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방송 여섯 달째(13) (93/143)



〈 93화 〉방송 여섯 달째(13)

광고주가 악질이다!

아니, 사칭인가?
어쨌든 악질인 것만은 확실했다.

“제가 그런 거 입는걸 보고 싶은  에요...?”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껴 손등으로 훔쳤다.

아니, 왜 굳이 그런 것을 원한단 말인가.
광고로 나온다면 이젠 질리도록 볼 텐데 말이다!

요즘 광고, 15초짜리 스킵불가능 광고 아니던가.
조금만 지나면 욕을 내뱉으실텐데.

왜 굳이  욕 나오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시는 걸까.

“헤으으...”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왜 어째서 왜 무엇 때문에 왜.

잠시 수 십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말로서 나오지는 않았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는, 힐끔, 침대로 던져둔 토끼귀와 꼬리를 쳐다보았다.

그냥 저걸 받아들이고, 착용 한다면, 내일 코스프레를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저, 저거 쓰는걸로 봐, 봐주실래요...?”

-아ㅋㅋㅋㅋ 이미 늦었지
-룰렛사용하게 해주면 생각해봄ㅇㅇ
-ㅋㅋㅋㅋㅋㅋㅋ일주일간 저거 쓰고 방송하면 봐줌

“이...일주일간...”

혀를 낼름 내밀고는 살짝 깨물었다.

“브에...”

조금 모자란 모습이었지만, 나는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다.

코스프레 한번하기 VS 일주일간 토끼 귀, 꼬리 달고 방송하기.
극독을  번에 들이키기 VS 약한 독을 일주일간 나눠 마시기.

“와...”

뭘 선택하던, 내가 수치스러워서 죽는 미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난 죽음을 택하겠다...!”

결연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ㅋㅋㅋㅋ’가 남발되는 채팅창.

“저, 저는 지금 진지하거든요!”

-근데 평소에 입는토끼후드도 만만치 않거든요 예...
-ㄹㅇㅋㅋ

“그으건...”

툭 올라온 채팅에 할 말을 잃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렇지 않은가.
토끼후드티, 어쩌다보니 자주 입게 되서 거부감이 덜할 뿐.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게 토끼귀와 꼬리보다 어느 면 에선 더욱 심할 수  있었다.

...딱 한번만 써볼까?

...

“아니야 악!”

-왜이럼 
-자주이런다니까 냅둬 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리도리! 토끼후드가 거부감이 덜하다고 토끼귀와 꼬리를 낀다니.

왜 스스로 무덤을 파려하는가!

이상하게 납득해서 토끼 귀를 스스로 쓰려는 괴악한 상황은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으로 막아냈다.

“후하...후하...납븐사람들...”

-ㅋㅋㅋㅋㅋ얘 말투 왜이러냐
-몇 번을 말하지만 자주 이런 다고
-아ㅋㅋ그냥 ㄹㅇㅋㅋ나 치라고ㅋㅋ

“저는 절대, 절대! 코스프레도 안 할 거고요... 토끼귀도 쓰지않을 거 에요...!”

[트릭체스님이 10,000원을 후원]
-진짜요?

“네...! 멍멍...!”

[트릭체스님이 30,000원을 후원]
-진짜 진짜요?

“...네, 네에...! 멍멍... 트릭체스님... 그으...”

[트릭체스님이 100,000원을 후원]
-이래도?

“저한테  이러는 거 에요...!”

무섭지 않은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저 광기는.
아니, 나에게  하나 입히려고 저런 거금을 쓴다고?

저게 바로 광기라는 걸까?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도 더 이상 방치하면 무언가 큰일 날거 같았기에 후원을 막으려 손을 뻗으려는 사이.

후원폭탄이 터져버렸다.

[183102님이 10,000원을 후원]
[종이님프님이 200,000원을 후원]
[마망드님이 100,000원을 후원]
[페링님이 10,000원을 후원]
[와우님이 20,000원을 후원]
[트릭체스님이 300,000원을 후원]
[PLTR님이 30,000원을 후원]
[라라리라님이 70,000원을 후원]
[야채냉면님이 50,000원을 후원]

“머, 멈춰...!”

