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방송 네 달째(8)
날이 지났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가왔다.
화창한 날씨, 조금 더워 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양손을 공손이 모으고 조심스럽게 거리를 걷는데,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온 어린이들이 한 가득 보였다.
하나같이 즐거워 보이는 얼굴들.
간혹, 곤란한 또는 귀찮은 얼굴들도 보이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모습.
“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렇게 좋은가...?”
아이들이 행복해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조금 가슴속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으음...”
확실히 좋은 날.
거리가 북적였다.
활기찼다.
모두가 오늘을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뭔가를 잘못 먹었는지 속이 메스껍다.
그나저나 분명 여기서 만나자고 하셨는데, 어디계시지?
쫑긋, 쫑긋 귀를 기울이고, 두리번, 두리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아닌가?
오리스튜디오라고 하면 여기 맞잖아.
서예님의 집에 비하면 조금 낡은 건물 앞에서 기웃거렸다.
“분명 이 앞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왁!”
“히엑!”
누군가 뒤에서 나를 놀래 켰고, 나는 놀랐다.
순간,0.4초 정도 멈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고, 나는 원망을 담아 뒤를 둘러보자 배가 살짝 나온 남성이 나를 보고는 실실 웃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구지? 라는 의문은 필요 없었다.
“리에라 님?”
목소리가 좋다.
오리휘파람님이 확실했다.
근데, 목소리가 좋은 것으로 외모가 더 나아 보일 수 있는 걸까.
말을 꺼내지 전엔 그저 흔한 생김새였는데, 조금은 멋있어 진 것 같았다.
“나 목소리에 약한가...?”
“예?”
“아. 아니에요...!”
본인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한 걸까.
조금 부끄러워졌다.
뭔가 계속 웃는 모습이 제대로 들은 것 같긴 한데...
“아우으으...”
내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낄낄 웃으며 말을 건네셨다.
“어쨌든 저 건물이에요.”
오리휘파람, 줄여서 오휘님의 가리킨 손가락에 따라서 오리스튜디오라는 간판의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오리...!”
그래서 ‘오리’스튜디오구나...!
오히려 눈치를 못 챈 내가 이상할 정도로 노골적인 이름.
“임대긴 하지만, 일단 제 소유죠... 일단 들어가죠?”
“네...!”
들어선 건물 내부는 솔직히 난잡했다.
여러 악기들이 복도에 방치되어 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과자 같은 것이방치되어 있었다.
다 마시고 얼음이 녹아 액체를 이룬 컵은 왜 복도에 있는걸까.
그러고 보면 살짝 쿰쿰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아하하... 조금 지저분하긴 하죠?”
이사 온지가 얼마 안 되서...
어색하게 웃으며 복도에 놓인 감자칩을 발로 차 구석으로 치워버린 오휘님.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나는 내가 살고 있었던 집을 떠올렸다.
그것에 비하면 충분히 깔끔한 편이었다.
“아, 아니에요! 이정도면 깔끔한 편이죠...!”
“...이게요...?”
“네?”
“예?”
어째서인지 서로의 말이 헛도는 느낌인데 기분 탓일까.
우리는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을 만들어 냈다.
뚜벅거리는 발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리는 상황에 나는억지로 이야기 거리를만들어냈다.
“그, 왜 하필 저에요?”
“무슨 소리에요?”
“음치가 저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카락이 옆으로 흘렀고, 시야를 가려 손으로 정돈했다.
침묵이 어색해서 꺼낸 말이었지만 정말로 궁금하기도 했다.
방송사고영상을보시고, 내 노래실력에 충격을 먹어 제안하셨다고 이미 듣긴 했지만 그런 이유만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경 안 쓰신다 하셨지만, 사실 방송인에게 신경 안 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은가.
이미지라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미지가 나쁜 나를 선택한 이유를 모르겠다.
음치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나보다 인기 있고, 이미지도 좋고, 음치이신 분을 데리고 합방을 하시는 것이 더 이롭지 않으셨을까.
높은 인기, 좋은 이미지, 음치.
내가 아는 스트리머와 기타 방송인만 하더라도 여럿 생각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두고 굳이 나를?
순수한 의문과 이번 합방이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 알아보겠다 하면 나는 군말 없이 돌아갈 의향이 있었다.
“하아...”
3층을 계단으로 올라갔다고 숨이 차다.
