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방송 세 달째(15) (39/143)



〈 39화 〉방송 세 달째(15)

밤이 찾아왔다.

아람님과 드래곤님, 가람님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는 몇 번이고 안부를 물어봤고, 나는 그저 괜찮다고 이야기 할 뿐이었다.

그리고 진짜로 괜찮기도 했고 말이다.

...괜찮지 않나?

서예님과 네모미님이 스토커가 왔다 간 후, 내 옆에서  떨어진다.

어느 정도냐고 하면 화장실 갈  마저 따라 들어올 정도.

“...과해요!”

이건 너무 과하다!
보호해주는 것은 좋다!

근데 심하게 과한  아닌가!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내가 버럭 소리치자 양쪽에서 볼을 꼬집는다.

“아파여...”

미안해요...

꼬집혀서 빨갛게 부운 뺨을 양손으로 매만졌다.

내 반항은 2초 만에 끝이 났다.
내가 약한 걸까, 저 두 명이 강한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까불면 안 되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우으으-...”

네모미님의 품에 칭얼거리며 달려들어 안겼다.

네모미님은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고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줬다.

 둘에게는 뭔가 어리광을 많이 부리게 되는데 자제해야 할까.

너무 마음을 열어놓은  아닐까.
너무 민폐인 건 아닐까.

하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포근함, 적의가 아닌, 호의.
이것을 나 스스로 포기하기엔 아쉬웠다.

행복하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먼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물론,서예님, 네모미님이 부담스럽다면 그만둬야겠지만, 이제 와서 내가 먼저 포기하기엔 너무 많은 마음을 열어버렸다.

너무 먼 길을 와버리고 말았다.

좋았다.
불안했다.

하지만 역시 좋았다.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되삼켰던 말을 툭, 흘러가듯 말을 던졌다.

“조, 좋아해요...”

사랑의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누가 남에게 이렇게 까지 신경써주겠는가.
누가 남에게 이렇게 까지 호의를 보여주겠는가.
누가 남에게 이렇게 까지 보듬어 주겠는가.

하여 나는 이 사람들이 좋았다.

나 따위에게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기분 나쁠 수도 있겠으나, 한 번 쯤은 입으로, 말로서 내뱉고 싶었다.

내가 갚을 수 있는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관심을 준다 한들 좋아 하겠는가
내가 호의를 보인다 한들 좋아 하겠는가
내가 보듬어준다 한들 좋아 하겠는가.

그야 말로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상황.

나는 눈을 감았다.

사실 알고는 있었다.
내 이런 생각은 피해망상일 뿐이라고.

손을 뻗어 네모미님의 허리를 감쌌다.

정신과에서 진단도 받지 않았던가.

근거 없는 피해망상.

오히려 네모미님과 서예님이라면, 내 관심에 분명 좋아해줄 것임을 안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내 뜻 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입술이 잘게 떨려 입술을 약하게 씹었다.

‘좋아한다’말하자마자 말해선 안 될 것을 말한 듯이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린다.

쿵.쿵.쿵.

식은 땀이흐른다.
두 분이 나를 때리지 않을 것을 확신하면서도 몸을 떨었다.

솔직히 요즘 이상하리만큼 행복했다.
자고 일어나면 깨어버릴 행복한 꿈 같아서 무서웠다.

그래,  역시 피해망상이었다.

숨이 살짝 가빠져서 심호흡을 몇 번.

나는 눈을 뜨고는 네모미님을 올려다보았고, 네모미님의 표정에서 안쓰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갸웃.

고개를 기울이자 네모미님이 손을 뻗어 내 뺨을 매만졌다.

따뜻하다.
부드럽다.

나는 눈을 살며시 감고 네모미님의 손길을 느꼈다.

“나도 서연이 좋아해.”

“두 분 뭐하세요...?”

서예님이 다가와 우리를 퉁명스러운 눈빛으로 훑었다.

“서연이가 나보고 고백했어!”

