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6화 〉방송 여섯 달째(6) (86/143)



〈 86화 〉방송 여섯 달째(6)

방송은 성공적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게 마무리 되었다.

분위기가 중간에 망가진 것은 아니다.

내가 실수를 저지른 것도 없었다.

다만,  컴퓨터가, 플랫폼이. 7000명에 육박하는 시청자를 감당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튕겼음으로 강제 방종이었지만, 시청자들은 이 또한 좋다며 넘어가줬다.

고마우신 분들.

오랜만에 소리를 많이 내서일까.
목이 조금은  것 같았다.

3시간 방송에 목이 이렇게 되다니, 조금 이상하긴 한데.

내가 단련을 게을리 했다 생각하고는 넘겼다.

목이 칼칼하다.

변호사님이 저번에 올라오셔서 건네준 생강차가 아직 남아 있어 그것으로 목을 축였다.

첫맛은 달지만, 끝은 쌉쌀했다.
조금 매운 맛도 느껴졌다.

목이 한결 편안해지고, 그대로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토끼귀가 축 늘어져 얼굴을 덮어 앞이 안보였지만, 치우기도 귀찮다.

“후-”

바람을 불어보았지만, 토끼 귀는 생각보다 묵직했고 움직이지 않았다.

“느엥...”

일단 호스팅을 보내주신걸 고맙다고 연락은 해야겠지.

늘어진 채로 팔만 뻗어 휴대폰을 집었고, 와있는 몇 개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상한 번호로 온 스팸 문자와 내 지인들이 남긴 메시지.

-오늘은 푹 쉬어
-잘했어ㅋㅋㅋ
-귀여웠음!

드래곤님, 네모미님, 아람님.

“히히...”

백서연과 다르게 리에라는 정말 사람을 잘 사귀었다.

여전히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하는 의구심은 있었으나.

그런 것에 거리를 두기에는 사람들이 좋았다.

몇 번이고 메시지를 훑어보았다.
푹쉬어라, 잘했다, 귀엽다.

하나같이 듣기 좋은 칭찬들.

몇 번이고, 또 다시, 몇 번이고 세기며 칭찬을 즐겼다.

시청자들의 칭찬도 분명 기분 좋은 것이었으나.

내가 알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건네주는 칭찬은 다른 것이었다.

몸을 베베 꼬았다.
칭찬들을 떠올릴수록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은 행복한 것이었다.

쿵쿵-  아닌 콩콩- 촐싹거리는 심장이, 간질거리는 가슴이, 내 입가에 지어진 바보 같은 미소가 그것을 증명했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까지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엄마아빠가 화해를 하고, 내 생일 케잌을 사러 갔던  이후로 처음이다.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싶을 만큼 행복하다.

혹시 이러다, 무언가 잘못되어 다시금 행복이 사라진다면.
그렇다면 나는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콩콩 뛰던 심장이 조용해졌다.
간질거림이 사라졌다.
미소가 지워졌다.

무섭다.

행복하지 않아서 무서운 것이 아닌.
행복하기에 무섭다.

이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주제에 안 맞은 욕심일까?

하지만, 이런 것을 맛본 이상 어떻게 포기하란 말인가.
포기할 수 없었다.

차라리 내 목을 매고, 내 눈을 파내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이것이 사라진다면 나는 버틸  없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몸을 떨었다.

 좋은 상상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짝-! 소리 나게 뺨을 두들겼다.
볼이 화끈하게 달아올랐고,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그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스스로를 끌어안았다.

안정되었지만 무언가가 부족했다.

다시금 휴대폰으로 내 칭찬을 바라봐도, 채워지지않는 무언가.

어려서부터, 쭉- 지금까지.
무언가 부족했다.

이만하면 칭찬도많이 받았고, 좋은 사람들도 곁에 있는데.
나는 뭐가 부족한 걸까.

“후우...”

짐작은 되었지만, 굳이 말로서 내뱉고 싶지는않았다.

