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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화 〉방송 네 달째(24) (72/143)



〈 72화 〉방송 네 달째(24)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

나는 그 말에 바로 2층으로향했다.

그리고 변호사님은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문 앞에서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차분한 시선에는 분노가 미약하게 느껴졌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 기세에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일단 들어오시죠”

간결한 말에 나 또한 간단한 고갯짓으로 대답하고는 집안에 들어섰다.

못 보던 신발이 있었다.
변호사님의 신발이라기엔 사이즈가 달랐다.

누굴까.

변호사님의 지인?
아니면 서예님?

아니, 서예님이라고 하기엔 사이즈가 지나치게 컸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이 빌라 내부의 사람일까?

잠시 생각했으나, 어차피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수 있는 일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들어서자.

살아온 세월만큼 주름이 깊어지고, 배워온 지식만큼 그윽해진 눈을 지닌.

강인한 인상의 중년의 남자가 나를 바라봤다.

감히, 누가 이 사람을 건드릴 수 있을까.

‘범접할 수 없다’라는 것은 허구속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걸까?

“일단, 소개부터 하죠.”

변호사님의 말에 중년의 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것일까.
족히 내 손보다 3배는 커 보이는 듯한, 굳은살이 박힌 손.

손을 마주잡자 바위처럼 거칠고 단단했다.

“예빈이 아빠라고 불러주면 좋겠네.”

예빈이 아버지라는 말.

자신을 밝히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변호사님은 우리 사이, 가운데 소파에 앉아 종이컵에 생강차를 따라 건네주었다.

“리에라님을 돕기 위해 찾아보던 중 꽤나 안타까운 일을 접하게 됐습니다.”

변호사님은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인지 생강차를 한모금 들이키고는 예빈이 아빠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유야라고 했던가?”

갑자기 여기서 왜 혜진의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의아함도 잠시, 예빈이 아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년이 예빈이를 다리병신으로 만들었지.”

으르렁거리듯 내뱉은 말이 거실에 울렸다.

크게 외친 것도 아니었건만 뇌에 직접 때려 박히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 말고 다른 피해자의 부모인 듯 했다.

혜진은 학교에서 왕으로 군림했고, 나만 건드린 것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5명가량.

이름은 전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예빈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는 것 같긴 했다.

예빈이 아빠는 쓰러지듯 소파에 주저앉아 머리를 싸매었다.

“저녁에 친구를 만나겠다면 5만원을 받아들고 나갔었지...”

그 때 말렸어야 했는데 병신같이...

스스로를 자조하는 모습에,처음에 느꼈던, 강인한 인상은 사라졌다.

그저, 나약한 한명의 아버지가 존재했을 뿐이었다.

“표정이 나빴음에도 별 것 아닌 일이라 생각했었지...”

그리고 그날  병원에서 연락이 오더군.

“응급실에서 말이지...”

놀란 마음에 달려간 병원에서 예빈이의 모습은 처참했었다며 ‘하하‘ 허탈한 웃음을 보였었다.

둔기로 맞은 것인지, 머리에선 피가 흘렀고, 옷을 찢은 것인지, 살결이 그대로 노출되어있었다.

바닥에 구른 것인지, 상처엔 흙먼지가 들어찼으며, 예빈이는 기계적으로 누군가를 원망했었다.

설명을 마친 예빈이의 아빠는 나를 바라보았다.

“누구였을 것 같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혜진...?”

“아니.”

내 말을 단호히 잘라낸 예빈이 아빠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백서연 때문이라고, 백서연 때문이라고, 그 말을 반복했었지...”

잠시, 내가 잘못들은 것이지 헷갈렸다.

 때문이라니?

“백서연이 도망쳐서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나도 사실,  말을 듣고는 백서연, 아니...

예빈이 아빠는 변호사님을 흘깃 보고는 한숨을 내뱉듯, 말을 던졌다.

“리에라, 그래, 너를 원망했었지.”

내가 굳은 채로 아무 말도 못하자, 예빈이 아빠는 실소를 내질렀다.

“병신같이 말이야...”

그때는 얼마나 증오에 가득  있었는지.

