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방송 다섯 달째(3)
내 팬픽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단정 지었다.
하얀님이 장난치시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이 말이 안 되잖아.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하얀님을 바라보았지만, 하얀님은 카페인음료를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이 말도안 되는게 진짜라고?
“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한다는 듯 하얀님은 캔을 내려놓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벌 같은 느낌이지요오...”
이것저것 다 도와주고 있는데 기존 연재하던 걸 내팽겨 치고 차기작 쓴다고 하고 있었으니까-
라고 말을 내 뱉은 하얀님은 머리를 벅벅 긁으셨다.
“화가 나셔서 한 말이겠지만요오...”
“그, 그쵸?”
설마 진지하게 내 팬픽을 쓰라고 하시진 않았을 것이다.
서예님이 나를 아무리 아낀다 한들, 그건 상식을 벗어나는 일 아닌가.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리에라님 팬팩쓰는거 생각보다 나쁘진 않겠더라고요오...?”
뭐라고?
내 귀가 잘 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그래서 머리도 식힐 겸, 재연재 전 까지는 진짜로 써볼려고요오...”
리에라님 팬픽이요.
“지, 진짜요...?”
아니, 쓰는 것은 쓴다고 치자.
“어디다 올리시게요...?”
그냥 서예님에게 보내고 마는거죠? 그렇죠?
얼마나 잘쓰는지,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가지고 소설을 쓴다니.
창피하잖아!
나는 간절한 눈으로 하얀님을 바라봤지만, 하얀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바램과 정 반대되는 말이었다.
“리에라 마이너 갤러리라는 곳이 생겼더라고요오...?”
“아니야! 앆!”
내 인생 몇 안 되게 사람을 앞에 두고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내가 들은 이야기는 그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아니, 글을 올리더라도 왜하필 거기에 올린단 말인가!
차라리, 올린다면, 굳이 올린다면 내 방송 개인페이지에 올리는 편이 그런 곳에 올리는 것보다 수십만배는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럼 리에라님 개인페이지에 올리는 걸로오...”
“아, 아니 그,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아니, 왜 올리려 한단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내 팬픽을 왜 쓴 단 말인가, 하얀님은 서예님이 그냥 홧김에 한 말을 진짜로 실행하려 하고 있었다.
“제, 제가 뭔가 잘못한 게 있다면 죄송해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무시무시한 일을 생각 할 수 있을까.
몸을 오들오들 떨어봤지만, 어색한 침묵 속에서 하얀님을 다 마신 카페인 음료 캔을 매만질 뿐이었다.
“아...!”
하얀님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의미 없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밖에는 안 나가시는 게 좋아요오?”
“네...?”
“우연이었겠지만, 만났거든요, 이름이 뭐였더라, 혜진 이라고 했던가요오?”
혜진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얌전히 하얀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혼자 있는 건 아니고, 키가 큰 여성분이랑 같이 있던데, 바로 이 근처였거든요오.”
이 근처에 있었다고?
산책 나갔다면 그대로 인생 끝날 뻔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고는 감사를 전했지만, 내 머리를 토닥거려주셨다.
“흐에...?”
“근데, 키 크신분은 리에라님을 꽤나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는데, 혹시 아는 있으신 가 요오...?”
“키 큰 여성이 저를 잘 안다는 듯이 말했다고요...?”
윤아님?
잠시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그분이 혜진이랑 만날 일이 뭐가 있을까.
키 큰 여성이 윤아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잘 모르겠어요오...”
“하긴, 신경 쓸 필요는 없겠네요오...”
“하지만 당분간은 외출하지마세요오...”
“네에...”
확실히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법이고 뭐고, 만나게 된다면 좋은 꼴은 못 볼 것이 확실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인데, 굳이 몸으로 체험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하얀님은 잘 마셨다며 다시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하얀님의 온기가 미약하게 남은 머리를 스스로 몇 번 만져보고는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설마 저 말을 해주려고 온 걸까...?”
소설이야기보단 저게 본론인 것 같다고 느낀다면 자의식과잉일까.
뭐가 됐던 나를 걱정해주셔서 하는 말이니 고마워해야겠지.
...
내 소설 관련해서는 빼고 말이다.
아니, 도대체 왜 내 팬픽을...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보았지만, 뒤늦게 붉어진 얼굴을 가라앉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
사실 조금 기대되기도 한다면 이상한 걸까.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어쨌든 그것보다, 혜진과 같이 있었다는 키 큰 여자는 누구였을까?
단순한 지인이면 좋겠지만...
왜일까, 무언가 불안했다.
무엇 때문인지도모르는 막연한 불안감.
이 이상 최악의 상황이 있겠냐만은 꺼림직 했다.
“으움...”
잠시 말없이 허공을 주시하다가 볼을 긁적였다.
내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은가.
신경 쓸수록 답답해지기만 하고, 답은 안 나오는데, 굳이 내가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당연히 말은 이렇게 해도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경 쓰지 않는 척 할 뿐이지.
“어쨌든 내가 할 일은 변하지 않아...”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남은 3주의 시간동안 피가 나도록 연습을 해서, 보다 나은 모습으로 방송을 해야지.
3주 뒤, 방송을 킨다면, 모르는 사람들이 내 방송에 찾아올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여, 기존의 시청자들이 이게 내가 보는 방송이라고 조금 더 떳떳해 졌으면 좋겠다.
내 이미지는 내 시청자들의 이미지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나를 위해서가 아닌, 시청자들을 위해서라도 늘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내 혀를 집어 쭉 빼내었다.
“브에...”
그리곤 다시 혀를 집어넣고는 아에이오우-
그후, 여러 단어들을 내뱉었고, 휴대폰으로 내 목소리를 녹음하여 몇 번이고 다시 들어보았다.
아주 아주 미세하게,처음보단 좋아진 것 같아 뿌듯하다.
“흐헤헤...”
헤실헤실.
미세한 것 보단 내가 성장했다는 것에 기뻤다.
너 같은 것이 뭘 할줄 아냐며 손찌검 당했던 날에는.
정말로 나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교육받았었다.
그렇기에 무능감이 죄책감과 뒤섞여 인간이하의 취급을 견뎌냈었다.
하지만 달랐다.
나는 방송도 할 줄 알고.
FPS한정이지만 게임도 곧잘 한다.
그리고 이제는 발음, 발성, 멘트 따위를 연습하고.
조금이나마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그 집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나를 속박했었지만, 그것이 조금씩 깨져나가고 있었다.
어두웠던 껍질 속에서 발버둥치자 껍질이 부서지며, 부서진 사이로 빛이 나를 비췄다.
“...아직 멀었지만”
껍질은 두꺼웠다.
껍질은 거대했다.
그렇기에 내가 발버둥 쳐서 부숴낸 껍질은 극히 일부였다.
다만, 발버둥 쳤기에 부서졌고, 부서졌다면 언젠간 나는 껍질을 깨고, 마침내 빛을 마주하게 되리라.
웅크리고 껍질을 받아들였던 날들이조금씩 후회되었다.
“지금부터라도...”
각오를 다졌다.
예전과는 다르다.
나는 좀 더 나아질 수 있었다.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확신이 있다면 노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히히...”
그리곤 그 얼굴을 바보 같은 표정으로 웃었고, 나또한 웃어보였다.
행복하다.
나를 좋아해주는 수 많은 사람들.
나를 아껴주는 많은 사람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부끄러운모습을 보여주지 말자.
그렇게도 또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휴방이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