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방송 네 달째(3)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고는 잠시 곰곰이 생각을 했다.
이사온지 꽤 됐는데, 얼굴도 모른다니.
내가 먼저 인사라도 건네야 하는 거 아닐까?
물론 지금은 늦은 시간이니까, 내일 말이다.
떡이라도 돌려야하나?
시루떡같은 거...
나는 입술을 매만졌다.
“엣퉤퉤...”
언제 붙어있었는지 모를 고양이 털이 입에 입술에 묻었다.
“으...”
나온 김에 돌돌밀어 청소하는 이름모를 무언가를 생수와 함께 구입해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밤중에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것은 무서우니까.
계단으로 끙끙 거리며 생수를 옮겨나갔다.
세일에 혹해 6개묶음 짜리 두 개, 총 12L를 산 것이 패착이었을까.
내가 들기엔 터무니없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엔 무서웠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엘리베이터 내부 벽면이 거울로 이루어져 있어 한 밤중 혼자 탑승하면 으스스했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 붉은 글씨가 층수를 표기할 때.
엘리베이터의 기동음이 쓸데없이 크게 들렸을 때.
심장이 쿵쿵쿵- 경고음을 보내왔고,하여 밤에 엘리베이터를 사용 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끄앗...!”
계단 세 칸 올라가고 내려놓고 숨 몰아쉬고, 세 칸 올라가고 내려 놓고 숨 몰아쉬고를 반복한 끝에 기어이 4층에 도달했다.
1층에서 4층 까지 오는데 10분이나 걸릴 줄이야.
새삼스럽게 내 체력의 심각성을느꼈지만 그래도 운동은 하기 싫었다.
“다음부턴 배달시켜야지...”
요즘 시대에 배달 안 되는 것이 무엇이 있던가.
물론, 저번 달엔 배달에 중독되어서 돈을 다 써버리고, 한참 설탕물을 퍼마시긴 했지만.
적당히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문앞에 쿵- 소리가 나도록 생수들을 내려놓았다.
"흐으..."
고작 생수좀 옮겼다고 팔뚝에 알이 베겼다.
아마 내일 아침엔 꽤나 고통스러울 테지
으으- 인상을 찌푸리곤 문을 열려던 찰나, 옆집의 문이 끼익- 이상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히익...”
그리고 문틈으로 손만 뻗어나와 바닥을 더듬는 기괴한 모습에 나는 뒷걸음질 쳤다.
차갑다.
등에 문이 닿았다.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기괴한 상황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참 바닥을 더듬던 손이 군만두를 잡았다.
“우어어어......”
이상한 소리.
남자 목소리인지, 여자 목소리인지 조차모르겠다.
다행히 군만두를 집고는 다시 들어가는 팔을 보고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보았다.
“그으, 아, 안녕하세요...?”
그래, 저런 모습이지만 내 이웃이었다.
인사라도 건네자 라는생각에 툭 던진 말.
팔이, 멈췄다.
팔이 들어갔고, 끄응- 소리와 함께 이웃집 문이 활짝 열렸다.
부스스한 머리카락, 진한 다크 서클과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죽어버린 눈.
뭐야 나랑 똑같잖아.
어째서인지, 같은 종족을 만난 것만 같았다.
이유모를 내적 친말감이 상승했을 때, 이웃은 나를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와, 목소리 조차 음침하다.
0명 방송을 할 때의 나보다 심각해 보인다.
나는 움찔 거리며, 조금 다가갔다.
“그, 괜찮으세요...?”
“아, 네...뭐... 오늘이 마감일이라...”
전혀 괜찮지 않아보인다.
눈에 초점이 없잖아...!
그나저나 마감일이라니?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이웃을 티 나지 않게 훑어보았다.
허름한 옷에는 기름기가 묻어있었는데, 음식냄새를 풍겼다.
덩치는 나보다 컸다.
170정도 되려나.
남자일까 여자일까.
생김새를 떠나서, 얼굴 전체를 머리카락으로 가려놓은 것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성별을 유추하기 힘들었다.
