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방송 네 달째(16)
2층으로 내려와 201호의 문 앞에 절뚝이며 섰다.
분명 내 집과 똑같은 문인데, 다가서기 힘들었다.
몇 번의 심호흡.
마른 침을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자, 문이 부드럽게 열렸고, 그다지 크지 않은 덩치의 남성이 나를 보고는 인사를 건네 왔다.
160후반, 170초반?
최근에 봤던 사람들이 워낙 큰 탓일까.
유독 작아 보여 드는 동질감도 잠시, 퀭한 눈동자와 나보다 짙어 보이는 다크 서클에 입을 꾹- 다물었다.
팔자주름은 깊게 패여 있었으며, 머리는 새치가 유독 많으셨는데, 새치가 머리카락의 절반은 차지하는 것 같았다.
어느 누가 봐도 ‘고생 했구나’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는 모습.
그렇다고 약해보는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가 단단하게 느껴진 것처럼, 사람 자체가 단단하고 강인해 보였다.
전에 살았던 집의 이웃이 가짜라면 이분은 진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전의 이웃 같은 덩치도, 근육도, 과시되는 문신도 없었지만, 느껴지는 기세가 남달랐다.
“자, 일단 들어오세요.”
내가 잠시 얼어붙자 웃어 보이며 고개를 숙인 변호사님은 앞장서서 거실로 안내했다.
거실에는 수많은 서류 따위가 쌓여있었다.
테이블에도, 전자레인지 위에도, TV앞에도, 바닥에도.
단우비 작가님이 군만두의 지옥이었다면 이분은 서류 지옥.
질겁하자 웃으며 테이블과 소파에 있는 서류들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어... 제가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해서...별거 아닌 일인데...”
괜히 바쁜 사람을 끌어들인 건 아닐까.
역시, 나 혼자 알아서 했어야 했던 걸까.
내가 살짝 자조하며 볼을 긁적이자 변호사님이 정색을 했다.
“백서연님, 아니 리에라님이라고 불리는 게 편하신가요?”
“어... 상관은 없는데...”
“그럼 본명으로 부르겠습니다, 백서연님, 백서연님이 겪으신 일은 ‘이상한 소리’도 아니며, ‘별거 아닌 일’도 아니에요.”
“아...”
단호히, 말을 던진 변호사님은 내 눈을 주시했다.
그 눈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하자, 변호사님이 한숨을 쉬었다.
“직설적으로 말할게요.”
“네, 네!”
무슨 소리를 하시려는 걸까.
잔뜩 긴장하고는 몸을 굳히자, 변호사님이 웃어 보이며 소파 옆에 놓은 보온병과 종이컵을 테일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곤 보온병을 열어 생강차를 종이컵에 따라 나에게 건넸다.
“생강차 좋아하세요? 목을 자주 쓰는 직업이잖아요.”
“그으...네, 잘 마실게요...!”
한 모금 조심스럽게 마시자, 달콤 쌉사름했다.
솔직히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기에 다시 내려놓자, 변호사가 한숨을 쉬었다.
“자, 솔직히 말할게요, 별다른 처벌은 없을 거 에요.”
다른 이유는 없었다.
“물론 저에게 맡기신다면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상대가 나빴다.
부모가 든든한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이 많은가?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맥이 넓은가?
나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는 벽광혁 입니다.”
저에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벽광혁 변호사님이 말하는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촉법에 보호받을 나이는 지났지만, 미성년자였다.
법이 아닌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는 나이.
“아...”
“그리고 전화 하셨을 때 조금 알아봤는데, 악질이더군요.”
이미 몇 번의 고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가 벌금 따위로 퉁 쳐버렸다.
일반적으로 부모를 무서워하거나, 벌금을 무서워했다면 이런짓은 진즉에 청산해야 했는데.
아직도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은 갱생의 여지가 없는 쓰레기라는 뜻.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긴 변호사님은 혀를 차고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나는 그 말에 조그맣게 물기서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쩌죠...”
결국 아무런 처벌도 못한다는 소리인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3분간의 침묵이 있었다.
고요하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변호사님이었다.
“일단, 일은 맡기 실거죠?”
“...맡길 수 있다면요.”
마른 침을 삼키며 결심을 다잡았다.
처벌을 할 수 없더라도, 힘들게 쌓아올린 내 행복을 건드린 적을 가만히 두고 볼 수 만은 없지 않은가.
비웃을지도 모른다.
또 벌금으로 퉁치고, 혹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나를 코웃음 칠 수 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시도도 하지않는 것과 시도라도 하는 것은 달랐고.
나는 그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부탁드릴게요...! 무, 물론 거절하셔도...”
내가 봐도 수 천 장은 되어 보이는 서류들.
엄청 바쁘실 것이 분명했다.
변호사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십중팔구 제대로 된 처벌은 못 받을 거라면, 바쁜 와중에 귀찮은일거리를 추가시키는 꼴 아닌가.
거절을 하더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내 말을 가로채어 웃어 보인 변호사님은 싸늘하게 웃어보였다.
“저는 변호사고, 일방적으로 한쪽 말만 들어서는 안 되는 직업이지만...”
이번 만 큼은 예외로 두죠.
“일단 문자내역과 캡처한 화면은 따로 파일로 주실 수 있으신가요?”
“지, 지금 보내드릴게요...!”
“이메일은 이 명함에 적혀 있는 곳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내민 명함을 양손으로 공손이 받아들였다.
검은색 바탕의 흰색 글씨로 적혀있는, 투박한 명함이었지만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다.
“한 껏 힘써보겠습니다, 제가 연락주면 반드시 받아주세요.”
“네...!”
아, 그러보니까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어, 얼마죠?”
“네?”
내 질문에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 변호사님은 이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웃어보이셨다.
“이 건물 내부 사람들은 무료입니다, 서예가 다 내주고 있어서...”
아.
“또 서예님인가요...”
내 반응에 하하- 웃어 보인 변호사님은 퀭한 눈으로 거실에 쌓이다 못해 넘치는 서류들을 보고는 깊게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네...”
“고생하시네요...”
그, 강인했던 기세와 모습은 어디가고 어깨가 축 쳐져서 안쓰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 모습도 잠시, 애써 기운 차린 변호사님은 나를 문앞까지 배웅해 줬고, 나는 생강차가 든 종이컵을 들고는 집으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되려나...”
주인님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변호사님께서 내 일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하시긴 했는데, 잘 모르겠다.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리고 그 후에 어떻게 될지.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려 머리를 감싸쥐었다.
“으으...”
일단, 전문가의 영역인 만큼, 그것은 벽광혁 변호사님께 맡기고 나는 내 일을 하도록 하자.
내 행복을 보러 가자.
시청자들, 지인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보러가자.
방송시간이었다.
“그 전에 잠깐만...”
걔 방송 한 번 볼까.
다른 의미는없었다.
그저 궁금했다.
과연 어떤 방송을 하고 있을까.
닉네임을 확인해보자 때 마침 방송 중.
괜히 눌러서 방송에 입장하기는 싫었기에 겉으로만 확인하자 배틀 스타디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청자 수는 6명.
다만, 채팅창에 채팅이 올라가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채팅방.
"음..."
뭐가 됐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
나는 내 방송을 켰다.
순식간에 몰리는 시청자들.
5분이 되지 않아 50명이 모였다.
“리하!”
-ㄹㅎ
-ㅎㅇ
-ㄹㅎ!
-리하
“오늘 할 게임은 배틀스타디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