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방송 네 달째(14)
더 보기 싫으니 나중에 따로 고소를 때려버리고, 지금은 방송에 집중하자.
헤롱거리는 것이 살짝 맛이 갈 것 같지만, 뭐 어떤가.
참아낼 수 있었다.
“으어어...”
아마도...
-눈 풀리는데????
-초점이 없어ㅋㅋㅋㅋㅋㅋ
“저 멀쩡하거든요...?”
긴장이 풀려서 인지, 몸이 축 늘어진다.
나른 거리는 것 이상, 무언가 묵직한 것이 몸을 짓누른다.
졸음이 쏟아져 내린다.
억지로 눈을 떠 보려 했지만, 눈꺼풀만 비맞은 강아지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그...여러분?”
늘어지는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불렀고, 시청자들은 그런 내 말에 응답해줬다.
-ㅖ?
-네
-ㅇㅇ?
-뭐여
“노가리 방송인데, 이제 뭐하죠...?”
-그걸 왜 우리한테ㅋㅋㅋㅋㅋ
-님이 알아서 해야죠ㅋㅋㅋㅋㅋㅋㅋ
“우...”
아프기도 하고, 두통도 있어서 노가리방송을 한다 하긴 했는데.
막상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최근에 겪은 일이라고 해봐야, 음치탈출 컨텐츠 하는 것외엔 뭐가 있는가.
“...아?”
이 썰 이라도 풀어 볼까?
생각해보면 이 썰은 아직 푼 적이 없지 않은가.
“그으... 음치 탈출 컨텐츠 썰이라도 풀어볼까요?”
-오ㄱㄱ
-근데 님 말 ㅈㄴ 못하잖아
“아앗...”
묵직한 팩트에 가슴이 아리다, 잠이 살짝 깬 것 같았다.
어디선가 본 드립을 중얼거렸다.
“리, 리에라는 아가야... 그런 말 싫어...응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
-17살이면 아가 맞지ㅋㅋㅋㅋ
“맞아요...! 저는 아가애오...!”
...
나 방금 뭐라고 말한 거지?
졸음이 쏟아져서 뭔가 잘못 말한 거 같은데.
인상을 찌푸리고 아까 내가 무슨 말을 내뱉은 건지 떠올려 보려 했으나,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되짚을 수 없었다.
약기운 때문일까?
“으...”
뭐라고 말했더라?
내 의문은 시청자들이 친절하게도 풀어줬다.
친절하게도.
[토레아님이 2,900원 후원!]
-음성녹음
“에...?”
(맞아요...! 저는 아가애오...!)
“여러분 진짜, 진짜 진짜 나빠요...”
눈물 닦는 시늉을 해봤지만 시청자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ㅋㅋㅋ’만 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이 못마땅해서 키보드를 ‘쾅’은 아프니까 ‘콩-’ 내려치며 버럭 화를 내보았다.
“어떻게 저런 것만 박제할 수 있어요...?!”
FPS게임 잘한 장면은 하나도 클립이 안 따였는데!
이런 쓸데없는것만 마구잡이로 클립을 딴다!
“저, 멋있는 거 요즘 많이 하는데 그런 건 왜 하나도 안 따줘요...”
요즘 FPS게임을 즐겨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나 FPS게임에 재능이 있었다.
하여, 할 때 마다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었는데 그런 것도 좀 따주지, 왜 그런 것은 하나도 안 따고 이런 것만 딴단 말인가.
내 클립창을 보면 맨 날 내가 이상한 소리한 것과 우는 것만 잔뜩 박제되어 있었다.
조금 서글프게 채팅방을 바라봤다.
그래봤자, 졸음으로 반쯤 감긴 눈이라, 조금 우스울 뿐이었지만 말이다.
“여러분들... 그, 이런 말 하긴 뭐한데...”
취향 진짜 이상해.
-이런 말 하기 뭐하면 하지마요ㅋㅋㅋㅋ
-ㄹㅇㅋㅋㅋ
-단호하네ㅋㅋㅋㅋㅋ
“앗...네...”
쭈그러들어 손가락만 맞대었다.
“뭐 근데, 썰이라고 해봤자 별건 없어요...”
노래 부르고, 스트레칭과 운동을 했다.
1일차는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오늘이 2일차였는데 발목을 접질렀다.
고작 2일차 만에!
딱 하루 만에 재밌는 썰이 생길 리가 없었다.
“그냥... 어제 스튜디오 앞에서 만났어요.”
-오리 어떻게 생겼음?
“어.. 후덕하게 생기셨어요... 인상은 좋아보였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매번 지 실제로 보면 잘생겼다더니ㅋㅋㅋㅋㅋㅋㅋㅋ
-‘후덕하게 생겼다’
-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 어...?”
내가 뭔가 실수 했나?
잘생겼다고 말했어야 했나?
하지만 정말로 후덕한 걸 어떻게 할까.