무슨 일을 하시는 걸까.
물어보면 실례일까?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다.
급격히 다가가면 불편해 하시겠지.
“그, 그럼수고하세요...”
“네에...”
당근...
내 인사에 군만두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이웃.
나는 호기심과 아쉬움을 달래고는 집 문을 열었다.
근데 방금 당근이라고 말하시지 않았나?
잘못들은 걸까.
머리를 긁으며 집안으로 들어서자 고양이가, 아니...
주인님이 꼬리를 뻣뻣이 세우고는 나를 반겼다.
자기 간식이라도 사온 줄 아는 걸까.
아쉽지만 한동안은 간식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많이 찌지 않았나!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살이 빠질 때 까지 간식은 통제다.
“안 돼! 살 빼! 땍!”
주인님을 지나쳐 냉장고에 생수들을 가득 채워 넣고는, 돌돌말아 청소하는 이름모를 무언가를 꺼내들어 집안에 달라붙은 고양이 털 들을 하나하나 치워나갔다.
“으...”
고양이가 털이 많이 날리는 동물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이정도면 내 기관지가 걱정될 정도였다.
“털 좀 그만 뿜어...”
주인님을 쓰다듬자 골골- 알아들은 건지, 마는 건지.
기분 좋아보인다.
저게 그렇게 기분 좋은가?
나는 남은 손으로 내 머리를 스스로 쓰다듬어 봤다.
“잘모르겠네...”
네모미님이랑 서예님이 쓰다듬어 준건 기분 좋았던 거 같은데, 기분 탓이었을까.
이내, 내가 이상한 짓을 했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우으... 주인님 때문이야...”
아니, 주인님이라고 하니까 아까부터 어감 이상하잖아.
방송 켰을 때만 주인님이라고 부를까?
순간적으로 꼼수를 생각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시청자들의 투표결과를 스트리머인 내가 무시에서 어쩌자는 걸까.
“에휴...”
나는 청소를 하다말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넓고 푹신한 침대.
스프링이 망가지지 않았다.
위에서 움직일 때 마다 끼익- 거리는 불쾌한 소리도 나지 않는다.
변색되지도 않았다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침대.
눈이 내린 후, 순백의 눈 위에서 누워 손과 발을 움직이듯, 파닥 거린 나는 내 배 위로 올라온 주인님을 바라보았다.
“머야...?”
무거우니까 내려와 줄래...?
주인님에게 양해를 구해봤지만 하품으로 대응하는 주인님.
“그래, 그래... 마음대로 해라...”
아직도 자기가 쪼그만 줄 안다.
3배나 커졌으면서 말이다.
배위가 묵직하다.
“으우으으...”
이러다 죽으면 내 사인은 고양이로 인한 압사가 되는걸까.
시답지 않은 망상 한 번하고는 자세를 바꿨다.
침대에 엎어져 등을 보이자, 내가 움직임에 따라 떨어졌던 고양이가 내 등위로 올라탔다.
“기왕 올라간 거 안마라도 해줘...”
생수 사오느라 힘들었어...
꾹꾹이 해줘.
당연하게도 주인님은 내 바램을 배신하고 내 등위에서 식빵을 굽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주인님을 한숨 쉬며 포기하고는 이웃에 대해서 고민했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문신도 없었다.
덩치도 크지 않았다.
분위기는 어두웠지만, 내가 뭐라할 처지는 아니었다.
“으음...”
일단 이사 오기 전에 봤던 그런 이웃은 아닌 것 같아 내심 안도를 했다.
그 이전에 방음이 잘 되서 시비가 날 일도 없지만 말이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적극적으로 친해지진 않되, 인사정도는 나누는 사이는 되자고 말이다.
언제까지고 벽을 치고 살아갈 순 없지 않은가.
일단 내일 한번 제대로 인사를 나눠보자.
“흐아...”
하품 한번.
졸리다.
선물은, 시루떡이랑 수건이 무난하겠지...?
아니면...
군만두 좋아시는 것 같던데, 군만두를...?
"하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