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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화 〉방송 여섯 달째(23) (106/143)



〈 106화 〉방송 여섯 달째(23)

“말은 이미 했었죠, 그저, 제가 해결한다고.”

분명 그렇게 말을 하셨다.
굉장히,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던 모습에 나도 그렇게 넘어갔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파고 들수록,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려고 부른 겁니다.”

“일이 커졌다고요...?”

목소리의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 무언가 잘못된 걸까?

아니, 별일 아니라고 하셨잖아.
근데, 별일이 아닌데,  일이 커진단 말인가.

수도 없이 많은 질문에, 스스로 수없이 답하고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잠시, 머리가 경직된 것만 같았다.

“리에라님에게 불이 번질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친절하게, 우리에게 웃어보이고는, 생강차를 우리에게  잔 씩 돌렸다.

후릅-

미적지근한 생강차의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 뒤에 목을 긁어내는 듯한, 알싸함이 느껴졌다.

“사람을 죽였더라고요?”

“케, 켁...!”

인자한 얼굴로, 저 무슨 흉악한 소리란 말인가.
예고도 없이 들려온 괴상한 말에 사례가 들려 기침을 몇 번 내뱉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시선을 마주했다.

“사, 살인이요...?”

누가?

아니, 누가라고 묻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으리라.

지금 상황에서 말이 나올만한 건 혜진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혜진이 아무리 싫어도 설마 그 정도 까지 저질렀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믿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변호사님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갑작스러운 살인에 혀가 꼬여, 제대로 말을 내뱉지 못했다.

“지, 지, 지, 진짜, 요...?”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예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시큰둥하다.

“사람 죽여 봤다고 대놓고 떠들고 다녔으니까...”

“어...?”

고개를 돌려 예빈을 쳐다보니 예빈이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자퇴하고 한 달 정도 후 인가? 며칠 학교 안 나오더니, 갑자기 다시 나와서는 당당하게 짖어 대고 다니더라.”

예빈은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허풍인  알았는데...”

나는  말을 이었다.

“진짜였구나...”

한탄하듯, 속삭인 예빈은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도대체 어쩌다가...?”

내 허탈한 목소리의 탓이었을까, 아니면, 예빈이도 피곤한 걸까.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는 이마를 연신 매만진 예빈은 나에게헛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게, 좀, 어이가 없긴 한데...”

“응...?”

친구랑 술 마시다가 시비가 붙어서, 소주병으로 머리를 쳤다고...

“아니, 그게 말이...되나...?”

혜진의 성질머리를 생각하면,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이야기가 몇 개월 전의 이야기라는  만은 확실했다.

그런데, 그게 이제야 이야기가 나온다니?

일은충분히 일어날  있는 일이되, 이제야 그 이야기나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되지않았다.

“...도대체...?”

나는 당황하여 변호사님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흔히 말하는 내놓은 자식이라고 하던 가요?”

원래 몇 개월  연락이 되기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애들 때리고 다니기도 해서.
관심이 없어 찾지를 않았단다.

“허어어... 근데,  지금은...?”

그런데,  지금와선 찾은 걸까?

앞뒤가 안 맞지 않은가.

내 의문에는 예빈이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더니 답을 건네줬다.

“너 TV 안보고 사니...?”

 말에, 나는 잠시 굳었다.
TV안본지, 꽤 됐다.

그런데, TV랑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일까.

“산속에서 시체 발견 되어서 한참 난리였는데...”

...


내가 아무리 멍청하다고 한들,  말이 뜻하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그게 지금 말하고 있는 걔라고...?”

비가와서, 흙이 물러지고, 쓸려 내려가서 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알겠다.

들키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렇게 된 이상 혜진은...

“망했네...?”
“좆  거지.”

나는 빤히, 예빈을 바라보았다.
미성년자라는 방패막이도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학교폭력이라는 것은 ‘애들 싸움’으로 퉁 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건 분명한 살인사건이었다.

