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방송 두 달째(13) (24/143)



〈 24화 〉방송 두 달째(13)

야생의 비닐봉지가 승부를 걸어왔다!

“악...!”

집밖에 나서자마자, 바람과 함께 얼굴에 달라붙어오는 검은 비닐봉지.

리에라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으부부...”

얼굴에 달라붙은 비닐봉지를 떼어내었다.
아니, 떼어내려 했다.

비닐봉지를 잡고 내치려 하자, 손에 달라붙은 비닐봉지.

휙휙- 흔들어보지만 어째서인지, 떨어지지 않는다.


“뭐, 뭐야?”

다른 손으로 잡고 내치려 하자, 이번엔 반대 손에 달라붙은 비닐봉지.

미묘하게 짜증난다.
비닐봉지에 후-! 불자, 그제 서야 떨어져나갔다.

하마터면 비닐봉지에게 패배할 뻔 했다.

오랜만에 하는 승리.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리에라 승리...”

윽.


내가 말해놓고도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옷을 사입고, 바로 가야한다.

시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계속 가다듬으며 근처의 매장으로 향했다.

분명 이 근처에 있었는데.

가장 최근에 찾은 것이 3개월 전이라, 헷갈린다.
손가락을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보기를 15분 가량.

나는 기억속의 매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장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마네킹은 정장 비스무리한 것을 걸치고 있었는데,  모습이 멋있었다.


나도 저런 거 입고 싶다.
일단 어른스러워 보이잖아.

나는 마네킹을 빤히 바라보다 뒤꿈치를 살짝 들어봤다.

마네킹에 비해 너무 작은 키.

 키가 작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하게 되면 조금은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입술을 삐죽.


내가 입으면 안 어울리겠지?


슬그머니 시선을 내려 가격을 바라봤다.


139,000원.

“비, 비싸.”

조금 질렸다.
내가 입고 있는 티셔츠가 4,000원에 산건데!

여기가 원래 이렇게 비쌌던가?

내가 잘못 온 걸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능력있는 편집자를 만나러가는 길이었다.

허름한 차림으로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이런 지출은 필수적이리라.

마음을 다잡고는 매장 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래봐야 허름한 티셔츠에 츄리닝일 뿐이었지만.

"음음...!"


이상하게 보이진 않겠지?

모자를 벗고는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가다듬었다.
제멋대로 잘린 머리카락이 괜히 창피하다.

다시 모자를 푹 뒤집어썼다.
수습이  된다.

미용실 가기 돈 아까워서 거울을 보며 혼자 잘랐더니 너무 개판이었다.

고개를 숙이고는 매장의 문을 열고는 들어서자, 카운터에 책을 보고 있던 남성이 나를 보고는 인사를 했다.

“어서오세요!”

“아, 읏, 안녕하세요...?”

당황해서 살짝 말을 더듬었지만 남성직원은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딱히 개의치 않는 모습.

“와...”


친구 많을 것 같다하면 실례일까?

흔히 말하는 인싸의 아우라가 눈부셨다.
그 모습에 나는 절로 주눅들  밖에 없었다.

“오, 옷 사러 왔는데요...”

옷 매장에 옷을 사러오지, 뭘 사러올까.
 지금 무슨 바보 같은 말을 하고 있는거야?


머리를 박고 싶다.
통증으로 이 창피함을 잊고 싶다!


끄응끄응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나를 바라보던 남성은 '하하'웃으며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줬다.


“으음, 본판이 좋아서 다 어울릴 것 같긴 한데, 찾으시는 스타일 있으신가요?”

본판이 좋다니, 필히 입바른 소리!

하지만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은 칭찬이지 않는가!

바보 같은 웃음소리를 내지 않는 것만 해도 내 입장에선 최대한 자제한 것이었다.


“까, 깔끔한거요...”

“음, 그러면 이런건 어떠세요? 이런 것도 괜찮고, 저건 어떠신가요?”


.
.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양손에 옷가방을 쥐고 있었다.


영수증에는 24만원이라는 숫자가 찍혀있었는데, 눈뜨고 코 베인 것 같은 기분.

“나, 이제 뭐먹고 살지...?”


한달내내 설탕물은 예약에 고양이 간식도 통제들어가야  것 같았다.


주인이 미안해...
돈이 없어서 미안해...!

멀지않은 미래, 간식을 안줘서 삐뚤어진 고양이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했다.


하지만, 이건 비즈니스!


필요한 일이었다.
잘 이야기하면 고양이도 이해해줄 것이다.


고개를 끄덕끄덕.


나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지금 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네.

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자, 목적지에 도착.


조금 외진 곳이었다.
주변에 하늘을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었다.

고층 건물에 늘 상 가려져, 존재감을 바랬던 산이 훤히 보였다.
공기 또한 맑게 느껴진다면 기분 탓이려나?

잘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 나는 휴대폰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이 근처에 카페가 하나 있다던데, 어디를 말하는 걸까?