주인님을 무릎에 앉혀두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골골- 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아 보인다.

주인님의 체온이 나에게로 전달되었고, 조금이나마 부족한 것을 대체 할  있었다.

체온이 부족한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쓰다듬받는거 기분 좋았어.”

누군가, 칭찬과 함께 나를 보듬어주는 것을 처음 느꼈다.

만약에, 진짜만약에.

손길이, 그 체온이.

부모님의 것이었다면, 더 행복했을까?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느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느껴보지 못할 그 체온이 조금은 궁금해졌다.

애써 부모님의 얼굴을 지웠다.
대신, 내 지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주름이 콤플렉스인 드래곤님.
이쁘신 아람님과 네모미님.
목소리가 좋지만 후덕하신오휘님.
잘생긴 가람님.

그리고 하얀님도, 변호사님도, 서예님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인연들이지 않은가.

이만하면 부모님보다 더 좋은 사람들 아니던가.

생일날에 미역국은커녕, 내 생일 자체를 까먹는 부모님 아니던가.
어쩌다 내 생일이 기억이 나면 오천원 짜리를 툭- 던지던 부모님 아니던가.

재롱잔치, 입학식, 운동회, 참관 수업, 졸업식, 모두 안 오시지않았던가.

머리를 쥐어짜 부모님의  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야만 이 이상한 갈증을 해소 할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에 없는 것을 바래봤자 괴로울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주인님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주인님의 체온이 따뜻했다.

내 마음을 읽은 것인지, 아니면 편한 자세를 취할 뿐인지.
주인님은  무릎위에서 몸을 말고 누웠다.

“아, 아니 체온은 좋은데 거기서 자면 다리 저려...!”

끙차- 소리 내며 주인님의 앞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들었다.
치즈스틱처럼 쭉- 늘어나는 주인님이 불평을 내뱉듯 애옹 울었지만 별 수 없었다.

한 번  때 몇 시간이고 자는 주인님이었다.

내 무릎위에서 그렇게 자버린다면, 나는 눈치 보면서 주인님의 잠도 못 깨우고 몇 시간을 그대로 봉인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한 번 겪어본 끔찍한 과거의 일에 몸을 부르르 떨고는 주인님을 침대에 올려주었다.

그리곤 나도 옆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주인님의 수염을 아프지않게 툭툭건드렸다.

그러자 앞발로 내 손을 막아서는 주인님.

귀여워서 배에 바람을 불어넣어주자 하악질을 한다.

“미, 미안...”

애옹- 주인님은 다신 그러지 말라는 듯, 나를 흘겨보고는 도도하게 침대 끄트머리로 가 몸을 말았다.

“덩치가 점점 커지는  같아...”

고양이는 보통 1년이면 다 자라는 아니었던가?

주인님은 어째서인지, 2살 추정인데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살이 찌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자라고 있는 건지.

가끔가다가 주인님이 고양이가 아닌 삵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주인님 고양이 맞지...?”

대답은 없었다.
벌써 잠든 걸까.

“주인님?”

귀를 쫑끗 거리는걸 보면 잠을 자는  같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굳이 귀찮게 부를 필요는 없겠지.

나도 침대에 누워 몸을 대자로 뻗었다.

찌뿌둥한 몸에, 절로 ‘아이고’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짜로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괴롭지 않은가.

오리스튜디오에서 겪었던 그런 운동을 하자면 그냥 찌뿌둥한 몸으로 평생을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을까...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피고는 입고 있는 옷을 내려보았다.

 쓸데없이 깜찍한 토끼후드티를  입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상하게 내 시청자들은 이 옷을 좋아했다.

“진짜 모르겠네...”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면 반응이 없는데.

이상한 것에는 오우야라고 치면서.

결국 돌고 돌아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토끼후드티였다.

“...”

집에 아무도 없겠으나, 굳이 또 한 번 그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앞에 서서 포즈를 잡아보았다.

“...멍멍!...귀, 귀엽나...?”

...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자괴감이 몰아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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