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방송 세 달째(8)
탕-! 탕-!
괴물들은 허약했다.
다리 두 번 팔 두 번, 총 4번의 공격이면 무력화 되어버렸으니까.
“움...”
게임이 쉽게 느껴지는 것은 이지모드인 것 도 있겠으나, 이는 공포게임의 분위기에 짓눌리지 않은 탓도 있었다.
공포게임에 공포가 빠지니 어정쩡한 FPS게임이 됐을 뿐, 뭔가 커다란 알맹이가 빠진 것 같았다.
“와악...!”
-걍 리액션하지마라ㅋㅋㅋㅋㅋㅋ
-짱깨겜 광고같음ㅋㅋㅋ
몇 번 씩 튀어나오는 컷씬에 놀란 듯이 반응해보였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냥 빠르게 클리어나 하자.
가볍게 생각하고는 천장에서 뚝 떨어지는 괴물의 사지를 분리시켜줬다.
어느새 서예님이 내 뒤로 왔다.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요...”
“저는 이런 걸로 놀라지 않아요...”
나는 이런 것에는 강하다고 말하려 했는데 계속 말을 끊으셨다.
나도, 서예님도 서로 뚱한 표정으로 게임화면을 바라봤다.
서로에게 할 말이 없었다.
적당히 놀라고 싶어도 그게 안 된다.
무섭지도 않고, 소름 돋지도 않는다.
하여, 내가 왜 이게임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이래서야 서예님이 바라는 반응은 못 보여주지 않을까.
서예님이 방음매트를 모조리 뜯어가서 환불해도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는 상황.
나는 슬쩍 슬쩍 서예님의 눈치를 봤고, 서예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눈치 보지 않아도 되요.”
하지만 원하는 반응을 못보이지 않았던가.
“뭐, 이건 이거대로 유튜브각이 되니까요, 벌레 같은... 아니, 죄송해요, 실력이 좋지 않은 스트리머가 장점을 드러낼 때.좋잖아요?”
벌레 같은 실력이라고 말하려 하셨다 분명!
내 실력이 그렇게 문제가 많나...?
-누구랑 이야기 하는거?
-옆에 눈나 누구야
-눈나...
-ㅗㅜㅑ
“아! 제 편집자 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서예님은 내 앞으로 상체를 기울여 캠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개이뻐
-편집자말고 니가 스트리머 해라
“저, 여러분... 이 방송은 제방송이에요?”
어째서 관심이 서예님에게 쏠린걸까.
물론 이쁘고, 목소리도 좋고, 성격도 좋고, 다 좋지만.
...
말하고 보니 내가 이길 수 있을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내방송인데.
웅얼웅얼, 내가 생각해도 나 따위 보다 서예님이 매력적이라 말을 못 꺼내겠다.
“저희 리에라님 많이 사랑해주세요!”
-우리는 눈나가 더 좋아
-ㄹㅇㅋㅋ
-스트리머 왜 안하냐고ㅋㅋㅋ
서예님이 무슨 말을 할 때 마다 채팅은 뜨거웠다.
반응이 좋았다, 그 모습에 조금 슬퍼진다.
내가 뭔가 말 할 때는 저런 반응 안보여주면서!
슬픔을 담아스멀스멀 기어오는 괴물들을 으깨버리자 네모미님이 서예님을 붙잡고 침대에 눕혔다.
-저거네모미아님?
-가슴밖에 안보였는데 뭔
-저 미드가 네모미말고 또 있냐고ㅋㅋㅋ
변태들.
내 시청자들이지만 살짝 부끄러웠다.
물론 서예님은 내 편집자였고, 네모미님과나는 공유되는 시청자가 많았기에 별다른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나는 경멸을 담아 채팅창을 내려 보고는 별 다른 말없이 게임을 진행했다.
시작은 했으니, 1스테이지라도 끝내야 게임을 끄던 하지.
플라즈마커터기의 에너지가 얼마 남지 않아 근접으로 다가가 주먹질로 괴물들을 토막 내기 시작하니 채팅의 관심이 다시금 나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왜 이리 잘하는데
-리에라 어디갔어! 너 누구야!
-ㄹㅇ누가 따로 조작해주고 있는거 같음
-합리적의심 ㅇㅈ합니다.
조금 짓궂긴 하지만 게임 잘한다는 소리.
뺨이 살짝 달아올랐다.
