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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화 〉방송 네달째와 다섯 달째 사이 (2) (78/143)



〈 78화 〉방송 네달째와 다섯 달째 사이 (2)

분명  것 아닌 일이었다.
찾아본 결과, 이미지가 엄청 나쁘지 않던가.

불쌍한 척 연기한 것에 역풍을 맞은 것은 물론이고 드래곤과 추문까지.

살짝만 툭- 건드려도 볼품없이, 와르르 무너져내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일을 고발한 착한 혜진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겠지.

좋은 일이다.

뭐, 현섭이 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그러기에 누가 그런 애랑 합방을하라고 했던가.

“자업자득이지...”

냉소했다.

이제 나는 가만히 앉아 백서연의 몰락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혜진이의 친구가 아는 렉카가 있다고 했던가.

이 일을 도와주는 댓가로 100만원을 건네줬다.

벌써부터 눈에 그려진다.

초라하게 덜덜 떨면서 아무것도 못한 채로, 주제에  맞는 껍데기가 벗겨지는 것이 말이다.

영상이 올라가고, 혜진이 나섰다.
별 것 아닌 일처럼, 너무나 쉽게 기세는 기울었다.

거품을 걷어내자, 백서연이라는 존재한 보잘 것 없기 그지없었다.

쉽지 않은가.
별 것 아니지 않은가.

웃음이 나오는 건 왜일까.

혜진에게 도움이 됐다는 뿌듯함?
아니면 나를 기만했던 것에 대한 복수심?

아니, 사실  이유따위 없었다.

그냥 짜증났고, 짜증났기에 치웠다.

그 뿐이지 않은가.

짧고, 간결한 답.

이미 알고 있으면서 뭣하러 생각한단 말인가.
영양가 없는 짓거리.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었다.

뚜껑을 따자 치익- 가 났고, 그 소리를 안주삼아 맥주를 들이켰다.

시원하다.
속이 얼어붙을 것 같이 시원하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살래...?”

듣지 못할 상대에게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진심으로 하는 충고였다.

조금만 더 성실하게 살았으면 이렇게 됐을까?
조금만 더 똑똑하게 살았으면 이렇게 됐을까?
조금만 더 노력을 하며 살았다면 그렇게 됐을까?
조금만 더...

“하긴...”

허공을 보며 비웃었다.

‘조금만 더’가 무슨 소용인가.
 조금만 더 를 못했으니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겠지.

혜진에게 맞고 다닐 만 하지 않은가.

맞을 만 해서 맞은  뿐이었다.

그래놓고는 피해자 행세를 하다니.

기도 안찬다.
우리 혜진이가 얼마나, 착하고 성실하고...

그래, 백서연 따위보다  십, 몇 백배는 더 나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보다 나은 사람은 언제나 옳았다.

지금 상황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커뮤니티글을 훑어보았다.

백서연을 향한 무지한 악의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사람들도 아는 거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가장 상단에 위치한 글을 열어보았다.

[리읍읍 씨발년 그럴줄 알았다ㅋㅋㅋㅋㅋㅋㅋ]
ㄴㄹㅇㅋㅋ
ㄴ불쌍한 척도 정도껏이지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표적인 글.

추천수가 100이 넘어가고 있었다.

혀끝에 맴도는 술의 맛이 달다.
남이 잘못되는 것에 있어 희열을 느끼는 미친년은 아니었지만.

내 신호에 따라 정의가 집행되는 이 짜릿한 쾌감은 무엇과도 비할 바가 없었다.

백서연은 악이었다.
혜진을 괴롭히는 악.

혜진이 백서연 때문에 괴롭다고 했었다.

무엇 때문인지, 제대로 말을 못했지만, 그만큼 지독하게 당했다는 것이겠지.

예상은 간다, 하는 짓거리를 보면 걸레처럼 엉덩이 흔들며, 불쌍한 척하며, 여기저기 남자들을 홀려 혜진을 괴롭혔겠지.

안 봐도, 알아보지 않아도, 그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럼 친한 언니로서 가만 보고만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에 맞는 벌을 내려줘야지.

“근데 너무 시시한데...?”