10분즈음 걷자 커다란 한옥이 보였다.

멋들어진 모습, 그 옆에 천천히 회전하는 물레방아 또한 운치 있었다.

이런 곳에는 누가 사는걸까?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핫’ 소리와 함께 휴대폰 지도를 바라보았다.

여기잖아!

카페라더니!
한옥이라니!

한옥카페라니!

낯설다.

그리고 낯선 것은 언제나 비쌌다.


내가 모셔야 하는 입장이라 내가 사야할텐데, 또 얼마나 지출해야 하는걸까.


당장 내일부터 폐지라도 주울까?

몸이 잘게 떨렸다.

순간 도망칠  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나쁜 생각을 떨쳐냈다.

일단 도착했다고 알려주자...!

-도착했어요!

답장까진 그리 오랜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냥 들어오시면 되요!


“먼저 도착해 있는 걸까?”

입술을 우물우물 씹고는 흘깃, 한옥내부를 살펴보자 앞치마을 맨, 미인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저분이구나!

카페 아르바이트중이신걸까?

하긴, 평일 오전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하고 있던 나나, 시청자들이 이상한 것이리라.

...


내가 생각하고도 자괴감드네.

나도 이제 혼자 사는건 아니니까 아르바이트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라며 중얼거리고는 조심스레, 한옥에 들어섰다.
아니, 들어서려 했다.

“시, 신발 벗어야하나?”

잠깐만 훑어봐도,  묻은 신발로 들어가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그만큼이나 고급스러워보였기에 나는 조심스레 신발을 벗었다.

"앗..."


신발을 벗자 양말에 구멍이 나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집에서 신었을 때는 멀쩡했는데 어째서?

구멍난 양말이 조금은 창피해서 연신 발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벗자...!"


나는 잠시 고민하다 양말을 벗고는 맨발로 한옥카페에 들어섰다.

불쌍해보이게 구멍난 양말을 보이는 것보다야 맨발이 낫지 않겠는가.

발바닥에 느껴지는 차가운 나무 감촉.

"오..."


나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고, 카운터에 앞치마를 맨 여성분이 방긋- 웃음지어 보였다.


이분이 맞겠지?


마른 침을 삼키며, 여성분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에, 에라사랑해님 맞으신가요?”


 닉네임, 말할 때마다 수치스럽다.
 닉네임도 아닌데.

“맞아요! 서예라고 불러주시면 되요!”


해맑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이 분이 맞았다.

목소리만큼이나 이쁘신 분.

그런데, 왜 웃으시는거지?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예님의 안내에 따라, 창가자리에 앉았다.

따뜻한 햇살이 기분 좋게 쬐어지고, 창문밖으로 작은 연못이보였다.


연못의 물은 굉장히 깨끗했는데, 그 속에 헤엄치는 잉어들이 꽤나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만큼 두려워졌다.

이런 엄청난 곳 와본 적 없었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들까.



들어오기 전에 우스갯소리로 폐지나 주울까라고 말하긴 했지만 잘못하다만 진짜로 폐지를 주워야 할 상황 같았다.

“리에라님은 뭘로 드실래요?”


방긋, 웃으며 나에게 메뉴판을 들이미는 서예님의 고운 손가락을 바라봤다.



분명 예쁜 손가락인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악마의 손처럼 보인다.


잘게 떨리는 동공으로 메뉴판의 메뉴를 읽어내려갔다.



전통 차 종류가 추가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메뉴는 일반 카페와 별다를  없었다.

가격또한 막연한 상상처럼 비싼 것 또한 아니었다.



“저, 저는... 냉수로...!”



다만, 내가 마시기엔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서예님 것만 사주면 되겠지!

어차피 집에서 늘상 마시는 것이 단물 아니던가!


설탕 두스푼에 수돗물 가득.

이거나, 그거나 별다른 차이는 없을 것이다!



“응...!”


“네?”


내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 보던 서예님은 한숨을 쉬며 앞치마를 벗고는 점장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건네줬다.

저래도 되는걸까?

혹시 내가 찾아와서?

“아, 알바중이시라면 다 끝나고 이야기하셔도 되요...! 기다릴게요!”



“알바요?”


서예님은 무슨 말이냐는 듯이 ‘음-’소리와 함께 잠시 침묵했고, 이내 ‘아!’라 말하며 발랄하게 웃어 보이셨다.

“제가 사장이에요!”



“네...?”



당당하게 손가락을 치켜들어 자신을 가르키는 서예님.


나는 딱딱하게 굳었다.

누가 봐도  아저씨가 사장님 아닌가?

“그...에...?”



“저분은  아빠! 아, 제가 배려가 없었네요! 오늘은 제가 사는거에요!”


설탕물 마시는 것까지 몇 번을 돌려봤는데, 이래서야 아직 저도 시럽단의 자격이 없네요.


어색하게 볼을 긁적거리며 말을 이은 서예님.



