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방송 여섯 달째(18)
눈을 떴을 때는, 응급실이었다.
서예님이 방송에서, 내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나를 찾아왔었고.
기절한 나를 발견, 병원으로 급히 옮겼다.
진단명은 위궤양, 정신이 없어,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꽤나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간간히, 비릿한 맛이 올라오는 것 또한 궤양 탓이라 했다.
다만, 다행히 수술 같은 것을 할 정도는 아니고, 두 달 가량 약 잘 먹고, 식단 조절하면 된다니까...
으-! 기지개를 폈다.
물론, 이래도 진전이 없다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는 했지만, 설마 그렇게 까지 가겠는가.
“느에...”
그리고 궤양과는 다른 건데, 목도 많이 상해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왜 이지경이 되었을 때 까지, 병원을 오지 않았냐는 의사선생님의 쓴 소리에, 머쓱하게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스를 줄이라곤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울까.
잠시, 고개를 갸웃 거렸다.
병원을 나설 때 까지, 음- 소리와 함께 생각에 빠졌다.
간단한 공지와 함께 오늘 방송은 스킵 했다.
궤양으로 쉰다고 하니, 몇몇 빼고는 봐주는 분위기.
그런데, 궤양이라니 깜짝 놀랐다.
몸 하나는 튼튼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누적 된 건가...?”
조금씩, 쌓이고, 쌓인 것이 이번에 폭발한 것 같았다.
내가, 적응했다라고 생각한 것이, 진짜 적응을 한 것이 아닌,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을 뿐이었던 걸까.
배를 문질렀다.
속을 게워낸 탓일까.
식욕은 없었지만, 배가 고팠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죽...?”
의사선생님이 위에 무리안가는, 부드러운 것을 먹으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건 죽 아닌가
자고로 죽은 아플 때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니까.
나는 지갑을 챙기고는 살랑살랑 죽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채죽이 4500원, 고기가 들어간 것이 6000원.
전복죽이 7500원...
“뭐먹지...”
일단 매운 것처럼, 무리가 많이 가는 것은 제외시키고는 메뉴 판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고는 이내 일생일대의 큰 결정을 내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야, 야채죽 주세요...!”
“드시고 가실거에요? 아니면 포장?”
“여, 여기서 먹을 거 에요!”
말을 너무 많이 더듬는 것 같다...
캠을 바라보고 말하는 건 이젠괜찮은데.
현실에서는 아직 멀고멀었다.
바보 같은 주문을 끝마치고는 구석진 창가자리에 앉아 멍하니 죽을 기다렸다.
무언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딱히 문제는 없었다.
몸이조금 기운 없긴 하지만,아픈 것은 아니었다.
그냥, 뭔가 이상했다.
멍- 하니 창밖을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되, 무언가 이상했다.
뭔가, 나 혼자 동떨어져 있는 듯한....
“야채죽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 네...!”
큰 그릇에 가득 담긴, 야채죽을 바라보고는 수저를 들었다.
녹색, 주황색, 그리고 버섯으로 보이는 갈색이 조화롭게 스며든 죽.
“하암...”
크게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다.
간은 심심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좋았다
따끔거리는 목을, 부드럽게 어루어만져주는 기분 좋은, 식감.
따가움이 따뜻함과 부드러움으로 잠시, 사라졌다.
빈속에 죽이 스며들었다.
포만감이 차올랐다.
같이 먹으라고 준, 김치와 단무지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냥, 이대로도 좋았다.
맛있지 않은가.
순식간에 비워낸 죽에, 애꿎은 빈 그릇만, 박박- 긁어보았다.
양이 부족한가?
아닌데, 양은 많았는데.
내가 원래 이렇게 많이 먹었나?
평소에 먹던 것 보다, 족히 2배는 먹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어...?”
맛은 있었다, 하지만 맛이 있다고, 원래 먹던 양이 확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으응...?”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애써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이 곳에남아 있다가는 돼지처럼 더 먹을 것을 찾게 될 것 같았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섰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 무슨 날인가...?”
특별히, 무슨 날인 것은 아니었다.
흔해빠진, 평일, 낮이었다.
다만, 거리에 별로 나와 보지 않았음으로 사람들이 낯설었다.
내 생활에 사람은 많아봐야 두자릿수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거리에 수백명이상의 사람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무언가, 다른 세계 같았다.
기분탓일까
아니면...
잘 모르겠다.
아니, 잘 모르겠다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원래 많았다.
다만, 그 동안은 내가 사람들 보지 못했던 것뿐이다.
나 하나, 숨쉬기도 버거워서, 사람들을 쳐다보지 못했다.
이제야, 똑바로 받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유가 생긴 것일까.
거리에가만히 멈춰 섰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짜증서린, 행복한, 기쁜, 슬픈, 즐거운, 화가난 표정들이었다.
제각기 다른 표정들이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생기가존재했다.
“히히...”
과거의 난 어땠는가.
칙칙하지 않았나.
사람들이 제각기 생기를 내보일 때, 나 혼자, 온 세상 불행을 다 끌어안은 듯이
과장되게 움츠렸었다.
생기가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색을 내보일 때, 나는 회색빛, 단색이었다.
그러니, 겉돌 수 밖에.
그걸 이제야 눈치 챈 것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것을 느낄 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의미였기에, 오히려 기뻤다.
나도, 생기를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못 보던 것을 보고, 눈치 채지 못한 것을 눈치 챘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성장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 진 것 같았다.
쓸데없이 폴짝- 뛰어보기도 했다.
즐거웠다.
그리고, 난 이 즐거움을증폭시킬 방법을 알고 있었다.
속은 아직도 쓰리고, 기력도 없지만, 내가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헤실헤실 미소를 지었다, 뺨을 매만져 표정을 관리하고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뜀박질을 시작했다.
“오늘 방송합니다아...!”
바람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기분 좋게 시원한 공기였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사람답게 죽고 싶었다.
그것이 온전치는 않더라고, 이정도면 나도 사람다워진 것 아닐까.
물론, 갈 길이 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0에서 1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1에서 2를 만드는것은 보다 쉬우리라.
그리고 2에서 3은 더 쉽게, 3에서 4는 더욱 쉽게.
그렇게 나아간다면, 언젠가.
내가 염원하던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설렌다.
발이 엉켜서, 거하게 넘어졌지만, 금방, 털고 있어났다.
아프다기보단, 빨리 가서 방송을키고 싶었다.
시청자들은 나에게 건네준 관심이, 지인들이 나에게 건네준 사랑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내가 모자라서, 너무 늦었지만.
가슴과 허리를 피고는, 뻔뻔하게도 우쭐거리고 싶었다.
은근슬쩍 휴대폰으로 휴방공지를 지웠다.
내 바보같은 모습 때문일까, 시선이 조금 쏠렸지만, 애써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것 같긴 하지만!
“리에라님....?”
...
“네...?”
“리에라님이다!”
“네...?”
“어? 뭐라고?”
“리에라라고?”
“아프다며?”
“왜 여기 있어?”
순식간에 몰린 시선들.
설마, 내가 바보같아서 쳐다본게 아니라...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나를 중심으로 거대한 원형 인파를 이뤘다.
“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