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방송 네 달째(9)
문이 잠겼다,
오휘님이 해맑게 웃어 보인다.
‘어어?’라고 당황할 새도 없이 최윤아님이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호랑이가 다가오는 것 같다 느끼면 너무 엄살이 심한 걸까
“...왜 도망치세요?”
“아, 아니에요...!”
내 뒷걸음질에 마음에 썩 안차는지 인상을 찌푸린 최윤아님은 나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읏...!”
“자, 가만히 있어보세요.”
내 몸을 더듬는 손길에 당황하여 머뭇거리고 오휘님을 바라보자 어색하게 웃을 뿐, 말릴생각은 없어보였다.
“뼈도 얇고... 그리고... 엄청 말랐네...?”
“어, 엄청 까진 아니에요...!”
나는 내 팔을 바라보았다.
팔둑이 말랑말랑한 살이 있었다.
내 말과 행동에 무슨 개소리냐는 듯 나를 내려 본 윤아님의 표정에 잔뜩 주눅 들어버렸다.
“몸무게가 어떻게 되세요?”
“어, 가장 최근에 쟀을 때가... 38.8...?”
40갔다가 화장실 다녀오니까 다시 30대로 복귀되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이마를 짚으며 오휘님을 노려보는 윤아님.
“현섭아”
“아 누님, 본명으로 부르지 좀 마세요...”
“아, 그래 오리야... 너 나한테 고등학생이라고 하지 않았냐...?”
“고, 고등학생 맞는데...”
“왜 초등학생을 데려왔냐...”
완전히 무시된 내 말.
뿡한 표정을 지어봤지만, 윤아님이 나를 바라보자 표정을 관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저 인상은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우...”
근데 그건 그거고, 중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이라니.
내가 그렇게 어려보이는 걸까.
머리카락을 몇 번 쓸어내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벽면 거울로 포즈를 나름 취해보았다.
키는 조금 작긴 해도 어린애 같지는 않았다.
2차 성징도 제대로 왔고, 가슴도 B컵이다.
양 손으로 가슴을 만져보았다.
말랑말랑.
“얘 뭐하냐...”
“냅둬요 귀엽잖아.”
핫,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걸까.
황급히 가슴을 만지작 거리던 손을 내리고, 딱딱하게 고개를 돌리자 오휘님이 무언가 되게 따스한 미소를 짓고, 윤아님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 아니 뭐 죄송할 일은 아니죠?”
어깨를 으쓱이는 오휘님과 다르게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윤아님은 나에게 손가락질 했다.
“일단 이상한 짓 그만두고 노래부터 불러봐요.”
“네...?”
“음치 탈출하려는 거라면서요? 그럼 노래를 들어봐야지”
아까부터 굉장히 신경질 적이긴 하지만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말투와 표정과 행동이 더 없이 익숙해 보였고, 원래 저러신 분이구나 하고 납득했다.
그런데 갑자기 노래라니.
여러 노래를 알고 있긴 했지만, 가사까지 '정확히' 아는 노래는 곰 세 마리나 반짝반짝 작은 별 같은 동요 밖에 없었다.
“어어...”
내가 머뭇거리자 이미 전달 받은게 있다는 듯 먼저 말을 꺼내주셨다.
“동요라도 상관없어요.”
“그, 그러면 조금만...!”
큼큼 목을 가다듬고 손으로 목을 메만졌다.
목상태는 좋았다.
"후아...후아..."
심호흡.
어떻게든 잘 불러야 한다는 압박감과 내 노래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치솟는 부끄러움.
수치스럽다...!
“음, 전주라도 들려줘요?”
내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자 제안을 건네는 윤아님의 말에 고개를 갈하게 저었다.
“아, 아니요...!”
판을 깔아주면 5배는 더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래, 빠르게 끝내자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곰↗세↗마↘리가↗한 집→에↗ 있↘어→!”
“와...”
“현섭아...”
“네...?”
“대가리 박아...”
“네...”
딱 한 소절 만에 반응이 쌔 하여 실눈을 살짝 뜨고 바라보자 오휘님이 엎드려 매를 맞고 있었다.
“아앗...!”
당황하여 얼어붙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
“야, 바른대로 말해, 이거 몰카지? 응? 일부러 저러는 거지? 야, 지금 사실대로 말하면 봐줄게, 야, 야, 자세 흐트러진다?”
“악! 미, 미안해...! 나도 저 정도 일 줄은 몰랐지...!”
작정하고 때리는 것은 아니고, 툭툭 치는 정도에 장난기가 보였지만, 당사자를 눈 앞에 두고 저러고 있으니, 마음이 좋진 않았다.
나도 못 부르는 걸 알고, 오휘님도 내가 못 부른다는 것을 알고 부른 것 아니었나?
어색하게 웃고 있던 내 입 꼬리가 살며시 내려갔다.
표정이 죽었다.
그저 빤히 쳐다보자 윤아님과 오휘님이 흠칫,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어...”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무례인거 아니에요...?”
조금, 아주아주 조금 불쾌하다.
장난일 뿐이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건 나도 같이 알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장난인 것이다.
방송인이라 그런다? 이해한다.
다만, 방송인이라면 초면의 상대방을 이렇게 동의 없이 놀려도 좋은가.
내가 예민한 것이다?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내 짜증이 사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호감도 라는 것이 있다면 방금 5 정도 떨어진 것 같앗다.
“하아...”
한숨 한번.
예전의 나라면 머뭇거리고 바보같이 웃기만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도 내 감정을 타인에게 표현 할 수 있었다.
내가정색하자 오휘님이 어색하게 머리카락을 긁적였고, 윤아님이 오휘님의 어깨를 툭- 밀었다.
“그, 죄송해요, 장난이었는데.”
“새끼야... 니가 처음부터 기선 제압하라며...”
서로를 탓하는 모습에, 무슨 상황인지 그려져 미묘하게 웃음을 보였다.
아마 내 기선을 제압하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었다.
과하게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죄송합니다...”
“어... 저도 미안해요.”
“괜찮아요.”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저 괜찮다고 말했을 뿐.
둘이 곤란해 하는 것이 느껴진다.
몸짓하나에, 손짓하나에, 목소리 톤에, 그런 것이숨김없이 드러났다.
자, 기세가 내 쪽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이 기세를 가지고 뭔가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번 같은 경우는 다신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조심해주세요...”
적어도 나도 뭘 알고, 혹은 나와 친해진 이후에 저런 식의 행동을 취했더라면 나도 이렇게 까지 정색하진 않았을 것이다.
“근데, 이제 뭐할까요?”
노래를 불렀다.
분위기가 축 쳐지는 것 외엔 소득이 없었다.
“뭐어... 보컬트레이닝 해야겠죠?”
“아...”
"어..."
"음..."
...
어색하다.
괜히 정색했던 걸까.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봐서 이야기를 제대로 못하고 있지 않은가!
“으으...”
찝찝하다.
그냥 조금 참을 걸 그랬다.
어차피 방송인이라 하면 과장되고 짓궂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잘 알고 있지 않던가.
본심이 아니셨을 것이다.
그저, 하나의 리액션이었을 텐데.
그런 것에 발끈 해서는 주제에 안 맞게 괜히 화를 내버렸다.
후회스럽다.
입을 달싹거렸다.
무언가 말을 이어나가고 싶지만 너무 어색했다.
이럴 때 의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그, 험하게 다루셔도 되요...! 아까 같이 그러시지만 않는다면...!”
나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
눈을 꾹- 감고 양 팔을 벌렸다.
“”예?“”
두분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곧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고,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
당했구나...
나에게 다가오는 둘을 보고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