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방송 네 달째(13)
살짝 어지러워 머리를 짚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눈을 떠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리하
-안색 왜 그럼
-???
-ㅎㅇㅎㅇ
학교폭력의 학 자도 나오지않는다.
역시 괜한 기우였을까.
평소 그대로의 채팅창에 안도했다.
애써 기운 내며 박수를 짝-! 소리 나게 치고는 웃어 보였다.
그런 엉터리 글에 신경 쓴 것이 바보 같아졌다.
-오늘뭐함?
“오늘은 그냥 노가리나 할까요...?”
내 방송이 이상하게도 게임을 하면 오히려 시청자가 줄어든다.
오히려 게임방송보다 캠을 키고 잡담이나 하는 것이 더 반응이 좋다
주력 컨텐츠보다 더 인기 많은 노가리방송이라니, 뭔가 잘못된 것 같았지만 별 수 없었다.
그저 더 열심히, 재밌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아침에 리에라님 일진이라고 글 올라왔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앗...?”
이분들도 봤구나.
몸을 살짝 떨었다.
단순히 묻힌 글이라고 판단하기엔 너무 일렀던 걸까.
내가 무언가 나서서 오해를 풀고자 하기도 전에 시청자들이 나섰다.
-리에라는 그럴 능력 없음ㅋㅋㅋㅋㅋㅋㅋㅋ
-맞고 다니지만 않으면 다행일 듯ㄹㅇ
-ㅋㅋㅋㅋㅋ
-리에라는 아가야 그런거 못해
-리에라님 팔뚝 보여주실?
“예, 예...?”
일단은 보여 달라니까 보여주긴 하겠지만...
소매를 걷어 올려 팔뚝을 보여주자 반응은 한 층 더 격해졌다.
-뼈밖에 없네ㅋㅋ
-저걸롴ㅋㅋㅋ일진ㅋㅋㅋㅋㅋㅋㅋ
-리에라 성격에 학교폭력ㅇㅈㄹㅋㅋㅋㅋㅋㅋ
-좀 거짓말을 해도 그럴 듯 한 걸로 해라ㅋㅋㅋㅋㅋㅋㅋㅋ
뼈밖에 없다니.
나는 내 팔뚝을 만져보았다.
말랑말랑.
무언가 자존심상해서 힘을 줘봤지만 여전히 말랑말랑했다.
-운동좀해라ㅋㅋㅋ
“우, 운동하고 있거든요...!”
-오오
-대단해대단해
“우긋...”
학교폭력논란은 진짜 별거 아닌 헛소리라는 듯 무시해버리는 시청자들.
나 혼자 괜히 궁상 떤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것과 별개로 나를 놀리는 것은 조금 분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지.
“그으... 고마워요...!”
나를 믿어줘서 감사했다.
-그런의미에서 토끼후드티ㄱ
"안 고마워요...“
토끼후드티라니.
그 부끄러운 모습을 또 시킨다니.
악마와 다를 게 무엇인가.
“진짜로 그걸 원해요...?”
차라리, 차라리...!
노출도가 조금 있는 옷을입고 말지!
“다, 다른건 뭐 없어요...?”
-응 입고와
-없어 안 바꿔줘 입고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진짜요...?”
-ㅔ
황망한 표정으로 채팅방을 바라봤다.
믿어 주는 건 정말 고맙지만, 어째서인지 조금 밉상이다.
“...그럼 갈아입고 올게요...”
정말 싫지만, 정말, 정말 싫지만.
그래도, 저렇게까지 말하니 해야지 별수 있겠는가.
캠을 끈 후, 한숨을 쉬고는 절뚝이며 옷장을 열었다.
가장 아래 깔려있는 토끼후드티를 꺼내 갈아입었다.
주제에 안맞게 너무, 심각하게 귀여운 옷.
심각한 거부감에 두통이 한 차례 더 몰려왔지만 참아냈다.
다시, 절뚝거리며 의자에 앉고는 캠을 키자 쭉 올라가는 채팅창.
하나하나 읽기에도 벅찰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 살짝 질겁했다.
-커여워ㅋㅋㅋㅋ
-도대체 저 옷은 어디서 파는 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움
-ㄹㅇㅋㅋ
“귀엽지 않거든요...”
애써 부정해봤지만 시청자들은 나를 그저 귀엽다고 말할 뿐이었다.
“17살이 이런 옷 입는거 이상하지않아요...?”
나름 정색하고 내뱉은 말이었지만...
-응 안이상해 맨날입어
-ㅋㅋㅋㅋ누가 이상하다고함
-귀여워귀여워귀여워귀여워
“으윽...”
