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방송 네 달째(22)
나는 사태를 파악했다.
단 하루도 안 되어서 180도 바뀐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나에게 이롭게작용하고 있었다.
혜진의 추악한 과거가 드러났고, ‘그럼 얘는 뭐 없나?’ 식으로 내 과거역시 캐낸 사람들 또한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나에게 힘을 보태줬다.
[리에라 얘뭐냐ㅋㅋㅋ]
방금 전의 글과 비슷한 투의 글이었지만, 내용은 정 반대.
내가 예전에 뭘 할 수 있었을까.
핸드폰은 툭하면 뺏겼고, 컴퓨터는 아빠차지였다.
그나마 남길 수 있었던 글이라고는.
지식인 따위에서 도움을 구해보는 글들 따위들.
그리고 근래에 와서는 더더욱 별 것 없었다.
[나무를 주우면 우드득ㅋㅋ]
내가 첫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남겼던 글.
노잼을 사유로 일주일 벤 당했었지 아마?
그 후로 의기소침해져서 글을 쓰지 않았었다.
의도치 않게 깨끗한 활동을 해온 것이다.
“...지금 보면 좀 부끄럽긴 하네...”
우드득 이라는 말을 혓바닥위에 천천히 굴려보고는 뻘쭘하게 볼을 매만졌다.
ㄴ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끝임?
ㄴ하유야 씹년은 느금마 찾고 난리났는데ㅋㅋㅋㅋㅋㅋㅋ
ㄴ솔직히 우드득은 선 넘었지ㅋㅋㅋㅋ
ㄴㅈㄴ클린하네
“조, 좋게 작용한 거 같아서 그나마 다행인데...”
뜬금없이 흑역사가 발굴되어버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아직도 방송을 하고 있나 싶어 확인하자, 혜진은 방송을 종료했다.
하긴, 이미 드러난 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테지.
일단 방송을 끄긴 했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지 않을까.
“......자.”
아직 죽지 않았다.
몸을 숨겼을 뿐이다.
이 기세를 몰아 끝장내지 않는다면 언제가 되든,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공격하리라.
방송을 켰다.
순식간에 몰리기 시작한 시청자들.
250은 가뿐히 돌파했다.
400을 넘어 500 또한가뿐히 돌파했다.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결코 기쁘지 않았다.
나쁘다 하기에도 미묘했지만, 이상했다.
이중 절반 이상이 나를 욕하던 사람들이겠지.
방금 채팅으로 나에게 ‘힘내요ㅠㅠ’를 보낸 시청자의 닉네임.
나에게 욕설을 내뱉던 사람 아닌가.
기억을 못할 줄 알았던 걸까.
아니면 그저 욕설을 했었던 것에 대한자기위안일까.
그도 아니라면 별 생각이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시청자 1000명을 돌파했다.
1300을 돌파했다. 그리고 1400에서 주춤.
1500에 도달해서야 화력이 약해졌다.
“이야기할게요...”
들어올 사람은 다 들어온 것 같았다.
-ㅠㅠㅠ
-고소가자
-힘내요...
심심한 위로들과 단순히 이번 사태가 재밌어서 찾아온 사람들이 뒤섞였다.
이중 나를 알고 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중에서 내 방송을 보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대다수가 관련없는 사람들.
...
의미없는 생각이겠지.
혜진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이 사람들을 쥐고 흔들어 공격하면 되리라.
나쁜 생각인 것 같았지만, 참을 만큼 참지 않았던가.
나또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참고, 참아온 것을 터트려버리기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내 방송으로 모여들었다.
‘미안해요’
전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 삼키고는, 심호흡을 몇 번.
잠깐 숨이 가빠졌다.
이들이 나를 욕하지 않은 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오늘 겪었던 일들은 내 정신를 깨트려 놓기에 충분했다.
오늘 이후에 내일은 다시 정상적으로 방송을 할 수 있을까?
내일이 힘들다면 모레는 어떤가.
모레는 정상적으로 방송을 할수 있을까?
일주일은? 이주일은 어떤가.
무섭다.
하지만, 무섭다고 그만두기에는 이미 먼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내 방송을 도와줬던 사람들은, 예전부터 이번까지.
꾸준히 나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방송을 계속 해야 하리라.
그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다면 내가 방송을 킬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눈을 감고는 숨을몰아쉬어 쿵쿵 요란스러운 심장을 진정시켰다.
-죄송합니다...
-여기 커뮤니티 글 보고 온 사람 있음?
-ㅠㅠㅠㅠㅠㅠㅠ
-가해자년이 불쌍한 척ㅋㅋㅋ
“말 조심해줘요.”
