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방송 네달째와 다섯 달째 사이 (1)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에는 큰 이유가 필요 없었다.
싫어하는 것에 필요한 것은 아주 사소한, 아무것도 아닌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수 십가지의 이유가 필요했지만, 싫어하기 위해서는 단 한가지면 차고 넘친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친 가지겠지.
나라고 모르겠는가.
혜진이 가해자라는 것을.
하지만, 혜진도 알고 보면 불쌍한 아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혜진의 모습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불쌍하고 가여웠다.
그런 혜진이 싫어하는 백서연이라는 아이는 곱게 보이지 않았다.
불쌍한 혜진이, 백서연을 싫어한다.
그렇다면 내가 싫어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첫 만남은 우연이었다.
현섭이가 나를 불렀다
노래강사로서 사람하나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했던가?
거기서 혜진이 입에 달고 살던 백서연을 만났다.
갓 태어난 개새끼마냥 부들부들 떠는 꼴에 웃음이 나왔다.
혜진이 말하는 그대로의 모습.
초라하고, 멍청하고, 꼴사나운, 그런 모양새.
불만을 담아 노려보고 있자, 현섭이 다가가 뭐라고 백서연에게 귓속말을 건네었고.
멍청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고등학교자퇴, 대전에 사는 것, 방송을 하는 것.
단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멍청하고 멍청했으면 지독하게 멍청해 보였다.
저딴 걸 내가 가르쳐야 한다니.
한숨만 흘러나왔다.
노래실력이 아니라 자신감이 너무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자신감만 문제일까.
그냥 사람자체가 싫었다.
온 세상 모든 불행을 자신이 모두 간직한 것 마냥 떨리는 눈동자도 가증스러웠다.
그래, 혜진이 싫어할만 했구나.
저러니까 맞고 다니지.
주제를 모르는 것 같네.
저딴애를 좋다고 방송을 보는 놈들까지 역겨워지려한다.
아, 그래.
그 사람들은 진실을 모를 뿐 아닌가.
두 달 안에 가능하냐는 소리에 빡 쌔게 해도 되냐 되물었다.
어떻게 괴롭혀 줄까.
이 상황을 안다면 혜진이 꽤나 기뻐할 것 같았다.
뒷걸음 질 하던 백서연을 잡았다.
몸을 더듬어 보았다.
뼈가 얇다.
살이 없었다.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혜진은 자기관리를 하는 아이인 반면.
이 형편없는 몸은 뭐란말인가.
고등학생은커녕초딩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노래까지 들어본 결과.
답이 없었다.
멍청하고 나태하고 못부르기까지 한다.
혜진이 말한 것 보다 더 심하지 않은가.
게다가 원조교제까지 했었다지?
걸레년.
더럽기그지없다.
이딴 애를 가르치라고 나를 부르다니, 현섭에게 짜증이 치솟았다.
“대가리박아”
현섭을 굴리며 짜증을 풀고 있자, 백서연이 죽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몸이 살짝 떨렸다.
주제에 맞지 않는 저 눈은 뭘까.
역겹지 않은가.
죽은 사람의 눈처럼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기분 나빠.
“무례한 거 아니에요?”
시발, 이를 꽉 깨물었다.
한 대 때리면 저런 눈을 못할 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옆에 현섭이 있었기에 억지로 참아냈다.
현섭의 어깨를 툭 쳤다.
왜 나를 불러서 이렇게 짜증나게 한단 말인가.
상황이 이상해졌다.
짜증난다.
어떻게든 사과를 하고 끝냈으나, 기분이 나쁘다.
속이 울렁거린다.
그날이 끝나고 나는 혜진을 찾아갔다.
“언니 왜 불렀어?”
“아, 혜진아 나 이번에 합방한다고 했잖아?”
“근데?”
“거기서 네가 말했던 백서연 봤다?”
“아...시발...”
백서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욕설을 내뱉은 혜진의 모습에 살짝 안쓰러워 졌다.
음식 따위를 앞 접시에 건네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말한 거처럼 애가 역겹더라”
“그치그치?”
내 말에 화색하며 낄낄 웃어보인 혜진이 내 잔에 맥주를 따라 건네줬다.
“그 병신은 주제를 모른단 말이야”
뭐만 하면 말대꾸, 징징거리고 옷에 정액따위 묻히고 다니고
말하면서도 치가 떨리는 것인지 몸을 부르르 떤 혜진은 나에게 은근히 물어왔다.
“언니, 걔가 그런게 인기 많은거 이해 안되지 않아?”
“그렇긴 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박아 같았다.
그딴 애를 왜 좋아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럼 언니, 혹시 걔 약점될만한거 알고 있어?”
“약점?”
“터트리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못한 병신인데 잘 나가니까 열 받잖아”
“에이, 너 정도면 굳이 그런거 없어도 인기 금방 끌어”
진심이었다, 혜진이 목소리가 나쁜가, 얼굴이 나쁜가, 성격이 나쁜가.
전부 출중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성장할 수 있겠지.
“아니, 그건 당연한 건데, 걔가 마음에 안들잖아...”
“으음...”
그런 것이라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
나는 내가 만나보았던 백서연의 모습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자존감은 밑바닥인 주제에 눈을 부릅뜨고 항의하던 모습.
“아... 짜증나네”
내가 말했지만 짜증난다.
“뭐, 자존감이 없다는 거지?”
“그렇긴 한데 반항도곧 잘하더라 그 방법은 위험한 거 아니야?”
내 질문에 혜진이 킥킥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그건 괜찮아, 내가 무섭지 않다면 분명 찍 소리도 못 할꺼야.”
“잘해봐”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한다면 하는 아이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내일도 걔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에짜증이 치솟아 맥주를 들이켜 식혀냈다.
그리고 다음날.
이 망할 것은 말도 없이 스튜디오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얕보인 걸까.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걸까.
굳이 따지자면 후자아닐까.
한숨을 한 번.
머리를 벅벅 긁자, 현섭이가 다가와 백서연이 발목이 삐었다며 말을 건네줬다.
“꾀병아니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사진보니까 심하게 부었더라”
“그으래...?”
아니,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얼굴은 비춰야 하는 거 아닌가?
나라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여기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 나도 가 봐도 되지?”
걔를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것에 미약한 해방감.
그리고 짜증이 뒤섞여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현섭의 말을 듣지 않고 가방을 쥐고 스튜디오를 나섰다.
남는 시간동안 혜진이랑 놀까.
쯧- 혀를 차고 길을 걷자, 다리병신이 된 백서연이 눈에 밟혔다.
깁스랑 목발.
생각이상으로 더 심하게 다친 건가?
한숨을 쉬며 다가갔고.
백서연은 나를 바라보고는 놀랐다.
생긴 것도 그렇고 곧 뒤질 것 같아 약봉지를 뺏어들었다.
어색한 침묵이 우리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발병신이 됐으면서 왜 이지랄을 하고 있는 걸까
물어보니 돈을 아껴야 한단다.
미친년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억지로 되삼키고는 택시를 태워줬고 이내 도착한 곳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한 고급 빌라.
이런 곳에 살면서 돈을 아껴야 한다고?
무언가 기만을 당한 것 같아 대충 말을내뱉은 뒤, 혜진의 집으로 향했다.
“좆같네...”
이유 모를 짜증이, 혜진이 말한 백서연의 이미지와 합쳐진다.
휴대폰을 들었고, 혜진에게 전화를걸었다.
몇 번 울린 연결음에 혜진이 전화를 받았다.
"응? 언니 왜?"
"어제 말했던 글, 올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