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방송 여섯 달째(17)
“아니... 한국 수돗물 깨끗하다니까요?”
-아니;
-좀;;;;
-팬네임은 수돗물단임?
“으에...”
다른 것은 그런대로 인정하겠지만. 수돗물은 도저히 이해못하겠다.
수돗물 단이라니, 수돗물이 뭐가 그렇게 이상하다고 이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물론, 가끔 맛이 조금 비릿할 때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마실만 했다.
억까! 이건 억지로 까는 것이었다!
아니, 까는 건 아니고 불쌍하게 바라보시는 거니까 억까는 아닌가?
어쨌든, 뚱한 표정으로 캠을 잠시 바라보다 잠시 꾸륵- 소리가 난 배를 움켜잡았다.
“으...?”
방송 전에 먹은 고기가 잘못 된 걸까
아니면 그냥 낯선 모습에 대한 부작용일까.
전자에 힘이 실린다.
전조증상은 있었다.
방송시작하기도 전에 꾸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으니까.
다만, 익숙했기에 그냥 넘어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통증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식은 땀이 살짝 흐른다.
소매로 이마를 훔치고는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꾸르륵 거리는 소리가 잠시 멎었다.
-이상한거 주워먹지마!
-리에라!!!!!!!!!
“이, 이상한 거 안 먹었거든요!”
그냥 배만 움켜잡았을 뿐인데, 들켰다고?
“허어어...”
일단 방송은 오래 못할 것 같았다.
괜히억지로 이어가다가 방금 전 같은 통증이 찾아오면 큰 일 아닌가.
걱정만 끼칠 것이 분명했다.
시청자분들이 나를 아낀다.
나를 아끼는 만큼 걱정이 심했다.
그런 분들에게 걱정을 끼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리바...!”
-갑자기?
-식은땀 흐르고 입꼬리 덜덜떨린다?
-병원가!!!!!!!!!!!!!
“괜찮아요...! 그냥, 조금 더워서 그래요!”
일단 급하게 방송을 마무리하는 만큼 다음 방송의 예고라고 하고 끝내자.
“다, 다음 방송은 팬네임 정하기에요! 수돗물단 말고! 정상적인걸로요!”
-팬네임 있잖아
-ㅇㅇ이미 있잖아?
-???????
-바꾸게?
“에...?”
난 팬네임을 정한 적이 없는데?
아니,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가?
잠시 곰곰이 생각해봐도, 내가 직접 팬네임을 정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어... 진짜요?”
내 의문 섞인 질문에 시청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똑같은 이름을 내뱉었다.
-말랑단
-리에라볼살말랑단
-그건 풀네임이고 그냥 말랑단임
-말랑하잖아
-ㄹㅇㅋㅋ
“...!”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르고,입을 몇 번이고 달싹였다.
책상을 양손으로콩콩- 내려 쳤다.
“아, 아니...! 저 말랑거리지 않아요...!”
누가 지어낸 팬 네임이란 말인가!
나는 저런 걸 인정한 적이 없었다!
“새로 정할거에요! 조금 멋있고! 이쁜걸로!”
-후회안함?
-??? 진짜?
-리에라여신단간다
“으악!”
진심으로 경기를 일으켰다.
방금 그건 어떻게 생각해도 오글거린다.
“그, 좀... 다른 건 어때요...?”
무난한 것 많잖아!
어째서 그런 괴악한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내일 방송에서 다룰 내용이었지만, 저런 식으로 말하면 반박하고 싶어진다.
“으으... 차라리 몽글몽글이라던가...!”
-식사는 하셨는지요...
-씨발년아
-아...
“엑... 그으, 죄송합니다...”
몽글몽글에 무언가 안 좋은 뜻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쓰면 안 되는 특정 단어 같은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건가보다.
나중에 따로 찾아보자.
나도 슬슬 단어선택에 조심해야 할 방송인 아닌가.
시청자 수, 1890명이면, 규모가 큰 방송이었다.
아직도 나는 미숙하구나.
잠시,자신을 탓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저었다.
