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방송 네 달째(21)
내 폭로문이 올라갔다.
이 글이 효력이 있어야 그 후에 뭘 하든 할 텐데, 라며 중얼거리고는 컴퓨터를 종료시켰다.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반응을봐야했지만, 무서웠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욕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주 겪지 않았던가.
이런 일.
가벼운 공황장애일 뿐이다.
아직, 환청과 환각 증세는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손등을 강하게 꼬집었다.
따가운 통증도 잠시, 피가 송글송글 맺혔다.
통증으로 무너져가는 정신을 붙잡았다.
조금은 또렷해졌을까.
빙빙돌던 세상이 제 자리를 되찾아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
주인님이 폴짝- 올라와 내 무릎에 자리를 잡고는 손등을 까슬까슬한 혓바닥으로 핥아주었다.
따가워서아프지만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 느껴져서 따뜻했다.
“고마워...”
매일같이 얄미워도 가까이 나를 걱정해주는 건 너구나.
머리를 쓰다듬자, 골골골- 귀여운 소리를 내는 주인님의 모습에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입맛도 없고, 기력도 없었다.
후원으로 얻어낸 기쁨은 진즉에 텅 비어버렸고, 그 자리엔 어두운 것이 대신했다.
서예님이 올라와보신다 했지만 거절했다.
지금같이 볼품없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매번 도움만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못난 나라지만, 염치라는 것이 있었다.
이 이상 무엇을 도와준단 말인가.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휴대폰의진동.
힘없이 바라보다 손을 뻗어 확인하자 오휘님과 드래곤님.
오휘님은 병신에게 제대로 걸렸다며 힘내라는 말을 보냈고, 드래곤님은 미안하다고 단 한 문장을 보내었다.
드래곤님이 왜 미안할까.
나와 합방을 한 것 때문에?
그것 때문이라면 오히려 내가 미안해야할 일 아닌가.
나 때문에 드래곤님이 피해를 봤다.
내가 없었으면 악플에 시달릴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내 잘못이었다.
그렇게 합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내 주제를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정말 내 잘못이야...?”
합방을 진행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되야하나?
악플이 달리는 것이 정말로 내 잘못일까?
이상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정말 내 잘못일까?
정말로?
인상을 찌푸렸다.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을 두드렸다.
그것을 내뱉지 못하고, 되삼켰다.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태워버리는 것 같았다.
아팠다.
그렇기에 내뱉었다.
나도 모를 무언가를 토해냈다.
“으으으...”
입을 벌렸다.
숨을 내뱉자, 뜨겁게 느껴졌다.
책상을 짚었다.
쓰러질 것만 같았다.
“우으윽...!”
목구멍에 걸린 뜨거운 무언가가.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 무엇인지 말이다.
내가 내뱉고 싶은건, 비명이었다.
아프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아프다고.
내가 토해내고싶은건 원망이었다.
겨우겨우 행복해지려는 나에게 왜 그러냐 외치고 싶었다.
원망을 쏟아내고 싶었다.
하여, 비명을 지르고 원망을 게워내고 싶었다.
나라고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도 아팠다.
많이 아팠다.
“우그....으으...흐윽...”
목 놓아 울고 싶었다.
하지만 몸에 익어 버릴 정도로 받은 ‘교육’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미약한 신음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아아...”
비명을 지르고 싶어 벌린 입엔 신음 소리만이 나왔고, 피눈물을 흘리고 싶은 눈에선 맑은 눈물만이 뚝뚝- 흘렀다.
초라했다.
당하고도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초라했다.
이런 모습밖에 못하는 내가 미웠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비료로 삼아 몸집을 키워낸 증오와 원망이라는 감정은 주체할 수 없지 커져만 갔다.
반드시 이 싸움에서 이기리라.
그리고 내가 받은 상처에 십 분지 일만이라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때였다.
“...드래곤님?”
갑작스러운 전화.
부들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흐느끼는 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아 십호흡을 하여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폭로문 봤어.”
낮은 목소리.
한 없이 진지한 목소리.
“...나름 생각해봤는데, 역시 도와야겠더라고.”
