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방송 세 달째(6)
“리에라님 리에라님!”
“에?”
입에 과자를 잔뜩 문채로 웅얼거리자 서예님이 꽤나 슬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슨 일일까,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리는걸 보면 표정은 연기 같았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입에 문 게 너무 많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먹을 것이라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추태라니.
최대한 빨리 삼키고자 우물우물 거리자 서예님이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손을 뻗어 내 입가를 닦아주는 손길.
“드시면서 들어도 되요!”
-ㄹㅇ햄스터같네ㅋㅋㅋㅋ
-볼빵빵한거봐
-많이먹어 더먹어 더 많이먹어
서예님의 배려에 고개를 끄덕거리자 서예님이 별것 아니라는 둥, 내 앞에 놓인 누네띠네를 하나 집어먹고는 말했다.
“시럽단은 이제 폭파할꺼에요.”
“에?”
나는 입안에 든 것을 꿀꺽 삼키고는 의문을 표했다.
시럽단이 사라진다니?
아니, 생각해보면 존재조자 모르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없긴 한데.
나를 좋아해주던 사람들이 사라진다니 뭔가 섭섭하다.
“본래 저희는, 그, 방송사고 때 만들어진 단톡이거든요, 리에라님께 구조물자를 건네주자! 라면서요, 그런데 쨘! 오늘 이렇게 선물들을 드리게 됐네요! 그럼 목적도 이뤘으니 방은 사라지는 게 맞죠.”
나에게 어떻게 건네줄 생각이었을까.
서예님이 내 편집자가 되지 않았다면 내 집주소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을 텐데.
생뚱맞은 의문은 속상함에 묻혀버렸다.
“그, 그냥 남아계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안돼요, 친목관련해서 터지는 사건사고가 하나둘이 아닌건 리에라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굳이 방을 터트리려는 이유도, 리에라님 방송이 아니라 제 개인방송을 킨 이유도 아시라고 믿어요.”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는데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건 아쉬웠다.
“에이 영영사라지는 것도 아닌걸요, 이 사람들 다 리에라님방송 애청자라고요.”
그렇게 말하니 조금은 위안됐다.
그래, 영영 못 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저 그들이 모인 공간이 사라질 뿐, 내가 방송을 킨다면 언제든 이들을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인사할까요?”
“엑...?”
벌써? 시간을 바라보니 채 2시간도 안됐다.
굳이이렇게 빠르게 끝낼 필요가 있을까?
“자, 리에라님 리에라님을 위해 힘내준 시청자들에게 한마디하고 끝내죠!”
“아, 잠시만요! 고양아! 너한테 츄르 박스 보내주신 분도 있어! 같이 인사하자!”
고양이를 질질 끌고 와 화면앞에 세우자 고개를 까닥였다.
마치 인사라도 하는 듯이.
“세상에...”
“저희 고양이 천재에요!”
-허어어...
-그래서 리에라는 인사안함?
-ㅋㅋㅋㅋㅋ
고양이의 천재성에 뿌듯하다가 시청자들의 말에 나는 잠시 뇌가 멈췄다.
뭐라고 끝내야 할까?
감사합니다나 고맙습니다는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내 고민을 알아차리기라도 하듯 서예님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리에라님 시그니쳐사운드로 마무리하죠!”
시그니쳐?
나에게 그런 소리가 있던가?
“있잖아요 그거”
내 귓가에 속삭이는 서예님의 말에 나는 얼굴을 붉힌채로 고개를 떨궜다.
“지, 진짜해요?”
“평소에는 잘만하셨으면서!”
“으긋....”
십호흡을 세 번, 눈을 질끈 감고 방송화면을 향해 크게 외쳤다.
“멍멍...! 저를 앞으로도 많이 아껴주세요!”
“자! 끝!”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필 새도 없이 종료된 방송 나는 방금 그 말로 모든 HP가 소진된 것 같았다.
“쪽팔려요...”
“익숙해지셔야 해요!”
그건 그렇지.
방송인은 수치심을 몰라야하는 법...
다시 한번 방송인으로서 마음다짐을 다잡고 있자 다시 한번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아, 타이밍 좋네요!”