목소리로 외모보정이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잘생겼다고 표현하기엔 어려웠다.
그래도 역시 립 서비스는 해야 하려나?
“뭐어... 어어, 음... 후덕한 사람 중에 잘생기셨어요...!”
양심의 한계까지 쥐어 짠 칭찬.
-아ㅋㅋㅋㅋㅋㅋ
-후덕한은 죽어도 안빠지네ㅋㅋㅋㅋ
-ㅠ
-아 너 후덕하다고ㅋㅋ
방금 ㅠ 치신분 오휘님이다!
“어어... 그래도, 그, 그 정도면 살만 조금, 아니... 많이 빼면...!”
-크아악 차라리 죽여
“죄, 죄송합니다...!”
오휘님이 방송을 나가버리셨다.
“앗”
상처 받으신 걸까.
사과를 해야하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후아...암...”
잠시 머뭇거리다 하품 한 번.
약기운이 전신에 퍼진다.
버티기 힘들 정도로 몸이 무거워진다.
너무 졸리다.
눈이 감겼다.
눈을 다시 뜨기 힘들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졸리면 자십셔
-안쓰러워보이네ㅋㅋㅋㅋㅋ
-아가는 일찍 자야해
-ㄹㅇㅋㅋ
“...나빠요 혼나요... 씁!”
드립 한 번 쳤다고 계속 아가, 아가 거린다.
수치스럽다...!
입술을 삐죽 내밀어봤지만, 그 사이로 침이 흘러나와 뚝- 떨어질 뿐이었다.
-ㅗㅜㅑ
-?
-더러워ㅋㅋㅋㅋㅋ
-개좋은데
-????
“아...!”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손을 뻗어 마우스를 잡고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내일 뵈요...”
방송은 여기까지.
방송을 억지로 더 한다면 잠들 것 같았고, 잠자는 방송, 흔히 말하는 ‘잠방’은 정지사유였다.
그리고 나는 정지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
“안녀어어엉...!”
방송 끝!
이제 잘 시간이다.
스트레칭을 한 번 한 후, 뒤를 돌아보자 주인님이 침대 한가운데에서 몸을 말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
“아맞다..."
잊을 뻔 했다.
컴퓨터를 끄려다 멈춰서고, 트위터를 실행했다.
그리곤 아까 봤던 일진의 트위터의 계정을 확인하자, 좋아요와 리트윗 수가 각각 하나씩 올라갔다.
“음...”
화면을 캡쳐하여 일진의 막말들을 파일로 저장했다.
“...내일봐”
무슨 생각으로 싸지른 건지는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프로필 사진으로 걸려있는,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다 같이 활짝 웃으면서 찍은 사진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해맑게 웃는 일진의 얼굴.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져 시선을 내리자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응...?”
프로필 아래 존재하는 링크.
아까는 왜 못 봤을까.
이렇게 대놓고 걸려있는데.
“이거 방송링크잖아...?”
심지어 나와 똑같은 플랫폼이다.
호기심에 눌러보니 팔로워 66명.
전체적인 동영상 조회수가 10이 안 된다.
전형적인 하꼬.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아니, 억측일 확률은 한 없이 작았다.
이거 말고는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뱀심이구나...?”
자신보다 한참 밑이라 생각했던 애가 자신을 뛰어 넘었으니, 그에 대한 뱀심으로 이런 이상한 소리를 퍼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참 한심하다.
그리고 공교롭다.
이모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기 전에, 내가 행복을 맛보기 전에.
이것을 봤다면 분명 주눅 들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지않은가.
타이밍이 좋지못했다.
어떻게 얻게 된 행복인데 이걸 건드린단 말인가.
소중한 것이다.
겨우 겨우, 피를 토할 정도로 힘든 생활 끝에 얻게된 소중한 행복이다.
졸음이 한껏 묻은 목소리로, 듣지 못할 것에 속삭였다.
"가만 안둬..."
조금 더 일찍, 서예님과 네모미님과 드래곤님과.
지금 나를 아껴주는 시청자들과 만나기 전에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사실이 아니더라도 나는 사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내 방송 생활은 끝났을 것이다.
그래, 조금만 빨랐다면 말이다.
지금와서 이런 추악한 짓에 고개를 숙이기에는, 내가 이미 행복을 맛봐 버렸다.
중독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런 내 행복을 건드렸다.
마음에 독기를 품었다.
그 독기는아마도 상한 듯한, 검보라색이었다.
두 번째로 품어보는 독기는 여전히 낯설었다.
하지만, 낯선 것은 문제가되지 않는다.
과연 고소장이 도착했을 때 저 해맑게 웃는 표정이, 어떻게 변할 지 궁금해진다.
내 행복을 건드리고도 내가 예전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그냥 맞고만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단단히 잘못생각 한 것이고, 나는 그것을 깨닫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하아암..."
일단, 한숨자고...
"내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