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방송 세 달째(11)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흐아아...”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그냥 리액션이고 뭐고, 고맙다 하고 말걸!
아니, 그냥 돈을 받지 말 것을 그랬다!
휴대폰을 들어 우리를 촬영을 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이제 그 영상, 혹은 사진이 지워 질 때 까지 밖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리에라님...”
“서연아 뚝 하자 뚝...!”
날 애기 취급하는 둘.
그 모습에 미묘하게 열이 뻗친다.
나도 17살이다!
고등학생의 나이!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도 아니다!
무려 고등학생!
난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저런 아기취급이라니.
분하면서도 둘에게 뭐라고 말한 처지는 아니라 속으로 씨근덕거릴 뿐이었다.
애 옆으로 와 내 볼을 만지작,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이런다고 화가 풀리지는...
풀리지는...
“흐에...”
나는 두 사람의 능숙한 손길에 넘어가 표정을 풀어버렸다.
그래, 이 두분이 잘못한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이 이상 떼쓰는 것이 더욱 더 애같을 것이다.
나는 끄덕이고는 뒤로 돌아 둘을 바라봤다.
“화 풀렸어?”
“...화난 적 없어요!”
어쨌든, 스케줄은 이제와서 소화하기엔 글렀으니 합방이야기나 해야겠다.
뭔지 알아야 준비를 하지 않겠는가
상황극이라면 내 역할에 맞는 대사를 준비해야했고, 게임 합방이라면 그 게임을 미리 설치, 튜토리얼 정도는 끝내놔야 했다.
문득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네모미님...?”
“응?”
네모미님이 내 질문에 방송용미소(10만원)을 지어보였다.
저녁에 같이 합방 하자면서요.
왜 아직도 여기 계세요.
돌아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
서예님처럼 집이 가까운 것도 아닌데 네모미님 나름대로 준비하고 합방에참여하려면 지금가셔도 늦은 감이 있었다.
내가 왜 이걸 지금 떠올렸을까.
나는 네모미님을 걱정스럽게 쳐다봤고, 그런 내 시선에 서예님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집에가시래요, 네모미님 싫데.”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실망이야...!”
그으...
나는 웅얼거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원래 이렇게까지 눈물이 쉽게 나오진 않았는데, 요즘 좋은 일만 있어서 일까.
속이 폭신폭신- 말랑말랑- 해졌다.
약해졌다,살짝만 건드려도 톡 터지는 눈물샘.
요즘 상태가 말이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자주우는 것 같았다.
심지어 말도 제대로 못한다.
커뮤니티에서 한번 본 글 따라 이래서야 참피 같지 않은가.
매번 울기만 하고, 말도 못하는데, 그렇다고 방송이 재밌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 운영은 사실상 서예님이 전부해주고, 하는 것도 없이 받기만 하고......
나는 침울해졌다.
“미안해요...”
다시금 내 주제를 곱씹었다.
손가락을 맞대며 고개를 푹- 숙이자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아니, 그렇게 까지 쭈그러 들 필요는 없잖아!”
“자, 장난이에요 장난!”
둘은 양손을 허공에 허우적 거리며 당황하다 나를 토닥여 줬고, 나는 훌쩍이면서도 속삭이듯 말을 내뱉었다.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그, 그럼 내가 서연이를 얼마나 아끼는데!”
“저, 저도요! 리에라님을 아껴서 이웃도 공구리 쳤어요...!”
“어?”
“네?”
뭔가 들어선 안 될 걸 들은 거 같은데.
나와 네모미님은 멍하니 서예님을 바라봤고, 서예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농담이에요.’라고 말했다.
진짜 농담일까...?
농담이아닌 거 같은데?
나는 네모미님 옆에 착 달라붙어 오들오들 떨었다.
“어허, 그런 눈으로 보면 못써요!”
“네, 네!”
“응...!”
나와 네모미님은 몸을 굳혔다.
그래, 서예님이 우리를 묻어버리진 않을 것이다.
...