내 딸을 그렇게 만든 원흉보단, 딸이 원망하던 백서연을 향한 분노가 컸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제가 좀 더 버텼어야 했던 건가요?”

내가  고통 받았어야 했나?
내가  괴로워 했어야 했나?
내가 죽었어야 했나?

나도 모르게 쏘아붙인 말투.
뒤늦게 입을 막았지만, 말은 이미 전해진 후였다.

하지만 내 말투에도 예빈이 아빠는 힘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  그 생각, 그 감정,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를 표했다.

그 모습이 당황스러워 손을 뻗어 말리자 그제 서야, 예빈이 아빠는 제자리에 앉아 양손을 모아 읊조리듯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제 정신을 차린 후, 나는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지.”

말에서 살기가 느쪄졌다.
몸을 살짝떨었다.

딸을 그렇게 만든 녀석에대한 증거를 찾아다녔다.

cctv가 없는 곳이었다.
차량 또한 지나지 않는 곳이었다.

하여, 애를 먹었지만, 결국 찾아내었다.

증거를 수집할수록 점점  끔찍하게 드러나는 진상에 몇 번이나 괴로워했을까.

하얗게 새버린 머리카락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그것들로 압박을 하려던 찰나, 우연치 않게 이번 일이...”

발생했다.

나는 변호사님을 바라보았다.

“가해자에 대한 자료들을 찾고 있었는데, 저와 똑같은 자료를 찾고 있던 사람이 있어서 접촉했습니다.”

그렇게 된거구나.

“그런데, 역시 미성년자라...제대로 된 처벌은 못 받지 않나요...?”

“물량으로 밀어붙여버리면 됩니다.”

예빈 아버지?

변호사님이 그렇게 말하자, 예빈이 아빠가 가방에서 서류 따위를 뭉텅이로 꺼내었다.

“저 포함, 22명, 지금부터 리에라...?”

말을 내뱉으며 이게 맞는지 확인 받으려는 모습에 조금, 아주 조금 웃어버렸다.

“그냥 본명으로 부르셔도 되요...”

“백서연과 함께 고소를 진행합니다.”

22명.

피해자의 부모님들이 직접 나섰다.

22명에 나를 포함하면 23명.
아무리 미성년자라 한들, 벗어나기 어려우리라.

그렇게 단정지었다.

게다가 하나하나가 모두 증거가 뚜렷한 것들.

"좋아요.”

이제부터는 제 차례죠.

그렇게 말한 변호사님이 바로 작업에 착수하겠다 말을 하고는 웃어보였다.

예빈이 아빠와 문을 나섰다.

“미안했다...”

“아니에요...”

사실 그렇지 않은가.

자기 자식이 그 꼴이 되었는데, 세상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원망할 것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자식을 그렇게 만든 짐승이 원망스러웠을 것이고.
본래  짐승에게 먹혔어야 할 먹잇감조차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을 막지 못한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사실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자기 자신이겠지.

방금 전에는 나도  하긴 했지만, 이해 할 수 있었다.
나 또한 피를 토할 정도로 세상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었기에.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명함을 내민 손이 부들거리며 떨린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명함을 받아들였다.

그제 서야 안심이  듯, 떨림이 잦아들었다.
단순한 명함이 아닌, 자신의 죄를 조금이나마 용서받기 위한 행위.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조금 무리한 부탁을 할지도 몰라요.”

애써 웃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경고를 던지자, 허리를 핀, 강인함을 되찾은 예빈이의 아빠또한 미소를 짓고는 내 머리를 헝클여 트려줬다.

“힘이 닿는다면 어떤 것이든.”

그렇게 말하고 빌라를 나서는 예빈이의 아빠의 등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마음의 짐을 덜어 놓은 것일까.

“...부디 깨끗이 낫길 바래......”

얼굴도 기억 안나는 예빈이를 향해 잠시 기도를 해보고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

히유야 라는 닉네임이 사라졌다.
닉네임을 변경한 것일까 싶었지만 그런것도 아니다.

계정을 탈퇴한  같았다.

“아니...”

혹시나 해서 찾아본 파란 새의 계정조차 통째로 날아간 상황.

“설마 계정만 탈퇴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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