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방송 여섯 달째(10)
“기상!”
벌떡 일어나자 주인님이 펄썩 뛰어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아, 미, 미안...”
다행히 고양이답게, 이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 한들,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 그래도 츄르는 못줘...”
중성화까지 끝냈으니, 임신일리는 없다.
아니, 그 이전에 밖으로 나간 적이 없지 않은가.
저 푸짐한 뱃살은, 그냥 살이 찐 것이었다.
내가 미안하다고, 귀엽다고, 계속 무언가를 먹여서 기어이 만들어낸 뚱냥이.
다만, 주인님도 별 생각은 없는지,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그루밍에 열중할뿐이었다.
“휴...”
다행히 봐주는 것 같았다.
분명 전에 있던 집보다, 잘 먹고, 잘 지내서 체력적으로 성장했거늘.
주인님이 달려들면 아직도 못이기겠다.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주인님이 이상한 걸까.
"음..."
예전에 네모미님도 패배한 걸 생각해보면, 주인님이 고양이답지 않게 강한 것이겠지.
음음, 내가 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스스로 납득하며 외출준비를 끝냈다.
패션을 잘 모르다 보니, 전에 네모미님과 서예님이 사준 그대로 입었지만.
뭐 어떤가.
이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나 말고, 옷!
거울 앞에서 이상한 부분은 없나 잠시 살피고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전 7시 이제 막 1분을 지나고 있었다.
지금 출발하면 버스시간에 맞을 것 같았다.
“집 잘 보고 있어...!”
주인님은 애옹- 거리며 대답했고, 나는 신발을 신고는 터미널로 향했다.
달달한 델리만쥬의 유혹을 참고, 멀미약을 마시고는 앉아서 기다리기를 곧, 버스가 도착했다.
7시30분버스, 서울까지 두 시간 반.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시간은 딱 맞았다.
버스에 올라타, 예약한 창가자리에 앉았다.
우등버스라서 그런 걸까, 무언가 아득하다면 과장된 것이었지만, 일반 버스에 비해, 확실히 편안했다.
7시 28분,휴대폰 시계를 마지막으로 보고는 눈을 감았다.
-
서울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북적이는 터미널에, 빽빽하게 늘어선건물에 숨이 턱 막힌다.
어디로 가야할까, 내리면 만나기로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자 다가오는 남녀 한 쌍.
“리에라님?”
“아, 네...! 혹시 트릭체스...?”
내 말에 맞다는 듯 고개를 웃어보이는 두 사람.
인상이 참 선해보인다.
“아, 예, 반갑습니다, 일단 바로 가실까요? 혹시 볼일이 따로 있으시면 시간은 조금 뒤로 미뤄도 괜찮습니다.”
"어..."
너무 과하게 친절한 거 아닌가.
오전 10시로 약속시간을잡은 건 나였다.
그런데 그걸 조절도 없이바로 오케이 때리고는, 도착하니까 또다시 내 편의를 봐준다.
수상할 정도로 친절한 게임사...
나는 예의가 아닌 것을 알고면서 살짝흘겨보았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아, 그럼 바로 이동할까요?”
“...네!”
굳이 시간 끌 필요가 뭐가 있을까.
두 분이 몰고 온 차량에 탑승하였고, 이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혹시 어떤 광고인가요...?”
말을 내뱉으면서도 짐작 가는 것을 떠올렸다.
역시 게임방송 아닐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런 것 밖에 없지 않은가.
“야, 설명 안 드렸어?”
“아, 맞다.”
‘아맞다’를 내뱉은 남성은 운전을 하면서도 머쓱한지 뒷목을 매만졌고.
그 모습에 이마를 짚은 여성은 나에게 양해를 구해왔다.
“죄, 죄송합니다... 얘가 막내라...”
“아, 아니에요... 이야기도 안끝났는데,제가 먼저 만나자고 했으니까...”
내가 먼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지 않았나.
이건 딱히 남성분의 잘못이 아니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면 이제와서 물어본 내 잘못 아닐까.
내가 시무룩하게 축 쳐져 있자 여성분이 애써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저희가 게임모델을 찾고 있거든요...”
“네?!”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치고는 스스로의 목소리에 놀라 입을 가렸다.
“야... 넌 왜 이런 것도 안 알려 드려서...!”
“아, 아니... 그쪽 잘못은 아니니까요... 괜찮아요 당황했을 뿐이라...!”
일단 설명먼저 해주시겠어요?
그렇게 말을 내뱉자 여성분은 허둥거리면서도 가방을 뒤적거려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에는 게임에서 봤던, 볼살이말랑거리고 토끼 귀 달린 캐릭터였다.
마법사인지,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웠다.
“이건...?”
“아, 저희가 게임광고 모델을 찾고있거든요...”
그래서, 그... 그... 캐릭터의... 코스...프레를...하시고...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였지만, 그 뜻만큼은 보다 확실하게 전해졌다.
“그, 그러니까...”
나보고, 이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하고, 게임이 모델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저, 저보다 이쁜 분이나... 전문 모델 분들도있을 텐데 어째서...?”
당황이 컸지만, 그보다 의아함이 더욱 컸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중요한 것을 시키는 걸까.
정신이 나갈 것 같아 멍하게 쳐다보자, 여성분은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 리에라님이 저희 게임과 이미지가 잘 맞을 거라는 생각에...혹시 불편하시다면 취소하셔도...”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모델이라니, 내가?
장난삼아 생각해보긴 했는데 진짜일 줄이야.
좋고 싫고를 떠나서 이 상황이 제대로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나란 말인가.
이미지가 잘 맞는다 한들, 나같은 이미지, 찾아보면 널려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시키면 되지 않은가.
심지어 6주전부터, 내 이미지가 한참 나빴을 때부터.
게임 모델을 제의하고 있었다고?
게임 모델이라 하면 게임의 간판되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그걸 이미지가 나빴던 나에게 맡길 생각이었다고?
이 사람들 무언가 이상했다.
과할 정도로 호의가 깃든 것 이전에,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의아함이 들었다.
“리에라님?”
그래,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였다.
지금 당장,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중요했다.
물론, 한다하더라고 계약서를 다시금 보고 결정할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으...”
입을 달싹였다.
뭐라고 말해야 좋지?
거절? 승낙? 뭐라고 말해야 하지?
승낙을 한다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거절을 한다면 내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이 되었건 어려운 선택이었다.
게다가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있었다.
과장을 포함하여 ‘트릭체스’라는 게임 속 수많은 유저들의 대표되는 얼굴이 되는 것 아닌가.
입안에서 혀를 몇 번이고 굴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계, 계약서 보고 생각할게요...!”
“아, 네...!”
일단 내가 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여성은 물을 꺼내 마셨다.
목이 타셨나 보네.
“그런데... 코스프레라고 했잖아요...?”
“네!”
내 대답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들린 것인지 화색을 띈 여성분이 큰소리로 대답을 해왔다.
“토끼귀랑...꼬리랑...어...”
이런 것도 당연히 착용해야 하는 거겠죠...?
그 캐릭터는 토끼수인이던데...
조심스럽게 내뱉은 말에 여성분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특수 소품으로 진짜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아! 혹시 원하신다면 가져가도 되요! 저희측에서 실수가 있었으니까...!”
“아, 안 가져가요...!”
나는 잠시, 방송에서 쫑긋 거리는 토끼귀와 토끼꼬리를 착용한 나를 떠올렸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사이.
차량이 멈춰 섰다.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