입을 테니까! 얌전히 입을 테니까! 후원으로 때리지 마요...!

당황스러워 목소리가 잘게 떨리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내가 뭐라고 이런 거금을 주신단 말인가!

심지어 무언가 엄청난 것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 입히려고 이런다니.

-우리가 이겼네ㅋㅋㅋㅋ
-‘우리’?
-아ㅋㅋㅋㅋㅋ소속감 느낄 만 하지

“그으... 옷은입을 테니까... 혹시 분위기에 타서 무리하게 쓰신 분들은 제 개인 페이지에 비밀글 남겨주세요...”

환불해 드릴 테니까.

나는 이렇게 까지 일이 벌어 질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이렇게 거금을 쓸 정도로 원하실 줄이야.

그냥 얌전히 받아들일걸.

“헤으윽...”

-환불말고 일단은 토끼귀 쓰자ㄱㄱ

“네에...”

나에게 주도권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나에게 있던 주도권도 돈으로 강탈해버리시는 분들인데.

애초부터 이길  없는 싸움이었다.

나는 내 처지를 받아들이고는 한숨을푹 쉬며 침대로가 토끼 귀를 머리에 푹- 썼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특수 토끼귀는 내가 쓰자마자,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으으... 부끄러워요....”

이런 것은 어린 애들이나, 귀엽고 이쁘신 분들이 쓰는 거 아닌가.
내가 이런 걸 뒤집어 써봤자, 꼴사나울 뿐이었다.

잠시, 허공을 쳐다봤다.

네모미님이나 서예님이 이런 것을 쓴다면...

“헤에...”

바보처럼 침이 살짝 흘러나와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그래, 그런 분들이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런 것은.

“어쩌다 주인을 잘못만나서 고생이니...”

손을 뻗어 머리에 돋아난  같은 토끼귀를 쓰다듬었다.

-ㄹㅇ커엽네
-귀엽고 하찮다.
-세상에서 리에라만큼 하찮게 생긴 애는 없을걸
-ㄹㅇㅋㅋ

“귀, 귀엽지 않아요... 하찮은  더 더욱 아니에요!”

내 나이가 몇인데!

귀엽다는 소리는 분명 좋았지만, 거짓말은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다.

나는 17살!  컸으니까 말이다.

괜히 으쓱- 가슴을 조금 내밀고 허리를 쭉 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정도면 노리는거 아니냐ㅋㅋㅋㅋㅋㅋㅋ
-볼 빵빵하게 해봐요

“예...?”

-후원ㄱ?

“하, 할게요!”

시청자의 협박에 눈을 질끈 감고는 양 볼에 바람을 채워 넣었다.

분명 꼴사나운 모습이겠지, 실눈을 떠서 캠을 바라보자, 바보 같은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푸우우...”

-오늘 클립 많이 땄다 ㄹ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튜브에 올라감?
-올라갑니다ㅎㅎ

“서, 서... 아니... 편집자님...?”

아니 진짜로 올린다고?
서예님 마저  편이 아니라고?

세상이 원망스러워 진다.

“허어엉...”

방송은 여기까지다.
내일도 코스프레 해야하고, 오늘은 뭔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나도, 시청자분들도.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광적인 후원을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 다시 말하지만 환불하실 분들은 제 개인 페이지에 인증과 함께 비밀글 하나만 써주세요...”

-방종각?
-방종하지마방종하지마방종하지마방종하지마방종하지마방종하지마방종하지마방종하지마방종하지마방종하지마
-왜 벌써 방종함?

“내일 코스프레 안해도 되면 계속 방송할게요!”

내가 생각해도 좋은 제안 아닌가!
이상한 코스프레 보다, 개꿀잼 리에라 방송의 연장!

-리바
-ㅂㅂ
-바이
-방종해방종해방종해방종해방종해방종해방종해방종해방종해방종해방종해
-ㄹㅂ

내 화색에 시청자들이 돌변했다.

“너무해...!”

흐어어엉...

내 서러운 울음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내일은 코스프레 방송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