나보다 앞서 현관문을 열어준 서예님은 근육질 아저씨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여기 벽면에 전부 붙여주시면 돼요!”
“예, 알겠습니다!”
“어...? 어...?”
바보같은 소리를 내보지만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저씨들은 얇은 매트를 벽에다 고정시켜버렸다.
안 그래도 좁은 집이 더 좁아진다...!
“서예님...?”
“다른 시럽단은 전부 선물을 줬는데 저만 안주면 좀 그렇잖아요? 선물이에요! 꽤 효과 좋아요.”
이를테면 방음부스 상위호환 같은 거랄까요?
“비싸지 않아요...?”
나도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서 방음 관련된 상품을 찾아 본적이었는데 저것 한 두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저는 저런 거 다 못 갚아요...!”
“걱정하지마요! 다 갚게 만들어드릴게요!”
순간 섬뜩했지만, 내 유튜브를 키워서 갚게 만든다는 소리였다.
뭐가 됐던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아버렸다.
설마 이런 말을 또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저, 뭐든 할게요!”
“...그런 말 하면 못써요.”
“눼...”
내 양볼을 꼬집고는 늘리는 서예님.
아저씨들은 금방 설치를 끝냈다, 다해봐야 15분 가량.
집이 좁아서 금방 끝난 건지.
아니면 아저씨들의 솜씨가 좋은 건지.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저씨들을 뒤로하고 서예님은 내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히윽?!”
“역시 반응 좋네요!”
“...‘역시’라니...?”
“방음매트로 설치 했겠다, 성능 테스트 해봐야죠?”
“시, 싫어요...!”
방금 전에 뭐든지 하겠다고 말해놓고는 벌써부터 거절하다니 무슨 경우인가 싶겠지만, 서예님이 짓는 사악한 미소는 무서웠다.
“방금 전에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지요? 포기하세요!”
“우으으...”
나는 얌전히 서예님에게 뒷목을 잡혀 자리로 돌아왔다.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고양이를 바라봐도 고양이는 하품할 뿐. 별 생각이 없어보인다.
너 자꾸 그러면 못써...
내가 잘못했으니까 모셔야 하는 입장은 맞지만 저런 모습을 보게 되면 때때로 욱 해버린다.
의자에 앉혀진 나는 고개를 들어 서예님을 바라보았다.
“뭐, 뭘해야 할까요...?”
“소리 많이 지르는 게임이겠죠?”
“그러면...?”
“공포게임!”
“끄에에엑....!”
공포게임이라니, 몸을 버둥거려봤지만 내 어깨를 누르는 서예님의 손길을 강했다.
10초 가량 발버둥치고는 거친 숨을 내뱉자 서예님이 살짝 걱정스럽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운동좀 하셔야겠어요...?”
“바압..을 못먹어서 그래요...!”
운동 싫어...
똑똑- 다시 들리는 노크소리.
오늘만 도대체 몇 번 째일까.
내 집에 이렇게 노크소리가 많이 울린 적이 있던가?
“결국 왔나보네요...”
“누, 누가요?”
설마 이웃?
나는 몸을 움찔 떨었고, 서예님은 내 정수리에 턱을 괴고는 한숨을 쉬었다.
“이웃은 평생 못 돌아 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문을 두드리는 건, 제 전 사장님일테니까요.”
“전 사장님...?”
똑똑똑똑-!
한층 더 강해진 노크소리.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누굴까.
“문-열-어!”
히익-!
나는 몸을 움츠리다, 이내 목소리가 낯익은 것을 눈치챌수 있었다.
...네모미님?
“네, 열어드릴게요, 네, 네.”
나를 대할 때와는 다른 그야말로 느긋하고도 대충대충인 모습.
문을 열어주자 네모미님은 서예님을 지나쳐 나에게 달려와 끌어안았다.
“끄엑...!”
뭔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랑말랑한 것에 파묻혀 숨을 못 쉬겠다는 것만은 잘았겠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고자 몸을 움직여봤지만, 역부족.
몸에 힘이 빠져나간다.
...언니 나 죽어...
진짜 죽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