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5화 〉방송 여섯 달째(22) (105/143)



〈 105화 〉방송 여섯 달째(22)

리에라 여신단이라니!

말랑보다! 수돗물보다! 시럽보다! 대략적으로 560배정도 심해졌다!

"아니, 왜... 어째서...?"

엎드린 채로 자비를 구걸하며 황망하게 중얼거리니, 시청자들이 답을 건네줬다.

-아 누가 말랑시럽수돗물막으랬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안막았으면 그냥 평범하게 말랑단 했지ㅇㅇ

"저, 저도 생각해보니까, 말랑단이 좋은거 같아요...!"

그러니까, 딱 한 번만 물러주지 않으실래요?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히 청을 해보았지만, 시청자들은 시큰둥할 뿐이었다.

"으으... 나 진짜 바보인가...?"

어떻게  추가를 막는걸 까먹을  있지?

고양이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굴욕을 실시간으로 겪으면서 어떻게 이걸 까먹을 수 있단 말인가!

애꿎은 머리를 빡- 때려보았다.
손이 아팠다.

진짜 돌머리인가봐.

사실 알고는 있긴 했지만, 설마 이정도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흐어엉- 소리내어 울어보고는 흘깃, 72%로 1등을 차지한 리에라여신단을 바라보았다.

한숨을 푹- 쉬었다.

아- 그래, 내가 드디어 죽을 때가 온걸까.
저게 안바뀐다면, 그냥 내가 죽고말지.

머리속에선 벌써, 열댓명이 장례식에 와서 나를 위해 울어주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만족스러웠다.

한명만 되어도 여한이 없을텐데, 두자릿 수가 떠올랐다.

이정도면 성공한 인생이라 자부해도 되겠지...

"이젠 기억해주는 사람들 많으니까..."

반쯤 해탈해서는 아무말이나 중얼거리고 있자, 후원 하나가 도착했다.

[아아우우님이 1,000원 후원!]
-말랑단vs여신단

"어?"

그야말로 하늘에서 쏟아진 한줄기 빛!
이런 선택지는 너무나 간단했다.

누가 봐도 말랑단이지 않은가!

맨땅에서 넘어지기 vs 목매달기 같은 밸런스가 파괴된 게임이었다.

"마, 말랑단! 자, 자봐요!"

요즘 한껏 먹어서 말랑말랑해진 볼을 과장되게 매만졌다.
캠으로나마, 그 말랑함이 표현되는 것같았다.

"저, 말랑말랑해요!"

그, 그리고... 볼뿐만아니라!

잠시, 고개를 내려 가슴을 바라봤다.
아마 여기도 말랑거리긴 할 것이다.

... 아니, 이건 정지당하겠구나.

잠시, 얼굴을 붉혔지만, 이런 걸로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었다.
만약 진짜 여신단이 된다면, 단순히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수치스러워서 죽어버릴 테니까.

나는 한껏 말랑함을 자랑했다.

몇개월동안, 하지 않았던 배박수 까지 해보자, 어느순간 부터 시청자는 1200명을 돌파하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만, 시청자가 늘어나는 걸까.

내 볼살을 말랑- 만지면서도 우울해질  밖에 없었다.

이것도 박제되겠구나 어림짐작 할 뿐이었지만, 그 짐작은 사실이  가능성이 매우 컸다.

-아ㅋㅋㅋㅋㅋㅋㅋ 여신하기 싫으면 말랑을 증명하라고ㅋㅋㅋㅋ
-ㄹㅇㅋㅋ
-귀엽긴 귀엽다...
-페도새끼
-?
-??

"그, 싸, 싸우지 마시고! 제 말랑함을 보세요! 어, 어때요, 말랑거리죠?!"

눈물의 그, 구멍쇼.

시청자들을 나를 귀여워 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혀를 깨물고 싶었다.
내면에서 흐르는 눈물을 입술을 질겅거리며 참아냈다.

"흐윽..."

-야  운다ㅋㅋㅋㅋㅋㅋㅋ
-우냐?
-착즙기on?

"아, 안울어요...!"

-어...진짜우네..
-니잘못이네
-쓰레기

눈물이 뚝- 키보드 위에 한방울 떨어졌다.

-어...?
-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
-뚝하자... 뚝!
-우리가 미안해ㅐㅐㅐㅐㅐㅐ

[자본치료님이 200,000원 후원!]
-자, 그만울자!

"환불해드릴게요..."

훌쩍- 코를 마시고는 흥- 소리는 내었다.
예전같았으면 감히 나도 이런식으로 굴지는 못했겠지만, 지금만큼은 너무 서러웠다.

"말랑단...하고 싶어요..."

여신단은 진심으로 아니었다.

-ㅇㅇㅇㅇ말랑단하자ㅇㅇㅇㅇㅇㅇㅇㅇ 말랑단임
-여신단 추가한애 밴좀
-ㄹㅇ 밴해야한다
-솔직히 여신단보단 말랑단이 근본이지ㅋㅋㅋ

여론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 때를 놓치지 않았다.

"...흐헤헤...그럼 이제부터 팬네임은 말랑단이에요!"

-????????
-방금까지 울지 않았나?
-뭐야

"눈물도 많이 흘려보면 조절할 수 있답니다...!"

-사기꾼!

"아무것도 안 들려요!"

그렇게 나는 재빠르게, 투표에서 리에라여신단을 삭제했다.
자연스럽게 2등이었던 14%의 리에라말랑단이 1위로 올라왔고, 나는 헤실거리며 웃어보였다.

