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방송 네 달째(15) (63/143)



〈 63화 〉방송 네 달째(15)

약기운이 강했던 것인지, 일어나보니 오전이 지나가 있었다.
눈을 부비벼 시계를 바라보니 3시.

“와아...”

너무 오래 잔 탓일까.
목이 잠겼다.

“아, 아...”

내가 목소리를 내고도 낯설 정도.

몸 또한 찌뿌둥하다.

“일어나야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으쨧’ 기합소리를 내었다.
발목이 욱신거렸지만, 어제처럼 엄청 아프진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별것 없었다.

사이버경찰청
182로 신고.

3번의 통화음 끝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사이버경찰청, 전화 받았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건만, 목소리에서 피곤함이 느껴졌다.

“명예훼손 신고하려는데...”
요.

“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2초간의 침묵 끝에 누가 들어도 정말 귀찮다는 듯, 툭 내뱉은 말.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이는 왜요...?”

“어리신거 같은데, 여긴 친구끼리 다툼을 처리해주는 곳이 아니에요, 명예훼손도    있는게 아니고요.”

“...네?”

나를 타박하는 듯 한 말투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이 곳 말고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상담해보시고, 기왕이면 친구랑 화해하시고 친하게 지내세요."

뚝-

전화가 끊겼다.

“...”

자고 일어나서 희석된 독기가 한층 더 강해진 느낌.
정말로‘별 것 아닌 일’로 취급 하는 말투에 화가난다.

다시, 182를 누르려다, 이내 휴대폰을 침대위로 툭- 던졌다.

통- 튀는 휴대폰은 엎어졌고, 나는 작게 한숨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사실 예상은 했었다.
이번이 첫 번째도 아니고 말이다.

경찰들은 일을 하기 싫어한다.

모든 경찰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경찰들은 그러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모집에서 탈출했을 때, 보호신청을 했을 때.
나를 붙잡아 다시, 이모집에 돌려보낸 것 아니겠는가.

단순 가출로 보고 말이다.

경찰, 내가 유일하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직업이었다.

당연히 모든 경찰이 그런 것은 아니고, 착한 경찰 또한 있을 터지만 워낙 데인 것이 많았다.

“에휴...”

 꼽을 때며 한숨을 푹-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쉽게 끝낼  있는 방법이 막혔을 뿐이니까.

내 통장의 잔액을 살펴보자, 390만원 가량의 잔액이 남아있었다.

 돈이면 고용할 수 있을까?

“변호사...”

조금 복잡해지고, 돈도 많이 들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물론, 나는 믿을 만한 변호사를 몰랐고 그것을  알고 있을 법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의 전화음이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는 상대방.

혹시 하루 종일 휴대폰이라도 응시하고 계신 걸까.

“서예니임...!”

“네, 네 리에라님?”

뭐라고 말해야할까.
뭐라고 말해야 오해가 없을까.

내가 말만 한다면 서예님이 해결해주시겠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지 않았다.

내 손으로 해내고 싶었다.

이모 때와 마찬가지로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다.

“혹시 믿을만한 변호사 있어요...?”

“변호사요?”
있긴 하지만... 이라고 말 끝을 흐린 서예님의 말을 가로챘다.

“아, 크, 큰일 은 아, 아니고...! 알아만 두, 둘까 해서요...!”

나 방금 엄청 더듬지 않았나?

누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더듬었다.

어제처럼 약에 취해있지 않았기에 제대로 기억할 수 있었다.

식은땀이 흐른다.
혹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서예님이 말할 법한 수십 가지의 질문에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할지, 수백 가지의 대답이 떠오르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으에엑...”

“뭐, 문자로 보내줄게요. 정말 알아두시기만 하는 거죠?”

“네...!”

다행히도 그냥 넘어가줄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긍정의 표시를 표현하자, 서예님이 낮게 웃어줬다.

“저는 손님이 몰려와서 그러니까 조금 이따 다시 통화해요.”

“앗, 수고하세요!”

카페 일나가있는 모양.

...

아니, 그럼 카페 알바를 하는 중에 한 번의 신호도 가지전에 전화를 받았다는 소리인가?

“...조금 무서운데!”

톡을 보니, 하나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혀있었다.

전화번호는 일단, 저장해두고 주소를 보자, 익숙하다.

“...?”

잠시 갸웃거리다 이내경악했다.

“이층...!”

내가 살고 있는 이 건물 2층에 거주중...!

변호사가...!

그것도 서예님이 믿을만하다고 자부한 변호사가...!

“서, 설마 이분도 끌려 온 걸까?”

옆집의 단우비 작가님을 떠올려봤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변호사가 끌려 올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냥,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는 것이 조금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래, 아무리 서예님이라도 변호사를 감금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서예님이라면 가능할지도...?”

애써 고개를 절레절레젓고는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중.

010으로 시작하는 걸 보면, 개인번호 인 것 같은데 여기가 전화를 해도 되는걸까?

잠시, 머뭇거리다 결심을 한 후, 전화를 걸었다.

 번, 두 번, 세 번이 넘어가고 네 번을 지나서 다섯 번의 통화음.

“바쁘신가...?”

혼잣말을 내뱉기 무섭게 중후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네, 벽광혁 변호사입니다.”

앞에 어디 소속이라도 말씀을 안 하신다.
보통, 이렇게 전화를 하면 무슨무슨 소속 이라고 말하지 않나?

그런 것도 없이 담백하게 본명을 말한 변호사님.

오히려 그렇기에 믿음이 간다면 이상할까.

“네, 그... 백서연이라고 하는데요...”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친절하다.

목소리는 단단하지만, 속은 부드러웠다.
무서우신 분은 아닌 것 같아 살짝 마음을 놓고는 내 상황을 차분히 설명해 나갔다.

학교폭력과 지금의 모함까지.

내 인생에 작지않은 부분을 설명하는 것은 꽤 길었다.
15분가량, 말이 이어졌지만, 변호사님은 내 말을 끊지 않았다.

어쩌면 내 말을 끊고, 본론만 말하라 하실 수도 있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없이 차분히 내 말에 공감해주며 대답하실 뿐.

변호사가 아니라 정신과 상담원 같았다.
어쩌면 정신과 상담원보다 더욱 편했다.

“네... 그렇게 돼서...”

“자료는 있으시다고 하셨죠?”

“네...!”

몇 년  휴대폰을 바꾸지 않았기에 그대로 남아있는 문자내역.
그리고 어제 캡처한 화면들, 그리고 이것도 자료라고 하면 자료일 수 있을까.

 몸에 나있는 흐릿한 흉터들.

“음, 저 지금 집에 있으니까 한 번 오실래요? 아니면 제가 직접 올라갈까요?”

“네...?”

올라간다니?

“4층에 이사 오신 분 맞죠? 서예에게 들었습니다.”

"아...!"

변호사님은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

설마 나만 모르고 있었나...?

그보다 먼저 '서예'라고 말을 놓는 모습에 서예님과 가까운 사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확신은 나를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 줬다.

저렇게 편하게 부르는  보면 적어도 끌려온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조금 안도되었다.

일단은 변호사님이 올라오는 것 보다, 내가 내려가는 것이 나을  같았다.

“제, 제가 갈게요...!”

“네, 기다리겠습니다.”

“네...!”

뭔가엄청난 조력자가 이웃으로 있었다.

주인님을 한껏 쓰다듬어주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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