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외전 - 어버이날 이후
요즘 엄마와 아빠가 이상하다.
어버이날, 하루가 지나서 내가 케잌을 건네준 날부터 행동이 이상해졌다.
아빠가 밥상을 뒤집지 않았다.
엄마와 싸우지 않았다.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내 교복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엄마가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아빠와 싸우지 않았다.
모두 내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무언가 생각에 잠긴듯 말이 없어질 때 가 많았다.
무엇보다, 엄마아빠가 함께 외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 뜻이 통한걸까?
드디어 화해를 하신걸까?
우리도 평범한 집 처럼 화목해질 수 있는 걸까?
잠시 바보같은 미소가 입가에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입꼬리를 내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는 없겠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대를 하지말자.
기대를 해서 좋은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으..."
팔을 쥐고는 미약한 신음을 내뱉었다.
학교에서 맞았던 상처들이 아리다.
돈 왜 안가져오냐며, 손을 교실문 사이에 두고 강하게 문을 닫아버렸다.
원조교제하고 다니니까 돈 많지 않냐며 걷어차였다.
팔은 부웠고, 몸은 멍들었다.
선생에게 도움을 구해본다?
선생에 대한 기대는 진즉에 사라졌다.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지자.
원망도 분노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것이다.
기대는 정말 하등 쓸모없는 것 중 하나였다.
나는 기대를 하는 법보다 기대를 포기하는 법이 좀더 익숙했다.
"근데 진짜뭐지...?"
기대는 하지 않되, 이렇게 까지 집이 조용해진 이유에 대한 합당한 의문.
더더욱 내 의문에 불을 지피는 것중 하나가.
가족끼리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다.
물론, 어색한 침묵사이로 먹는 식사였지만 같이 먹는다는 행위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수십번도 더 밥상이 엎어져야 마땅한 상황에 가만히 있는 아빠나.
컵라면이나 냉동으로 때우던 저녁밥을 직접차리는 엄마나.
무서울 정도로 이상한 상황.
나는 눈물을 꾹- 참고는, 문사이에 끼었던 팔을 문지르며 최대한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일단, 내가 케잌을 건네준 후부터 변한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엄마와 아빠라면 이런 것으로 화해 할 리가 없었다.
그건도 이렇게 장기적으로 말이다.
끽해야 1~2시간의 짧은 평화를 생각했는데, 벌써 며칠째란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으... 모르겠다..."
머리를 싸매었지만, 좋은 일은 좋은 일이었다.
싸우지않으니까.
부족하지만 일반적인 가족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 급격한 변화에 나는 오히려 불안해졌다.
이 고요함이 언제 모습을 뒤바꾸고 나를 덮쳐올까, 두려웠다.
물론.
맞는거라면 익숙했다.
욕을 듣는 것은 더 더욱 익숙했다.
손가락질 당하는 것은 숨쉬는 것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달콤함에 내가 무뎌질까 무서웠다.
사실, 말로서 기대안한다하지만.
기대가 안될 수 있을리가 없지않은가.
나도 평범하게 밥먹고.
나도 평범하게 엄마아빠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의 모습을 알기에, 포기했었던 작은 꿈들이 미련하게도 다시금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헛된, 바보같은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라는 독에 서서히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무서워..."
내가 완전히 기대하고, 믿는 순간.
다시금 원래대로 돌아오면.
내가 그걸 버틸 수 있을까?
이제서야 겨우겨우 받아들일 수 있게 됐는데?
무서운 일이다.
두려운 일이다.
기괴한 일이다.
몸을 살짝 떨었다.
"하아..."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 달력을 바라보았다.
내 생일까지 앞으로 얼마남지 않았다.
부모님도 나도 자주까먹는 생일임으로 큰의미는 없었지만.
멍하니, 달력을 바라보고는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래, 그때까지만 지켜보자.
그리고, 내 생일 날때 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땐 비로서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