그 뒷말이 거슬린다.


시럽단?



무언가 묻기 무섭다.



무슨 단체일까.

사실 떠오르는 것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파헤치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리에라님?”

내가 뻣뻣하게 잡념에 빠져있자 서예님이 내 손등을 툭툭 건드렸다.

“그, 그러면 초, 초코라떼요...”

"저희 디저트도 잘하는데! 조각케잌도 하나 가져다 드릴까요?"

나는 그말에 질겁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편집자를 권유하러 와서 구토를 할 수  없지 않은가!


케잌이라는 말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린다.

“괜찮아요!”

서예님은 내 강한 거부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아빠에게 초코우유하나와 수정과 하나를 주문했다.


이거 진짜 돈 안내도 되는걸까?

음료가 나오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노려봤다.

한 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잔.

...예의상 한 말이겠지?

만약 곧이곧대로 믿고 돈을 안낸다면 이미지가 나빠질 것이다.


나 돈 없는데...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으면서도 초코라떼를 ‘쯉-‘ 마셨고, 감탄했다.

초코향이 물씬 느껴진다.

희석되지 않은 것 같았다!

묽지 않고 진해!



맛있어!


헤실- 웃음이 나온다.


맛있는 것은 언제나 옳으니까.


"...앗"

하지만, 지금 나는 음료나 마시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큼큼 목을 가다듬고는 서예님을 바라보았다.

“편집자... 진짜 하시게요?”


“네, 혹시 이미 구하셨나요?”



“아니... 그런건 아닌데... 저는 댓가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인걸요...”



조그맣게 자책하자 서예님이 손가락으로 뺨을 어루만져줬다.

“으엣?”



나는 놀라 움찔 거리면서도 서예님을 제지하지 않았다.



“걱정하지마요! 저 방송 때문에 이야기 못했지만 돈 많으니까요!”



“엑...”

리에라님 코인은 신이에요, 저는 무적이고요.



소곤소곤.



엄청난 비밀을 풀어내었다.


지금 내 눈앞에 무방비하게 웃고 있는 서예라는 사람은 걸어 다니는 금광 그 자체.


카더라 통신으로만 들어봤던, 선지자!



“아, 아니 그러면 편집자는 어째서...?”



예쁘고, 돈도 많고, 커다란 카페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뭐가 모자라서  편집자를 자처하는 걸까.



내 질문에 서예라는 분은 가볍게 말했다.

“취미?”

할 말이 없다.

취미라는데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

나는 뚱하게, 바닥에 닿지 않아 공중에 붕- 뜬 다리를 휘적였다.

분명 고맙다!

엄청 고맙다!

감사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아주 조금, 내 주제에 맞지 않게 불만을 가져버렸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은 능력 있는 사람임을 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다른 스트리머들이 저보다 낫지 않아요?”



취미라면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잖아.

 퉁명스러운 말투에 서예님은 ‘큭큭‘ 이상하게 웃으며 말을 건네줬다.

“물론 다른 스트리머들도 좋아요.”



역시, 조금은 시무룩해졌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거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하려 하자 서예님이 뒷말을 이었다.



“하지만 다른 스트리머들 보다 리에라님이 조금 더 좋아요!”


갑작스러운 고백.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포기하려 마음을 완전히 풀고 있어서 일까.



예상치 못한 기습에 숨이 턱 막힌다.



“아..으...엑...네?”

“좋아해요? 받아주실래요?”

이거, 진짜로 고백 받는거 같잖아.


인생  고백이 여성이라니.

물론 사랑의 의미는 아니지만.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을 현실에서 듣는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이었다.



“네?”

다시 되물어 오는 서예님.

이렇게 몰아붙이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잖아...



치사하다.



분명  여기에 큰마음을 먹고 왔는데, 이상하리만큼 호의만 받아버리고 말았다.



“알았어요... 하지만 언제든 그만두고 싶으면 알려주세요...”



내가 여기에 와서 고작 한다는 말은 이런 것.

고개를 푹 숙이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붉어진 얼굴을 보이기 싫었다.


슬픈 것은 아니었다.

기분 나쁜  또한 아니었다.

그저, 부끄러웠을 뿐이었다.


현실에 이렇게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말이다.

서예님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후릅- 수정과로 목을 축이고는 입을 열었디.



"그럼 일단 리에라님 유튜브에 있는 영상은 싹 내리죠!"


그건 리에라님을 좋아하는 제가 봐도 노잼이니까요!



갑작스러운 팩트폭력.



"윽... 그정도로 심한건가요...?"

"네!"

망설임 없는 대답에 기가 죽어버렸다.


"그러면 영상 전부내리고, 처음부터 다시요...?"

"아무래도요, 제가 만들어 둔 영상있으니 그걸 대신 올려봐야죠"


미리 만든 영상?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닌건가?

"몇개나 되는데요....?"


"스물두개?"


"히익..."


편집자가 생겼다.

조금 이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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