배가 꾸륵- 소리를 내온다.
더 이상 방송을 진행했다가는 좋은 꼴을 못보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양손을 캠에 흔들어 보였다.
“일단, 오늘 방송은 여기 까지 에요...!”
-병원가라ㅇㅇ
-리바
-ㅂㅂ
-방종임?
[회전나무님이 10,000원 후원]
-병원비
-얘 아프데?
-ㅇㅇ
“저, 안 아파요...!”
이정도 통증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꼴은 많이 겪어보았다.
집에서 나흘정도면 쉬면 충분히 나을 수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나을 정도의 통증으로 병원을 갈 정도로 나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 었다!
엣헴- 허라를 쭉 피려다, 꾸륵- 소리와 함께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이고, 배를 감싸 쥐고는 방송을 종료했다.
“으으...?”
아니, 갈색 고기 많이 먹어봤는데, 왜 갑자기 이러는 걸까.
짐작 가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신을 할 수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기표면에 있던 이상한 액체 때문일까?
아니면, 손으로 만져도 푹- 들어가 버리던 고기 그 자체 때문일까.
뭐가 됐던, 일단은 지금은 모르겠다.
무거워진 몸으로 겨우겨우 옷을 벗어던지고는 침대에 누웠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려, 온몸이 축축해 씻고 싶었으나.
움직이기 시작하니 통증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과장된 표현으로 배속을 누군가 가위로 헤집는 고통.
아니, 고기하나 먹었다고 이게 무슨...
“으...주인님...”
나에게 다가온 주인님이 혓바닥으로 내 식은땀으로 젖은 이마를 삭-삭- 핥아주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꽤나 걱정스럽다는 듯이 애옹- 우는 주인님의 목소리에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피맛이 났지만, 개의치 않았고, 어리석었던 몇 시간 전의 나를 탓했다.
사실 어떠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집’에서 살 때, 내가 먹었던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쉬어버린 밥과 된장찌개, 친척들이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들을 한군데가 쏟아서 배식 받았었다.
한 겨울에, 체벌 베란다에서 언 손으로 그런 것들을 주워 먹었었다.
자연스럽게 많은 탈이 났었고, 친척들은 꾀병이라며 베란다에서 나를 방치했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그렇게살아왔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누가 봐도 이상한 고기임은 알았지만.
예전에먹던 것들과 ‘다를 바 없잖아‘라는 얕은 생각이 이 결과를 초레한 것이리라.
“우으윽...”
구토감이 치밀어 오른다.
목구멍까지 치솟은 것을 억지로 참아내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하아...”
숨을 쉴 때마다 쉰내가 흘러나왔다.
방송을 종료하자마자 쏟아지는 이상증상들.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걸까.
이를 아득 갈고는 무거워진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슬퍼서 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통증이, 너무 아파서 흐르는 눈물.
침대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낀다.
“흐아...흐...하아...”
욱-! 올라오는 불쾌한 것, 참아보려 했으나, 참을 수 있는종류가 아니었다.
재빨리 몸을 뒤집었다.
“웨엑....!”
속의 것을 게워냈다.
침대가 더러워 졌지만, 속이 아주 조금, 편해져서 한숨을 내 쉬려는 찰나.
“우에에웩...!”
한숨 대신 두 번째 역류가 쏟아졌다.
“우에... 후아...”
침과 위액이, 실처럼 이어졌고, 몸에 모든 기력이 쭉- 빠졌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불쾌하고, 더러운 것을 보기는 싫었지만, 치워야 했기에, 직시했다.
점심에 먹은 고기로 추정되는 것과, 불투명한 액체, 그리고, 비릿한 피 냄새.
“흐에...?”
목이 따끔 거린다.
“퉤...”
입안에 있는 역겨운 것들을 뱉어냈다.
걸쭉한 위액과, 찌꺼기들이 사라지자, 입안에, 피 냄새가 흘러나왔다.
입에 상처가 난걸까?
“아아...”
소리를 내보자, 다행히도 목소리는 제대로 흘러 나왔다.
다만, 목이 따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