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방송 네 달째(10)
기본적인 호흡법을 배웠다.
기본적인 발성법을 배웠다.
우선은 두 가지.
이 이상은 배워봤자 내가 흡수하지 못한다.
아니, 지금 이 두 가지 중 하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호흡법은 둘째 치고, 지금 내가 내는 목소리는 유명방송인의 목소리를 따라하는, 그런 투였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 방송인의 이쁜 목소리를 닮고 싶어서 몇 개월이고, 연습했기에 이젠 익숙한 발성과 목소리.
그런데 윤아님은 내 말을 듣고 기겁하셨다.
사람에겐 자신에게 맞는 목소리가 있다는 조언.
내가 자주 목이 아픈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 말하시곤, 이제라도 발성법을 바꿔보라는 제안을 했다.
“으음...아자차카마바사...”
배운대로의 발성법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어봤다.
조금은 음이 내려간 것 같았다.
내 목소리였지만 내 목소리가 낯설었다.
이제 와서 발성법을 바꿔보라 해도...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에 힘이 없었다.
“으아아...”
목만 관리하고 호흡법만 바꾼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하시며 스트레칭을 시키셨다.
기본적 체력을 기르자며 운동도 시키셨다.
원망을 담아서 내일부터 안 나온다곤 했지만 결국 내일 아침, 비비적거리며 오리스튜디오로 향하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우으으... 함부로 합방 잡는거 아니야.”
그치?
집에 들어오자마자 주인님을 끌어안고 뒹굴었다.
골골골-
주인님이 좋아보인다.
나는 그런 주인님을 쓰다듬어주며 생각에 빠졌다.
내가 했던 합방들은 확실히 너무 나에게 친절하고, 너무 과할 정도로 좋은 기회였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합방이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합방마저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조금 짓궂은 장난이 있긴 했지만, 가르치는 것도 성심성의껏.
"응."
열심히 가르치셨다.
“내가 못 받아 먹어서 그렇지...”
내가 정색한 이후, 못된 장난은 치지 않으셨지만 내가 진도를 못 따라 올때 마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진심으로 내 머리를 후려치고 싶어 하는 그 부들거림.
변명을 하자면 내가 교육에 집중 못한 것 중 절반이상의 이유가 그 부들거리는 주먹에 신경쓰여서 그런 것이다.
무섭지 않은가.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어하는 손이 옆에서 부들거린다면 말이다.
“우...”
주인님이 품에서 빠져나가려 버둥거리는 것을 더욱 꼭 껴안았다.
“나 노래 왜이렇게 못부르지...?”
왜 노래를 못 불러서 이고생을하고 있을 걸까.
아니, 그런 그렇고 그 사람들은 왜 숫자를 못세는걸까...
“하나, 둘, 셋, 네, 다섯...”
내가 아는 숫자가 맞다면 이것 일텐데.
하나, 둘, 셋, 셋반, 셋반에 반은 무슨 소리일까.
다리가 후들거린다.
4층까지 기어서 올라온 것 같았다.
밤이라 엘리베이터를 못타는 것이한이라면 한일까.
아마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이 건물에 지박령이 되겠지.
엘리베이터를 못타서 한이 쌓여서...
뭔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나는 진지했다.
“피곤해에...”
고양이가, 아니 아니, 주인님이 발버둥치다 기어내 내 손가락을 깨물었다.
따끔-
피가 방울이 맺혔고, 주인님이 미안하다는 듯 피를 핥아줬다.
삭- 삭- 고운 사포로 상처난 곳을 쓸어 내리는 느낌.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미안해 할 거면깨물지를 마...아파.”
상처부위를 핥지 말고 츄르나 먹으라며 꺼내서 짜주고는 퀭한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5월 5일.
어린이날.
분명 좋은 날인데 왜 이렇게 지치고 힘들까.
“끄아앙...”
몸을 뒤틀며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방송을 해야한다.