눈을 떴을 때, 나는 손을 뻗어 나에게 욕설을 가한시청자, 아니.
시청자가 아니었기에, '구경꾼'을 강퇴 시켰다.
단호해질 때 다.
무서워질 때 다.
그래야만 이 싸움이 끝난다.
내가 단호해지지 않고, 무서워지지 않고, 계속 숨어만 있는 다면 절대 끝나지 않을 악연이었다.
“피해자라 주장하고 있는 가해자가 하나 있었죠...?”
-ㅇㅇ
-고소가나?
-고소?
-솔직히 칼찌놔도 무죄인데ㅋㅋㅋㅋㅋㅋ
“고소는 이미 진행중이었어요,하지만 이렇게 바로 공격해올줄은 몰랐네요...”
“예전처럼 제가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나 봐요.”
그때는 나에게 증거가 아무리 많아도 내가 반항하지 않았으니까.
그때와 같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인실좆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경찰서감?
“경찰들은 친구끼리 화해하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어려서 그렇겠죠.
하지만 여러분 어리다고 다 별 것 아닌 건 아니에요.
오히려, 어린 만큼 더 무서울 수 있어요.
“도와주는 변호사님이 있어요.”
끝을 볼 거 에요.
일방적인 통보였다.
나는 지금 소통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숨어서 지금 나를 노려보고 있을 화면 너머의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다.
나는 변호사가 있고,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평소라면 그저 웃어 넘겼겠지.
내 잘못이라 생각하고 손톱을 물어뜯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도 사람이었기에, 선이라는 것이 있었으며, 그 선을 넘은 사람들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하단 소리는 믿지 않는다.
죄송하단 소리는 듣지 않는다.
나는 어리지 않았고, 이번 일이 가벼운 일이 아님을알고 있었다.
“방송을 킨 건 경고를 하기 위해서 에요.”
“선처는 없어요. 두고봐요.”
-시청자 협박하는 클라스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
-제발 모두 처벌받길
-고소각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시 채팅이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랐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한숨과 함께 손을 뻗어방송을 종료했다.
지금부터 움직이더라도 다 처리하기에 힘든 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앗..!”
찌릿한 통증이 발을 타고 올라왔다.
그래, 그랬지.
깁스가 감긴 발을 잠시 바라보고는 혀를 찼다.
낑낑이 발로 침대로 가 주저앉았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내주제에 안 맞게 막나간 것은 아닐까
하는 뒤늦은후회가 다가왔으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애써 부정했다.
했어야 하는 일 아닌가.
오히려 시간 끌었다면, 시간이 지난 후에 고소를 했다면 ‘니가 뭔데’라는 반응을 맞닥뜨렸을 것이다.
징- 울린 휴대폰에 바라보자 드래곤님의 유튜브에 알람이 와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우스운 모습은 모두 걸러내고 정장을 입고, 캠을 킨 모습.
그리고 5분 남짓한 짧은 영상길이.
무슨 상황인지, 잠깐 파악되지 않아 어리둥절하며 영상을 재생시키자.
영상은 ‘안녕하세요’로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드래곤입니다.
-꽤 오랜 시간 리에라님에게 인신공격을 가하는 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언젠간 잠잠해지겠거니, 내가 나서서 불을 키울 필요는 없겠거니 안일한 판단으로 리에라님을 힘들게 했습니다.
-사실 어쩌면 제 유튜브가 혼란스러워 질 것을 염려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제 이기적인 판단으로 고역을 겪게 한 점.
-이 자리를 빌어 리에라님께 심심한 사과를 표하고.
영상 속 드래곤님은 으득- 이를 갈았다.
-제가 한 실수였기에, 수습하고자 합니다.
영상 속 드래곤님의 눈은 날카로웠다.
뱀의 눈이었다.
다만, 속상했다.
드래곤님의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왜 드래곤님의 잘못이라 시인하는가.
드래곤님과 합방하면서 욕을 먹기 시작해서, 이미지가 나빠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미지가 나빠져서, 욕을 먹기 시작해서, 그것이 구르고 굴러 덩치를 키워 이 상황을 만들어 낸것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드래곤님이 없었다면 욕을 먹기 전, 나를 봐주는 시청자들이 없었을 것이고, 하여 이미지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아...”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이유를 찾는다면 단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혜진...”
그 한명 때문에.
고작 그 한명 때문에.
고개를 숙였다.
가빠진 숨을고르고 있자.
징징징- 연속적으로 울리는 휴대폰.
네모미님, 아람, 가람, 오휘님 등, 나와 연이 있었던 스트리머분들이 이번 일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