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방송 여섯 달째(4)
끝끝내 2/11/1로 게임이 끝났다.
게임을 플레이 한 시간보다회색빛 화면을 본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기분탓이 아니겠지.
입문난이도라고 써져 있었는데, 뭐가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이거 입문 아니야...”
-입문도 못 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입구 컷ㅅㄱ
“아니이...”
내가 못 한다 기보단, 아니.
못하는 건 맞지만, 게임이 불친절하지 않은가.
상대의 스킬은 뭔지도 모르겠고, 뭘 눌러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게임 속으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게임은 인류해악적인 게임이다.
오늘부터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콩콩- 키보드를때렸다.
처음부터 내가 엄청나게 잘하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플레이 시간보다 회색화면이 더 긴 것은 아니지 않은가!
-걍 노가리방송이나 하자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ㅋㅋㅋ 게임하면 고통만 받자너
-그렇다고 재밌는 것도 아니고
-아앗...
“저 진짜 재미없어요...?”
-네
-아니ㅋㅋㅋㅋㅋ
“아앗...”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재미없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마음이 부서져 버린다.
한 달 동안 발음 연습 같은 것이 아니고 게임연습을 해야 했던 걸까.
잠시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한숨을 쉬고는 시청자의 말에 따랐다.
채팅창의 시청자 숫자는 1100명.
절반도 남지 않은 시청자들이었지만, 이것도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사건사고에관심을 지니고 찾아온 사람들은 거의 걸러졌다는 소리겠지.
이정도면 노가리 방송을 해도 심한 어그로는 안 끌리겠지.
입술을 한번 질겅거리고는 게임을 종료했다.
그리고 이내 캠을 키자, 방송화면에 비쳐지는 내 모습에 잠시 갸웃.
한 달간 푹 쉰 탓에 살이 조금 붙어서 볼 살이 생겨난 것 같았다.
양손으로 양 볼을 꾹 눌러보았다.
말랑거린다.
볼을 살짝 부풀려 보자, 조금 뚱뚱한가?
채팅창은 웬 귀여운 척이냐며 불탔지만, 딱히 귀여운 척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금, 다른 생각.
“살 빼야하나...?”
-???네?
-지금 몇인데?
-예???
“지금...어... 몇이더라? 이틀 전에 확인했더니 41kg이었어요!”
-그걸뺀다고???
-살빼는 기준이 대체 뭐임?
“저 원래 36kg이었으니까 5kg이나 찐 거에요...!”
-아니;;
왜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 걸까.
36kg이었을 때도 돼지 같다면서 맞았었는데.
목을 긁었다.
굳이 저런 식으로 반응하는 거 보면 또 내가 틀렸나보다.
그 집에서 내가 배운 것 중 대부분은 비상식적인 것 아니던가.
지금도 그런 경우인 것 같았다.
“살 빼지 마요?”
내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툭 내뱉은 말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거기서 더 빼면 사실상 기아 아님?
-리에라 아가야... 밥 많이 먹어야해... 쑥쑥 커야해...
-응애
“그으, 전 아가 아니거든요...?”
키 153의 아기가 어디에 있는가!
17살짜리 아기가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B컵 아기가 어디에 있는가!
허리를 쭉 펴고, 헐렁거리는후드티를 양손으로 끌어 모았다.
몸의 라인이 드러났고, 가슴이 유독 도드라졌다.
시청자분들이 좋아하는 섹시한 모습!
-아ㅋㅋㅋ재롱 보는거 같네ㅋㅋㅋㅋㅋㅋ
-리에라 아가야 하나도 안 꼴려...
-ㅗㅜㅑ쳐야함?
“저, 저기... 오우야 한 번씩만 쳐주시면 안 될까요...?”
큰마음 먹고 해본 쪽팔린 모습이었는데, 반응이 심각하게미적지근했다.
시청자분들 이런 거 안 좋아하나?
아니다, 분명 좋아하시는 모습이다!
내 시청자 층은 네모미님과 많이 겹치지 않은가.
네모미님이 뭐만 하면 ‘ㅗㅜㅑ‘를 치던 분들이 왜 나는 대놓고 해봐도 안쳐주는 걸까.
설마, 인간적으로 매력이 없는 건가 싶어 시무룩해지려는 찰나, 후원이 터졌다.
[그런거 말고님이 5,000원 후원]
-그런거 말고 리에라답게 토끼후드나 입자
“리에라 다운 게 뭔데요...!”
이 정도나 되면 사람이 오기가 생긴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앞으로 걸쳐 발이 바닥에 닿게 한 후.
캠에서 조금 멀어져 다리를 꼬았다.
