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방송 세 달째(20) (44/143)



〈 44화 〉방송 세 달째(20)

내 주제에 룰렛에 ‘꽝’을 넣는것은 아닌 것 같아 시청자 투표를 받았다.

그 결과.

40% 과자 및 먹을  하나 먹기
20% 30초간 멍멍 소리내기
20% 30초간 냥냥 소리내기
10% 배 박수
9% 옷 갈아입기
1% 삼분할 댄스

룰렛을 정할 때 까지만 해도 의아했다.
이런 것을 누가 돈내고 한단 말인가.

입술을 툭툭 건드렸다.

1%의 확률을 제외하고, 룰렛한번에 2,000원이 든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긴하지만 못해줄 것도 없었다.

아니 사실 돈도 필요없이, 시청자들이 원한다면 기꺼이해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쉬운 방송이 되지 않을까.

볼을 긁었다.

하지만 매번 그렇듯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짓고 있던 헤실헤실미소가 깨지기 까지 1분도 필요치 않았다.

촤르륵-

[30초간 냥냥 소리내기]

“...냥냥냥...”

부끄럽지만 눈을꾹 감고 냥냥거리자 채팅창이 활발해졌다.

-커여워ㅋㅋㅋㅋㅋㅋ
-아ㅋㅋ 뒤에 고양이 놀라서 둘러본다
-ㅋㅋㅋㅋㅋ

달아오른 얼굴을 숨길 새도 없이 촤르륵- 돌아가는 룰렛.

[30초간 멍멍 소리내기]

“...?”

아직 30초도 지나지 않았다.

냥냥? 멍멍?
냥멍? 멍냥?

“냥멍...멍냥...”

-뭔데그게ㅋㅋㅋㅋㅋㅋㅋ
-개냥이ㅋㅋㅋㅋ
-ㄹㅇㅋㅋ
-진짜 개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

 쉴 새도 없이 다시 돌아가는 룰렛.

[과자 및, 먹을 것 하나 먹기]

나는 서예님과 네모미님이 먹으라며 잔뜩 사놓은 과자하나를 까먹고 룰렛 내역을 확인했다.

“히익...”

-히익?
-히이익?
-아ㅋㅋ

급하게 입을 막고, 룰렛에 따라 입을 열었다.

“냥멍...!”

룰렛내역이 26개가 밀려있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5만원이 넘는 돈!

“멍...멍멍!”

돈 아껴 쓰세요!

이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인데 돈을이렇게 막 쓴단 말인가!

다들 부자들인가!
그런 건가!

냥소리는 시간이 지났기에 멍멍소리로 뜻을 전달해보려 했지만, 세상일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룰렛은 돌아갔고, 룰렛이 돌아감에도 룰렛내역은 점차 밀려만 갔다.

30개가 밀렸다.

[과자 및 먹을  하나 먹기]

나는 과자를 다시 하나 까먹으며 오한을 느꼈다.

과자, 좋아하긴 하는데, 이렇게 계속 먹었다간 식고문이 되지 않을까.

나는 애써 불안감을 떨쳐냈다.

잠깐의 호기심일 것이다.
 이상 룰렛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바꾸고 싶다 해서 바꿀 수 있는 룰렛이 아니었다.

시청자 투표로 정해진 룰렛 아니던가!

오들오들 몸을 떠는 사이 룰렛이 한번 더 돌아갔다.

[옷 갈아입기]

“어... 뭘로 갈아입을까요...?”

-토끼후드티
-토끼
-토끼후드티
-토끼후드

“아, 아니, 왜 하필... 그, 그거 말고도 좋은  많...”

[30초간 멍멍 소리내기]

...

제멋대로 돌아간 룰렛은  말을 막아버렸다.

“멍...멍멍...”

-아 갈아입고 오라고ㅋㅋㅋㅋ
-ㄹㅇㅋㅋ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캠을 잠시 끄고는 옷을 갈아입고 왔다.
토끼귀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귀엽지 않았다.

“테에엥...”

-뭔데ㅋㅋㅋㅋㅋ
-앞으로  옷 입고 방송하자
-ㅋㅋㅋㅋㅋㅋ

“싫어요...!”

이 옷을 입고 방송하라니, 오늘은 네모미님이 부탁해서 입은 거지만 앞으로 절대로 볼 일 없을 것이다.

버리진 않겠지만, 옷장 가장 깊숙한 곳에 봉인될 예정인 옷이었다.

책상위에 과자봉지가 점차 늘어간다.

벌써 12봉지 째.

