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방송 세 달째(9)
“저, 저 게임해야 해요...!”
양쪽으로 부벼지는 뺨.
보드라운 촉감이 분명 기분 좋은 것이었지만, 지금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방송사고다!
손을 뻗어봤지만 컴퓨터까지의 거리는 멀기만 했다.
“쟤들은 이런 걸 더 좋아할걸?”
캠 화면도 안 나오고 게임화면도 멈춰 있는데 이런 걸 더 좋아한다고?
나는 채팅창을 게슴츠레 바라봤고 이내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ㅗㅜㅑ
-무슨일이야
-갔냐?
-아 입다물고 ㅗㅜㅑ만 치라고ㅋㅋㅋ
-ㄹㅇㅋㅋ
진짜 좋아하네...
내 시청자들이지만 취향을 잘 모르겠다.
진짜 변태들인가 싶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례같아서 애써 무시했다.
어쨌든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뺘, 뺨좀 그만 비벼요...”
마찰 때문에 후끈후끈하게 달아오른 뺨, 아주 살짝 부운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양손으로 내 양 볼을 감싸고 둘을 눈물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나를 진짜 좋아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 행동이 너무 과격한 것 아닌가.
방송 중에 갑자기 이런 짓이라니.
...
조금 다르게 생각해서, 방송중이라서 이정도로 끝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몸이 움찔거린다.
물론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고마웠다.
나에겐 분명 과분하고 아까운 사람들이었고, 그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틀림 없이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때와 장소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막말로 방송중이 아니라면 뭐든 해드렸겠으나, 지금은 방송중.
시청자들이 다 보고 있는 상황에 이런 행위라니.
수치심에 입술을 질겅거렸다.
“우긋...”
“리에라님이 귀여운 탓이니까 받아 들이죠”
“안 귀엽거든요...”
서예님의 헛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둘을 떨어트렸다.
“저는 방송해야해요...!”
방송 끝나면 저를 가지고 뭘 해도 되니까 지금은 자제해주세요...!
말을 잇자 무언가 더더욱 음흉해진 둘의 표정.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고, 다급히 채팅창을 들여다보았다.
들렸나!?
-방송끝나고...?
-뭘하려고...?
-ㅗㅜㅑ
-방송사고 제발
“...여러분은 아무것도 못들은거에요.”
-?
-???
-뭘??
“아무것도 못 들으신거에요, 아셨죠?”
내가 다시한번 못들었다는 것에 악센트를 쥐어 말하자 그제서야 시청자들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아ㅋㅋ무슨 일 있었나요?
-전 3일 전부터 귀가 안 들렸음ㅇㅇ
-ㄹㅇㅋㅋ
그래, 아무일도 없었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시청자들도 아무것도 못들었다고 하지 않나.
“리에라님 시청자 다루는게 능숙해지셨네”
“여전히 어리숙하긴 하지만 저 정도면 엄청난 발전이지!”
뒷통수너머로 들리는 애매한 칭찬.
나는 허리에 손을 얹을 수 밖에 없었다.
검증된 사람들의 칭찬!
아까 같이 귀엽다느니, 예쁘다느니, 어처구니없는 가짜 칭찬이 아니라 진짜 칭찬.
몸을 살짝꼬고는 헤실헤실.
어느 샌가 내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 같은 바보미소를 짓고는 게임을 재개했다.
게임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쉬웠다.
이미 진행해 놓은 것도있었기에 1스테이지의 내장따위로 이루어진 보스를 격파하는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 대단해...!”
매번 나 자신을 까내리기 바빠던 내 입 조차, 이번에는 나를 칭찬했다.
솔직히 이건 칭찬 받을 만 하지 않은가!
-나 대단해는 도대체 무슨 말이냐ㅋㅋ
-ㄹㅇㅋㅋ
-대단하다자너ㅋㅋㅋ
시청자의 비아냥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오늘은 기념일로 삼아야 한다.
뭘 하든, 어떤 게임을 하든, 클리어 조차 못하던 내가 1스테이지를 클리어 했다.
이지모드이긴 했지만 보스 같은 것도 잡았다.
“나...진짜 대단한거 같아.”
나 대단해 2트.
고작 1스테이지, 그것도 이지모드.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기념일이에요...”
리에라게임 첫 클리어 기념일.
-아직 1스테이지밖에 안깼다고ㅋㅋㅋㅋㅋ
-누가보면 최종보스까지 잡은 줄 알겠네ㅋㅋㅋㅋ
-심지어 이지모드임
“리에라 게임 첫 클리어...!”
시청자들의 비웃음을 애써 무시하고는 양손을 번쩍들었다.
