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방송 다섯 달째(2)
일주일째가 지났다.
좋은 일이 있었다.
깁스는 아직 안 풀렸지만, 딛고 다녀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 나았다, 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좋은 점은 끝.
그럼 나쁜 일들을 나열해보자.
제대로 된 선생이 없이 하는 발음 연습은 어려웠다.
무언가 잘못된 것인지 제 자리 걸음만 수차례.
그다음, 멘트 연습도 실패했다.
사실 이건 예상했을 지도 모른다.
멘트란 사람을 상대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내가 사람들이랑 이야기 할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이랑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으면서 재밌는 멘트가 떠오르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리라.
“에휴...”
한숨을 쉬었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나가버렸다.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3주.
3주 안에 뭐라도 하나 성장할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해져서 창문을 열었다.
조금 뜨거운 햇볕이 내려쬐었다.
다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원했음으로 가슴의 답답함이 조금은 가셨다.
“으쨔쨧...!”
기지개를 피니 딱딱하게 굳은 몸에 뚜둑- 뼛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시원함과, 약간의 통증이 동시에 느껴진다.
몸이 풀렸지만 머리는 복잡했다.
내가 도대체 잘하는 것이 뭐가 있는 걸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새삼 뼈저리게 느껴지지 않은가.
지금의 나는 남의 힘을 빌려 이룩한 것에 불과했다.
남의 인기를 파먹으며 덩치를 불렸다.
내 무능함을 타인의 인기를 좀먹어 덩치를 불려 잠시 가려낸 것이었다.
가린다고 내 무능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내가 내 무능함을 무시할수록, 무능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이제 이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 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연습해서 제대로 된 실력을 쌓아놓아야지.
그래야지, 보다 높은 곳을 바라 볼 수 있을 테지.
이미 늦었을 수 도 있었다.
다만, 늦었다고 포기하기엔 나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은가.
노력이부족하다면 더욱 노력하면 될 일.
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막막한 것은 어쩔수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연습을 안 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연습을 하더라도 방법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아는 발음 연습이라고는 아에이오우 뿐이었고.
멘트 연습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못 잡겠다.
유튜브을 봐도 ‘뭐라는 거지...’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무언가 전문적인 소리를 하긴 하시는데.
“으아아아아...!”
나 왜이렇게 멍청한걸까.
좀 한 번 말하면 알아들어라!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 머리를 때려봤지만, 손만 아플 뿐, 머리가 똑똑해지진 않았다.
“으으...”
급격히 침울해진다.
나는 왜 머리가 나쁘게 태어난 걸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똑똑하게 태어나길 바라는 것은 너무 욕심 이었던 걸까.
“으, 이래선 안 되겠어...”
혼잣말을 툭 내뱉었다.
너무 침울해진다.
“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질까?”
산책이라도 해볼까.
사실 막말로 혜진과 만날 확률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전이 아무리 좁다고 한들 최악의 경우의 수는 한 없이 낮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고, 한숨을 푹 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머리카락 몇 가락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와 눈을 간지럽혔다.
지금까지는 뭐, 경우의 수가 높았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극악한 수 임에도 하나같이 말도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나.
산책을 포기하고 침대에 풀썩 누웠다.
푹신거리는 침대가 내 몸을 집어삼키며, 포기하면 편하다고 유혹하는 듯했다.
진짜 이대로 자버릴까.
어차피 고민해 봐도 답이 안 나올 것 같았다.
의지박약 그 자체.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한심했다.
머리도 나쁘고, 의지도 낮다.
고작 일주일 만에 이런 모습이라니.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가서 물었다.
이빨로 약하게 잘근잘근-
“느에...”
손가락이 침이 묻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
명확한 답이 없었다.
침대에서 베개를 끌어안으며 몇 번을 뒹굴뒹굴.
내가 노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인지, 주인님도 내 옆에 누워 뒹굴뒹굴.
몇 번을 구르고 있었을까.
몸을 대자로 뻗어 힘을 쭉- 뺐다.
그래, 그래도 알고 있는 것도 있지 않은가.
발성법.
발성법이라도 꾸준히 연습해야겠지.