앞으로 좀 더 조심해야지...
나는 고양이를 힐끔 쳐다봤다.
고양이는 내가 가져온 비닐봉지를 툭툭- 건들다 서예님에게 다가가 배를 까뒤집으며 애교를 부렸다.
저런 모습 처음본다.
“동물적 본능인가...?”
강자를 알아보는 그런 것 말이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어색하게나마 말을 돌렸다.
“그, 그래서 네모미님 하, 합방은...?”
“어, 응, 그게...”
“말 똑바로 해요 진짜로.”
서예님의 경고, 네모미님의 언어력이 세배정도 늘어났다.
“응, 노트북 가져왔어!”
네모미님의 것으로 보이는 노트북 가방.
그것이 침대 옆에 기대어 있었다.
언제 가져 오신 걸까.
그러고보면 들어오실 때, 가방을 메고 계셨던 것 같기도 했다.
그보다, 노트북을 가져왔다는 뜻은 설마.
“여기서 같이 합방하신다고요...?”
“합방뿐만 아니라 자고 갈껀데?”
...?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하신거지?
“그으...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아요?”
이쁘시다, 섹시하시다.
이런 딸이 외박한다면 나라면 걱정될 것 같았다.
“에이, 걱정안해! 오히려 나보고 잘 보살펴주고 오라더라”
“보살펴주고 오라고요...?”
“응”
“보살핌이 필요하긴 하죠?”
또 다시 애 취급.
이 이상은 못 참겠다.
한 번 말하지 않으면 매번 나를 애 취급 할것 같았다.
“저는 다 컸어요!”
양손을 허리에 얹고는 배를 살짝 내밀며 외친 말.
풉-
내 말에 두명이 입을 가리고 웃는다.
나름 진지하게 말한 건데 저런 반응이라니.
몸이 움츠러든다.
“그럼그럼 리에라 다 컸지!”
“그럼요! 다 컸죠!”
... 말하지 않느니만 못한 것 같은데 내 착각일까?
네모미님이 노트북 가방 뒷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줬다.
이건 또 뭐하자는 건지.
나는 별 생각 없이 포장을 뜯고 사탕을 혓바닥 끝으로 할짝거렸다.
달다.
새콤하다.
내가 먹어본 사탕이라곤 배달음식에 딸려오는 사탕뿐이었는데, 그것과는 질이 다른 고급진 맛!
내가 사탕을 할짝이며 음미하자 뭔가 부모같은 미소로 나를 쳐다보는 네모미님과 서예님의 모습에 이성을 되찾았다.
"아, 아니..."
어쨌든,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지 않은가.
돌고 돌아온 질문.
“그나저나 어떤 합방이에요...?”
이젠 슬슬 대답을 듣고 싶었다.
“이번엔 그냥 평범한 게임합방이야! 개처럼 짖을 필요 없는!”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어쨌든, 상황극 보다야 준비하기 쉬웠다.
그 점 하나만큼은 안도가 되어 바보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슨 게임인데요?”
“배틀 스타디움!”
100명으로 시작하여 최후의 1인이 남을 때 까지 전투를 이어나가는 FPS게임!
요즘은 인기가 조금 식었다지만 여전히 국민게임반열에서 빠지지 않는 게임이었다.
예전에도 해보려했지만 컴퓨터가 좋지 못해 포기했었던 게임.
나는 한껏 상기되었다.
“저, 열심히 할게요!”
“데드어센션하는거 보니까 재능 있던데 이번에는 서연이가 캐리할지도 모르겠네!”
“에, 에이.“
분명 나를 띄어주기 위한 거짓말.
그것을 알기에 나는 그 말을 부정하면서도 몸을 베베 꼬았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기대감.
심장이 칠칠맞게 두근거린다.
합방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제 몫을 하고 말 것이다!
굳게 다짐을 했다.
지금껏 짐만 돼왔지만 오늘만큼은 다를 것이다.
아니, 달라야만 한다!
그렇게 합방이 시작되었고, 나는 여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