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방송 네 달째(25)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단순할까.
거친 말을 사용해서, 적어도 뇌라는 것이 있다면 이 짓거리는 오히려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아야했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얼마 남지 않았던 혜진의 옹호자들을 내친 것과 다름없었다.
뽑을 수 있는 수 중,가장 최악의 수.
이걸 웃어야할지, 아니면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혜진이 벌인 일이 워낙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내 자작극이라는 소리도 나올 지경.
어지러워서 이마를 짚자 징-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울렸다.
오늘만 몇 번 째 일까.
평소에는 하루에 한 번도 울리지 않았던 핸드폰이었는데.
[만나서 이야기하자]
문자가 와있었다.
그리고 그 번호는, 혜진의 것.
뭐가 그렇게 조급한 걸까.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말이다.
그냥 무시로 답할까 했지만, 이내.
어쩌면 조금 짓궂은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것을 그대로 입력했다.
[내가왜]
“내가왜”
내가 만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만나봤자, 나를 때리면서 협박하겠지.
그것이 훤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는 바라지 않았다.
‘미안해‘ 또한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죄를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알기를 바랬는데.
너무 큰 욕심 이었던 걸까?
한숨을 내뱉었다.
이모 때는 만나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겉으로는 내 보호자로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핏줄이었으니까.
그에 반에 혜진은, 내가 만나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사이에, 말은 필요 없었다.
가만히, 문자를 응시하자, 문자하나가 더 왔다.
[후회할 거야]
협박인가?
집 주소는 모를 테니 안심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것이 있으니 당분간은 외출을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전은 좁았다.
재수 없게 만나게 된다면 절대 좋은 꼴 못 보겠지.
적어도 한 달은 숨죽이고 살아야할 것만 같았다.
다만, 그렇다고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숨어만 있는 다는 뜻은 아니었으니.
[나 말고 변호사님이랑 이야기해]
문자를 보내고 번호를 차단했다.
전문가가 따로 있는데,내가 나설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액정너머로 혜진이 날뛰는 모습이 그려진다.
상상이라기엔 너무 또렷한 모습.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한 때 공포의 대상이었던 가해자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다니.
낯설었다, 낯설되,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기분 좋은...
“아...”
일단 내 집으로 돌아가자.
문 앞에서 이러고 있어봤자, 궁상맞지 않은가.
절뚝이는 것도 똑같고, 깁스를 한 것도 똑같은데.
어째서인지 발걸음이 조금은 더 가벼워 진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거울을 보며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정리.
거울을 보고는 웃어보였다.
해맑게, 웃어보였다.
띵- 소리와 함께 4층에 도착 후, 집으로 들어서자 주인님이 나를 반겼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감정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바뀌어도 되는 걸까.
아직 소화를 하지도 못한 감정 위로 새로운 감정들이 꾸역꾸역 쌓여만 갔다.
오해를 풀었다는 기쁨.
예빈이를 비롯해, 내 후의 피해자가 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에 대한 감격.
아직도 남아있는 혜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 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기쁨, 안타까운, 슬픔, 감격, 두려움, 그리고 미약한 불안감.
그따위 것들이 한 곳에 모여, 뒤섞이고 합쳐져, 이상한 감정을 만들어 내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떠한 감정.
그것을 차근, 차근 조금씩 받아들였다.
아마 내가 이 혼합된 감정덩어리를 소화시키는 것 에는 시간이 필요 할 것 같았다.
천장을 바라보고, 주인님을 쓰다듬었다.
“불안정해...”
내가 내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많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공황장애는 가라앉았기만, 한 번 발현했음으로 또 다시 나타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환청과 환각단계까지 가진 않았지만, 조심해야한다.
“우으...”
갑작스러운 공격에, 무너져 내린 감정의 성벽을 보수해야한다.
갈라진 성벽 틈으로, 깊게 묻어놓았던 것들이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휴방해야겠지...?”
그 방법뿐이었다.
이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회복을 해야 했다.
안정이 필요했다.
성벽을 재건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방송을 오래 할 수 있었다.
예전이라면 내 상태 따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지 않은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방송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내 방송을 위해서라도, 휴식이 필요했다.
사실, 구독자만 노린다면 지금 방송을 쉬면 안된다.
이슈가 되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을 때.
나를 어필해야만 했다.
방금도 목격하지 않았던가.
1500명이 모이던 것을 말이다.
지금 방송을 한다면 확실히 내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확신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오래 못갈 것이다.
이슈가 잠잠해질 때는 사람들은 떠날 것이고.
휴식기를 가지지 못한 나는 불안정 해질 것이다.
내가 불안정 해질 테니, 방송 또한 불안정 해질 테지.
그렇게 된다면 본래의 시청차분들도 떠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상황이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구독자 수를 바라고 방송하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결단을 내려야했고, 결단은 생각보다 빨랐다.
“한 달 휴방...”
한 달 이내로 정신을 추스를 것이다.
그리고 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말하리라.
“리하...!”
라고 말이다.
그런 미래를 바란다면, 망설일 시간 따위 없었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글을 적어나갔다.
감사함, 슬픔, 위로를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씩 적어나갔다.
내가 이번에 느낀 것과, 내가 부족했던 부분까지 숨김없이.
글로서 나를 표현 하고 싶었다.
그저, ‘한 달 쉽니다‘ 라고 무미건조한 것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이상한 고집일 수도 있겠으나, 포기하기 싫었다.
썼던 것을 지우고, 다시 적고를 몇 번이고 반복했을까.
고작 2000자 짧은 글을 적는데, 5시간이 걸렸다.
창밖을 보니 밤이 찾아왔다.
별들은 뜨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쁜 밤이었다.
“...됐다.”
몰려오는 잡념을 잘라내고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엔터만 누른다면 글은 올라갈 것이고, 나는 한 달을 쉴 것이다.
“망설일 필요가 있나...?”
꾹- 누른 엔터키.
올라가는 게시글.
나는 그대로 컴퓨터를 껐다.
사람들의반응이 궁금했다.
사람들이 뭐라고 댓글을 달아줄지 호기심이 들었다.
...
알고 있지 않나.
위로해줄 것이다.
내 탓이 아니라고 보듬어 주실 것이다.
그 중 몇몇 분들은 나를 욕할 것이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음으로 더욱 보고 싶은 것이 있는 법이었다.
“우으으...”
살짝만 볼까?
휴대폰을 툭- 건드리려 했으나, 이내 혀를 살짝 깨물며 참아냈다.
이정도면 병이었다.
관심병.
휴대폰을 손이 닿지 않는 곳 까지 던져두고는 주인님을 끌어안았다.
묵직한 무게가 배를 누른다.
안정감이 들 정도로 딱 알맞은 몸무게.
“흐에...”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 달 동안 휴가, 아니.
방학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