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방송 여섯 달째(7)
“그냥 사과하고 끝내자 응...?”
엄마의 간절한 목소리가 짜증난다.
“그냥 빌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아빠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역겹다.
부모라 하면 자식의 편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백서연에게 미안하다고 하라니.
이를 으득- 갈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초라하지 않은가.
애써 마음에 들지도 않는 핑크색으로 도배한 방
무리해서 산 고사양 컴퓨터와 게이밍 의자.
무엇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 주 동안, 나는 내 위치를 실감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뉴스엔 잊을 만 하면 나를 들먹인다.
렉카들은 조회수가 달달한지 나를 몇 주 동안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 씩 출석을 요구하는 짭새 들까지.
길거리를 나가면, 욕설이 날아왔고, 이런 것 하나 수습 못하는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무능하지 않은가.
나도, 부모도.
친구라는 것들은 연락조차 안 된다.
나와 엮이기 싫다는 거겠지.
“알았어요...”
한 달이었다.
한 달 동안 이 고생을 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한숨을 쉬었다.
내 말에 화색하는 부모의 표정이 열 받는다.
부모가 해결했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해결도 못하고 나에게 떠넘기면서 저렇게쪼개다니.
어른들은 하나같이 바보들 뿐 인걸까.
내가 잘못 한 게 어디 있단 말인가.
부모가 방에서 나가고, 문이 닫혔다.
“으으...씨이발...”
욕설을 읊조렸다.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했다.
나보다, 강하다, 내가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되,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머리가 산발이 되었지만, 짜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심호흡을 했다.
그래, 사과 해야지.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해야지.
결국 그 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찾아가봤자, 쫓겨난다.
이미 겪어보지 않았나?
정장을 입은 떡대들이 빌라를 순찰 돌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일반적인 경호업체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떡대들 뒤에서 나에게 경고를 했던 그 여자.
그 여자가 무서웠다.
목소리는 평범했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악의와 살의는 분명 존재하는 것이었다.
무섭다.
어떻게 해야 할까, 5분, 10분, 15분을 지나 20분을 지났을 때, 하나의 방법이 생각났다.
“...문자?”
문자로 보내볼까?
“아...?”
내 번호는 차단되어 있을 테니, 엄마 폰으로 문자를 보내볼까?
미안하다고, 진짜, 눈 감고 한번만 내뱉으면 되는 일 아닌가.
심성이 약한 년이었다.
눈물만 조금 흘려주면 흐트러질 것이 분명했다.
백서연의 용서만 받아낸다면 그 후로는 뭐가 무서울까.
본인이 용서하겠다는데,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 수는 없겠지.
“그래, 그러면 되겠지...”
-
모르는 전화번호로 계속 이상한 문자가 온다.
차단했다, 그야... 모르는 전화번호는 받지 않는 것이 ‘상식’아니던가.
“하아...”
그보다, 하얀님이 쓴 소설이 예상외로 잘나간다.
편당 추천이 500이 넘는다.
단순한 내 팬픽에 추천이 500!
소설사이트도 아니고, 내개인페이지에 올라오는 소설이 추천수가 500이다.
“...나보다 인기 좋은 거 아닌가?”
내 방송 일정 공지에 박힌 추천 수가 270.
두 배 이상 하얀님이 높았다.
이게 내 방송 페이지인지, 아니면 하얀님의 소설 연재 페이지인지 구별이 안 간다.
현실의 나보다 인기 있는 팬픽 소설 속 나에게 질투 느낀다니, 이게 무슨 이상한 말일까 싶었지만.
“하아...”
사실이었다.
“...나도 뭔가 조금 색다른 모습을 보여 줘야하나?”
팬픽의 나는 꽤나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 나는 어떤가, 게임은 못하고, 멘트도 딱딱하다.
그마나 할 줄 아는 거라곤 캠방으로 노가리 까는 것 밖에 없었다.
게임은 일단 제외하고 생각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 컨텐츠가 필요했다.
캠방송에 마이크는 쓸데없이 좋았다.
“...ASMR?”
그거 있지 않은가, 소리를 확대해서 들려주는 것.
인기는 식었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 해볼까...?”
마이크만 설정하면 되는 일 아닌가.
어려울 것은 없었다.
의자에 앉아 몸을 마이크에 기울였다.
무언가 어색하다, 이렇게 마이크를 가까이 한 적이 있던가?
이유 모르게 가슴이 콩닥였다.
“아아...”
조용히 내뱉은 말이 확대 되었다.
아아-
귀를 간질이는 내 목소리.
부끄럽고, 쪽팔리고, 과연 이런 것을시청자들이 좋아할까 싶었지만, 일단은 꾹 참았다.
ASMR의 묘미는, 아니, 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은 따로 있지 않은가.
집 구석에서 뒹굴고 있던 감자칩을 주워와 뜯었다.
그리고 한 조각을 꺼내 입에 넣고, 깨물었다.
바-삭-!
“...으에...나이거 못하겠어...”
단순히쪽팔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혼자해도 이런데, 이걸 수많은 시청자들 앞에서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지 않은가.
잠시 상상해보았다.
토끼후드티를 쓰고는 당근을 가지고 ASMR을 하는 나를 말이다.
“이,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었다! 아니어야만 했다!
이런 것은 못참는다!
만약 시킨다면 하긴 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스스로 나서서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으에에에...”
의자에서 바둥거렸다.
무언가 소름끼친다.
내가 내가 아닌 느낌.
이걸 진짜로 시청자들이 좋아한다고?
이런 것으로 수백만 구독자를 달성한 사람들이 신기하고, 위대해 보인다.
일단 이 컨텐츠는 봉인.
진짜 최후에나 꺼낼 그런 것이었다.
“...이제 뭐하지...”
ASMR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노가리 방송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섹시댄스를 2초간 떠올렸지만, 나도 내 주제를 알고 있었기에 제외.
“으으...”
갑작스레 시청자가 몰렸다.
7000명으로 방송이 마무리되지 않았던가.
그중 10%만 내 방송으로 흡수된다 하더라도 700명이었다.
700명에게 보여줄 컨텐츠가 뭐가 있을까.
“테에엥...”
머리가 지끈거린다.
당장 내일 방송을 또 켜야하지 않는가.
오래걸리는 것은 떠올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급조한 것을 들이 밀수도 없고.
언제까지고 토끼후드티를입으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귀여운 척을 할 순 없지 않은가.
지금은 좋아하시지만, 이것도 잠시뿐이다.
귀엽다, 이쁘다는 칭찬은 분명 중독성이 강한 것이었지만.
나는 스스로 알고 있지 않은가.
귀엽지도 이쁘지도 않다.
시청자들에게 콩깍지가 벗겨졌을 때, 나만의 컨텐츠를 뭐라도 들고 있어야만 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바로 오늘 복귀했다.
조금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하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징- 울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였다.
계속 나에게 이상한 문자를 보내는 번호와는 또 다른 번호.
"받지 말까...?"
모르는 번호를 굳이 받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