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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화 〉외전 - 생일 하루 전 (97/143)



〈 97화 〉외전 - 생일 하루 전

내일이면 내 생일이었다.

고장 난 침대에 눕자, 끼익-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밤이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이 아닌, 지저분한 벽이 보인다.

손을 끌어올려 입에 물었다.

짧은 손톱을 물어뜯었고, 비릿한 맛과 향이 느껴졌다.

몸을 옆으로 굴리고는 몸을 말았다.
심장이 요란스럽게 두근거린다.

시끄러웠다.

아빠가 시끄럽다며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는 무언가를 집어 던질 것만 같았다.

엄마가금방이라도 내 방으로 와서, 너만 아니었으면 진작 이혼했다며 다그칠  같았다.

졸졸졸- 윗집의 배관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가끔 창밖에서 들려오는 취객의 고함과 오토바이의 배기음이 있었지만.

내가 말하는 고요함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집이 고요했다.

무언가 일이 있어도 진즉에 있었어야 했다.
설마 진짜로 화해했나?

정말로?

...

베고 누워있던 베개를 잡아 끌어서 얼굴을 파묻었다.

조금은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그보다는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동시에 두려워졌다.

나는 지금 웃고 있을까?
아니면 울고 있을까?

당장 내일이면, 내 생일이었다.

내가 스스로 약속한 날짜.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째깍- 이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기껏해야 30분도 안남은 시간.

내가 진짜 마음을 놓아도 되는 걸까?
정말로 믿어도 될까?

아빠를? 엄마를?

그리고 나를?

강하게 끌어안은 베개가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숨쉬기가 괴롭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이러고 있고 싶었다.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 할까.

복잡했다.
목이 말라왔다.

자리에서 부스럭- 이불을 치우고는 일어났다.

발바닥에 닿는 장판의 촉감이 차가웠다.
움직일 때마다 쩍- 쩍- 작은 소음을 만들어냈다.

불은 키지 않았다.

어두웠지만, 어둠속에 적응된 눈이었다.

문을 살며시 열었다.
아니, 열려 했다.

열어도 될까.

방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내가 생각한 것이 헛되게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상한 망상에, 이상한 걱정에, 문손잡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끼익- 문이 열렸고, 침묵이 도는 거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일까.
무의식적으로 발을 뻗었다.

쩍- 쩍- 장판을 걷는 소리는 숨길 없었지만.

들리지 않은 것인지 말은 끊기지 않았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엄마...아빠...”

조용하게, 아주 조용하게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귀를 기울였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이...서연...누가...?”
이혼 백서연 누가.

“우리...몹...짓...보육...행복...”
우리 몹쓸 짓 보육원 행복.

“...”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입술을 물었다.

이혼한다고?

누가?

나는 누가 데려 가냐고?

몹쓸 짓을 했으니 나를 보육원에 맡기겠다고?

그게 더 행복할거라고?

내 귀를 의심해보았다.
잘못들은   분명했다.

그래, 저런 말을 하셨을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히 잘못들은 것이리라.
흐릿한 부분을 내가 끼워 맞췄을 뿐이다.

“하하...”

내 바보 같은 억측에 스스로를 비웃었다.
웃음소리가 컸던 것일까.

안방에서 목소리가 돌연 뚝- 끊겼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은 집에, 끼익- 안방 문이 열리고, 굳은 표정의 엄마와 아빠가 나를 내려 보았다.

말을 먼저 꺼낸 것은 나였다.

“...내일 제 생일인거 아시죠...?”

당황한 듯, 다만, 자신들의 대화를 못 들었다 착각한  분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엄마와 아빠의 웃음을 본  얼마만일까.

억지로 짓는 웃음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웃으니까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

보기 좋았다.

“...아, 알지...”
“뭐 가지고 싶은 거 있어?”

말을 더듬는 엄마와, 애써 태연한 척 하는 아빠.

나는 그런 부모님들을 올려다보고는 활짝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케이크 사주세요...! 딸기 생크림 케이크....!”

이럴  알았다.
진즉에 알고 있었다.

기대하지 말걸.

문을 열지 말걸.

최소한 문을열지 않았다면, 불안하긴 해도, 진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행복 했을 텐데.

히히-

애써 웃었다.
 웃음에 부모님도 따라 웃어보였다.

저 웃음은 진짜일까.

아니겠지.

“케이크  사주셔야해요...”

꼭이에요.

...

행복한 기대가 깨진 것에 대한 보상으로.

케이크 하나.

나에겐 너무 과분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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