“나보고 게임 잘한데......”
칭찬은 언제나 즐거웠고 히히- 살짝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
큼큼, 티를 내지 말아야지.
게임 스트리머가 게임 잘하다는 소리에 히죽거리면 꼴사납잖아?
당연한 듯이 굴어야 한다!
게임스트리머가 게임을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지었지만 채팅은 내 의도를따라주지 않았다.
-다들려ㅋㅋㅋㅋㅋㅋ
-나보고게임잘한데나보고게임잘한데나보고게임잘한데나보고게임잘한데
-커엽네ㅋㅋ
-ㄹㅇㅋㅋ
“...들렸어요...?”
-눼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 방금 입 밖으로 말을 꺼낸 건가?
“저는 이제 속마음과 말로 꺼내는 것도 구별 못하는 바보에요...”
-원래도 바보같긴 했어ㅋㅋㅋ
“...너무해!”
이럴 때는 아니라고 해주는 게 맞지 않나!?
입술을 내밀고는 거칠게 괴물들을 때려 눕혔다.
-와아 리에라대단해!
-게임천재리에라
-개잘해ㄷㄷ
-ㅋㅋㅋㅋㅋㅋㅋ
“노, 놀리지마요...”
솔직히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칭찬받아서 기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칭찬에 약할 뿐이었다.
지금도 입꼬리가 칠칠맞게 계속 올라가려 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칭찬에 약한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그치 잘못된 건 아니지!
“그렇...죠?”
나는 시청자들의 말에 안도를 하면서도 결국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그럼... 조금만 더 칭찬해주실래요...?”
아마도 내가 방송을 하며 무언가 요구하는 것은 처음 아닐까?
-???
-뭔데ㅋㅋ
내 요청에 잠깐 당황하던 시청자들은 이내 칭찬을 한마디씩 던져 줬고 나는 그것을 받아먹으며 조금 기분 나쁘게 히죽 거렸다.
아주 잠깐의 행복.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서예님과 네모미님이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왔다.
...다만, 그 모습에는 꽤나 위험한 소지가 있었는데.
분명 말하지만 나는 의자에 앉아있었고 캠은나에게 맞춰진 상대였다.
그리고 네모미님과 서예님은 통상의 여성보다 큰 키를 지니고 있었고. 그런 둘이 내 옆에 다가오자 유독 크고 말랑말랑한 흉기가 부각되어 보였다.
-ㅗㅜㅑ
-개쩐다
-ㅗㅜㅑㅗㅜㅑ
“조, 조용...!”
뭐가 오우야 인지 나도 잘 알겠으나, 이래서야 방송분위기가 뭐가 되겠는가!
내 방송은 건전하고! 출중한 게임 실력이 주가 된 방송이었다.
-겜 끄고 캠이나 확대하자
-겜 잘하니까 재미가 없다ㅇㅇ
“아, 아니 잘한다면서요...?”
-그러니까ㅇㅇ 잘해서 재미없다구요
-아니 그렇게 돌직구를 박아버리면 어쩌냐
-근데 맞말이긴함
“..우으으...”
처음으로 ‘게임 잘한다’는 말을 들어서 기분 좋았는데.
시청자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은 이런게 아닌거 같았다.
“방금 전까진 칭찬 해줬잖아요...”
재밌다며!
게임잘한다며!
나 밖에 없다며!
무언가 배신을 당한 것만 같았다.
아니, 그보다 네모미님과서예님은 왜 갑자기...
나는 고개를 들어 서예님과 네모미님의 얼굴을 마주 보았고, 둘의 음흉한 미소를 마주 할 수 있었다.
“...저, 조금 무서워요...?”
네모미님이 캠을 뒤집었고, 서예님이 나를 끌어안아 줬다.
“우리 리에라님 칭찬이 고팠구나!”
서예님이 내 뺨에 뺨을 비비었다.
말캉해서 기분은 좋다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가, 갑자기 왜이러세요...?”
거부 하고 싶어도 힘에서 밀린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캠을 뒤집어 버린 네모미님 또한 나를 끌어안고는 반대쪽 뺨을 비비었다.
“으에엑...”
“우리 서연이 게임 잘해! 귀여워! 예뻐! 와!”
설마 칭찬을 해달라고 해서 이러시는 걸까.
칭찬과 포옹은 되게 좋은 기분이었지만, 몸이 찌부러진다.
사,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