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방송 네 달째(12)
어색한 걸음을 함께하고 몇 분이 지났을까.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다행히 이번엔 동시에 말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어, 여긴 어쩐 일이세요...?”
기본적인 질문.
혹시 이 근처에 사시는 걸까?
내 질문에 윤아님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어... 리에라님 교육하러 먼저 도착해 있었어요.”
다치셨다 해서 그냥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나를 만났다는 소리.
“아앗...”
헛 걸음 하셨구나.
하지만 나라고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의미를 담아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렸지만, 주제에 맞지 않게 무거운 목발에 의해, 푸하- 바람을 내뱉었다.
목발 무겁다...
“그냥 업히실래요?”
윤아님의 발언에 나는 잠시 멈춰서서 눈만을 껌뻑였다.
“예...?”
“그냥 제가 업는게 더 빠를 것 같은... 아니 그냥 차를 타죠?”
우리 왜 걷고 있는거죠?
스스로 말하다 뭔가 이상했는지, 나에게 차를 권하는 윤아님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도, 돈아껴야해요...”
그래, 월 초인데 벌써부터 지출이 심했다.
이렇게 하다간 또다시 설탕물행이 될 것이기에, 꽤나 격한 거부의 표시를 보이자 윤아님이 헛웃음을 지었다.
“제가 낼게요, 첫 만남의 사죄의 의미로...!”
“앗... 정말요?”
평소 같았으면 기겁하고거절했을 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혹했다.
다리가 아프다, 무언가 주사를 놔준 것으로 통증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아직 아팠다.
게다가 윤아님은 잘 못 한 것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차감하는 식으로 차를 얻어 탄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닐까.
물론, 어제의 그 일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만큼은 모르는 척 넘어가자.
택시를 부르고 고작해야 6분 정도.
나는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다.
“...좋은 곳에사시네?”
“헤헤... 뭐... 그렇게 됐어요...”
입을 살짝 벌리고 빌라를 올려 보는 윤아님의 모습에 살짝 배를내밀었다.
자신감의 표시.
당연히 내 건물도 아니고 내가 정상적으로 입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집!
“부자시구나...”
“아, 아니 그런건 아닌데...”
“으음,일단 푹 쉬세요... 저도 슬슬 가봐야 해서”
무언가 되게 미묘한 말투와 함께 나에게 약 봉지를 건네주고는 뒤돌아 다시 택시를 타고 가버리는 윤아님.
“뭐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무언가 되게 부러워하는 듯, 시기나 질투에 가까운 시선.
살짝 내민 배를 도로 집어넣고는 입술을 질겅거렸다.
무언가 살짝 불안한 느낌.
뭔가 조금 단단히 오해를 산 모양이다.
“으으...”
애써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섰다.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던가.
솔직히 윤아님의 첫인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물론 그 나쁜 첫인상으로 사람을 차별한다는 소리는 아니되, 굳이 오해를 나서서 풀 필요는 없으리라.
한숨을 푹-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방금 전 까지 사람이 있었는지, 미묘하게 남은 체향.
향수를 뿌린 걸까.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지독한 냄새.
“으...”
아프니까 예민해진 것 같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짜증이 난다니.
벽면에 설치된 거울너머로 내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꾹- 미간을 눌러 인상을 피고는 애써 웃어보였지만, 입꼬리가 살살떨린다.
“우...”
이젠 아픈 것보단 발목이 저리다.
목발을 끼고 있던 겨드랑이도 많이 아프다.
“아파아...”
괜스레 칭얼거려보았다.
이런 소리하면 식기가 날아왔는데, 여기서 그런 걱정없잖아.
칭얼거림정도는, 남들이 안보고, 안 듣는 지금 정도라면 해도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내뱉었지만, 너무 그...
징징거리는 것 같지 않은가.
4층, 도착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옆집을 바라보니 군만두가 또 배달 와 있었다.
“살아는 계시겠지...?”
군만두는 생각보다 영양분이 풍부했다.
게다가 영양제도 챙겨 드시고 계시니까.
적어도 영양실조가 오는 일은없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주인님이 나를 바라보고는 애옹애옹- 시끄럽게 울어댄다.
“쉿”
애옹애옹
“조용히 해줘 머리 울려...”
깁스가 감겨있는 다리에 머리를 박는 주인님.
그 모습에 또 다시 한숨을 쉬었다.
오늘만 벌써 몇 번 째 한숨을 쉬는 걸까.
일일이 세기에도 힘들 정도.
“자자, 츄르줄게...쉿”
츄르를 꺼내서 밥그릇에 짜주니 고개를 파묻고 핥핥거린다.
내 걱정보다 츄르가 먼저라는걸까.
시무룩-
괜히 어깨가 축 쳐진다.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를 키고는 커뮤니티에 들렀다.
어차피 또 이상한 오해를 하며 욕설을 하고 있던가,아니면 아예 관심도 없던가 둘 중 하나겠지만 그래도 여기만큼 사람들의 반응이 확실한 곳이 없었다.
내 닉네임으로 검색 후, 마우스를 몇 번 굴리자 이상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ㅈ에라 학폭 가해자인 듯?]
ㄴ??
올 린지 3시간이 지나가고 있는데댓글은 물음표 하나 뿐.
흔히 말하는 묻힌 글이었지만, 학교폭력가해자라는말이 거슬렸다.
오해를 하더라도 뭔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것이 있어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몇 번이고 글을 뒤로 돌려봐도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허무맹랑한 말도 어이없는데, 그 말의 출처를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뻘 글일까?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기엔 내가 다녔던 중학교의 이름이 정확히 적혀있었다.
방송에서 밝힌 적 없는 정보.
그 뜻은 명백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 정보를 아는 사람이 정보를 풀었다.
그것도 악의적으로...
입술을 빠득- 소리가 나도록 씹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를 정확히 지목할 수있다면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학교폭력 피해자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가해자라니.
악의가 다분했다.
“으음...”
다만, 지금 내가 대처할 수있을 만한 것은 없었다.
일단 이 말의 출처를 모른다.
그리고 이 글은 이미 묻힌 글이었다, 굳이 꺼내서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돌고 돌아 내 이미지가 나빴다.
이미지가 나쁜 것과 해명하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일단 이미지가 나쁘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얌전히 손가락이나 빠는 것.
“우...”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이제야 행복해지려는데.
왜 이런 악의적 소문을 퍼트리는 걸까.
의자에 등을 기대자, 뒤로 쭉 넘어갔다.
두통이 찾아와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비닐봉지에서 약을 꺼냈다.
진통제,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알이라고 했지만...
여섯 알을 꺼내어 입에 머금었다.
물은 필요 없었고, 침으로 억지로 삼키자 약의 거친 부분이 목을 긁어냈다.
“...짜증나...”
이모도 그렇고, 왜 내가 행복해지려하면 방해하는 걸까.
억울해서 눈물이 뚝- 뚝-흘렀다.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는 또 다시 한숨.
몇 번의 심호흡 끝에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심각한 일은 아니다.
출처를모르는 어떠한 것이 나를 음해하고 있었지만, 화력은 강하지 않았고 금세 묻혀버렸다.
무엇보다 진짜로 심각한 것이었다면 서예님이 연락을 주셨을 것이다.
“일단, 방송키자...”
머리가 좀 헤롱헤롱하긴 한데.
그렇다고 방송을 거를 순 없지 않은가.
자세를 바로잡고, 방송을 켰다.
“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