나름대로 허벅지가 살짝 노출 된 바지!
이거라면 충분히 ㅗㅜㅑ를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쪽으로 방송을 틀지는 않겠지만, 오늘 시청자들에게 ㅗㅜㅑ소리는한 번 듣고 말 것이다.
[도야르님이 3,000원 후원]
-땍
“네...”
리에라의 섹시방송은 애청자의 후원으로 5분도 안 되서 막을 내렸다.
“테에엥...”
울음소리를 내며 토끼후드로 갈아입고 오자, 어째서인지 1000명까지 떨어졌던 시청자가 1200까지 올랐다.
난, 솔직히 시청자들의 취향을 잘 모르겠다.
-아니 네모미방에서 매운맛은 충분히 봤음
-리에라방은 달달한 맛으로 보는 거지ㅋㅋㅋㅋㅋㅋㅋ
-너는 섹시함보다 귀여움이 어울려
-윗놈 벤좀
-ㄹㅇㅋㅋ
“디저트 같은 리에라...”
달달함 때문에 내 방에 온다는 시청자의 말에 작게 중얼거린 말에 시청자들이 반응했다.
-ㅗㅜㅑ
-그렇게 말하니 좀 야한거 같기도 하고?
-벤 부탁함
“진짜, 진짜이해 못하겠어...”
대놓고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면 혼내고, 말 한마디에 저렇게 반응한다니.
“제가 시청자님들을 엄청 사랑하는거 알죠?”
-무슨 말을 할려고 이럼
-후원 필요함?
-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사랑하는 거랑이해하는 건 다른 문제인거 같아요...”
나름대로 방송을 반년 가깝게 하고 있는데, 아직도 시청자들의 취향을 잘 모르겠다고 하면.
내가 스트리머로서의 재능이 없는 걸까, 아니면 원래 이런 걸까.
방송이 끝나면 주변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시청자숫자를 바라보자 1289.
“아, 아니... 시청자 숫자가 왜 올라요!”
-그만큼 토끼후드가 귀엽다는거지
-ㄹㅇㅋㅋ
-귀여우니까.
“와...”
방금 팔에 소름 돋은 거 같은데.
“저 말고도 귀여운 분들 엄청 많아요! 아람님이나, 그그, 뭐, 뭐더라 세야님이나!”
근데 나 지금 누구에게 변명하고 있는걸까.
아니, 그보다 진짜 왜 시청자 수가 오르는 걸까.
이제야 내가 방송을 킨 것을본 시청자분들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오늘은 앞서 말했다 시피 혜진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조금 잠잠해지면, 혹은 말 할거리가 떨어지면 그때 해야지.
지금 꺼낸다면, 좋든 싫든 다시 한 번 장작에 불이 붙으리라.
어쨌든, 혜진 이야기를 기대하신 분들이라면 얼마안가 실망하시고 나갈 것이다.
어깨를 으쓱였다.
“흐엥...”
뻐근함을 느껴 기지개를 쭉 폈다.
토끼후트가 살짝 올라가 배꼽이 노출되었다.
뭐, 그래봤자 시청자들은 별 반응 없으니까.
-ㅗㅜㅑㅗㅜㅑ
-밥한공기...
있네...
양손으로 후드티를 잡아당기고는 채팅방을 흘겨보았다.
스토커 때나, 예전에 느꼈던 성적인 수치심이 공포나 불쾌함, 두려움이었다면.
지금 느끼는 것은 단순한 부끄러움과 아주 미약한 짜증.
“아까는 왜 그렇게 반응 안해주셨어요...?”
-아지금이것도 억지로 치는거니까 ㄱㅊ음
-ㄹㅇㅋㅋ
-아 그걸 말하네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이 조금 싫어지네요...”
근데 그보다 왜 시청자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거지.
막 1400명을 돌파했다.
“저... 하는 거 없는데...”
뭘 바라시고 이렇게 계속 들어오시는 걸까.
내 시청자가 250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부분이 유입일 텐데.
채팅은 난장판이 나지 않았으며, 무언가.
원래부터 내 시청자였다는 듯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를 모른다.
이유를 모르니 기괴하기 까지 했다.
아예 방 제목에다가 ‘사건 썰 안품‘이라고 적어놔도 시청자 상승은 멈추지 않았고 이내 1500명을 돌파해버렸다.
"유, 유입 멈춰...!"
[드래곤님이 4,012명을 호스팅!]
-리하
“드래곤님...? 유, 유입...머, 멈춰...”
금방 나가실 시청자 분들이었지만.
순식간에 시청자 숫자가 5500명을 돌파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