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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화 〉방송 여섯 달째(24) (107/143)



〈 107화 〉방송 여섯 달째(24)

“...친구...?”

낯선 단어에 입안에서 몇 번이고 혀를 굴려보았다.
나쁜 어감은 아니었으나, 무언가 이상했다.

잠시 머뭇거리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랑...?”

손끝이 잘게 떨려오는 것을 감출  없었다.

너무 뜬금 없고도, 갑작스러운 이야기 였다.

“왜? 싫어?”

“아, 아니... 그런건 아닌데...”

당당하게, 시선을 맞춰오는 예빈이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그냥 잘 모르겠다.

친구라는 낯선 단어에,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네모미님, 드래곤님, 아람님, 하얀님, 가람님, 서예님, 변호사님에 오휘님, 그리고...

쭉 떠올려 봤지만,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없었다.

사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내가 도움을 받는 관계들.

내가 알기론 친구라 하면, 친한것은 기본이고, 서로 돕고 돕는 관계 아니었나.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지금껏친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있긴 있었다.

모니터 안에.

...

게임을 접어서 더는 만나지 못할,  번째친구.
요즘 뭐하고 지낼까 갑작스레 궁금해졌다.

“아니...”

이게 아니지.
잠시, 생각이 헛돌았다.

나는, 힐끔힐끔 예빈이를 쳐다봤다.
이쁜 얼굴은 아니되, 못난 얼굴또한 아니었다.

앙다문 입술이, 예빈이의 고집과 성격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친구... 마른 침을 삼키고는 나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만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그리곤, 내밀었다.

“치, 친구 하자...”

“와...”

예빈이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예빈이의 뒤편에 예빈이의 아버지가 내뱉은 한탄.

“...바, 받아줄래...?”

“와, 이거 진짜 미친년이네...”

“미, 미안...!”

“확씨...!”

아, 미안하다고 하지 말랬지, 움찔- 예빈의 눈치를 보자 예빈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자연스레 돈을 손위에 올려주려 했지만 팍! 하고 내 손을 쳐버렸다.

아까 뺨을 밀었을 때완 달리, 강했다.

살짝 얼얼할 정도로 말이다.

“그 손 말고! 악수하자고 악수!”

“아...! 응...!”

나는 냉큼 다른 손을 내밀었고, 손이 겹쳤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혹시  쥐어 내 손을 찌부러트릴까 걱정했으나 그런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서연아...”

“어...?”

내 본명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맹렬히 끄덕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해.”

“응!”

“그래, 대답은 잘해서 좋네...”

무언가 해탈한 것 같은 기운없는 목소리에 또 다시 ‘미안’하다는 말을 꺼낼 뻔 했다.
입술을  물고는 참아내서 다행이지, 자칫 하면  혼날 뻔 하지 않았는가.

“자, 따라해.”
“으응...”

“친구는 돈을 주지 않는다.”
“치, 친구는 돈을 주지 않는다.”

“친구는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
“친구는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

“친구는 서열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는 서열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는 서로를 도와준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예빈이 인상을 찌푸린 것을 보고는 냉큼 입을열었다.

“친구는 서로를 도와준다!”

“좋아 잘했어...”

손을 뻗어 내 턱을 긁는 것이, 무언가 고양이 다루는  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친구는 돈이나, 댓가를 바라지 않고, 서로를 도우며 서열관계가 존재하지 않아.”

나는 친구관계에 대해 그렇게 잘 알면서 왜 나랑 같은 꼴이 되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을 애써 물어볼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사실,묻지 않아도 짐작 가는 것이 없는 것은아니었다.
하나하나, 말할 때 마다, 목소리가 진중해졌으니 말이다.

“응...”

나는 살짝 눈치보며 대답했고, 예빈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내 손을 가리켰다.

“알았으면 그거 집어넣어!”

“아앗...!”

냉큼 돈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헤헤- 바보같이 웃어보였다.

“와...”

 얼굴에 뭐가 묻은 건지, 입을 잠깐 벌린 예빈이의 모습에, 양손으로 얼굴을 닦아 내렸다.

“바보는 닦는다고 지워지지 않아...”

예빈이의 팩트에 잠시 가슴이 아파왔지만, 딱히 반박할 수 없는 일이라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우리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말을 꺼내기도 어려워 보였다.
예빈이는 자신이 한 말을 곱씹어 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나는... 친구라는 어감에, 몸이 간질거렸다.

친구였다!

모니터 속 친구가 아닌, 진짜 친구!

그것도, 리에라가 아닌, 백서연의 친구였다.
예빈이가 말하지 않았던가, ‘리에라’가 아닌, ‘서연’이라고!

리에라는 이미 저 멀리 나아갔지만, 백서연은 그때  자리에서 머물러 있었다.
 발자국 때기도 힘들어서, 그저 제자리에서 주저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예빈이.

나에게 손을 뻗어준 것이다.
나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면, 한발자국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한발자국을 나아갔다면, 두발자국은 그보다 쉬운 일이리라.

말은 거칠어도, 나는 예빈이의 진실  눈을 바라보았다.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악의에 민감했던 나였기에, 그 사실만은 확신했다.

아마도, 처음 나를 보고 내뱉은 말은, 나를 떠본 것이겠지.

나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친구...”

침묵은 그, 작은 소리에도 흐트러졌고, 흐트러진 침묵사이로, 예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이제 친구야.”

선언하듯, 단언하는 그 말에 나는, 잠시 울컥해서는, 추하게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무, 뒤늦게 현실감이  것이다.

친구.

친구라고 했다.

진짜 친구.



눈물을 흘릴일이 아닌데.
기뻐해야 하는데.

이렇게 울어버리면 안되지 않은가.
누가 보면 예빈이를 싫어하는 줄 알 것이다.

나는 예빈이가 좋았다.

오늘 만난,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구라는 연을 맺었기에, 짧은 시간이되, 결코 가벼운 시간은 아니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턱으로 흘러, 이내, 뚝- 바닥에 떨어졌다.

“다리병신인 나도 안 우는데, 왜 네가 우냐?”

그렇게 말하는 예빈이의 눈에도, 물기가 살짝 차올라있었다.

그리고는, 톡톡-

말은 거칠게내뱉으면서도,  등을 토닥여주는, 예빈이의 손길은, 보드라웠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갑작스러워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그저, 자연스럽게 웃어보였다.

어쩌면, 나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이해자를 만난 것이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부끄럽고, 오그라드는 말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다 생각했었다.

사람마다 제각기 모습이 다리고,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이해를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그것을알기에 포기했었다.
가능성이 없는 일에, 포기를 하지 않아 끝까지 매달린다면.

그것은 얼마나 미련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니었다.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있었다.

나와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큰 것은 필요 없었다.
그저- 진실   몇 마디면 충분 했다.

내가 지금  우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속이, 무언가.

응어리가, 조금은.
내가 쌓아 올린, 하찮은 오물 덩어리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사라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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