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방송 여섯 달째(9)
하루가 지났고, 방송이 끝났다.
시청자 수는 1200명으로 급감했지만, 이것 또한 많은 것을 알기에 헤실거리며 방송을 진행했다.
아마 시청자들은 더 빠져나갈 것이다.
어쩌면 700명 이하까지 내려갈 수 도 있겠으나, 그렇게 된다면 내가 부족한 것일 뿐, 누굴 탓할까.
그저, 사람들이 나를 보러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더 욕심부려선 안되겠지.
“하아...”
한숨을 쉬었다.
일단, 방송은 그렇게 생각하고.
당장 내일, 광고 건으로 게임사를 찾아가야 했다.
도대체 어떤 광고일까.
“뭐...”
위험한 거라면 거절하면 되지 않을까.
그분들이 깡패 같은 것도 아니고 설마억지로 시키진 않겠지.
찾아보니 게임도 귀여워 보이지 않던가.
말랑말랑 볼 살에 앙증맞은 그림체의 캐릭터들.
그런 캐릭터를 뽑아내는 게임사에서 설마 그런 짓을 할까.
물론, 게임과 게임사는 별개의 문제라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흡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서예님이 어제 내 이야기를 듣고는 같이 가주겠다 했지만, 거절했다.
나도 다 크지 않았나?
도움만 받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서예님이 내 거절에 별 말없는 것을 보면 알아서 잘 해낼 것이라 믿으시는 거겠지.
그 믿음에 답해야한다.
나도 이제 다 컸다는 것을 증명하리라.
“으갸갸갸......”
뻐근했기에, 스트레칭을 한번.
다리를 쭉 뻗고, 허리를 숙였다.
다리가 당겨서 미약한 통증을 만들어냈다.
요즘 몸이 많이 굳어있는 것 느꼈다.
사실상 음치탈출 프로젝트는 무산되었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운동을 안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허리를 툭툭- 치며 노인네처럼 ‘아이고’소리를 내뱉었다.
“운동해야하나...?”
허벅지를 만져보았다. 말랑말랑하다.
팔뚝을 만져보았다 흐물흐물하다.
몸 전체가 말랑말랑 흐물흐물하다.
조금 심각하긴 한가?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살면서 문제되는 것은 없지 않은가.
굳이 몸 힘들게 운동을 해야 할까 하는 의문에 휩싸였고.
이내 운동은 안 해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몸을 남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고 말이다.
“...우”
말랑말랑 민 배를 쓰다듬었다.
뼈가 만져지긴 했지만, 보드라웠다.
“네모미님이나 서예님 같은 몸이 가지고 싶긴 한데...”
눈을 살짝 올려 보이지 않을 내 정수리를 노려보았다.
키도 작고, 가슴도 작은 편이었다.
유전자 자체가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는 것 같았다.
“에효...”
한숨을 푹- 쉬고는 옆에 벗어둔 토끼후드를 매만졌다.
일단, 섹시 컨셉은 씨알도 안 먹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까지 토끼후드 하나로만 갈 순 없지 않은가.
나도 뭔가, 나만의 특색을 하나쯤은 만들어야 하는데.
뭘 어떻게 만들어야할까.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FPS...”
잘하긴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진짜 잘하긴 하는데.
문제는 fps게임만 키면 시청자들이 재미없다고 나가버리신다.
게임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게임에 집중한답시고, 입을 열지 않아서 발생하는 일.
입을 열면 되지 않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입을 자주 열면, 집중도가 낮아지고 실력이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그냥, 평범한 리에라잖아...“
게임 못하는 평범한 리에라.
“으아아아...!”
생각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진다.
머리를 헝클어트리고는 풀썩 침대에 누워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일단... 잘까?”
어차피 하루이틀가지고 떠오를만한 것이아니었다.
그리고 내일 일찍 보기로 했고...
손을 뻗어 휴대폰을 켜 시간을 바라보았다.
새벽 1시 21분.
뭐야, 별로 안됐네?
“...너무 일찍 자는거 같은데...”
어차피 일찍 이라고 해봤자, 오전 10시에보기로 하지 않았던가.
씁- 숨을 들이마신 후, 내뱉고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까 마신 카페인 때문인지.
아니면 내일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이 안 오는 것만은 확실했다.
목이 마르다.
침대에서 내려와 섰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촉감이 차가웠다.
내가발을 디딜 때 마다 발자국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냉장고로 다가가 문을 열었고, 생수를 꺼내 컵에 따랐다.
물이 컵바닥에 닿아 철퍽이는 들린다.
컵에 반쯤 찼을 때,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다시 넣어 두었다.
컵을 집어 물을 마셨다.
차다, 목이, 속이 차게 식는다.
시원하다기 보단, 무언가, 차가웠다.
하아-
한숨을 내뱉어 보았다.
속이 무언가 말이 아니었다.
왜지?
시청자들도 늘었고, 이상한 누명은 벗겨지지 않았나?
오히려, 지금은 기뻐해야 하는 시기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답답할까.
의아했다.
컵을 내려놓고는 가만히 손을 내려 보았다.
떨린다, 아주 조금, 미세하게 떨려온다.
“......”
사실 알고는 있었다.
알고 있지 않은가.
답은 단순했다.
부담감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시청자들에 대한 부담감.
순식간에 몰린 시선들, 그리고 적응하기도 전에 받은 광고건.
짧은 시간동안과하게 몰린 관심.
물론, 복에 겨운 소리라고 할 수 도 있겠으나.
부담감이 점점 목을 죄여오는 것 같았다.
내가 못나서 일까?
“...그래”
백서연이 못날 뿐이다.
리에라는 방송을 잘 했잖아.
말을 더듬긴 해도, 이렇게 초라한 꼴을 보이진 않았다.
나름대로 시청자들과 소통도 했고, 재밌게 놀았다.
“역시 백서연이 문제네”
담담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를 내뱉었다.
‘진짜 도움 안 되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불도 키지 않은 방, 거울 속, 리에라는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멍청하다고 놀리는 것 같기도 했다.
뭐 어쩌겠는가.
사실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오른 손을뻗었다.
입에 올렸다, 왼 손을 뻗었다.
코를 막았다.
숨쉬기가 힘들다.
10초, 20초, 그리고 이내 30초를 지나 40초.
손을 놓았다, 막혀 있던 숨이 그대로 터져 나왔다.
“흐허...흐엑...후아...!”
꼴사납네.
바보같이 허리를 숙이고 숨을 헐떡이는 거울 속 ‘나’를 바라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답답한 가슴이, 막혀있던 숨과 함께 빠져나온 듯, 그제 서야 차가운 것이 아닌 시원함을 느꼈다.
“아...”
자야지...
한밤중이 이게 무슨 이상한 짓이란 말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시원해진 속과 함께, 걸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 한쪽에서 몸을 말고 있는 주인님을 몇 번 쓰다듬어주자.
잠결에도 골골- 귀여운 소리를 내었다.
“히히...”
헤실 거리는 바보 같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누웠다.
지금 나는 리에라일까, 백서연일까.
잘 모르겠다.
눈을 감고는, 베개를 끌어안았다.
푹신한 베개가 기분 좋았다.
아.
그래, 기분이 좋았다.
행복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리에라였다.
리에라는 행복했다.
늘어난 시청자들이 좋았다.
내 무고를 알아준 사람들이 좋았다.
짧은 시간동안 분에 넘치게 모인 관심이 행복했다.
베개에 얼굴을 비비었다.
듣기 좋은 소음이, 귀를 간질거렸지만.
얼굴에문대지는 베개의 촉감이 좋았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