그래도 이건 기본은 알고 있지 않은가.
“아- 아-”
목소리를 내보았다.
내가 듣기에도 깔끔한 목소리.
이 목소리로 바꾸고 방송을 했을 때 시청자들이 낯설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호평일색이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했던가?
“리하...안녕하세요...멍멍...!”
자주하는 말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목소리를 바꾸기 전보다 깔끔해진 것은 두 번째고, 목소리가 어려졌다.
나는 사람들이 예쁜 목소리를 선호하는 것 같아 나름대로 연구하고 내고 있던 목소리였는데.
그런 것 보다 자연스러운것을 추구하는 시청자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근데... 뭐...”
생각해보면 내가 따라 하고 있던 방송인의 나이가 이제 30이 되간다.
지금 내 나이가 17인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럽지 않을 만도 했다.
대략적으로 따져도 2배 아닌가.
발성법을 연습한지 얼마 안 되서 아직 낯설었지만, 익숙해져야겠지.
똑똑-
느닷없는 노크소리.
몸을 굴려 침대에서 떨어졌다.
철푸덕- 소리가 나도록 바닥에 달라붙은 몸을 일으켜 현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자.
하얀님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온다.
“어... 안녕하세요...?”
“단우비입니다...”
“네...?”
“단우비입니다...”
“저기요...?”
“단우비입니...”
“악...! 안돼요...!”
뭔 진 모르겠지만 3번 연속으로 말하게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단우... 아니, 하, 하얀님 왜 그러세요...!”
정신차려요! 라고 말을 내뱉자, 퀭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 하얀님의 눈가에서 또륵- 눈물이 흘렀다.
“왜, 왜그러세요...!누가 괴롭혔어요! 제가 혼내줄게요!”
“서예...”
“생각해보니까 제가 혼내주진 못할 거 같아요...”
푸흡- 소리 나도록 웃은 하얀님은거침없이 내 집으로 들어섰다.
낯선이의 방문에도 주인님을 도망치지 않고다가와다리에 머리를 비비었다.
그런 주인님을 잠시 내려보던 하얀님은 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술...은 없겠고, 마실 거 있나요오...?”
먹을 건 가져 왔어요 라며 비닐봉지를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그 내용물은 역시나 군만두,
“마, 마실꺼...!”
무언가 심상치 않은 하얀님의 모습에 나는 절뚝이며 최선을 다해 뛰었고.
냉장고에서 카페인음료를 꺼내 건네줬다.
방송하기 전, 한 캔씩 마시는 용도로 사둔 것들.
맛은 별로 없는 주제에 비싸기는 엄청비싸서 반 캔씩 섭취하고 있었다.
“캔 뚜껑 따여 있는 카페인음료가 왜 냉장고에서 나오는...”
말을 멈춘 하얀님은 나를 잠시 훑어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제멋대로 납득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왜...?”
왜 찾아 온 거란 말인가.
저번에 내가 밥을 사준 이후로 단 한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지 않은가.
그냥 어쩌다 만나면 인사만 하는 정도.
그런데 이렇게 직접 찾아오시다니, 무언가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제가 차기작 준비한다고 했던거 있잖아요오?”
“네, 네...!”
“재미없다고 연중한 거나 계속쓰라고 반려 당했어요오.”
200화나 쌓아놨는데...
무표정을 지은 하얀님이 또륵- 눈물을 흘렸다.
“그, 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뭐라고 위로를 해줘야 할까.
나는 단우비님 소설을 본적이 없는데 말이다.
본 적도 없는 글에 대해서 말하는 재주는 없었다.
...
그 외의 재주도 없었지만 넘어가고...
쭈뼛거리며 말도 못하고 있을 때, 하얀님이 눈가를 훔치고는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뭐, 본론으로 들어가서어..."
"네...!"
나를 잠시 빤히 쳐다본 하얀님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체념한 듯 말을 이어갔다.
“하아... 연중 한 거 안 쓸 꺼면 이상하거 쓰지 말고 리에라님 팬픽이라 쓰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아...”
“네...?”
“잘 부탁드려요오...”
“네...?”
아무래도 내 귀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