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방송 세 달째(16) (40/143)



〈 40화 〉방송 세 달째(16)

꿈을 꾼 것 같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붉은 색의 배경도 아니었다.

피가 흐르지 않았고, 생크림 케잌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꿈.

오랜만에 푹 잔  같았다.

잘 잤다.

무거운 눈꺼풀을 떼니 네모미님의 얼굴이 너무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

놀라서 소리를 내질러버릴 뻔 했지만 곤히 자고 있는 네모미님을 깨우긴 싫었다.

애써 소리를 삼키고는 빤히 네모미님을 바라보았다.

나 따위완 비교도 안 되는 희고 보드라운 피부, 만진다면 분명 기분 좋겠지.

무심코 손을 뻗으려는 것을 겨우겨우 막았다.

“으으으...”

사람에게 이상한 충동을 일으키는 피부라니.

...

하지만 네모미님도 나를 막 만지니까 나도 한 번 정도는 만져도 되는 거 아닐까?

딱 한 번만.

그래, 딱 한 번, 잠에서 깨지 않도록, 한번.

나는 유혹에 못이겨 손을 살며시 뻗었고, 네모미님의 뺨을 살살 쓸어내렸다.

“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좋은 감촉.

이렇게 좋은 감촉, 살면서 처음 느껴본다.

솔직히 말해서, 한 번이라는 스스로의 약속은 못 지킬 것 같았다.

중독  것 같았다.

내 피부와 비교하기 위해  뺨을 만져보았지만, 역시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네모미님이 호화스러운 만찬이라면, 내 피부는 말라비틀어진 음식물 찌꺼기 정도.

나도 슬슬 관리를 해야 할까.
저런 피부 가지고 싶다.

"으음..."

하지만 나는 못생겼으니까 피부가 좋아진다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으려나?

“서연아 뭐하니?”

“햐악...!”

놀라서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눈을 뜨고 내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는 네모미님.

“어, 언제 깨셨어요...?”

기척을 못 느꼈는데!

나는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시선을 피했다.

화나 신걸까...?

늘 상 웃어보였던 네모미님이 무표정을 지었다.

“미, 미안해요...”

확실히 남의 허락도 없이 몸을 만지다니, 정신이 잠깐 나갔었나보다.

실례였다.

어떻게든 일단 미안함을 표하고자 몸을 움직여 보려했지만, 앞뒤로 내 몸을 끌어안은 형태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으이구!”

네모미님의 질책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이나 폭력이 아니라, 좀  강하게 꼭- 끌어 안는 것이었다.

“에...?”

“좀  자자!”

체향이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네모미님과 밀착된 상황에 이상하리만큼 무언가 달콤한 향기나 났다.

설탕물보다 조금  진한, 무언가 말이다.

킁킁- 조금 변태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체향이 주는 따뜻함에 조금 더 맡고 싶었다.

“두분 다 뭐해요...”

서예님.

나를 끌어안은 채로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

“오늘 이사 가기로 했잖아요?”

“너도 안 일어났잖아...”

두분 다 좁아 터진 침대에서 나를 끌어안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데 미안했지만, 나도 슬슬 일어나야 할  같았다.

“화... 화장실...”

“아, 다녀와!”

네모미님이 나를 놓아주었고, 서예님이 화장실문 까지 같이 따라가 줬다.

그래봐야 네 걸음 거리였고, 과보호임이 틀림 없었지만 어제 배웠다.

 사람들, 내가 말려서 들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속을 비우고 나서야 조금은 개운 한 표정으로 화장실 밖으로 나왔고, 네모미님과 서예님이 무언가 말을 나누고 있었다.

무슨 대화일까.

물을 꺼내 마시고는 다가가자 서예님이 나를 자리에 앉혔다.

“이삿짐센터 불렀어요, 1시간이 뒤에 온다니까 옷만 갈아입어요!”

“지, 지금 바로요?”