“네...?”
무엇을 돕는단 말인가.
“조금만 참아.”
뚝- 끊긴 전화를 멍하니 바라보다 멍청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100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드래곤님이었다.
나를 돕는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드래곤님 사이를 망상 따위로 오해하는 이들에게 불을 지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드래곤님에게 절대로 이롭게 작용하지 않겠지.
막아야하나 싶었지만, 솔직히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전화를 걸기를 거부했다.
“너무 바보같아...”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았다.
스스로를 탓하고, 책상에 머리를 박으려 하자,다시 한 번 걸려오는 전화.
드래곤님일까?
액정을 바라보니, 이번에는 가람님이었다.
“...?”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얼떨떨하게 받아든 전화너머로 가람님이 잔뜩 흥분한 거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폭로문봤어, 도와줄게, 얼마 안 걸릴 거야.”
뚝- 끊긴 전화.
지금 이게 무슨 상항인지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은 내 머리가 나빠서일까.
휴대폰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 한 번 더 전화가 걸려왔다.
“...네모미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람님, 오휘님까지 전화를 주고는 역시 ‘도와주겠다’며 손을 뻗어왔다.
“...무슨...?”
그분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폭로문을 언급했다는 것.
무서워서 바로 꺼버린 컴퓨터를 부팅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수없이 쏟아질 욕설에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는 내 방송페이지에 접속후, 내가 올린 폭로문을 바라봤다.
추천수 1697 비추천 891
“추천수가 더 많다고...?”
아니, 그보다 올 린지 1시간도 안됐는데, 이 숫자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 이미지가 나빴기에 나를 욕하는 댓글이 많으리라 예측했지만.
내 예측은 틀렸다.
-힘내요
-개 좆같은 년이네
-고소각이네
-가해자가 피해자인척 피해자를 묻어 버리려 했네ㅋㅋㅋㅋㅋㅋ
“뭐, 뭐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내가 증거를 하나 보인다고 이렇게 상황이 역전될 리가 없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방금 전화 온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려봤지만 이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확실히 나를 돕는다 하셨지만, 이렇게빠르게 반영될 리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무슨 상황인지 감이 안 잡힌다.
속상한 것, 화나던 것은 완벽히 바뀐 상황에 갈 길을 잃어버렸다.
댓글에 혹시 단서가 있을까.
몇 번이고 마우스 휠을 내려본 끝에 링크하나가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군말 없이 단순히 링크만 해놓은 댓글에 추천수가 300개가 넘는다.
“이건가...?”
내가 즐겨가던 커뮤니티의 글이었다.
저곳에서 나를 옹호할만한 말이 나올 리가 없을 텐데...?
조심스럽게 링크를 타고 건너가자 글의 제목이 가장 먼저 보였다.
[하유야 이새2끼뭐냐ㅋㅋㅋㅋ]
“어...?”
잠시, 뇌가 작동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
이해를 못했다.
하지만 다시 봐도 역시 이해를 못하겠다.
왜 갑자기 욕을 먹는걸까.
내가 욕을 먹는 것 만큼 반대로 동정표를 얻고 있지 않았나?
무슨 내용인지 본문을 읽어보았다.
그리곤 허탈하게 헛웃음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허무하네”
트인낭이라고 했던가.
예전에 하유야, 혜진이 남겼던 글들이, 발굴된 것이다.
그리고 예전이면, 방송을 하기 전이었고, 방송을 하기 전에 혜진은 딱히 자신을 숨기려 노력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내보인 문자내역보다, 더더욱 확실한 증거들.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실수이자 가장 멍청한 실수이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로 상대가 자멸해버렸다.
그저 나를 욕하고 싶은 사람들은 뭐가 어떻게 되든 나를 욕하겠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세가 상대방의 멍청한짓으로 역전되어 버렸다.
과도한 관심이 역으로 화를 부른 케이스.
내가 보고 있는 글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나, 불쌍해서 도와주려 찾아보는 와중에 발견했다고.
허탈하고, 허무하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왜일까.
“......그렇게 자멸한다고 끝이 아닌 건 알지...?”
반격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