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방송 세 달째(13)
““리에라! 리에라! 리에라!””
아람님과 네모미님의 목소리가 겹친다.
부담스럽다.
피 맛이 나는 입술을 할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오른쪽.
31명, 아니 이제 29명 남은 상황.
내가 이번 판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라면 충분히 10위권은 물론이고 잘만하면 우승 까지 노려볼 수 있었다.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내 몫을 해내는 것.
비록 물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간 쌓인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녀님! 만원 후원 고마워요! 맛난 거 사먹일게요!”
내가 게임에 집중하여 입을 열지 않자 나대신 채팅을 읽어주는 네모미님.
고마웠다.
오늘은 자고 가신다고 하셨으니, 가시기 전에 뭐라도 해드려야겠지.
나는 발소리가 멈춘 것을 느꼈다.
다른 곳으로 갔나?
나는 내 생각을 부정했다.
아마도 문 앞.
나는 문을 바라보고는 땀이 찬 마우스를 건드렸다.
머리는 아마도 이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맞을 것이다.
탕-!
피가 터졌다.
10킬 달성.
아마 문 앞에서 뭘 해보려 했던모양.
“후으...”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감에 날씨가 덥지 않음에도 땀이 흘러 내렸다.
어째서인지 나를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서예님과 네모미님의 시선이 따가워.
몸을 살짝 움추렸지만 복병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리에라 대단해! 멋져! 반할 것 같아! 그만 잘해 리에라!”
“에...? 예...? 예?!”
드래곤님의 갑작스러운 급발진.
잠시후 드래곤 님은 자괴감이 잔뜩 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3만원 감사합니다...”
미션이었구나.
뭔가 분하다.
내가 빚을 갚는다곤 했지만 나 지금 잘하고 있지 않나?
조금은 우쭐 거려도 되지 않을까?
“저, 잘하지 않았어요?”
미션 없이는 칭찬도 없는 건가요!
본래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기세가 등등했다.
애초에 지금 성적이 네모미님 0킬, 가람님 0킬, 드래곤님 2킬, 아람님 1킬.
내가 무려 10킬이다!
엄청 높은 점수.
이정도면 칭찬받고 싶었다.
아니, 칭찬받아 마땅하다.
물론 내가 배틀 스타디움을 처음하고, 네모님이 mmr이 처참해서 꽤나 못하는 사람들이랑 매칭 되어 만들어진 점수였지만 말이다.
“칭찬...!”
“리에라 잘해! 대단해!”
“리에라님은 신이야!”
네모미님과 서예님이 드래곤님을 대신해서 칭찬을 내뱉었지만 나는 입술을 삐죽일 뿐.
네모미님과 서예님은 내가 킬을 할 때 마다 과한 칭찬을 해주셨다.
솔직히 이분들은 내가 뭘 하든 칭찬하실 것 같았다.
무례하고도 멍청하고도 미안했지만 칭찬의 무게가 달랐다.
나는 두근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드래곤님의 목소리를 기다렸고, 채팅 또한 나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까지말하는데 칭찬좀해줘라ㅋㅋㅋ
-ㄹㅇㅋㅋ
-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칭찬해달라는데ㅋㅋㅋㅋㅋㅋ
돈은 꿈도 꾸지 않는다.
애초에 시청자가 드래곤님에게 미션을 내줬다면 그건 드래곤님에게 돌아가야 하는 돈이라는 소리였다.
그런 돈을 나눠 달라고 하는 것은 시청자의 뜻에 반하는 일.
나는 지금 그저 칭찬을 듣고 싶었다.
“어..그...”
드래곤님이 말을 더듬는다.
칭찬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아니면 무슨 이유가 따로 있는 걸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은 자리를 옮겼다.
방사능이 한 번 더 조여 오고 있음으로 대피해야 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이 안전지대.
나는 식량과 약품을 챙겼다.
무기는 카구팔 그대로.