“한동안 걔 TV에 얼굴 자주 비출 거야”

예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냄비근성이라고 하던가, 금방식겠지만, 그 '금방'이내에 혜진을 매장 당할 것이다.

변호사님이, 종이컵을 물고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학교폭력이 주가 아니라, 살인이 주에, 학교폭력이 부가 되겠지만, 보다 확실하게 끝장낼 수 있게 됐어요, 나름 기쁜 소식이라 이거 전달해드리고자, 부른 겁니다.”

여담이지만, 문자로는 이 황당하고도 이상한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인 변호사님.

변호사님의 말에, 가슴속 깊이 공감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활자로 설명한단 말인가.

“아...네...”

나는 그저 긍정을 표할 뿐이었다.
사람이 죽었지만, 솔직히 슬프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있을 수 도 있겠다.

혜진이 나를 괴롭힐 때는 양옆에 반드시 한 명씩 끼고 있었으니까.
그 애들 중 한 명 이려나?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무언가, 맥 빠지고, 기운이 없어졌다.
한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너무 많은 충격을 받아서 일까.

잠시, 뇌가 과부하가 된 것만 같았다.

“넌 이제 가도 되지않아?”

예빈의 말에, 고개만 돌려 쳐다보자, 뚱-하게 쳐다보고 있는 예빈이의 얼굴.

내가 많이 불편한 걸까.

시선을 살짝 내려 휠체어를 바라보았다.
평생 두 다리로는걸을  없는 걸까.

갑작스레 마음이 무거워진다.

물론,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리고, 그 잘못을 누가 한 것 인지를 안다.

하지만, 예빈이가 예전에 나를 원망했 듯, 어쩌면 내가 도망쳐서  다리를 잃게   아닐까.

나는 미안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사실, 미안했다.
가슴이 쓰라리다.

“뭘 봐?”

예빈은 그런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손을 오므리고는 내 볼을 톡- 쳤다.
아프지 않고, 살짝- 아주 살짝 고개가 움직일 정도의 힘.

쳤다기보단, 밀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으응...?”

“동정하는 듯이 굴지마.”

“아니,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끝내 내뱉지 못한 말을 웅얼거렸다.

불쌍하게 생각한 것이 맞았다.
동정이 아니라고  수 없었다.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보 같은 건 똑같네...”

예빈이 한탄하듯 내뱉은 말에 나는 볼을 긁적였다.
바보 같다는 말, 부정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당당해도 돼, 미안해 하지 않아도돼.”

움츠러들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고, 미안해 해야  사람도 따로 있으니까.

너는 그냥, 아까처럼, 당당하게 굴어.

예빈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오글 거리는 말 내뱉게 하지마...”

“아... 미안...”

“또! 또!”

“아, 안, 안미안...!”

“그래.”

그제서야 만족한 듯,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예빈이의 말에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이상함을 지적하기 전에, 잠시, 자신의 손톱을 내려다 본 예빈이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나는 너를 도울 거야.”

“응?”

내가 갸웃, 고개를 기울이자, 으- 소리를 내며 노골적으로 싫은 소리를  예빈은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내가 먼저, 널 도울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날 도와줘.”

“어... 뭐를...?”

내가 도울게 있던가?
나는 양손을 펼쳐보았다.

작은 손을 잼- 잼- 쥐어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아...!”

“그래...”

“보증은  서줘...”

“미친년아...”

욕설을 내뱉은 예빈이의 말에 몸을 움찔- 떨었다.

"아, 아니야...?"

나는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 도와 달라고 하면 그런 것 밖에 없지 않나?

게다가 나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것 같았다.

내가 도와줄 건덕지가 없지 않은가!

그런 내 모습을 얼척 없다는 듯이 노려보던 예빈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친구하자고 씹년아!"

나는 고개를 맹렬히 끄덕였다.
여기서 거부 했다간 내 다리를 부러트릴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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