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방송 세 달째(10)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닭갈비 집.
내가 아직 돈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 종종 와서 사 먹었던 곳이었다.
맛은 있었다.
매콤하고, 달달하고.
양념은 비교적 평범했지만, 양이 많았고 닭의 질 또한 좋았다.
내가 돈이 없어서 못 먹는 것이지, 맛을 못 느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
나는 양 볼에 닭갈비와 밥을 양껏 넣고 우물우물 거리자 네모미님과 서예님이 내 컵에 콜라를 따라줬다.
“많이 먹어!”
“우으으...”
네모미님도 서예님도 많이 먹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에 든 게 많아서 말을 못하겠다.
그저 둘의 앞접시에 닭갈비를 퍼주자, 둘은 경쟁하듯 내 앞접시에 닭갈비로 이뤄진 탑을 쌓았다.
“...!”
이렇게 많이는 못 먹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저항해보지만 음식의 탑은 더욱 높아질 뿐이었다.
“이건 다 먹어야해 알았지?”
“우린 평소에 잘 먹고 있으니까요, 리에라님만 잘 드시면 되요!”
서예님의 숟가락에 흰쌀밥과 닭갈비 한쪽을 올리자, 네모미님이 그것에다 콩나물반찬을 예쁘게 얹었다.
“아-!”
뭘까, 이 아기 취급은...
주변의 시선이 쏠린다.
챙겨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면서 창피하다.
무엇보다...
......아직 입안에 있는 것도 다 못 먹었는데요.
나는 둘의 시선에 못 이겨 아직 제대로 씹지도 못한 것을 꿀꺽- 덩어리째 삼키고는 눈물을 그렁거리며입을 벌렸다.
들이닥치는 숟가락.
나는 그것을 얌전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맛은 있었지만 이래서야 식고문과 뭐가 다른걸까.
나는 우물우물- 음식물을 넘기고는 아직도 내 앞접지에 산처럼 남아 있는 고기를 바라보며 콜라를 마셨다.
바라만 봐도 목구멍 끝까지 음식물이 들어찰 것 같았다.
“으으...”
셋이서 왜 5인분을 시키나 했더니 전부 나한테 먹일 줄이야.
이번이 아니라면 기회는 없다는 듯.
둘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말만 하면 다 사주겠다는 듯, 둘의 미소가 무섭다.
나는 격렬히 고개를 저으며 손을 교차시켜 X자를 만들었다.
“더, 더 먹으면 저, 저 죽어요...!”
빈말이 아니다.
여기서 더먹으면 나 죽는다.
장난이 아니다!
올챙이 같아진 배를 보면 답이 나온다.
진심으로 더 먹으면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배가 터져서 죽는다!
나만 엄청나게 먹고 둘은 내가 먹는 모습만 지켜봐서 아직도 많이 남은 닭갈비의 양.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저걸 먹기에는 생명에 위협이 느껴져서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끄윽...”
“어? 벌써 다 먹은 거야?”
“예에...”
벌써 라고 하기엔 아니지 않나?
우리가 여기에 들어 온지 거의 한 시간이 다 되간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거의 나 혼자 먹었다.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면 이젠 슬슬 무서워진다.
나를 아프리카 기아쯤으로 생각 하시는 거 아닐까?
이제 와서 난 잘 먹고 있다고 해도 안 믿어주시겠지?
나는 콜라를 홀짝이자 서예님이 손을 들었다.
“이모! 여기 남은 거 싸주세요!”
“네!”
...음식물을 싸준다고?
아니, 그 이전에 그걸 요구한다고?
그런 게 되는 건가?
사장님이 다가와서 그릇을 치운다.
아마, 포장하러 간 것이겠지.
사장님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서비스로 콜라도 한 병 넣어주셨다.
“어...”
예전에 내가 먹고 남은 거 싸달라고 하니까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안 된다고 하던데.
뭐가 다른 걸까.
고개를 갸웃. 거려봤지만 알 수 가 없었다.
아, 혹시 그때 1인분만 시켜서 그랬던 걸까?
나는 비닐봉지를 받아들었다.
묵직했다.
2~3인분의 닭갈비.
최소 나흘동안은 먹을 수 있으리라.