소분되있던 과자를 모두 먹어치웠다.
배부르다, 하지만 하나  먹어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더 걸렸으니까.

[30초간 냥냥 소리내기]

“냐앙...냥...”

다죽어가는 고양이 소리를 내며 원망스럽게 채팅방을 쳐다봤다.

도대체 얼마나 먹일 속셈일까.

속이 벌써 메스껍다.

힐끔  룰렛내역은 40개를 넘어가는 상황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촤르륵- 돌아가는 룰렛.

그리고 뜬 화면

[배 박수]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
후드티를 살짝 올려 입에 물어 배꼽을 보였다.

그리곤 짝짝짝.

양손으로 배를 두드리는 배 박수.

“브에에...”

입에  후드티를 뱉자  자리로 내려오는 후드티.

-ㅗㅜㅑ
-눈나...
-ㅗㅜㅑㅗㅜㅑ
-조심성ㅇㄷ

“예...?”

뭐가 ‘오우야‘ 인걸까.

딱히 그런 소리들을 만한 짓은 안하지 않았나?

고개를 갸웃 거렸다.
뭔가 노출된 것은 없었다.

내가 직접 캠으로 확인했음으로 확신 할 수 있었다.

그냥 배 일 뿐이었다.

“이상해.”

어깨를 으쓱이며 다음과자를 꺼내왔다.

아까보다 양이 적은, 질소포장으로 꽤나 욕을 먹은 과자였지만, 지금만큼은 오히려 좋았다.

“냥...냥...냥...”

그래, 또 걸렸다.

생각보다 20% 확률은 높았고,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져버린  같았다.

냥냥, 멍멍 거리는 것이 익숙해지다니, 인간 실격 아닌가 싶지만 굳이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촤르륵- 돌아가는 룰렛을 죽은 눈으로 바라봤다.

이번엔 또 뭘까.

[옷 갈아입기]

“오...!”

-아 꽝이네ㄲㅂ
-꽝이 9%인데 그걸 걸리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꽝 아니거든요!”

 이쁜 옷 많아요!
뭐든 말만해줘요...!

뭐가 됐던 지금보단 낫지않겠는가.

-개수작 부리지말고ㅋㅋㅋㅋ
-걍 받아들여라 커여운데ㅋㅋ
-ㄹㅇㅋㅋ

“으윽...”

[30초간 멍멍 소리내기]

“으르렁...”

나름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으나, 그저 귀엽다는 채팅뿐.

속에서 ‘포기하면 편해‘ 라고 이야기 하는 듯 했다.

“멍멍...멍...여러분이 이게 좋아요?!”

버럭, 후드에 달린 토끼 귀를 잡아당기며 어필해보았다.

17살 먹은 고등학생이 토끼귀 후드티라니, 남들이 보면 비웃을 거다!

이젠 흐어엉도, 흐에엥도 아닌, 테에엥 하고 울며 절규해봤지만 시청자들은 마냥 좋아할 뿐이었다.

[그살님이 3,000원 후원!]
-음성녹음

“무, 무슨...?”

갑자기 음성메세지라니?

나는 경계심을 가지고 음성후원을 틀어봤다.

(엄마! 얘 어때? 귀엽지?)
(응 귀엽네?)

...

“다, 당신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목소리나 상황을 보면 진짜 였다!

나는 기겁하며 평소에 사용하지도 않던 욕설을 내뱉었다.

-포상ㅗㅜㅑ
-찐짜냐 저거ㅋㅋㅋㅋㅋㅋ
-ㄹㅇ엄마 뭔데ㅋㅋ

“내, 내시청자들이 이상해...네모미님...서예님...도와줘...!”

음성후원을 하는데 엄마까지 데려 오는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상상이상으로 내 시청자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4연속으로 [과자 및 먹을 것 하나 먹기]에 걸려 과자봉지를 까며 눈물을 뚝- 뚝- 흘렸다.

“후, 후원 멈춰...!”

 라이프는 이미 0에 다다랐다.

촤르륵-

격하게 돌아가는 룰렛.

눈물을 글성거리며 쳐다봤다.

룰렛의 구리 빛 바탕이, 빰! 하는 효과음과 함께 은빛으로 바뀌더니.

다시금 반복되는 효과음으로 금빛 그리고 무지개빛으로 변했다.

가장 낮은 확률에만 적용되는 효과.

그리고 내가 가장 낮게 설정해둔 것은...

[삼분할 댄스]

“...”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걸리넼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밀린 룰렛 내역 89개.
아니, 이젠 90개.

나는 창문을 바라봤다.

...뛰어내릴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