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방송 네 달째(1) (47/143)



〈 47화 〉방송 네 달째(1)

달이 지났다.

내가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좋은 일이긴 하되 의아하다.

그렇게 쉽게 물러날 사람이었다면 내가 이 지경까지 내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시 뒤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진 않을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

“...뭐, 상관없나?”

나는 분명히 말했다.
처신 잘하라고.

내 컴퓨터에 있는 불륜 영상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어깨를 으쓱이고는 고양이에게 츄르를 짜줬다.

맛있게도 먹는다.
별로 맛 없던데, 비리기만 하고.

나는고양이를 빤히 내려봤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인데, 얘도 슬슬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벌써 달째 고양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단또, 장붕, 나비, 네로 등등, 그런 흔하거나 이상한 것 말고, 조금 색다른 이름...

시청자들에게 물어볼까?

입술을 삐죽였다.

제대로  이름이 나오진 않을 것 같았다.
나를 좋아해주긴 하지만 짓궂은 사람들.

분명 말도 안 되는 이름들을 들고 오시겠지...!

 봐도 훤하다!

나도 이제 구독자 수 7만에 달한 어엿한 방송인이니까.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6만 후반 대 부터 구독자 수의 증가폭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멈추는 것이나, 하락하는  보단 낫지 않은가.

...

근데 그래도 역시 나 혼자 생각하는 것보단 집단지성을 빌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입술을할짝 였다.

하악-!

난데없는 고양이의 하악질에 나는 고양이의코를 툭. 건드렸다.

“안 뺏어먹거든...?”

츄르를 주는 도중 내가 혓바닥을 보이면 또 자기  뺏어먹는 줄 알고 하악질을 한다.

꿍얼꿍얼...

내 돈으로 산건데 내가 좀 먹어볼 수도 있지.

딱 한 번 맛본 거 가지고 아직까지 저러고 있으니 고양이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숨을  번 푹- 쉬고는 의자를 끌고 컴퓨터 책상에 달라붙자,  무릎위에서 폴짝 내려가는고양이.

“안돼, 어디가 씁-”

도망치려는 고양이를 잡아채고는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얌전히 있으라는 말에 고양이는 나를 빤히 올려보더니 발톱 없는 냥냥펀치를 갈겼다.

“악...!”

아프진 않지만, 나에게 불만이 많아 보이는 고양이의 표정과 울음 소리에 고양이 수염을 아프지 않게 잡아당겼다.

“그러면 못써...!”

애옹-

그래.

뭐가 애옹 이고 뭐가 그래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방송을 켰다.

몰려드는 시청자들.

100명 돌파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문득 4개월 전이 떠올랐다.
0명의 방송, 그걸 어떻게 했을까.

내가 생각해도 칙칙하고, 어둡고, 재미도 없는 방송이었다.

“후아...”

어려운 걸 하다 쉬운 걸 하면 어려운 것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쓴 것을 먹다 단 것을 먹으면  것은 다신 먹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4개월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관심과 분에 넘치는 사랑에 절여진 이상, 그때와 같은 짓은 두 번다신 못하리라.

“아, 안녕하세요!”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리하
-ㅎㅇㅎㅇ
-오늘 뭐함
-리하!

“오늘 할껀...으음...!”

시청자 수를 바라봤다.

160명가량.

들어올 사람들은  들어왔다.

후에 100명 정도가 더 들어 올 테지만 일단은 이것으로 끝.

나는 무릎에 앉은 고양이의 앞다리 사이를 잡고 번쩍...

“어...”

번쩍...

“으응...?”

번쩍...! 들어올렸다.

“너 왜 이렇게 무거워...?”

고양이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내려놓으라는 듯 애옹- 거리며 항의하는 고양이를 올려보았다.

“...처음에 왔을 때 보다 세배정도 커졌네...?”

과장을 조금 더해서 고양이가 아니고 호랑이라고 해도 믿을  있을 것 같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돼냥이ㅋㅋㅋㅋ
-개귀엽네ㅋㅋㅋㅋㅋ
-핑크젤리는 아니네

“초코맛젤리에요...!”

