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방송 세 달째(18)
리에라님이 불편해 하는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티가 나는데 모를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리에라님을 아끼는 이유?
내 것을 아끼는 이유가 따로 있겠냐만,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라면 있긴 했다.
코인으로 돈을 벌었을 때.
사람들에게 크게 데인 후로 한 가지 습관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 과연 나를 등쳐먹을 사람인지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에는 꽤나 불법적인 일도 가미된다.
가령 과거의 행적을 살펴본다 하는 것 말이다.
세 번째 만남이후, 찾아봤다.
리에라, 아니.
백서연이라는 아이는 가여웠다.
불쌍했다.
보살펴 주고 싶었다.
동정심이 들었다.
물론 리에라보다 더 불행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당연히 백서연보다 더 안타까운 이들이 많을 것이다.
사람 하나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고, 그것을 살펴보면 결국 모두가 불행했고, 모두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쩌라는 걸까.
보다 불행하고 보다 안타깝다한들, 내가 마음에 들어 한 아이의 불행과 모르는 이의 불행은 같은 무게일 수가 없었다.
돈으로 알아본 백서연이라는 아이의 과거 행적은 암울했다.
학교폭력, 아동학대, 사기, 방치.
학교에선 왕따였다.
친구가 없었다.
폭언폭행에 시달렸다.
본래의 부모님도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부부싸움이 일어날 때면 언제나 ‘너만 없었어도 진즉 이혼했다’며 구타를 했다 한다.
친척들에겐 부모의 사망보험금을 강탈당했고, 강제적인 노예생활을 했다.
그리고 방치는 내가 관여 하지 않았을 때의 백서연을 생각하면 답이 나왔다.
그 외에도 자잘한 것 여러 개.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무너트리기에 충분한 것들.
나는 내가 알아낸 정보들을 덤덤하게 떠올렸다.
사람인생이 이토록 기구할 수 있을까 싶지만,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게 리에라이자 백서연이었다.
아마도 끝도 없이 낮은 자존감은 과거가 쌓이고 쌓여, 썩어 문드러지고, 곯은 결과이리라.
나는 이런 이들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꽤나 잘 알고있었다.
세상을 탓하기도 지쳐서 결국 모든 원인을 자신으로 돌리는 사람 말이다.
생각보다는 흔했다.
세상 모든 것을 탓하기엔 그종류가 방대 했을 것이다.
그것들을 탓하고자 하면 끝이 없었을 것이다.
탓하고, 원망하기에도 죽을 것 같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 단 하나만 탓하면 되는 것으로 뒤틀어졌겠지.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그것으로 안도하는 사람.
자기파괴적 성향.
나는 메이커 매장으로 들어와 백서연에게 옷을 골라주는 네모미님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이것을 끝으로도와 달라 하기 전엔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끝으로 요구가 없는 이상 무언가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나를 위한 것보단 백서연을 위한 것이었다.
위태로워 보인다.
처음엔 단순히 생각했다.
하지만, 알아볼수록 복잡했다.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 백서연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백서연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다만, 그렇다고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감정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었다.
표출하는 것이든, 받아들이는 것이든.
그리고 백서연은 부정적인 감정의 한계량은 넓되, 긍정적의 감정의 한계는 너무나 좁았다.
무조건적으로 퍼주다보면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터져버릴 것이다.
그 터져버린 감정들이 어떻게 표출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좋게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사실, 내가 나선다면 친척따위 금방 해결해 줄 수 있었다.
강탈당한 보험금?
충분히 되받아 올 수 있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내가 줘도 된다.
그깟 푼돈.
하지만, 내가 그렇게 직접 나섰을 때.
과연 백서연이 견딜 수 있냐 하는 것이다.
“...”
내가 왜 백서연이라는 아이에게 꽂혀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걸까.
잘 모른다.
만난 지 고작해야 이 개월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나는 백서연에게 푹 빠져 있었다.
돈이 많다 해서 함부로 사용하고 함부로 퍼줘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은 뭐란 말인가.
이해가 안 되잖아.
호구라 손가락질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혀를 찼다.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는 네모미님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백서연.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을 알긴 하는 건지, 즐거워 보인다.
그리고 그 즐거움 사이에 깃든 불안감이 보인다.
어젯밤, 백서연이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나눴었다.
네모미님 또한 백서연을 아끼고 있는 것이 보였음으로, 나는 과거와 백서연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본인의 허락없이 그 대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게다가 그 이야기가 그 대상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충분히 욕보이는 행동이었으나, 내가 판단하기에는 중요한 일이었다.
“뭐라고 했더라...”
‘내가 알아서 할게‘였나?
그랬던 것 같다.
그래, 네모미님은 네모미님 나름대로 백서연을 챙겨주려 하는 것이겠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네모미님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맞는 것인지.
둘다 맞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둘다 틀린 것인지.
혼란스러운 머리속을 정리하려 노력할 수록 뭔가 꼬여만 가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동정심, 단순한 호감.
그런 단순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닌 것은 알겠는데.
그 감정을 정확히 명명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사랑?
그건 아니고.
뭐라고 해야할까...
“서예님... 저 어때요...?”
원피스가 어색한 것인지, 쭈뼛거리며 얼굴을 붉히는 주제에 나에게 다가와 ‘나 어때’를 시전한다.
“그... 귀엽네요.”
빈말은 아니었다.
본판이 좋지 않은가.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조금 많이 손봐야겠지만, 이정도면 최상급 원석이었다.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슥슥 쓸어줬다.
예전에 키우던 뽀삐가 생각난다.
18년을 함께 한 애완견.
“아...”
“네...? 역시 뭔가 이상한가요...?”
“아, 아니 그건 아니고요.”
내가 부정하자 네모미님이 의기양양하게 배를 살짝 내밀고 허리에 손을 올렸다.
저 포즈 네모미님이 하니까 열받네.
“어때 내가 귀엽다고 했잖아?”
나도 그것에는 딱히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 다음엔 이거 입어보자!”
백서연을 데리고 다시 탈의실로 들어간 네모미님.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그리곤 절레절레.
아마 적어도 2시간 이상, 백서연은 시달릴 것이다.
심심한 애도를 표하고는, 아까 떠오른 것이 주워담았다.
“...개같네?”
욕이 아니었다.
내가 기르던 애완견 같았다.
그래서 애정이 더 가는 걸까?
내가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인정하자.
나는 백서연, 리에라가 좋았다.
그저 그뿐이었다.
좋아하는데 이유를찾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이유가 있어서 좋아한다면 그것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일까.
배곯을 것 같은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었다.
그냥 간단하게.
쉽게.
‘좋다’
돌고 돌아 그저 한 단어였다.
그냥 그런거 였다.
머리가 조금은 맑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