분명 나를 놀리시는거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후드에 달린 토끼귀가 대롱거렸다.
-후드 쓰면 만원
“전 그런 미션 안...해...요오...”
거절하려다 이번 달 돈 쓴 것이 많다는 것을 떠올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후드를 조심스럽게 뒤집어 썼다.
차마 채팅방을 못 보겠어서 토끼귀를 잡고, 꾹- 내려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우우우...”
슬쩍, 슬쩍 확인할 때 마다 올라오는 낯간지러운 말들.
칭찬이었다.
분명 기분은 좋았다.
근데,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처음으론 걱정이었다.
학교폭력루머에 대한 걱정.
시청자들이 진짜로 믿으면 어쩌지에 대한 걱정.
두 번째론 안심이었다.
나를 믿어주는 시청자들의 모습에 대한 안심.
세 번째로는 당황이었다.
토끼귀 옷에 대한 당황.
네 번째로는 부끄러움과 기쁨.
나보고 귀엽다고 해준다.
그것은 분명 가슴을 간질이는 좋은 말임은 틀림 없었지만 문제가 있다면 이 감정 변화가 너무 짧은 시간동안 일어났다는 것이다.
감정하나에 적응하기도 전에 밀려오는 감정들.
걱정, 안심, 당황, 부끄러움과 기쁨.
그것들이 한군데 모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되게 야시꾸리한 감정이 가슴을 통통 두드렸다.
“으에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내 어휘력에 문제가 있는 걸까.
여전히 토끼귀를 잡고 꾹- 누른 채로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아무리 중졸이라 하더라도 국어 점수 만큼은 80점이 넘었다.
국어만큼은 자신있었는데...
...
일단 그건 뒤로 재쳐두고,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할 일이 있지 않은가.
“여려분...?”
-ㅖ?
-네?
-????
“근데 혹시 그 학교폭력 루머 본거 출처아시나요?”
-신경 안써도 될꺼 같은데
-굳이 링크 찾는 거면 방송페이지에 올려놓음 ㄱㄷ
-걍 관종임ㅋㅋㅋ
“그래도 아예 모르는 것보단 나을 거 같아서...”
개인 방송페이지를 새로고침하자 몇 개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게시글중 하나를 클릭하자, 링크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무슨 사이트인지, 링크를 읽어보니 트위...
“‘그’새 네요...?”
파란색 새.
-ㅇㅇ
-그래서 신경쓸 필요 없다한거
-들어가기 전에 눈갱 조심
--트-
“어...”
상상이상으로 반응이 나쁘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써놨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는걸까.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익숙한 프로필이 보였다.
“읏...”
-???
아는 얼굴이었다.
당황스럽다.
상습적으로 나에게 돈을 뜯어가던, 심심할 때마다 나를 때리던, 그리고 나에게 식판을 뒤집어 엎던, 흔히 말하는 학교폭력의 가해자.
흔한 말로 일진.
그 잊을 수 없는 얼굴이 프로필로 당당히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진이 가장 최근에 남긴 글을 바라보았다.
[리에라 인가 걔 학교폭력 가해자임 애들 돈 뜯고 심심할 때마다 때리고 다니고 식판까지 뒤집어 엎었음 근데 요즘 뻔뻔하게 방송하더라? 백서연 보고 있냐?]
글자수 제한 때문인지, 그 아래로 이어지는 글.
[걔 진짜 쓰레기임 원조교제까지 하고 다니고 아무든 학교에서도 안 좋은 말이 많았음ㅠ]
[근데 집이 부자라 학교에서 어떻게 못해서...]
#공론화 #학교폭력 #인방 #가해자 #리트윗해주세요
더 읽을 필요는 없겠다.
좋아요 39, 리트윗 11짜리 글.
가해자가 피해자를 가해자로 몬다니.
어이가 없어 한쪽 입꼬리를 올려 비웃어보였다.
그냥 자기들 끼리 없는 말 지어내고 물고 빨고 하는 꼬라지가 역했기에 창을 닫았다.
“별 병신같은...”
-ㅗㅜㅑ
-포상ㅗㅜㅑ
-더해줘더해줘더해줘
“...이 변태들아...”
시청자들의 정신 나간 반응에 한숨을 푹 쉬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저런 글에 굳이 반박할 필요성을 느끼지못하겠다.
애초에 저런 글에 걱정하고 억울해했다는 것에 스스로가 창피했다.
“... 그렇다고 봐준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모욕은 그럴수 있지만, 내 본명과 내가 다녔던 학교까지 언급했다.
무슨 생각으로 싸지른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처럼 당하고 살지만은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