제 유튜브 개꿀잼되는거?
-구독간다!
-ㅂㅂ
-ㄹㅂ
“...?”
구독을 안했구나?
확실히 내 유튜브에 문제가 있긴 한 모양이다.
저런 것을 보면 편집자를 붙잡긴 해야 하는데...
“아으으...”
쓸데없는 생각.
나는 잡생각을 끊어버리고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일단 만나서 좋게 이야기해보자.
안되면 별수 없는 것이고, 그러고도 마음에 변화가 없으면 받아들이자.
그리고 잘해주자.
엄청, 엄청 잘해주자.
나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방송을 종료했다.
“지금 갈게요!”
“와아”
방송을 껐음에도 목소리 톤에 변화가 없었다.
그 사실에 나는 살짝 뭉클해졌다.
진짜로 나를 좋아해주시는구나.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나는 이 현상에 가장 알맞은 단어를 얼마 전에 찾아냈다.
‘행복’하다.
바보같이 헤실거리고 있자 시청자가 말을 건넸다.
“도착예정시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 네...!”
도착예정 시간이...
여기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하니까...
1시간 40분정도?
혹시 모르니, 넉넉하게 잡아두자는 생각에 오후1시 30분을 말했다.
“저도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네요!”
“준비요?”
준비할게 있나?
머리를 긁적였다.
잘 모르겠다.
“일단 그럼 거기서 봬요!”
일단은 인사를 건네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씻었으니, 옷만 갈아입으면 되겠지?
나는 기지개를 피고는 옷장을 들여다 보았고, 입을 닫았다.
그리곤 딱딱한 움직임으로 고양이가 들어가있는 빨래통을 바라봤다.
“...입을게...없네...?”
이대로 가라고...?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목이 과하게 늘어진 허름한 검은색 티셔츠, 그리고 츄리닝바지.
“...이건 아니지 않아?”
이주일 정도 설탕물만 마실 각오를 하고서라도 옷을 사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약을 하러 가는데, 이런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모자를 집어 쓰고는 집밖으로 나섰다.
"우으..."
옷사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