꼬순내도 나요!

나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는 고양이를 내려놓았다.
집에 처음 왔을 때, 그때의 그 모습은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이 고양이가 한때 유명했던 까미 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 할 컨텐츠...  아니고, 어쨌든 오늘 할 건 고양이 이름 짓기에요...!”

-장붕
-단또
-에바
-뽷뽷이

“와...너무해...”

어떻게 이렇게 예측한 것과 똑같을까.

이정도면 나나 이 고양이에게 악의를 지니신 것 아닐까.
이제는 익숙해진 토끼 귀 후드티를 매만졌다.

“조, 조금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주세요...!”

-시우

“시우는 뭔가 흔한 사람이름 같지 않아요...?”

내가 아는 시우만 해도 벌써 4명이었다.

요즘 유행인 이름일까?

그러고 보면 이름에도 유행이 있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어본  같았다.

 이름 중간에 ‘서’자가 들어가듯 말이다.

-깐깐하네
-ㄹㅇㅋㅋ
-리에라2세

“으으...”

그나저나 이 사람들, 전혀 진지하지가 않다.
나는 머리를 잠시 감싸고는 잠시 생각.

입술을 내밀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타닥타닥- 소리가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리에라 방송중]이라는 방송제목에서 [리에라 고양이 이름지어주면 치킨선물!]로.

치킨의 위력은 대단했다.

시청자가 10명정도 추가됐을 뿐만 아니라 이번엔 조금 진지한 이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호랑이 같이 크니까 호야
-고등어 색이니까 자반이 어떰
-유니콘
-달에서 추방된 뱀
-호떡이
-두디디

중간 중간 뭔가 이상한 것들이 섞였지만 꽤 재밌는 이름들.

호떡이... 어감이 귀엽다.
자반이도 뭔가 재밌고, 호야는 무난했다.
두디디는 뭔가 야한 것 같은 이름.

뭐로 할까.

딱 이거다! 싶은 것은 없었지만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기에 헤실헤실미소를 지어보일  있었다.

-저 웃음 진짜 바보같아보여ㅋㅋㅋㅋㅋ
-ㄹㅇㅋㅋㅋ
-저렇게 웃는 것도 신기함
-세상 바보같이 행복해보임ㅋㅋㅋ

내 웃음이 그렇게 이상한가?

고개를 갸웃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그렇게 이상해요?”

-이상한건 아니고 그냥 귀여움ㅋㅋㅋㅋ

“으으...”

귀엽다는 말, 좋아한다면 이상한 걸까.
솔직히 저런 대답이 나올 줄 알면서도물어봤다.

...자제하자.

고양이 이름부터 어떻게 해결해야지 않겠는가.

두디디, 호야, 호떡이, 자반이.

뭘로할까.

뭐라도 하나가 특출나면 좋겠는데, 다 비슷비슷하니 고르기가 힘들다.

“...시청자 투표할게요!”

역시 이럴 때는 투표다.

내가 어려워하는 것을 시청자들이 대신하게 만들 수 있다니.

얼마나 악질스러운 짓인가!

“...으응... 게시물 올렸어요! 5분후에 투표 종료할게요!”

개인페이지에 올려놓은 투표.

그리곤 5분동안 유튜브 댓글 관리나 하자 생각하고는 내 동영상들을 둘러보았다.

시청자들의 채팅화력이 약해졌다.

전부  고를지 고민하는 걸까?

-이거 투표항목추가되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넌씨눈
-이걸 꼰지르네;
-노잼

“예...?”

내가 뭔가 설정을  하고 올렸나?

다급히 영상을 꺼버리고는 투표를 확인했다.

내가 추가 한 적 없는 항목들이 몇 개나 더 생성되었다.

“에...”

일단 투표를 종료하자는 생각에 투표 끝내기를 누르자 1위가 보였다.

1위 주인님(48표)
2위 천마(29표)
3위...

“...주인님...?”

내 고양이가 내 주인님으로 등극해버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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