막상 반항도 없이 무너져 가는 백서연을 보고 있자니 시시하다.

이렇게  거라는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이미 불쌍한 시청자들에게한몫 달달하게 당겼으니 손 턴다는 건가?

최소한의반항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소식이 없었다.

“귀찮게안굴어서 다행이긴 한데...”

고통스럽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혜진이 받은 고통의 절반도 채 못준  같았는데.

머리를 긁었다.

별 수 없나?

얌전히 묻혀준다는 것을 다시 꺼내서 반항하라 흔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깨를 으쓱이고는 컴퓨터를 바라보고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러자, 유독 눈에 띄는 추천수.

231?

무슨 글인데 200이 넘는 걸까.

[하유야 이새2끼뭐냐ㅋㅋㅋㅋ]

“...얜 또 뭐야...?”

혜진에게 새끼라니.
제목부터 불쾌하다.

인상을 찌푸리고는 게시물을 클릭하자 혜진이 예전에 썼었던 글들을 그대로 가져온 모습.

“아니, 애가 화가 나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지 쓰레기새끼들...”

뭣도 아닌 것이었다.
그냥 백서연을 향한 욕설들과 사진일 뿐.

비추천을 누르고, 게시글을 신고하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누구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바라보자 혜진이라는 이름이 액정에 표시되어있었다.

화를 가라앉히고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언니! 큰일났어...!”

“무슨 일이야?!”

갑자기 뭐가 큰일 났다는 걸까.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자고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귀를 기울이자, 혜진이 울먹이며 지금 상황을 설명해 나갔다.

같잖은폭로문에, 귀가 얇은 병신들이 혜진의 트위터 아이디를 뒤적거려 문제가 될 만한 예전 글을 퍼 날랐다는 것.

“와...씨발...”

혜진이 트위터에 남긴 글은 족히 2만개가 넘는데 그걸 전부 뒤적거렸다는 뜻 아닌가.

미친놈들이었다.

“홧김에 쓴 것들인데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마음이 아려진다.
미친놈이 무슨 폭로문인가.

피해자 행세도 정도껏이지.

이게 무슨...!

혜진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마녀사냥이 도를 넘었다.

“렉카 걔는 어떻게 됐어?”

“100만원이나  먹어 놓고 이젠 모르는 일이라고  닦았어...”

“미친놈!”

이렇게 혼자 빠져나가겠다고?
불쌍한 혜진을 남겨두고?

최소한의 동정심도 없는가?

렉카라는 새끼들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성이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돈이나 쫓는 병신들...

으르렁 거리며 어떻게든 해보겠다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언니만 믿을게’라는 말에 책임감이 막중해졌다.

그래, 현섭이라면 나를 도와줄 것이다.
지금 상황을 충분히 설명한다면, 분명 도와줄 것이다.

내가노래 연습도 많이 도와주지 않았던가.

“현섭아 시발 전화좀 받아봐...”

통화음이 오가고, 또 오갔다.
4번이 울렸고, 10번이 울렸고, 16번이 울렸다.

“아...씨발 왜 안받아!”

휴대폰을 내려칠 뻔 한 것을 억지로 참아내고는
-전화를 받지 않아...
다시금 전화를 걸었다.

처음부터 다시.

5번의 연결음이 울렸다.

그리고 받았다.

“현섭아 나좀 도와줘! 백서연 그 년...!”

“누님...”

“아 시발   끊지 말고...!”

“누님...”

아 시발 왜!

한시가 급한데 왜 말을 계속 끊어!

혜진이 지금 불쌍하게 벌벌떨고 있는데!

“야!”

“아... 좆같네...”

"뭐라고...?"

이를 부술 듯이 빠드득 갈고, 읊조리는 듯한 위협적인 목소리에, 잠시 숨을 멈췄다.

“한 번만 더 통화 걸면 찢어 죽여 버린다 씨발년아...”

개 좆같은 년...

뒷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뭐, 뭐라고...?”

충격에 잠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야, 야!"


소리쳐봐도 대답이 없다.
휴대폰을 바라보자, 전화는 끊겨있었다.

다시금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현섭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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