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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방송 세 달째(7) (31/143)



〈 31화 〉방송 세 달째(7)

네모미님의 기습에 대략 30초 정도 의식이 사라졌다.

내가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땐, 네모미님이  손을 들고 서예님에게 혼나고 있었는데,  모습이 꽤나 자연스러웠다.

“으어어...?”

무슨 상황이지 이게.

“서연아! 서예가 나 괴롭혀!”

 본명에 몸을 떨었다.

분명 내 본명이었지만 리에라라는 닉네임보다 백서연이라는 이름이 어색했다.

마치  옷이 아닌 것 같다 하면 너무 과장된 걸까.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나에게 달려와 내 뒤로 숨어버리는 네모미님, 나보다 커서 제대로 숨어지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숨는 시늉, 그것을 못마땅하게 본 서예님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 누가 보면 제가 괴롭힌 건줄 알겠어요? 네?”

“서연아, 내말 잘 들어... 쟤는 네가 생각 하는 만큼 좋은...!”

“자! 자! 여기 네모미님이 좋아하는 돈이다! 자!”

오만원권을 흔드는 서예님의 모습에 네모미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떨리는 동공, 살짝 흐르는 침.

“......니가 생각 하는 거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야...”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닌 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하지만 굳이 그것을 들추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쪼르르 달려가 냉큼 오만원을 낚아챈 네모미님은 다시 내 옆으로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근데 네모미님, 돈 잘 벌지 않아요...?”

캠만 키면 백만원대를 찍으시던데...?

그런  말에 네모미님은 아직 내가 뭘 모른다는 듯, 혀를 찼다.

“서연아... 돈은, 항상 옳아!”

오만원은 땅파면 나오니?

나는 그 애매한 박력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땅파서 5만원이 나왔으면 나도 이렇게 살고 있진 않았겠지.

두 사람이 헝클어뜨린 머리카락을 차분히 정리하고는 뚱하게 네모미님을 바라봤다.

방금 나를 부모님 곁으로 보낼 뻔 했기에 시선이 고울 수가 없었다.

“서, 서연아 설마 삐진건 아니지?”

“...저는 이런 걸로 안삐져요.”

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의자를 밀어 네모미님의 곁에서 살짝 떨어졌다.

저 말랑말랑하고 커다란 것은 흉기나 다름없지 않은가.

한번만 더 당했다간 그대로 끝날 것 같았다.

내가 멀어지자 상처받았다는 식으로 과장되게 '흑흑' 소리는 내는 네모미님.

그나저나  오신 걸까.
사실, 이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는데, 경향이 없었다.

내 마음을 읽은 것인지, 기껏 정리한 머리카락을 다시 헝클어뜨린 네모미님은 서예님을향해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쟤한테서  지키기 위해서!”

“5만원 다시 주세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꽤나 담담히 받아내는 서예님은 나를 지나쳐 네모미님의 뒷못을 붙잡더니 침대에 앉혔다.

거기서 가만히 있으라는 듯, 손바닥을 보이고는 ‘씁-!’ 소리를  서예님은 다시 미소짓더니 나에게 다가와 하나의 게임을 추천했다.

“자, 네모미님은 무시하고  게임 어때요?”

서예님이 보여준 핸드폰의 화면엔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지나갔다.

머리가 터지고, 갈라지고 내장이 쏟아지고 비명이 난무 하는 그런 것 말이다.

“...?”

이걸?

나보고?

“아 참고로 캠은 켜야해요! 아직 캐릭터가 없으니까 얼굴로 때워야죠!”

그 이쁜 얼굴 숨겨서 뭐할꺼에요! 이럴 때  먹어야지.

“이, 이쁘다니...”

그런 거짓말엔 속지 않는다.
어쨌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단 조금 다른, 본질적인 문제가...

“머뭇거릴 것도 없이 바로 방송시작해요!”

서예님의 독촉, 나는 시간을 바라봤다.

본래라면 이웃 때문에 방송을 못  시간.

하지만 이웃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켜도 좋은 것 아닌가.

아니, 그이전에 나에게 공포게임을 시킬 것이라면 이런게 아니라...

“서예님... 그, 이런 것 보다...!”

“어허! 뭐든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내가 공포게임 하기 싫어서 다른 말 한다고 생각하시는걸까?

“그으...네...”

뭐, 서예님이 시켰으니, 하긴 하는데 서예님이 상상하는 그런 반응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니다. 직접 보시면 되겠지.

나는 입술을 삐쭉이며 방송을 켰다.