지치고, 힘들고, 괴로워도 방송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리는 이제 사용 못할 것 같아 팔로 책상 앞까지 기었다.
“우아...우아...”
이젠 더 이상 사람의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옹알이 비슷한 비명 따위.
남은 기력을 쥐어짜서 컴퓨터를 켰다.
딱 거기까지.
내 체력은 다했다.
손만 뻗어 툭툭- 방송을 키고 게임은 못할 것 같아캠을 켰다.
오늘 방송은 내 죽는 날이었다.
“리...하...”
-? 얘 죽어 가는데
-뭐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하?
-뭐하냐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 옷 쓸려 올라 갔어요 등짝 다보여
방송은 컴으로 키되, 채팅은 엎어져서 휴대폰으로 확인했다.
“우, 운동을 했어요... 그 사람들 숫자 못 세...”
-아ㅋㅋ
-자자 마지막! 마지막 한번! 자 진짜 마지막!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눕방이라고 신고당하것다
-일어나여 겜해야지
“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이상으로 리에라 생존시, 신고 였습니다...”
방송킨지 4분만에 내뱉은 방종 선언.
순간적으로 발작이 일어나는 채팅창을 뒤로하고 손을 뻗어 방송을 종료했다.
이상태로는 뭔가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게임이라 하더라도 체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계속 방송을 켜봤자 내 엎어진 모습만 보여줄 뿐이었다.
톡-!
톡의 알림에 나는 끄어어 괴성을 내며 휴대폰을 바라봤다.
오휘님이다.
-복습하세요! 내일뵈요!
“안갈거야...”
투정을 부렸다.
그렇지만 내일이 되면 결국 가야겠지.
잠을 자려면 침대로 올라가야하는데 만사가 귀찮다.
그냥 바닥에서 자자, 겨울날 베란다에서도자봤는데 이정도면 충분히 잘만 했다.
“으아아암...”
길게 내뱉는 하품,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졸려.
“...아.”
이상태로 자면 안될 것 같다.
기어가 벽을 짚고는몸을 일으켰다.
“씻어야지...”
운동 때문에 전신이 땀으로 젖었다.
지금은 말라서 티가 안 나지만 찝찝하지 않은가.
온수가 나오니까 씻을 맛이 있었다.
작년 겨울엔 찬물로 씻었다가 동상도 걸렸었는데...
어차피 옷도 갈아입을 거니까, 입은 채로 샤워기 앞에 섰다.
온수를 켰고,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굵은 빗줄기 같은 물이 내 몸을 적셨다.
“따듯해...”
옷이 피부에 달라붙었지만, 상관없었다.
옷을 벗었다.
거울을 바라보았다.
꽤나 많은 흉터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손으로 허리를 쓸었다.
길게 자리 잡은 상흔.
손을 내려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아직도 화상자국이 남아있었다.
다시, 손을 올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리곤 뒤로 돌았다.
보이진 않지만, 뒷목부터, 등, 엉덩이까지.
온갖 자잘한 흉터들.
앞의 상처들과 달리 이젠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구별도 못할 것이었으나 새삼 기분이 이상했다.
왜 이런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드래곤님, 네모미님, 서예님, 가람님, 아람님, 그리고 이번에 오리휘파람님까지.
항상 역겹다 소리 듣던 나에게 많은 사람이 이유모를 호의를 표하고 있었다.
정말로 단순히, ‘그냥’일까?
아니면,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아아...”
생각하기도 싫다.
대충 비누칠만하고, 물로 씻고나와서 바닥에 엎어졌다.
침대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주인님 나 좀 침대로 옮겨줘...”
주인님은 씻고나온 나를 보고는 다가와 내 머리에 텁- 앞발을 올렸다.
그리곤 슥슥-
“쓰다듬지마아아...”
으으... 반항하고 싶은데.
잠이 쏟아진다.
반항 포기.
나는 고개를 떨궜다.
“하으... 잘자아...”
눈을 감았다.
예전의 꿈은 꿨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오리스튜디오로 힘없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