“어제 이야기 했잖아요? 네모미님 닮아 가시네...!”

서예님이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고,  말에 네모미님이빽-!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뭐!”

“네모미님 닮아가면 좋은 것 아닌가요...?”

내 말에 되게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서예님.

내가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네모미님을 닮아 가면 좋은 것 아닌가?

돈도 잘 벌고, 인기도 많고, 예쁘고, 몸매도좋다, 목소리도 좋으신데 성격까지 좋았다.

서예님과 비견되는 치트 캐릭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내 머리를 툭-툭- 건든 서예님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가슴 흔들어 대면서 번 돈, 코인 산다고 다 날려버리는 사람이에요...“

절대 닮아 가면 안돼요!

신신당부, 나는 그 기세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코인에 손대진 않는다.
물론 수중에 돈이 없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다들리거든...”

네모미님이 몸을 부들부들 떨자, 고양이가 폴짝, 네모미님 머리위에 올라갔다.

“내, 내려와...!”

뭐 하는거야!

거긴 올라가는 곳이 아니야...!

 머리에도 자주 올라오더니, 사람 머리가 캣타워 인 줄 안다.

“고양이 마저 날 무시하네...”

그래도  방송에선 여왕 취급 받는데...

중얼중얼, 그 모습이 딱하긴 했지만, 뭐라고 위로 해줄 말이 없어 고양이만 데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어쨌든 옷부터 입어요, 그렇게 있으시려는 건 아니죠?”

어제 자기 전에갈아입은 옷.
늘어지다 못해, 목구멍으로 잘만하면 몸이통과 할 수 있을 것 같은모양새.

가장 아끼던 옷인데, 매번  옷만 입다 보니까 결국엔 이렇게 되어버렸다.

대신, 아낀 옷인 만큼 촉감이 좋아서 잠옷으로 사용  이었는데, 확실히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속옷이 너무 무방비하게 보이니까.

“읏챠...”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는 서예님을 만나러 갔을 때 샀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직도 뻣뻣한 새  느낌, 새  냄새.

까슬까슬.

불편한 몸을 계속 뒤틀며  시간을 기다렸다.

이사짐 센터의 직원들이 왔고, 집안에 있는 짐들을 모두 치우기 시작했다.

옷가지 다 해서 한 박스, 잡동사니  박스, 컴퓨터는 따로.

두 박스 하고 하나 더 인 상황에 굳이 이삿짐센터를 부를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서예님은 신경 쓰지 말라며, 차에 올라탔다.

네모미님과 함께 서예님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애착은 없었다.

이모에게 강제 당하다 시피 정착하게 곳에 불과했으니까.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앗...!”

내 볼을 꾹- 찔러오는 네모미님이 생긋 웃어보였다.

그래,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겠지.

나보고 몸 팔아서 돈 벌어오라는 이모부, 집안일을 모두 떠밀던 이모, 창녀라며 나를 놀리고 때리던 사촌동생들까지.

이젠  이상 볼 필요 없겠지.

네모미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서예집 엄청 좋던데... 나도 그냥 세 들어 살까...?”

“월세로 60주세요, 물론 보증금은 따로인 건 아시죠?"

“비싸거든...”

투닥거리는 서예님과 네모미님의 모습에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이렇게행복할 자격이 있는걸까.

요즘 기분이 이상했다.

모두가 나는 행복해 질 자격이 없다 했다.
그렇기에 모든 부조리함을 견뎠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나도 행복해져도 된다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실제로 행복했다.

불안했고, 행복했다.

이 감정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예님의 집은 가까웠다.

한옥카페를 지나, 버스  정거장 차이.

나는 차에서 내렸고,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언제봐도 크네...”

“와...”

커다란, 고급 빌딩.
통째로 서예님의 소유.

건물이 주는 압도에 집어 삼켜져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서예님이 나와 네모미님의 등을 떠밀었다.

“뭐해요? 들어가요!”

“어...”

나, 이 빚.

갚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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