나는 지금 진지했다.
단순히 게임의 첫 클리어 뿐 아니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몇 안되는 성공이었다.
하여 나는 지금 이것을 간직하고자 손때 탄 수첩을 꺼내 오늘의 날짜와 ‘게임클리어’ 적어 놓고, 별을 그려 넣었다.
그 위로는 혼자 카페가서 한 시간 이상 앉아있기, 혼자 영화보러 가기 따위의 글씨가 빼곡이 적혀있었는데.
내가 이뤄낸 것들이었다.
내 업적들이라고 해야할까.
나에겐 꽤나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보물에 한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오늘로 저, 리에라 한층 더 성장했어요”
-오구구
-잘했다 아이고 우리 리에라
-ㅋㅋㅋㅋㅋ
유난 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자신감이 가득들어찬 상태.
감히 어떤 것이든 할수 있을 것 같았다.
막말로, 스컬소울의 비명나무 조차 지금이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넘치는 자신감을 최대한 자제하고는 밝게 웃으며 시청자들에게 말을 건넸다.
“어쨌든 방송은 이걸로 끝이에요...! 저녁에 다시뵈요!”
-리바!
-ㅂㅂ
-이렇게 간다고?
-바이
본래 지금 방송시간이 아닌 것을 서예님의 요구로 키게 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방송을 종료했고 우쭐- 거리며 서예님과 네모미님을 쳐다보았다.
“오오 서연이 자신감 넘치네!”
“수고하셨어요!”
“네에-”
헤실헤실.
나는 망설임 없이 두 팔을 벌려 두 사람을 끌어안았다.
체구가 작아 내가 안기는 꼴이 되긴 했지만 마음은 전해졌으리라.
“아까 스킨십 거절한거 죄송해요...!”
“에이 뭘 그런거 가지고 우리사이에!”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모미님의 활기찬 대답에 나는 마음을 놓았다.
다만, 네모미님의 말은 끝나지 않았고, 네모미님은 말을 이었다.
“이제 저녁에 우리 합방하자!”
합방이라니.
내가 잘못들은 건가 싶어서 품안에 안긴채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내 머리카락을 맹려히 쓰다듬는 네모미님.
“네모미님이랑 둘이요?”
“아니?”
“그럼요...?”
“가람오빠, 아람언니, 나, 드래곤오빠 너! 다섯명이서 오랜만에 합방!”
“...?”
“참여할꺼지?”
그렇게 생글생글 웃으며 물어보면 거절을 못하지 않는가.
조금은 비겁하다 생각하면서도 방금 얻은 자신감이 나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줬다.
이 멤버 오랜만이다.
톡으로는 매일매일 이야기를 나누고 놀지만, 합방은 근 한 달만.
나는 그동안 시청자들과 서예님, 주변사람들의 넘치는 도움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번에는 반드시 누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는 품에서 벗어나려하자 뭔가, 네모미님이 나를 끌어안은 채로 놓지 않는다.
“...네모미님?”
“방송 끝나면 뭘 해도 된다고 했지?”
불길하다.
하지만 내가 내뱉은말이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네모미님이 내 오른쪽 팔을, 서예님이 내 왼쪽 팔을 잡아 끌기 시작 했다.
“합방이고 뭐고 일단 밥먹으러가자!”
내가 여기 근처에 맛집 알아냈어!
“옷도 좀 이쁜걸로 사고요!”
앞으로 캠방이 주가 될텐데 옷에도 신경써야해요!
“미용실도 가야해!”
지금도 귀엽긴한데 조금만 다듬자!
네모미님과 서예님이 번가라 가며 내뱉은 말.
나는 힘없이 집밖으로 끌려나갔다.
뭔가 나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째서인지 저 둘이 나보다 더 기뻐보인다.
"으에에..."
"이상한 소리 내지 말고 밥부터 먹으러 가자!"
...
나는 끌려가면서도 문득 든 생각에 네모미 님을 빤히 바라봤다.
네모미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인기 많잖아.
게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음으로 얼굴은 모르겠지만.
시청자들이 말한 것 처럼 저 말랑흉측한 흉기를 가진 사람이 네모미님말고 또 누가 있는가.
"...움"
설마 진짜 알아보진 않겠지?
"에이..."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이건 내가 생각해도 불안감을 지나쳐 망상에 가까웠다.
만에하나 알아본다 하더라도 우리가 범죄자도 아니고 움추릴 필요는 없겠지.
발걸음의 속도를 높여 둘의 옆에 나란히섰다.
"근데 저희 뭐 먹으러 가요...?"
내가 살 수 있는 금액일까?
아까와는 조금 다른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