잠시 기다리는 김에 물을 마시러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자 고양이에게 펀치를 맞고 있는 네모미님이 슬쩍 보였다.

"악! 악! 서연아! 너네 고양이 왜이렇게 쌔?!"

못본 것으로 하자.

수돗물을 마시려다, 팬들이 준 선물중 생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것을 꺼내 모니터 옆에 두었다.

팬들의 생수... 잘마시겠습니다.

 잠깐 사이 시청자들이 들어왔다.

12명.

-리하!
-ㅎㅇ
-캠켰네?

어제의 사고는 묻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주는 착한 사람들.

고마웠다.

방송키자마자 변명부터 해야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서예님이 내준 숙제 게임제목을 외쳤다.

“오늘 할 게임은 데드어센션! 공포게임이에요!”

심약한 사람은 보지마세요!

나름 경고문구를 외치자 채팅창이 꽤나 시끌벅적해진다.

-누구보다심약한사람이...?
-당장게임꺼!
-끄에엑!
-누가 누굴보고ㅋㅋㅋㅋ
-ㄹㅇ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에 볼을 긁적였다.

내가 그렇게 약해보이나?

고개를 갸웃, 하지만 나는 씩씩하게 외쳤다.

“분명 말하는데 저 심약하지 않아요?”

악! 아악!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네모미님의 비명소리.

애써 무시하고는 게임을 실행했다.
우주에서 좀비같은 괴물들에 의해 고립된 상황.

주인공인 공돌이는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스토리는 우주선 탈출.

이 게임이 유명한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굳이 손꼽자면 끔찍한 데드씬과 그로테스크한 몬스터가 첫째  것이다.

유명한 게임, 그리고 유명한 만큼 나는 이 게임을 하기 전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번 경고할  밖에 없었다.

“밥 먹고 있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방송을 꺼!

-자기방송보지말라는스트리머가있다?
-근데 이건 좀 그럼 진짜 밥먹다가 토하고 싶지않으면뒤로가기ㄱ
-왜 공포겜임
-이겜이 좀 역겹긴해 ㅋㅋㅋ

“전 분명 경고 했어요? 시작할게요!”

엔터를 누르자 암전되는 화면.
그와 동시에 무언가 '그르르-' 불쾌한 소리가 들린다.

그르르-...

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이내, 검은 화면에 붉은 기가 살짝 드리워진다.

일반적인 붉은 색이라기 보단, 핏빛에 가까운 붉은색.

배경음악이 꺼진다.
고요함.

그르르- 거리는 기괴한 소리만 들려온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오...

뭐가 오일까.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아직은 조작할 수 없는 상태.

솔직히 지루했다.

분위기는 공포였지만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캬아아아아악-!”

괴물이 튀어나왔다.

-끼에에에엑
-ㅅㅂㅅㅂㅅㅂㅅㅂ
-시발아!
-갑툭튀뭔데

“...”

-리에라 선채로 죽음?

아, 리액션...!

“으악!”

-반응 개어거지ㅋㅋㅋㅋㅋㅋㅋㅋ
-뭔데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아니, 사실 저 현실에 가까운 공포겜은 별로 무섭지가 않아서...”

-???

현실에서 워낙 심한걸 봐서 내성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공포게임이 고퀄리티가 되어 실제 사람에 가까워  수록 오히려 공포심이 옅어진다.

그리고 그것의 끝이 지금 상황.

정말 내 겁먹은 반응이 보고 싶었으면 이런 것이 아니라 저퀄리티의 불쾌한 게임을 가지고 왔어야 했다.

나는 침착하게 우클릭, 괴물의 머리를 갈겼다.
튜토리얼 이었다.

깜짝 놀래키고 바로 튜토리얼로 들어가서 싸우게 시키다니, 이 무슨 나쁜 취향인가.

앞으로 가서 벽에 걸려있는 플라스마 커터기라는 무기를 획득.

괴물의 사지를 토막내버렸다.

쉽다.

아마도 이지모드라서 그런 것이겠지.

“움... 이래서야 그냥 켠왕 컨텐츠가 되버릴꺼 같은데...”

내가 놀라지 않아서야 공포게임으로서 가치가 없는거 아닌가?

이제 어쩌지?

나는 뒤를 바라봤다.

두 귀를 막고 침대에 머리를 박은 서예님.
고양이에게 패배하여 훌쩍이는 네모미님.

“...개판이네”

심한 말이면서도 지금 이상황에 가장 알맞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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