정말로 운동 해야 할까?
“운동하셔야겠네요...”
“힉...!”
생각과 똑같은 말이 들려와서 흠칫 놀라자, 오휘님도 같이 놀라신다.
오휘님은 왜 놀라시는 거 에요...?
어쨌든 목적지에 도착했다.
1층은 창고로 사용하고 있고, 2층은 거주, 3층은 작업실로 사용한다고 설명해준 오휘님이 열쇠로 3층의 문을 여셨다.
“여기서 훈련할거에요, 물론 저 혼자 가르치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꽤나 넓은, 공간.
사방에는 거울이 있어 나와 오휘님을 비췄고, 바닥에는 일반적인 장판이 아닌, 매트 따위가 깔려있었다.
“방음 잘되는 곳 찾는다고 강원도에서 대전까지 올 줄은 저도 몰랐어요...”
마땅한 건물이 없더라고요.
있더라도 임대로 나와 있지않거나.
넋두리를 내뱉은 오휘님의 등이, 살짝 초라해 보여 손을 뻗어 토닥여주고는 한 발자국 내딛어 보았다.
차가운 매트의 감촉이 느껴진다.
사용해 본적은 없지만, TV에서 자주 본 요가매트가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
근데 혼자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무슨 소리일까.
오휘님이 가르치는 것 아니었던가?
의문을 담아 쳐다보자 오휘님이 격하게 손사레를 쳤다.
“에이, 제가 무슨 오해를 받으려고요?”
“오해라니...?”
누가 뭘 오해한다는뜻일까.
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하긴, 오해라는 것이 무섭긴 했다.
내 이미지도 일부러 불쌍한 이미지를보여준다는 오해.
내가 몸을 팔고 합방에 참여한다는 오해.
그 두 개가 쌓여서 이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저도 조심할게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 조심해야한다.
그래서 제 멋대로 오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오해하겠지만...
그것까지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오늘부터에요?”
오휘님을 바라보자 오휘님이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다.
“예에, 도착했어요! 예 3층으로 올라와주시면 되요, 네”
“누구...?”
3층이면 여기 아닌가.
누가 올라오는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하려는 순간, 문이 열리고 여성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번째로 느낀 인상은 날카롭다 였다.
과장 포함해서 맹수의 눈을 지니셨다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두번째로 느낀 것은키가 크다는 것.
대략 170중후반쯤?
반올림 153이라는 내 키가 조금은 서글퍼 진다.
왜 나만 이렇게 작은 걸까.
아직 17살이니 성장 가능성이 남아 있겠지 라며 헛된 희망을 품고있자, 여성분이 나에게 고개짓을 해온다.
“이분이야?”
“네, 네. 리에라님 인사하세요, 1티어 노래강사 최윤아 누님이에요!”
“1티어는 무슨...”
시큰둥한 말투에,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날카롭다.
노려보는 건가?
내가 뭔가 잘못 한 게 있나?
나는 살짝 떨고, 내 소개를 했다.
“저, 저는... 17살...그, 뭐지...?”
뭐라고 해야 할까.
기세에 밀린 듯 한 감각에, 조금 심하게 말을 더듬자 오휘님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상이 저래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 귓속말을 건네줬다.
“그으...대, 대전에 살고... 고등학교는 자, 자퇴했고... 그, 뭐, 뭐지? 인터넷 바, 방송을 하고 있는 리에, 라 에요...!”
잘 부탁드려요!
그래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은 더듬지 않고 크게 말했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너무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얼마나 모질라 보일까.
난 왜 묻지도 않은 고등학교 자퇴이야기를 했을까. 그리고 대전에 산다는 이야기는 또 왜 한단 말인가.
얼굴이 붉어 질대로 붉어진 모습이 사방에 있는 거울을 통해 보였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현섭아 얘 답도 없는데...?”
“에이, 뭘 말을 또그렇게 하세요?”
“아니, 노래실력이전에 자신감이 너무 없잖아?”
대놓고 손가락질을 당했지만, 할 말이 없어 손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누님 인상보고 말 안 더듬을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걸요?”
“...뭐 이새끼야...?”
“뭐 어쨌든, 사람 만들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
“두 달안에 가능해요?”
“빡 쌔게 해도 되지...?”
...뭔가 당사자인 나를 방치하고 불길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