“아, 아니 그건 아닌데...!”

고백이라니!

그런 의미는 아니지 않은가!

네모미님의 엉뚱한 소리에 상념이 깨졌다.

이상한 피해망상이나 떠올리고 있었으니 깨지는게 차라리 낫긴 하지만 조금 이상하잖아!

“그...아, 아니에요...!”

"뭐야... 좋아한다는건 거짓말이였어...?"

"아, 아니 좋아한다는건 맞는데...! 맞긴한데...!"

양손을 파닥거리며 뭐라 변명을 해보려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두 분에게 똑같이 좋아한다 말했는데 이 상황은 도대체 뭐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서예님이 깊은 한숨을 한  쉬었다.

딱-!

서예님의 꿀밤이 네모미님의 정수리에 작렬했고, 네모미님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쪼그려 앉았다.

“아파!”

“리에라님괴롭히지 마요.”

“괴, 괴롭힌  없거든...!”

네모미님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대꾸를 했지만 서예님이 주먹을 쥐어보이자 히익- 소리를 내며 쭈그러 들었다.

아까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캐오게 시키던 그 포스는 어디로 간걸까.

과연 동일인물이 맞는걸까.

나는 입을 가리고는 웃어보였고 서예님은  어깨를 붙잡고는 내 눈을 바라봤다.

“자, 저한테도 해주세요.”

“...네?”

“어허!”

아, 아까 하지 않았나?

“조, 좋아해요...?”

반쯤 협박에 의해 내뱉은 말에 생각보다 너무 좋아하신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끌어안은 서예님.

“...!”

몸이 찌부러진다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발버둥 쳐서 겨우 빠져나오고 나서야 숨을 몰아 쉴 수 있었다.

“하아...하아...”

“아, 그 너무 좋아서... 죄송해요.”

멋쩍게 웃어 보이는 서예님.

나는 그 모습에 네모미님 뒤로 가 모습을 숨겼다.

“...일단 노는건 여기까지하죠, 어서 잡시다.”

내 모습에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서예님은 혀를 차고는 침대를 가리켰다.

 말에 네모미님이 먼저 침대위로 올라갔고, 네모미님이 침대를 손으로 툭툭 쳤다.

“어서와!”

벌써 잘 시간이라니,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11시 밖에 안됐다.

아직 이른 시간 아닌가.

 생각을 안다는 듯 서예님이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부터 이사 시작할거니까 일찍 자셔야죠?”

아침부터?

“그렇게 급하게요?”

“기왕이면 빠른게 좋잖아요?”

“그건... 그건 그렇지만...”

“네, 네. 어서 주무세요, 스토커도 이웃도 이제 없답니다.”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 같은 스토커와 이웃을 떠올리자 잘게 떨렸다.

나는 얌전히서예님의 말을 듣고는 바닥에 몸을 뉘였다.

“...뭐하세요?”
“서연아?”

바닥에 누운 나를 보고는 의문을 표하는 두사람.

“어, 침대에 셋이 눕기엔 좁잖아요?”

 분 이서 누우셔야...!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서예님이 나를 흔히 말하는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어 침대로 던져버렸다.

“악...!”
“자, 이리와!”

침대에 데굴. 구른 나를 네모미님이 양손과 다리를 이용해 묶어버렸다.

부드러운 피부 촉감이 분명 좋긴 하지만 이래서야 서예님은 어디서 자는 거지?

내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예님이 침대에 올라오기시작했으니까.

“좁지 않아요...?”

내가 바닥에서 잘게요.

내 말에 대답도 없이 서예님이 나를 끌어안았다.

앞뒤로 끌어 안겨져서 답답하면서도 포근한, 이중적인 감각.

“잘자!”
“잘자요.”

“이, 이대로 잔다고요...?”

정말로...?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체온들, 사람의 체온이 오랜만이라 어색하면서도 마음이 안정된다.

“...그으...자, 잘자요...”

내 얼굴이 달아오른 건, 아마도 착각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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