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방송 다섯 달째(1)
하루가 지났다.
오늘부터 휴가이자 방학.
한 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벌써부터 무언가 허전하다.
매일 방송을 켰으니까.
매일 매일 방송을 생각하며 방송 관련된 생각만 했으니까.
이제 와서 방송을 안 하고 쉬려 해봤자 낯설 뿐이었다.
하지만, 방송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
그렇기에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갔다.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후원으로 들어오는 수입원이 없음으로 돈은 아껴야 한다.
하여, 돈이 안 드는 것이어야한다.
또한 외출은 금지다.
재수 없게 혜진과 만나기라도 한다면 가볍게 다투는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경우의 수는 한없이 낮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없지 않은가.
“우으으... 뭐하지...?”
할 것이 없었다.
따분 했다.
오늘 느낀 것인데, 이 세상에 돈이 안 드는 일이란 없었다.
“헤으윽...”
이상한 한숨을 푹 내쉬며 주인님의 뱃살을 쪼물딱 거렸다.
“뭐할까 주인님...?”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주인님에게 질문을 던지자, 주인님이 애옹- 울며 내 손에 머리를 비비었다.
골골골-
손가락을 세워 주인님의머리를 살살 긁어 주자, 골골거림이 한층 더 커졌다.
“으으...”
진짜 모르겠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뭘 해야 할까.
뭘 하면서 내 감정을 추슬러야할까.
아니, 그 이전에 굳이 기간을 한 달씩이나 잡았어야 했던걸까?
바로 어제의 내가 미련하게 느껴졌다.
내 상태가 그만큼 나빴기에 치유 기간을 널널하게 잡은거였지만.
이렇게 까지 지루하고 따분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볼을 긁었다.
게임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그냥 한 달간 아예 컴퓨터를 키지 않을 생각임으로 고개를 저었다.
진짜 뭐하지...
“일단... 씻고 생각하자...”
혼잣말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욕실로 비척거리며 들어서니 주인님이 따라 들어섰다.
“안 나가면 주인님도 씻겨 버릴 거야...?”
그 말에 토도도- 침대로 뛰어가는 주인님.
가끔, 아니, 자주 드는 생각이었지만, 쟤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교감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로 사람을 상대하는 느낌.
“...에,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저 조금 특별한 고양이일 뿐이었다.
우리 주인님은 말이다.
옷을 벗었다.
흰 피부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피부위에 지저분하게 나있는 흉터 또한 드러났다.
“언제쯤 지워지려나...”
평생이 흉터를 간직하고 가기는 싫은데- 라고 생각하며 비누를 쥐었다.
거칠기 짝이 없는 빨래비누가 아닌, 진짜 비누.
상처가 났는데, 역한 냄새가 난다고, 씻으라고 밀어 넣어 놓고는.
보일러조차 틀지 않아, 찬 물이 나오는데.
냄새를 지우기 위해 상처에 빨래 비누를 문대던 날이 떠올랐다.
“으!”
그때는 정말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아프지 않았다.
따뜻한 물을끼얹은 몸에 부드러운 비누를 문대었다.
거품이 일어났다.
거품은 포근했다.
거품은 따뜻했다.
-
씻고 난 직후,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오자주인님이 침대에서 조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하루 종일 잠을 잘 수 있는 걸까.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툭- 말을 내뱉었다.
“나도 진짜 잠이나 실컷 잘까...?”
시간도 잘 가고 돈도 들지 않는다.
감정을 추스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몸만큼은 확실히 회복되리라.
“무슨 생각이야...”
방금 한 생각은 조금 바보 같았다.
스스로가 조금 한심스러워 졌다.
그보다는, 내 방송을 관련해서 도움이 될 만 한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발음.
시옷받침이 잘 안 된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집에서 열심히만 연습한다면 이건 고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멘트.
너무 따분하다는 말이 있었다.
이것 역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캠.
게임방송을 주로 하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노가리 캠 방송이 인기가 좋았다.
나는 못생겼는데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둘째 치더라도.
대다수의 시청자가캠 방송을 좋아하신다면 캠 방송에 좀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맞겠지.
캠 방송에 대한 몇 가지가 생각났다.
네모미님 처럼 가슴골이 드러나 있는 옷이 라던가. 아슬아슬한 치마라던가, 코스프레라던가.
...
잠시,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가슴...”
작은 건 아니었다.
B컵이었으니까.
다만, 이정도 크기로 시청자들이 과연 만족해할까...?
잠시 가슴을 만지작거려봤지만, 네모미님의 가슴과 비교되어 자존감이 깎일 뿐이었다.
기가 죽어 어깨를 축 내리고는 그보다 더 아래를 쳐다봤다.
골반, 작았다.
“...도대체 왜좋아 하시는 거지?”
내가 캠 방송을 하고 있긴 하지만, 시청자들이 나를 왜 좋아해주는지 잘 모르겠다.
노출도 0에 수렴하는 여자 캠방 노가리.
도대체 이걸 왜 좋아하는 걸까.
하물며 내 얼굴이 이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런 말은 진짜 하기 싫었지만, 혜진이 이런 면에서는 나보다 나았다.
“으...”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했다.
내 몸은 빈약했다.
“모르겠다...”
왜 이런 나를 좋아해 주는 건지, 왜 계속 귀엽다고 말해 주는 건지.
“윽...!”
순간적으로 귀엽다고 도배되는 채팅창이 떠올랐다.
얼굴이 붉어져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 말라고 발악할수록 귀엽다를 너머 이쁘다며 채팅을 치던 짓궂은 시청자들.
갑자기 이게 왜 떠오르는 것일까.
그저 장난인 것을 알고 있는데!
“...쪽팔려어...”
그게 뭐라고 이렇게 반응해버린단 말인가.
“...아 됐어...!”
괜히 부끄러워져서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주인님이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부터...!”
발음 연습, 멘트 연습.
오늘부터 한 달간 쉬지 않고 연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적어도 하루에 2시간씩...!
“너무 적은가...?”
그럼 3시간씩...!
내가 결심해 놓고도 뭔가 아닌 것 같아 시간을 조절 한 후, 짝짝- 볼을 두드렸다.
대충 말린 머리카락을 고무줄 따위로 대충 묶었다.
목이 조금 시원해 진 것 같았다.
조금, 바보같이 웃어보이고는 몇 가지를 떠올렸다.
“음치탈출 프로젝트는... 일단 중단되었고...”
양해를 구하자 오휘님은 걱정하지 말고 푹- 쉬고 오라며 치킨 기프티콘까지 보내주셨다.
나 때문에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겨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윤아님은 연락을 안 받으시네...“
단순히 바쁜 것이었으면 좋겠다.
바빠서 못 본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불안감을 떨쳐내었다.
나에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
일단, 내 할 일을 하자.
이번에 쉬고 난 다음에,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쉬고 난 다음에, 휴방은 없을 것이다.
쉬는 동안 최소한의 목표를 잡자.
내가 마냥 늘어지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자.
떠오르는 것들을 휴대폰에 옮겨적기 시작했다.
1. 감정 안정화.
2. 발음 교정.
3. 멘트 구상.
4. 캠방송에 대한 이것저것.
1번은 필수이니 넘기더라도.
“적어도 이것들 중 두개 이상은 해결해야겠지.”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그리고 혀를 몇번이고굴려 보았다.
마른 침을 삼키고는각오를 다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 휴방이 끝나는 날, 나는 조금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
휴방 1일차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