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방송 여섯 달째(1)
4주째, 연습을 끝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드디어 내일이면 내가 말해놓았던 휴방일이 끝나는 날.
그간 노력의 성과를 보여줄 날이다.
나름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기에 부족한 시간도 아니었다.
나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예전처럼 내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쓰레기라는 뜻은 아니었다.
무언가 부족하다면 채우면 될 일 아닌가.
영원히 부족한 채로 살 것은 아니니까.
하여, 나는 어제보다 나아갔고, 일주일 전보다 더 앞섰으며, 한 달 전보다 발전했다.
“응...”
각오를 다졌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내 이미지가 보다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존재할 것이다.
물론, 모두가 나를 좋아해주길 바란다는 유치한 망상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저.
기대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품었을 뿐이다.
열심히 노력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기대감.
그리고, 내가 모르는 한 달 사이에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지.
하물며,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불안감 말이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섭지만, 두근거린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하며 상상해보았다.
그리고,그런 생각을 뒤 따라 오는 것은 미약한 후회였다.
내가 진짜로 열심히 노력했었나?
이런 기대를 품을 만큼, 피를 쏟았나?
이에 대한 답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사람들이 나를 평가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결과를 받기까지, 15시간도 남지 않았다.
나는 빤히, 주인님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나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발성, 발음, 멘트와 몸짓까지.
짧은 시간이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모든 것에 노력을 기울였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내 시청자들을 위해서.
보다 나은 방송을 위해서.
쿵쿵거리며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자 가슴에 양손을 모아 올렸다.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심호흡해보았지만, 진정되지 않는다.
양손을내리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를 보고는 ‘나쁘지 않네.‘라는 소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내 방송을 보고는 ‘시간이 아깝다.’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시청자들이 ‘이게 내가 보는 스트리머다.’라고 당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작은 소망.
어쩌면, 내 주제보다 큰 욕망.
나를 보고, 내 방송을 보고, 온갖 긍정적인 감정을 느껴주면 좋겠다.
내가 시청자들을 보며 겪은 행복을, 조금이나마 나눠주고 싶었다.
미소를 지어보이다, 입꼬리를 내렸다.
...
만약, 리에라 이전에, 백서연인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욕을 해도 된다.
나를 때려도 된다, 뭐라 해도 좋았다.
백서연으로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익숙하니까.
하지만, 방송만은 스트리머로서 리에라 만큼은 안 된다.
그리고, 나를 봐주는 시청자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만큼은 안 된다.
어떻게 얻은 행복인데.
그걸 건드린단 말인가.
리에라는 항상 행복해야한다.
백서연인 내가 아파도, 리에라 라는 ‘나’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결과적으로 방송이, 내가 죽는 날.
나를 기억해줬으면 하고 시작한 방송이었지만.
이제 와서는, ‘백서연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리에라인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히히...”
아픈 건 모두 ‘내’가 가져 갈 테니.
방송의 ‘나’는 계속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발을 흔들었다.
이불 따위가 발짓에 따라 출렁거렸다.
주인님이 침대에서 내려가 애옹 거리며 불평을 내뱉었다.
하지만, 못 들은 척- 얼굴을 베개깊숙이 파묻을 뿐이었다.
현재의, 방송인 리에라는, 행복했다, 즐거웠다. 슬프더라도, 이겨낼 수 있었다.
과거의, 현실의 백서연은, 우울했다, 죽고 싶었다, 희망이 없었기에 체념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벌어지던 간격은.
어느 순간, 메울 수 없을 만큼 벌어졌고.
그것은, 내가 나를 구분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최근에 정립된 것이었다.
사실,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서예님고, 아람님도, 가람님도, 네모미님도, 드래곤님이도, 오휘님도, 주인님도.
리에라가 엮어낸 분에 넘치도록 좋은 인연들이었다.
그런 반면 백서연은 어떤가.
악연밖에 없었다.
도무지 쓸데가 없었다.
그리고 또 어떤가.
리에라는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백서연은 또 어떤가.
불행했기에 노력을 하지 않았다. 라는 변명을 집어치우면 남는 것이 뭐란 말인가.
초라했다.
초라하고 멍청했다.
하여, 결론적으로 나와 나는.
백서연을 쓰레기통으로 쓰기로 했다.
쓸모가 없으니, 나쁜 것은 모두 백서연이 감당하고, 좋은 것만 리에라가 가져가자.
꽤나 만족스러운 생각 아닌가.
리에라와 나를 구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메울 수 없을 만큼 벌어진 방송과 현실, 현재와 과거의 간격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백서연이 추후에, 견디고, 견디다 못해, 못 견딘다면.
...
그것은 나중에 생각할 문제.
지금은 이것으로 만족하자.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주인님이 폴짝 올라와 내 등에 자리를 잡았고, 묵직한 무게는 안정감을 심어줬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갔다.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컴퓨터로 걸어갔고, 전원을 꾹- 눌렀다.
한 달 만에 들린, 컴퓨터의 가동음이 귓가에 울렸다.
이제 와서 컴퓨터 가동음이 새롭다하면 이상한 것이겠지.
혼자 웃어보이고는 머리를 긁었다.
방송시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고, 나는 나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네모미님이 사준, 옷들을 차려입었다.
조금, 너무 어려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네모미님이 골라준 옷답게 이뻤고, 만족스러웠다.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목을 큼큼- 풀었다.
뺨을 짝짝- 아프지 않게 두드렸고.
냉장고에서 카페인음료를 꺼내 한 모금 들이켰다.
“으...!”
머리까지 찡- 해지는 시원함.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
목소리를 길게 내보자, 전보다 깔끔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징- 울린 휴대폰을 바라보고는 행복하게 웃어보였다.
-화이팅!
네모미님
-호스팅해줄까?
아람님
-겁먹지말고ㄱ
가람님
그리고
-준비됐어요
서예님.
리에라가 쌓아온 좋은 사람들이 나에게 응원을 보내왔다.
역시, 너무 좋은 사람들이다.
이 것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라는 멍청한 질문은 필요없었다.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호의에 보답하는 방법 말이다.
지금 방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
하여, 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렇게 해서, 나를 도와준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
자신 있었다.
‘감사해요’라고 말을 남기고는 방송을 켰다.
이미 공지되어있던 방송인만큼,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어...?”
39, 44, 113, 181. 237.
내 예측과는 조금 다른 화력.
보통, 한 달이나 지나면 화력이 약해지기 마련이었는데.
심지어는 그동안 방송도 안했는데.
화력이 식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보다 강해진 것 같다면 내 착각일까?
내가 한 달간 소식을 끊은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50명?
진즉에 넘어섰다.
600명이 코앞.
분명 이슈가 되었던 만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규모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얼떨떨하게 시청자 수만은 바라보고 있자 채팅창이, 하나 둘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리하!
-보고 싶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
-ㄹㅎㄹㅎ
-고소건 어떻게 됨?“
-리에라하이!
읽기 힘들 정도로 밀려올라가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리, 리하...?”
방금 막, 시청자가 1000명을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