폐건물 밖으로 나서자, 연녹색의 연기가사방에서 거리를 좁혀온다.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벗어난 듯 고요했고, 바퀴가 터진 자동차 따위만 보였다.
안전지대가 좁혀지자 사람들이 움직였고, 사람들이 움직이자 교전이 일어났다.
남은 사람 17명.
16명.
이대로 버티기만 해도 탑10은 확정.
나는 힐끔, 드래곤님의 아이디를 바라봤다.
칭찬이 고프다.
분명 나는 잘한 것 같은데 칭찬을 안 해주신다.
시무룩해지면서도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1등을 해내면 칭찬해주시겠지!
“애가 저렇게 바라는데 칭찬 좀 해주지 거”
가람님이 보다 못해 나섰지만 드래곤님은 신경질 적으로 대꾸했다.
“아,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뭘까.
두 분의 대화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방사능 안개사이로 인영 하나가 보였다.
탕-!
빗나갔다.
너무 흐릿하다.
잡으라면 잡을 수는 있겠지만 굳이?
저 정도 거리라면 방사능을 뚫고 오기도 전에 피폭되어 죽을 것이다.
나 또한 급히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데 저런 것에 시간을 빼앗기면 꽤나 위험해지리라.
나는 뛰었다.
아슬아슬하게 방사능 안개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살짝 모자른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가방을 열고 약품들을 확인하자 내 캐릭터 옆에 꽂히는 총알세례.
방심했다!
몇 대는 직격당해 화면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악!”
진짜로 총알에 맞은 듯 내뱉은 비명!
무너진 벽에 급히 몸을 숨기자 총알세례는 멈췄다.
어째서 여기에 사람이 있는 거지?
아직까지 여기 있다는 소리는 그냥 죽겠다는 소리밖에 안됐다.
생존자를 확인하자 12명.
아직 탑 10도 안된다!
여기서 죽어줄 순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잘 맞추는 거지, 잘 피하는 방법 따윈 모른다!
“으아아아...?!”
패닉, 자신감이 가장 높을 때 당한 기습에 혼란이 찾아왔다.
어떻게 하지?
일단은 카구팔을 꺼내들어 봤지만 숨이 가빠짐에 따라 손이 떨렸고, 제대론 된 조준이 불가능 해졌다.
“으아아...”
나는 최대한 사고를 가속시켰다.
1위는 불가능, 저들이 아직까지 여기있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저격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이 상황에 이곳에서 진을 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 여기서 죽는다.
그렇다면 10위를 목표로 삼자.
방사능 안개속 한명은 곧 죽는다.
그러니까, 단 한명만 죽이면 탑10에 든다는 것이다.
네모미님과 서예님이 말리기도 전, 입술을 깨물어 터트렸고, 피맛에 정신이 살짝 맑아졌다.
그래한명만 잡으면 된다.
조준-... 그리고...!
탕-!
피가 터졌다.
“죽였...다...?”
분명 머리에 맞췄는데 킬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어째서...?”
내 캐릭이 모습을 드러내자 총알이 빗발쳤고 나는 죽었다.
회색빛으로 변환 화면.
나는 키보드를 쾅- 내려쳤다.
“이, 이건 사기에요!”
-머리맞추지 않았나?
-핵쟁이네ㅋㅋㅋㅋㅋ
-캠 한번 보자ㄹㅇ 우리가 단체로 눈이 잘못된거냐?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분했다.
“저, 노력했어요...!”
탑10에 들기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정상적이였다면 탑10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으으... 눈물이 고였다.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소매로 눈가를 누르고 있자.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네모미님, 서예님은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봤다.
“또 누구지...?”
나는 서예님을 바라봤다.
고개를 저으셨다.
아니다.
나는 네모미님을 바라봤다.
“나 아니야!”
“...누구지?”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문에 다가가 구멍너머로 바라봤고, 문 너머에는 5만원을 건네줬던 남성이 밝게 웃고 있었다.
...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