"그, 근데 운 건 진짜니까... 너, 너무 화내지 말아주세요...!"

투표를 삭제하느라, 잠시 신경 쓰지 못한 채팅창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순수했던 리에라는 어디가고 이런 사기꾼이 있느냐는 둥, 리에라가 삐뚤어졌다는 둥.

"저, 저는 원래 이랬어요!"

굳이 따지면, 주늑 들어있던 것이, 최근에 풀려, 본모습이 나오고 있는 것이리라.

나도 나름 활기차지 않았나, 초등학교 시절에는 말이다.
뭐, 정확히는, 활기찬 것이 아닌, 활기찬 척을 했던 것이었지만.

몇 년이고 척을 하다보면, 그것은 척이 아닌, 진짜가 되기 마련이었다.

나름대로 부모님의 싸늘한 시선을 따뜻하게 바꿔보려고, 애교도 많이 부려봤다.

시험점수가 좋으면 꼬깃꼬깃한 시험지를 들고, 상장을 타오면 상장을 들고, '언제오실까' 하며 현관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다 잠이 들곤 했다.

아침에 밥을 차려주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서, 손이 베여가면서도 엉성하게나마 차려드리면, 두분  인상을 찌푸리곤 내가 차린 밥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렇게 버려진 밥은 내가 먹었다.

"음..."

생각해보니, 나 어렸을 땐 아침밥 자주 챙겨 먹었구나.

헤실 거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단, 오늘 방송은 여기 까지에요...!"

단순히 기운이 없을 뿐이었지만, 의사 선생님이 안정을 취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어길 수는 없지.

어깨를 으쓱이고는 캠을 향해 양손을 흔들어 보였다.

물론, 방송을 끝낸다고 남은 시간 동안 푹 쉰다는 것은 아니었다.

할 일이 남아있지 않은가.

변호사님이 진행 상황 알려주겠다며 한번 내려오라고 하셨었다.

혜진과  일을 끝낼 때가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일 이 있나?

뭐가 됐던 가서 보면 알겠지.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잠깐, 배가 쑤시듯 아파왔다.
다만, 그 통증은 오래가지 않았고, 다시금 나는 허리를 폈다.

"으으..."

배를 살살 만지고는 고양이 털이 잔뜩 달라붙은 외투를 걸쳤다.
그리곤 주인님을   쓰다듬어주고는, 현관을 나섰다.

"앗..."

"안녕하세요오..."

하얀님이 나에게 꾸뻑 인사를 해왔고, 나도 최대한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다.

"소설은 자, 잘 보고 있어요...

 주제로 하는 소설, 설마 설마 했지만, 최근에는 추천 수가 900에 달했다.
이 기세라면 조만간 1000을 달성할 기세.

두렵다.

내 눈앞에 있는 존재는 도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자, 갸웃- 고개를 기울인 하얀님의 모습에 양손을 내젓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시치미땠다.

조만간, 단우비라는 필명이 쓴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나를 주인공으로  팬 픽이 저 정도인데, 단우비님의 진짜 작품은 도대체 어떨까.

단우비님은 커피를 사러, 나는 변호사님을 만나러 발길을 돌렸고, 이내, 나는 변호사님의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변호사님의 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중에선 눈에 익은 얼굴들 또한 보였다.

“예빈이...?”

“응... 안녕...”

그냥 찍어보았다.
예빈이 아버지라고 자칭한 아저씨 옆에, 휠체어를 탄 소녀라면, 바로 그 예빈이 아니겠는가.

“미안해...”

예빈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나와 말을 섞기 싫다는 걸까.

예빈이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미안하지만...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무슨 소리일까.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휠체어 위에, 힘없이 내려놓은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것이 보였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건 알아, 하지만, 네가 도망치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두 다리로 걷고 있지 않았을까?”

“그건...”

“알아, 잘알아,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아마, 누구보다 내가 잘 알거야.

나름대로 비슷한 처지였으니까.

그렇게 말을 내뱉은 예빈은, 죽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다만,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난, 미안하지 않아.”

“응, 너는 당당해야해.”

예빈이는 내 말을 너무나 쉽게 긍정해왔다.
내가 당황스러워 질 정도로.

“그냥, 내가, 그년을 원망할 용기도 없어서, 어쩌면 조금은, 보다 만만한 너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을 뿐이야.”

바보같이...

뒷말을 흐렸지만,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니야, 바보같지 않아... 방향이 잘못됐을 뿐인걸.”

이게 내 목소리일까, 싶을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내가, 백서연이 말을 건넸다.

“방향을 올바르게 트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쉬워.”

내 말에, 고개를 숙인, 예빈이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어보였다.

“당당해졌네.”

“다들 도와줬으니까.”

“그래.”
“응.”

다들 도와줬기에, 당당해졌다.
나 혼자, 스스로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번엔 내가 도와줄 차례 아닐까.

나는 우리 둘을 사이에 두고, 안절부절 못하는 예빈이의 아빠를 지나쳐 다리를 굽혀, 예빈이와 시선을 맞췄다.

“도와줄게.”

“아니.”

“응?”

당황해서, 멍청하게 되묻자, 예빈이는 보다, 맑게 웃으며 나에게 손을 뻗었다.

“지금은 내가 먼저야.”

내가 굳어 있자, 우리에게 변호사님이 다가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