“아, 실수 했다.”
“네? 뭐가요?”
나는 묵직한 비닐봉지를 양손으로 들고는 되물었고 서예님은 계산을 끝마치고 다가오며 머리를 긁적였다.
“옷도 사고, 미용실도 가고, 카페도 가야하는데 계속 그걸 들고 갈 수 없잖아요?”
“저, 저는 상관없는데...!”
“부들부들거리는 팔부터 숨기시고 그런 말을 하세요.”
그렇게 무겁진 않은데. 그냥 팔이 떨리는 거다.
하지만 서예님의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집에 다시 들려서 그거 놓고 다시나오죠, 어차피 시간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요!”
“그래그래, 시간이나 많이 있잖아?”
늦을 것 같으면 같이 노쇼 해버리면 되지!
“아니 그건 역시 좀...“
무슨 노쇼를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시는 걸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비닐봉지를 들어보였다.
“빠르게 가져다 놓고 오죠...!”
어차피 내가 괜찮다 말한다고, 다음 스케줄을 진행 안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젠 알 때 도 되지 않았나?
나는 순순히 포기하고 비닐봉지를 양손으로 든 채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괜히 느적 거려 합방에 늦으면 그것만큼 미안해지는 일이 어디 있을까.
빠르게 모든 스케줄을 끝내버리고 쉬는 것이 차라리 속편했다.
“흐흥...”
오랜만에 배가 가득 차서 기분이 흐물흐물해진다.
뭔가 나른하고, 따뜻한 기분.
그런 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아니내가 아닌가?
네모미님에게 다가가는 걸까?
인상 좋아보이는 후덕한 남성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혹시 도를 아세요 같은 걸까?
등뒤에 귀신이 보인다던가.
내가 지켜야 하는거겠지?
아니, 내가 지키는 것이 맞았다!
나는 경계심을 일으켜 슬쩍, 네모미님과 남성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 혹시 리에라님?”
...?
나?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이는 남성.
송글송글 맺힌 땀이 턱으로 미끄러지고 이내 뚝- 떨어져바닥을 적셨다.
나도 모르게 ‘으-’ 라고 말할 뻔 했지만 최대한 자제했다.
“저, 저 맞는데...”
누구지?
누군데 내 방송 닉네임을 아는걸까.
뒤를 봐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네모미님과 서예님은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뭔가 흐믓하게 나를 내려 봤다.
“어...?”
“그, 팬입니다! 이건 선물이고...! 그리고 혹시 리액션 가능한가요?”
팬이라니?!
나한테 그런게 있었나?!
시청자들은 있긴 했지만! 시럽단도 내 눈으로 목격했지만!
현실에서 내 팬을 자칭하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남성이 내민 검은 색 비닐봉지를 받아들자 묵직했다.
그 안을 확인하자 무언가 악의가 느껴지는 5kg 황설탕과 온갖 과자, 음료수 따위가 들어있었다.
"이, 이게...?"
당황할 새로 없이 지갑에서 오만원 권을 내민 남성.
나는 당황해서 머뭇거렸지만 네모미님이 내 뒤에서 살짝 밀어서 한발자국, 남성에게 다가갔다.
받아도 되는거겠지...?
양손으로 두 눈을 질끔 감고 내민 오만원 권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안쓰러워 보일 정도.
그 모습이 이상한 것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한 번씩 힐끔거리고 지나갔다.
리액션이라면 역시 그걸 말하는거겠지...?
그걸 여기서 하라고...?
이젠 아예 멈춰서서 여기를 주시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기서?
“서연...아니, 리에라 파이팅...!”
뒤에서 속삭이듯 나에게 용기를 주는 네모미님.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오만원 권을 받아들였다.
“이,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신민섭입니다!”
진짜 해야하나...?
해야겠지...?
나는 눈을 질끔 감았다.
지금 분명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겠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시, 신민섭님 오만원 감사합니다...! 멍멍!”
시선이 확 쏠렸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저는 그럼 이만!”
나에게 시킨 주제에 부끄러운지 도망치는 남성.
나도 무거운 비닐봉지 두 개를 들고 뒤뚱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네, 네모미님, 서예님 빠, 빨리가요...!”
이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시선 하나하나가 따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